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전통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본문: 전통공예와 디자인의 조화

2015.10.05

김다임

 

 

 

[기사본문]

중국에서는 중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만든 브랜드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브랜드에서 주축역할을 하고 있는 장레이는 제품과 공간 디자이너로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자동차디자인을 전공하고 ‘전통의 미래’라는 주제로 미국, 네덜란드, 중국 등에서 8차례 전시를 개최했다. 독일 출신인 Christoph는 가구와 자동차 디자이너로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에서 자동차디자인을 전공하고 네덜란드, 독일 등을 거쳐 현재 항저우에 거주하고 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출신인 Jovana는 가구와 공간 디자이너로 베오그라드 대학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했다. Pinwu는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2012년 밀라노가구박람회 Salone Satellite에서 대상, ELLE DÉCOR 중국 디자인상, 레드닷 Best of Best 등을 수상했다. 그들의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

 

 

 

[본문]

 차근차근 되짚어보면 예술의 번영은 미술사조를 따라 그 변화의 흐름이 정해지게 된다. 과거 미술의 중심이 서양 이었으며, 많은 문화와

예술의 발상지 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랜 시기 정착으로 인하여 생긴 예상가능한 스토리, 새로운 창작물의 부족과 발전을 위한 디딤돌 이 필요하였다. 바로 '근본적인 새로움'이 필요한 것 이었다. 지금의 미술은 과도기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을 타  발전을 위한 새로운 기반을 찾고 있다.  현재 그 기반이 아시아가 확정되어져 가고있는 추세이다.

 

 

  요즘들어 큰 전시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월등한 성장률을보이고 있는 다양한 아시아 작가들을 볼수있다. 그 중 한국인 디자이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나타나지 못하는가 ? 한국은 이러한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해야 하며 , 몰입 해야할 때다.

 

 우선 중국과 일본, 두 나라의 작가들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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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976년 오사카에 지어진 <아즈마 주택>

  안도 다다오 作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로써 안도 다다오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으로 유럽과 미국 등 세계 각국을 여행하면서 건축을 독학으로 배웠으며 , 젊은 시절 프로 권투선수 이기도 한 그는 일본의 건축역사에 한획을 긋는 작품을 제작하게 되는데 , 바로  오사카에 지어진 '이즈마 주택'이다.

아즈마 주택은 형태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니는 문화적 특수성과 근대건축이 지향하였던 보편화에 대한 열망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 속에는  르 꼬르뷔제의 형태적인 강렬함, 루이스 칸의 공간적 스케일, 그리고 미스의 건축이 지니고 있는 수학적인 명쾌함을 모두 를 발견하게 되며, 동서양의 조화를 어우르는 면이 가장 인상적인 특징이다. 또한 주거의 원초적인 속성이 미술계가 그를 주목하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는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을 중심으로 한 건축 작업을 통하여 일본이라는 지역적 개성을 강하게 표출하는 동시에 20세기 건축이 지향해야 할 보편성의 속성은 무엇인가를 성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20세기 후반의 강렬한 건축적 성과들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그의 건축에 대해 평자들은 이제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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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2005 <Untitled>

Yue Minjun Oil on canvas  220.3 x 200 cm

 

 

 

 

 다음은 중국 현대미술작가로써 시니컬리얼리즘을 표현하고 있는 위에민쥔이다. 또다른 중국작가인 장샤오강과 더불어 해외미술시장에서 가장 인기가있는 작가이다. 1962년 헤이롱쟝 따칭에서 출생하였으며 작품의 주된 주제로는 불편한 자세를 취하고 바보같은 웃음을 짓고있는 인물들을 그려내며, 억압적인 중국 현실 속에서도 참여도, 방관도 하지못하는 수동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지식인의 소외감과 무력감을 나타내고있다.

 

 그의 작품에 결정적인 영향을준 사건이 존재하는데, 바로 '황슈아이 사건'이었다. 소학교 5학년 홍이병이었던 황슈아이는 일기장에 선생님의 잘못을 지적한 후로 선생님의 미움을 샀다. 황슈아이는 <북경일보>에 이 이을 고발했고, 마침 건수를 찾던 강청(江靑)은 공개서한을 통해  '이것은 너와 선생님 간의 문제가 아니라 두 계급, 두 노선 간의 중대한 일'이라고 답했다. 황슈아이의 일기가 언론에 공개된 후 선생님은 치명적인 비판과 수모를 겪은 대신에 황슈아이는 계급투쟁의 영웅이 되어 순회연설까지 했다. 이 사건은 중국 전역에 큰 바람을 일으켰다. 위에민쥔의 급우들 역시 이 사건에 고무되어 선생님의 얼굴에 책을 던지거나 새총을 쏘는 등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은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에게 평생 잊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이러한 서양에서는 있지 못할 사건을 계기로 하여 시작한 위에민쥔의 작품세계는 당연히 신선해 할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일본, 중국을대표하는 두 작가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시각적 이거나 이념적이거나, 긍정적인 면이나 부정적인 면이나 어느 하나 가리지 않고 오로지 '독자적인' 그들만의 문화를 작품속에 담아 내었다. 그 어느것도 같거나 닮지 않은  본연의 것들. 그러한 특징들은 작가들의 유명세에 부가가치를 주는 역할을 한것이다. 독자적인 문화로 재생성한 작품은 그 어느것도 범접할수 없는 가치를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자. 극단적인 예를 들어 이 근래에 일어났던 '윤은혜 디자인 표절 사건' 을 보면 단번에 알아차릴수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디자이너들의 상황을 대표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표절, 비슷한 느낌, 목적성 없고, 일회용일뿐인 디자인. 그것들을 바로 지금 한국에서 하고있는것이다. 먹고 자고 쓰레기를 만드는 꼴이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모두가 이런 길로 가는 이유가 사회적인 문제때문이라는 점이다. 취직, 취업이 우선인 디자이너들은 회사에서 시키는대로 일을 할수밖에 없다. 회사들은 기업적 신념이 아직 산업혁명 시기에 멈춰져 있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기업의 아이덴티티와 자부심 보다는 순이익과 자본주의에 집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선진국에 가까워 지고 있는데 사상은 후진국에 가깝다니, 마치 청소년기 아이들처럼 허우대만 크고 생각이 자라지 못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미술이 쓰러져 간다는 뜻은 아니다. 앞서 예시를 든 청소년 처럼 어떤 교육과 경험, 발전을 하느냐에 따라서 미래 미술계의 퀄리티를 높이거나 지체할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기도 동아시아를 주목하고 있는 추세 이므로, 어떻게 하면 독자적인 감성을 만들어내느냐를 고민하는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중심을 한국의 문화에 초점을 두고 고안한다면, 앞으로의 국가적 경쟁속에서도 살아남을것이다.

 

 

 

 

 

 


본문 : http://www.designdb.com/dreport/dblogView.asp?gubun=1&oDm=3&page=1&bbsPKID=21379#hea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