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시스템과 제품 디자인 
 
이미 강조한 제품 디자인의 본질로 `제품의 기술적 특성을 사용자(소비자)에게 좀더 명확하고 상징성 있게 전달하여 제품의 종합적 가치와 성능을 높이는 일`이 있다. 이 점에 있어 문제는 제품 디자인을 기술 성과의 파생적 산물로 소극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기술적 특성을 정의하는 기술 시스템(technological system)을 이해하고 그 변동 요인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이번 시간에는 이런 문제를 일단 집어보기로 한다.


1. 제품 디자인과 기술 시스템
제품(산업) 디자인은 기술 시스템의 하부구조이다. 여기서 기술 시스템은 현대 산업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과학기술체계를 뜻한다. 이 현대 기술시스템은 에너지 개발과 공급체계, 교통 및 운송유통체계, 주거 및 공장체계, 식량공급체계, 통신방송체계, 금융체계 그리고 여가 및 오락체계 등으로 구성되며 이들 시스템 역시 자체의 하부구조를 갖게 된다.



디자인이 다루는 대상은 다시 이들 각 하부체계의 한 단계 아래 하부구조를 형성하는 다양한 제품(기구) 및 장치(체계)들이다. 여기서 특정 제품의 개념설정과 설계 그리고 생산과 유통은 다양한 기술의 개입을 필요로 하는데, 예를들어 시장조사, 연구개발, 전기공학, 기계공학 등을 포함하여 제품(산업) 디자인 역시 그 중의 하나가 된다. 이와 같이 제품과 장치의 실체화에 적용되는 다양한 기술 중 산업 디자인의 주요 기능은 제품의 미적 혁신과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인간-기계 시스템(man-machine system)의 효율을 최적화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한편 제품(산업) 디자인은 자체의 기능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그 기능과 역할을 좀 더 효율적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제품의 실체화 과정에 개입하는 주변의 다양한 기술들을 이해하고 이용하려 노력한다. 예를들어 디자인이 실시하는 트렌드와 유행조사, 소비자 심리연구, 생산재료에 관한 탐구, 장치설계(tooling)를 포함한 제조기법 조사, 유통구조확인, 매장설계, 사용법 명시 등등이 그것들이다. 전체 상부구조의 기술시스템에 관한 이해와 주변 기술체계와의 효과적 연계성 확립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 디자인의 과학적 접근방법(scientific approach of design and design methodology)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현대적 디자인 방법의 전형적인 형태로 정착하였다.
    
 
2. 기술 시스템의 변동과 과학적 디자인 방법
그러나 산업디자인의 과학적 접근방법은 방법론으로서 전반적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몇가지의 한계점을 갖게 된다.


첫번째 문제는 방법론은 디자인이 시작되는 당시의 대상 제품에 관련된 첨단 기술 시스템을 전제로 하고 그 연계 기술분야만을 탐구한다는 것이다. 모든 기술 시스템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장기적인 변동곡선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실시된 제품 개발이 이의 실체화 단계에 이르렀을 때, 그 상부 기술 시스템의 변동 곡선에서 벗어난 경우가 생기는 문제이다.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기술 시스템의 변화로 인하여 제품이 역할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열악해지거나 심지어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예를들어 `시티폰`의 경우 별도의 개인통신시스템으로 확립되기도 전에 휴대폰(cellular phone)에 의하여 추월당했고, 이에 관련된 수많은 가입자와 시설과 비용은 고립된 시스템으로 존재하다 소멸되고 말았다. 이 경우는 기술사적 측면에서 파악할 때 19세기말부터 시작된 무선통신 기술 시스템의 장기 변동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피할 수 있는 시행착오였다.


두번째 문제는 산업 디자인이 개입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 시스템들에 대한 폭넓고 객관적인 비교분석의 틀을 기존의 과학적 디자인 접근방법은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술의 사회적 구성(social construction of technology)을 중심으로 기술사회학에 관한 탐구를 부가함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될 가능성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