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디자인


채승진 연세대학교


면도날: ‘누구도 당신의 얼굴은 당신만큼 알지 못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생관념에 얽힌 이야기는 인간의 심리를 꽉 잡아맬 수 있었다. 남자가 거의 매일 얼굴에 비벼대는 강철, 바로 면도날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일회용 면도날의 시조 질레트(King Camp Gillette 1855~1932)는 1900년대 자신의 물건을 광고하는 가운데 위생에 대한 인간의 강박관념을 이용했다. 먼저 이발소에서 남이 쓴 면도기, 면도솔, 비누와 그 밖의 이발용 기구에 접촉하는데서 오는 위험성 경고했다. “아무도 당신만큼 당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따라서 “어느 누구도 당신만큼 당신 얼굴을 보살필 수 없다”고 강조했다. 1909년에 나온 광고 헤드라인의 요점은 남자들은 매일 면도기를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매일 아침 면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남자들은 매일 면도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 스테인리스 스틸 면도날이 나오고 오늘날까지 강철 면도날은 질레트의 기대대로 일회용 일상용품이 되었다.
남자들이 비로소 제대로 된 면도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18세기 잉글랜드 셰필드에서 처음 생산된 접이식 철제 면도칼의 등장부터이다. 이 디자인은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날을 세워 쓴다면 꽤 오랜 동안 사용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미국 전역을 돌며 영업을 뛰던 질레트의 생각은 달랐다. “한번 쓰고 버릴 물건을 발명하라. 그러면 고객이 그것을 더 많이 사러 올 것이다.” 그는 일회용 병마개 발명가 윌리암 페인터(W. Painter)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철강제조업자들은 질레트가 제안한 얇은 강철 날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아메리칸 세이프티 레이저(American Safety Razor)사를 세웠다. 질레트가 광고한 타운 앤드 컨트리(Town & Country)는 부유층을 겨냥한 잡지였다. 광고된 면도기 중 가장 싼 것이 5달러로 칼날 형 면도기의 2배에 가깝고 공장노동자 주급의 1/2에 달하는 액수였다. 그러나 강박적 위생관념과 시대를 풍미한 말끔함과 깨끗함의 이미지는 이 비싼 물건을 팔아줬다. 면도기가 전국에 충분히 퍼지면서 면도날도 팔리기 시작했다. 질레트는 처음 모든 소비자에게 5달러를 받고 다음은 면도날 판매로 끊임없는 수입을 올렸다. "스스로 면도하세요.“, “눕혀 쓰건 세워 쓰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천사의 손길과 같은 감촉“... 두렵고 차가운 강철이 부드러운 거품과 함께 사람들의 살결을 오르내리게 되었다. 


