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하라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을 읽고

2012212080 장준빈

 

 

  디자이너란 어떤 사람인가? 디자이너, 이는 어떤 것에 대해 주장하거나 설명하는 일보다 직접 만들고 보여주는 것이 훨씬 쉽다고 생각하며, 또 그것을 재미있어하는 사람 또는 집단이다. 특별한 이론이 꼭 뒷받침 되어야할 수도 있으나, 굳이 그런 이론 없이 사람의 여러 특성 중 몇 개를 자극하여 훌륭한 작업물을 내놓을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이다. ‘무엇 때문에 힘들여서 이것저것 설명을 늘어놓을 필요가 있겠느냐’. ‘그냥 보여주면 안 돼?’ 하며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내 주변엔 많은 것 같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현 시대, 지금 세대만으로의 디자인을 끝낼 것이라면 이런 생각에도 아무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디자인을 다음 세대로 전수하는 게 목적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고 본다. 이것은 반드시 이론으로 정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경험이란 것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누군가 멈춰서 음미하지 않으면 결코 축적되지 않는다. 그 축적된 경험은 후대의 이해와 손질을 거쳐 지혜로 탈바꿈하며, 이렇게 숙성된 지혜가 바로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전승되는 것이 인간 역사의 진보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세상도 사실은 우리 전 세대들, 조상들이 축적해 놓은 유구한 전통이 발판이 된 것이다. 그때에도 누군가는 이론 따위는 고리타분하며, 필요없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세찬 속세의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의 역사는 여전히 다음 세대의 진보를 이루어 내고 있다.

 

  ‘디자인의 디자인에 소개된 많은 디자인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리디자인 프로젝트를 들 수 있다. ‘리디자인(Re-Design) 프로젝트란 하라 켄야가 주도한 프로젝트로 시각디자인, 제품디자인, 의상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디자이너들에게 일상의 제품들을 새롭게 디자인하라는 과제를 주고 그 결과물을 프로토타입으로 제작하는 작업이었다.

 

  일상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물건들을 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제품디자인실습(2)만 하더라도 Re-Design 과제는 정말 피말렸었던 걸로 기억한다. 디자인이란 그 무엇보다 합목적성을 전제로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 학부생들이 이번에 진행한 컵, 스피커, 헤드셋 등이 모두 비슷한 모양으로 디자인 되어있다면, 그것에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이것들은 어느 순간, 누군가의 우발적 영감에 의해 창조될 수도 있지만 그렇진 않다. 이것들에는 수 년 동안 축적된 일상의 경험이 반영되어 오늘날의 형태를 띄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경험의 결과물을 한 순간에 뒤집어 버리는 일은 쉽지 않을뿐더러 자칫 잘못했다간 역사를 기만하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제를 받은 디자이너들은 마치 이런 심려를 비웃듯 대단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책에서의 예로는 반 시게루의 네모난 휴지심, 후가사와 나오토의 티백 등이 있다. 보통의 동그란 휴지심이라면 휴지를 풀 때 아무런 저항이 전해지지 않고, 잡아당기는 만큼 술술 풀려 원하는대로 쓸 수 있다. 그러나 네모난 휴지심은 풀릴 때 마다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를 낸다. 바로 이 저항이 휴지를 낭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음 속 작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경험, 학습됨으로써 휴지를 아끼는 습관으로까지 발전되게 한다. 티백같은 경우에는 티백에 고리가 달려있다. 이 고리의 빛깔은 차가 가장 맛있어지는 시점의 색감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처음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차의 맛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 둘간의 관계를 인식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사용자는 나는 고리보다 진한 색이 좋아’. ‘오늘은 엷게 타서 한번 먹어볼까등의 색채의 의미를 스스로 구상해 나갈 수 있다. 단순한 고리 하나가 인간과 차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어 낸 것이다.

 

  이 책은 디자인이란 허울 좋은 이야기에 불과하며, 사실은 인간과 사물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라 켄야의 디자인 철학은 일상의 사물들과 멀리 떨어져서 대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제품으로 해석, 접근되며, 디자인이 마치 타고난 센스나 탁월한 미의식을 갖춰야만이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전면 부정한다. 나 또한 디자인은 사람과 사물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며 하라켄 야의 의견에 동감한다.

 

참고문헌: 디자인의 디자인(2007), 하라켄야 저, 민병걸 역, 인그라픽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