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제품 디자인일까-과거로 시간 여행


시간적으로 제품 디자인이 시작된 시기를 거슬러 가보는 방법이 있다. 제품 디자인이 시작된 기원을 따지자는 것이다. 길게 잡는 사람들은 도구의 발견 내지 발명을 기준으로 홍적세의 구석기 문화를 그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이런 시각을 가진 세 사람의 책을 보자. 이들이 말하는 디자인은 모두 `제품 디자인`을 뜻한다.


롤랜드(Kurt Rowland)는 `도구의 발전(진화)`이라는 관점으로, `The Development of Shape`(1964)에서 자연의 힘에 의한 물체의 형태를 결정 과정과 결과를 통하여 (제품)디자인의 속성을 정의한다. 태양, 물(강, 바다, 파도), 바람, 얼음(빙하)에 의하여 형성된 자연의 형태와 그 연장선상에서 인간의 힘이 가미되어 생겨난 도구를 예로들어 제품 디자인의 기원을 해설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으로 비에 강줄기가 바뀌듯이 도구를 줍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버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집이나 공장에서 만들고, 못쓰게 되거나 멀리 떠날 때 버리는 것과 같다. 석기, 목기에서 토기와 청동기, 철기, 다시 비철금속과 합성수지로 재료가 바뀌고, 인력에서 축력이나 수력, 그리고 기계력으로 바뀐 것이 달라진 것 뿐이지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다.


에반즈(H.M.Evans)는 계획가로서 인간을 문제삼아 디자인 행위를 `인간 활동의 본질`로 보고 있다. `Man the Designers`(1973)에서 도구를 만들고, 집을 짓고, 글자를 쓰는 것 자체를 종합적인 디자인 행위로 보고 있다. 책 타이틀대로 지상의 모든이가 문자 디자이너이거나 건축가, 요리 디자이너, 가사 디자이너, 헤어 디자이너, 정치 디자이너 혹은 제품 디자이너이든 어떤 종류의 디자이너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른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행위 모두는 디자인 활동이 되는 것이고, 그 중 제품 디자인의 내용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징적, 실용적 도구를 만드는 것이 된다. `디자인의 제작자이자 수요자로서 인간`이라는 시각을 기본 전제로, 에반즈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디자이너(Man the Designers)로서 갖추어야 할 높은 수준의 안목과 선택 능력, 감수성, 그리고 비판 정신이다. 따라서 물질 환경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태도와 그 속에서 자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중요시한다. 그에게 있어 감수성과 표현력은 디자이너로서 인간의 `능력`인 것이다.


마이욜(W.H.Mayall)은 디자인 행위자로서 인간의 기원을, 롤랜드의 시각처럼 약 200만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도구제작자로서 인간(Man the Toolmaker)`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인류의 도구 제작이 새가 둥지를 틀거나 벌집을 짓는 것과 구별되는 것은, 이들처럼 본능에 기초한 것이 아닌 경험과 수정에 의한 진화와 발전 과정을 거쳐 도구를 개선시켜나갔다는 점이다. 무의식의 본능과 의도적인 선택, 개선행위를 구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인간의 도구 제작은 `가상미래우발성(an imaginary future eventuality)`에 대한 대비의 개념에서 구별되며, 이 측면이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침팬지가 벌레를 잡기 위해 꼬챙이를 쓰는 행위는 인간의 그것과 같지만, 그들은 그 도구를 `현장에서 눈으로 발견`한 것이지 `계획된 정신에 따라 사전에 제작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연에 대비하거나 미래를 계획하여 도구를 제작하는 것은 인간만의 유일한 특성이고 이것이 디자인 행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이 세 사람의 시각을 통하여 인간의 본능이 아닌 본성에서 비롯되는 제품 디자인의 기원을 대략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이 앞에서 말한 `호모 파베르(Homo Faber)`적인 소박한 본성론으로는 모두 설명되진 않는다. 디자인 분야에서 2만 년 전 이야기에 심각할 수 있는 사람은 고대디자인사 연구가 정도라고 하겠는데, 99.9%에 해당하는 나머지 대부분은 `현대 디자인`을 직접하거나 간접적으로 연구 교육하여 먹고 살기 때문이다. 천분의 구백구십구에 관한 이야기는 당연히 달라진다. 그래서 다시 농경사회부터 근대 산업혁명 이전까지에서 한번 더 보아야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 후기 산업혁명기의 포디즘(Fordism)에서 오늘날 이 고통(만일 당신이 느끼신다면...)의 기원을 따져야 할 것이고, 마지막(?)으로 맥도날드(햄버거 집)에 다녀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