통조림: 밀봉하고 다시 열기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한 강철 덩어리를 치자면 그 하나가 자동차요, 다음이 음료수 캔이다. 우리는 강철에 싸여 살고 강철에 담긴 음식과 음료수를 강철로 뜨거나 집거나 찍거나 꺼내 먹고 살고 있다. 통조림에서 비롯된 음료수 캔은 한동안 알루미늄이 대세를 이루었으나 요즘 다시 강철로 만들고 있다. 강철은 사냥감을 찌르고 포획물을 도막내는 일에서 음식을 저장하고 익히고 이를 입까지 가져가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오늘날 어느 집에나 냉장고라는 넉넉한 식품 저장고가 자리 잡고 있어 음식 걱정이 많이 덜어졌고 또 싱싱한 음식을 오래두고 틈틈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음식의 부패가 세균번식에 의한 것이고 살균에는 끓이는 방법이 최고란 점이 알려진 것은 불과 이백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일단 익힌 음식이라도 세균과 곰팡이 포자가 가득한 뜨듯한 공기 속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다. 1810년 프랑스의 제과업자 겸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Nicolas F. Appert)는 유리항아리나 유리병에 조리된 고기와 야채, 과일을 넣고 밀봉하여 120도 가까이 끓는 물 속에 한동안 담가두면 음식물내 잔여 세균이 죽고 내부에 진공(공기가 없으면 세균도 질식한다)이 형성되면서 음식물을 오래 보존할 수 있음을 알아내었다. 이 방법으로 아페르는 프랑스 정부가 요구한 장기 저장용 군용식량의 조건을 만족시키고 1만2천 프랑의 상금을 탔다. 그러나 유리용기는 무겁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깨지기 쉬워 군용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페르의 저장방식은 1814년 연합군이 나폴레옹을 몰아내고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급속이 퍼져나갔고, 1810년 런던의 상인 피터 듀런트(Peter Durant)가 연철에 주석을 입힌 깡통통조림을 발명하여 특허등록하였다. 처음에는 수작업으로 통조림을 만들다 보니 워낙 비싸 군용 외에는 쓸 수가 없었지만 1813년 존 홀(John Hall)과 바이런 도킨(Byran Dorkin)이 상업적 생산을 시작했고 1846년 헨리 에번즈(Henry Evans)가 시간당 깡통 60개를 생산할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하면서 점차 가격이 내려갔다.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납땜으로 밀봉하다보니 납중독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는 1845년 북극탐험에 나선 프랭클린 탐험대에게 파멸적인 결과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평상시 제일 큰 문제는 강력히 밀봉된 음식을 어떻게 열어 먹느냐였다. 통조림의 초기 제조기술은 보존기능을 높이는 것 이상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목적지까지 통째로 무사히만 간다면 그 다음은 몰라도 된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군인들은 급한 나머지 칼이나 총검, 심지어는 총으로 통조림을 격파해야했다. 깡통 두께가 어느 정도 얇아지면서 비로소 깡통따개가 발명되었는데 기록된 바에 따르면 1858년 미국 코네티컷의 에즈라 워너(Ezra Warner)의 특허가 최초다. 상업적 생산 시작된 이래 45년만의 일이다. 면도날에 면도기가 따라붙고 스카치테이프에 디스펜서가 따라 붙듯 어떤 인공물이 발명되면 거기에 따르는 보조 인공물의 개발이 즉시 뒤따라야 하는 법이지만 깡통따개는 참으로 굼뜨게도 나왔다. 1963년에 꼭지를 들어올려 따는 알코아(Alcoa)의 알루미늄캔이 나왔다. 이는 획기적인 발전이긴 했지만 떨어진 꼭지에 다치거나 야생동물이나 어린이가 집어 삼키는 문제가 있었다. 1989년 드디어 이 문제를 해결한 요즘의 꼭지 캔이 나왔다. 강관에서 출발한 통조림은 알루미늄을 거쳐 다시 강철로 돌아왔다.


수정궁: 예술과 기술의 결합
과학은 ‘발견’하고 공학은 ‘발명’한다는 말은 어떤 뜻일까? 과학자는 주어진 세계를 다루고 공학자는 만들어가는 세계를 다룬다는 뜻이다. 주어진 세계란 보통 자연 환경을, 만들어진 세계는 인공 환경을 말한다고 할 때, 디자인은 과학자가 다루는 주어진 자연 세계를 엔지니어가 다루는 만들어가는 인공 세계와 결합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 혹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강철은 이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며 근대 세계에 극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산업혁명을 처음 주도한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대담하고 야심적인 건물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1851년 만국박람회(Great Exhibition)를 위해 세운 수정궁(Crystal Palace)이다. 수정궁을 설계한 조셉 팩스턴(Joseph Paxton)은 1801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데번셔 공작의 정원사로 일했다. 그는 정원관리뿐만 아니라 건축설계에서도 뛰어나 재능을 보여 1840년 천 2백 평쯤 되는 커다란 온실을 만들기도 했다. 채스워스에 지어진 이 온실에 팩스턴은 기아나(Guiana)산 수련을 얻어다 키웠는데 이 열대 식물은 그의 온실에서 비로소 거대한 잎과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수련이 점점 자라남에 따라 팩스턴은 이 식물을 위한 건물을 따로 설계했는데 디자인은 수련 잎의 모양과 구조를 본 딴 것이었다. 지름이 1미터 50센티 정도 되는 수련 잎은 어린아이가 올라가도 버틸 만큼 튼튼했는데 이유는 바로 잎을 받치는 줄기의 구조 때문이었다. 팩스턴은 이 구조를 응용하여 나무빔과 금속들보로 유리지붕을 받치는 온실을 완성하였다. 가로 14.3미터 세로 18.2미터의 가볍고 우아한 건물은 수정궁 설계의 기초가 되었다.



