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승진 연세대학교


 


전문 디자이너가 아니면서도 필립 스탁 Philippe Starck의 이름을 들어봤거나 혹은 그의 작품을 하나쯤 구별할 수 있다면 자신이 디자인에 꽤 관심있는 축에 든다고 생각해도 된다. 스탁의 작품은 원초적인 감수성과 함께 현대적 매끄러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전문매장에서 내세우는 ‘디자이너스 초이스’ 딱지에서 풍기는 멋쟁이 기질 dandy style 과는 다른 느낌이다. 깜찍한 일본산 전자 장난감, 심각한 독일제 기계, 그리고 현란한 이태리산 제품을 그럭저럭 알아본다지만 그 속에서 스탁이라는 프랑스의 별종을 구별해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발랄한 도시적 감수성에서 원시적 낭만성까지 표현의 음대역을 소유한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작품은 극단의 20세기에서 희망없는 21세기에 이르는 세기말적 분위기까지 드러낸다.


세기말의 별종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194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Notre Dame de Sainte Croix in Neuilly와 Ecole Nissim de Camindo in Paris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그의 부친은 항공기 설계사였고 스탁은 부친에게서 ?발명가?적 소양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학창시절인 60년대 이미 헬륨을 채운 풍선을 이용해 공중에 띄운 램프를 고안한 사례도 있다. 이후 그의 디자인에 나타나는 주제는 줄곧 항공역학적 경쾌함을 통한 중력에 대한 저항이었다(A). 가벼운 재료와 구조의 경제성, 지상에 고착되기 보다는 항상 날아갈 준비를 하는 듯한 생동하는 모습이 일관된 이미지다. 20세에 이미 피에르 가르뎅의 아트 디렉터로 활약한 그는 1982년 미태랑 대통령의 엘리제궁 사저를 리모델링(B)하였는데 실내 디자인 분야의 역작으로 이를 계기로 프랑스 최고의 디자이너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 작품은 건축적으로는 대통령 궁에서 기대되는 중후한 이미지를 높고 넓은 벽면으로 살리면서도 조명과 옷걸이같은 디테일은 지극히 간결하고 경쾌하게 처리했다. 의자를 보면 신체를 감싸기 충분해보이는 몸체를 갖고있지만 이를 받치는 세개의 다리는 단지 몇개의 원과 직선으로 구성된 간결한 구조물이다. 이후 시각적 풍성함과 구조의 간결함은 스탁 디자인은 키워드가 된다. 1989년 동경 신 아사히 빌딩, 나니나니 Naniani(I)와 라플라메 La Flamme, 1990년 오사카의 빌딩. 가구디자인으로는 1985년 프랑스 문화부의 가구, 1988년 코스테스 카페Cafe Costes 의자, 1990년 빔 벤더스 스툴(C), 1994년 로드 요 Lord Yo 의자(D) 등이 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여 1980년에 오스카Oscar du lumiere 상에서 하버드 디자인상 Harvard Excellence in Design Award(1997)등을 수상하였다. 또 프랑스, 일본, 미국, 영국 등에서 작품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하였다. 작품 중 일부는 파리, 런던, 뉴욕의 여러 박물관과 장식 미술관에 채택되어 영구 소장되었다.


무 디자인에서도 좋은 디자인을 good design for non design
제품디자인 분야의 유명한 것들은, 이태리 워슈모빌 Washmobile사의 세면비품들, 알레시 Alessi, 비트라 Vitra, 카시나 Cassina사의 잡화들, 프랑스 듀퐁사의 라이터, 톰슨Thomson사의 TV(G)를 비롯한 전자제품류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La Route 백화점과 미국의 타갯Target 체인을 통하여 대중에게 고품질의 디자인을 염가에 제공하고자?The Good Goods Catalog?란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칫솔, 파리채, 재털이, 화분, 쓰레기통 등은 너무 싸구려 제품이라 전문적 디자인을 적용할만한 대상도 아니라고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스탁은 90년대 중반부터 중저가 브랜드와 저가 제품의 디자인에 주력하고 있다. 이는 생산자에겐 박리다매, 소비자에겐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부담없이 아무때나 값싸게 구입한다는 기회와 선택의 다양성을 제공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쉽게 만족시키는 경제성이란 또 다른 차원의 ‘경쾌한’ 디자인을 실현하는 모습이다. 이른바 굿디자인을 위하여 일정한 대가 물어야한다는 생각은 브르주아적 속물근성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 역시 스탁의 무 디자인non design이 조롱하는 부분이다.


세속적인 것의 솔직함
그런 가운데 공통적 조형언어는 여전히 유기적 유연성이다. 식물 싹 모양의 반투명 합성수지 칫솔(E)은 반기계주의적 태도로도 읽을 수있다. 유기적 이미지, 구조의 경쾌함은 바로 생물학적 경제성의 원리며, 당연히도 모든 사물은 태어남, 삶, 죽음이 있다는 원리로 다시 귀결된다. 성적sexual 문란함까지도 연상시키는 유기적 디자인organic design은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본다면 발생과 성장, 죽음을 관조하는 생명존중 사상의 한 단면이다. 모든 사물은 태어남, 삶, 죽음이 있다. 그러니 걱정말고 현세를 즐기라는 세속적secular 원리를 새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먼지 크기도 안 되는 우리의 삶에 집착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도 없으니 다만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살뿐이라는 명제다. 그간 세상의 사물은 너무 심각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방만했다. 스탁은 이제 디자인에 갖춰야할 성실성의 명제가 더이상 복음적일 필요도, 금욕적일 이유도 없다고 말한다. ‘담배는 비벼끄고(H), 귀챦은 파리는 후려쳐라.’(F) 디자인은 인간 본능에서 투사된 생리적 원리와 이에 따른 일상생활에 보탬이되면 된다. 디자인이 대중성의 저속함으로 비칠지라도 그게 싸고 잘 돌아간다면 공리주의적 민주성에는 더 좋은게 아닌가. 오늘날 디자인과 세계에 던지는 그이 선언은 그래서 조금은 색다르다: ‘먼저 사물과 이를 디자인할 디자이너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질문하라. 그리고 인간과 제품에 깔린 잠재의식, 혹은 무의식을 읽어라, 아름다움은 고고한 멋보다는 선량함이란 인본주의적 개념으로 바뀌어야한다, 인간이 제품에 포장되면 안 된다, 인간을 드러내야한다, 21세기는 비물질의 세계가 되어야하며 디자이너가 먼저 이런 세계를 열어야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겉옷을 벗어야한다. 그리고 물건의 개입 없이 자연 환경과 바로 만나야한다...’


 


 


Lindinger, H. ed., Ulm Design: the Morality of Objects, MIT press, 1991
Whitford, F. Bauhaus, 1984, 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