수정궁은 가로 122미터, 세로 547미터, 약 2만평으로 30만장의 유리와 4천5백만 톤의 철이 들어갔다. 이전에 한번도 시도된 바 없는 독특한 재료와 디자인이었지만 산업혁명 기간 중 수없이 건설된 철도와 교량설계에서 쌓인 경험으로 볼 때 충분히 해볼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채 6개월도 안 걸린 공사 기간이다. 구조 설계는 철도 기사였던 피터 버로우(Peter Barlow)가 했고 건축심의 위원회는 “철과 유리”의 건물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팩스턴의 설계는 디자인이 아주 간결하여 조립속도가 빠르고 내부에는 벽이 없으며 쓴 재료를 나중에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디자인이 채택된 이유는 비교할 수 없는 싼 건축비(평당 단가)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빠른 공사 기간, 바로 경제성이었다. 1850년 9월 29일에 시작된 공사는 단 17주 만에 완성되어 1851년 1월 개관할 수 있었다. 특히 공간 비율은 전시공간의 크기와 당시 기술의 한계를 바탕으로 정해졌는데, 1.2미터 표준규격의 유리 6장을 지그재그로 맞배지붕처럼 세워 7.2미터 기본단위로 만들고 이를 단철 들보에 얹어 7.2미터 간격으로 단철 기둥을 세워 받치는 식이었다. 네 개의 기둥을 다시 28.8미터 길이 단철 트러스가 지지하여 내부 공간을 조성했다. 수정궁에서 박람회가 열린 141일 동안 6백만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건축가도 아닌 정원사의 작품으로 이전에 한번도 써보지 않은 재료를 써서 역사상 최단시간에 건설하고 박람회장의 기능도 완벽히 수행해내었다. 문제는 건축이 너무 훌륭하여 막상 전시품의 빛이 바랬다는 점이다.


최고의 재료, 최고의 디자인
약 150억 년 전, 뜨겁고 밀도가 높은 물질이 대폭발을 이루면서 탄생한 우주는 점점 식어가면서 수많은 은하와 별을 만들어냈다. 별의 내부에서는 수소와 헬륨의 핵융합에 의해서 탄소, 산소, 규소 등이 만들어지다가 마침내 철이 만들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성된 철은 우주를 구성하는 보편적인 물질로서, 가장 단단하게 결합된 원자이며 가장 안정된 원자 가운데 하나이다.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유성도 대부분 철로 이루어져 있다. 철은 지구 땅거죽인 지각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 가운데 네 번째로 풍부하다. 탄소 등 첨가 성분을 조절하거나 니켈, 망간 등 다른 금속과 합금하거나 고온처리 후 냉각 방식을 다르게 하면 얼마든지 다른 성격의 강철을 얻을 수 있다. 변신의 귀재인 셈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황토도 철을 함유하고 있어 붉은 빛을 띠는 것인데, 흙이나 광물, 암석 등에 거의 예외 없이 존재하는 것이 철일 정도로 풍부함을 자랑한다.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장점은 재료 고유의 강력함이다. 인류 전 역사를 통해 강철로 무장한 군대는 가장 무서운 힘을 발휘하였는데, 그 계보는 그리스 중장갑 보병, 중세의 철갑기사, 근대의 전차로 이어진다. 철은 가장 치열한 전투의 최선봉부터 따뜻한 음식이 준비되는 가정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구석구석에 존재해왔다. 철의 대량생산으로 인류역사의 극적인 반전이 가능했다. 산업혁명은 목재와 석재가 고작이던 전 시대를 철의 대량생산으로 결별시켰다. 이전에 상상도 못한 규모의 다리가 세워지고 철탑이 올라갔다. 위생적 환경 속에서 고성능 자동차를 소유하고 5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을 꿈꿀 수 있는 것도 모두 강철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