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글 모두, 인간의 생물학적인 측면을 시작으로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같은 서문으로 시작을 해서 올리는 김에 두 개 다 올려 봅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세요.

남자는 발달된 근육과 뛰어난 공간지각 능력으로 수렵에 용이한 신체적 구조를 갖추었다.
보다 민첩 하고 효율적인 활동을 위한 납작하고 군더더기 없는 가슴, 달리기를 잘 할 수 있는 탄탄하고
발달된 하체를 보유하고 있다. 그들의 뇌는 사물이나 표식으로 공간의 위치를 인식 하는 것이 아니라
거리와 방향을 감지 해 보다 입체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한다. 또한 뇌의 함 부분을 적극 사용하여
목표한 바를 달성하는 뛰어 난 집중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딱하나 활동에 불합리 한 것이 있는데,
바로 돌출된 생식기이다. 생존을 위 한 경제적 활동(수렵)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를 취한 생식기는, 그만큼
번식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하다.
여자는 육아를 위한 최적의 신체 조건을 갖추었다. 자식(새끼)와의 유대감을 강화 시키고,
안정적으 로 보듬을 수 있는(품을 수 있는) 부드러운 살결과 영양분을 효율적으로 공급 할 수 있는 돌출된
가슴을 보유 하였다. 골반 은 출산에 용이한 펑퍼짐한 형태를 취한다. (상대적으로 허리-배-는 잘록한 형태
를 보인다.) 여자의 되는 성장하는 자식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관리, 교육시키기 위해 쉴 새 없이 뇌의 전
체를 움직여 다 각적이고 감성적인 사고를 유도 한다. 이것은 모성애를 극대화 시키는 한 요소라고 생각 된다.
생식기 또한 자손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숨겨진 생식기를 가지고 있다.
멋진 남성, 아름다운 여성의 기준은 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구조를 가진 형상을 의미하고, 애정
행각(?) 섹스는 최상의 조건의 상대를 확인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1. 번식에의 욕구와 바람기
위에서 보듯 남자와 여자가 서로 최적의 조건을 찾는 것은 번식에의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남자만 번식
에 의 욕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역시 번식에의 욕구가 있다. 하지만 남자와 여자의 또 다른 차이는 남자는 ‘줄 상대’를 찾는 것이고, 여자는 ‘받을 상대’를 찾는 다는 것이다. 남자는 보다 많이 주려는 번식에의
욕구를 보이고, 따라서 상대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여자 역시 남자와 마찬가지로 번식에의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임신과 출산을 위한 일정한 주기, 즉 한정적인 이유로 받기위한 많은 상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대가 한명이라도 주기적으로 씨를 제공해 주기만 하면 번식의 욕구는 충족된다. 여기서 남성이 자신의
상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상대를 끊임없이 찾을 수밖에 없는 원인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러한 동물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동시에, 동물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심리적 사회활동이 ‘환원주의적’관점에서의 논증에 대한 논쟁이 발생하는 것엔 그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는 다르다는데 자부심을 갖고, 그러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 모두 바람기를
스스로 통제해 왔다. 단지 사회 생물학적으로 현상을 분석한다고 한다면 인간은 번식의 욕구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
발달한 의료기술과 개선된 위생환경은 더 이상 번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생물 학적인 이유에서 남자의 바람기는 합리화 될 수 없다. 남은 것은 쾌락을 위한 바람이다. 이것은
윤리적 문제에 직결되며, 여자 남자 모두 벗어 날 수 없다.
남자와 여자의 바람기, 즉 성에 대한 쾌락의 욕구를 통제할 수 있을까? 사실 통제 그 자체가 가져오는
쾌락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해결할 어떤 방안도 모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금단의 사과가 더
탐스러워 보이고, 그렇다고 그것을 통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선택한 것은 자신의 소유욕, 그리고 안정적인 평생을 약속받기 위해서이다.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생대가
자신의 것만이 아니라 는 것은 큰 상실감을 가져다준다. 결국 인간 스스로 이것을 알고 행해야 한다.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다. 즐길 것인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것인지, 둘 사이에서 사다리 타기를 할 것인지. 자신의 목적에 맞는 상대를 만나고, 상처주지 않는 범위에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어떠한 외적 제제도 인간의
이러한 성향을 변화 시킬 수 없다.

2. 남녀 불평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위와 같은 남자와 여자의 신체적 차이로, 남성은 여성의 육아에 최적인 구조를 여성은 남성의 노동에
용이한 구조를 소유하길 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남자의 노동력과 여성의 육아의 교환이 동등한 협상의
형식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즉, 최초의 결혼이라는 계약계념이 생겨난 것이다.
자본 경쟁체제에 들어서면서 남성은 보다 많은 노동력(자식)을 원하게 되었다. 이것은 자본의 축적과
전쟁(약탈)에 모두에 득이 되기 때문 이다. 여성은 지속적인 계약을 위해 자식(노동력)을 생산해야 했다.
하지만 여성의 신체구조는 상당히 많이 변해 버렸다. 가슴은 처지고 임신을 상징하는 불룩한 배로인해
잘록한 허리는 찾아 볼 수 없다. 최적의 구조는 상실 되었다. 이것은 남성에게도 마찬가지 이지만 남성에게는 근본적인 조건이 남아있었다. 바로 ‘자본’이다. 실질적인 교환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시점에서 계약은 파기
된다. 남자는 최적의 구조는 상실했지만 애당초 여자의 목적이었던 것을 제공 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 다. 이러한 구조는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로 하락 시키는 결과를 초래 하였다. 여자와
남자모두에게 계약의 결과가 인식 되는 순간 그들의 주종관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점차
그것은 법, 관념 등으로 확고해 져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는 고도로 발전되어 점차 재산을 축적하는 노동이 근력만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 하였다. 더 이상 여자는 남자의 탄탄한
근육도, 빠른 다리도 원하지 않게 되었다. 급격하게 움직이는 사회는 뇌의 한부분만 움직이는 남자보다
뇌의 전 체를 움직이는 여자에게 유리하게 변화되고 있다. 여자는 이제 남자와 동등하게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아직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여자는 차별에 저항하고, 평등을 주장한다.
사실 과거 여자들에게 가해졌던 무언가가 오늘날 여성들에 대한 무엇보다 큰 것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져 가는 것은 여성들에게 다른 조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즉, 계약조건의
변화를 말한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회 체제가 과거의 조건을 바탕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불평등’ 이 발생한 것이다. 여성들은 이제 불평등한 계약을 맺길 바라지 않는다.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으나
남자와 여자의 차별이 없어지는 이른바 ‘평등’한 사회가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육아와 자본을 양손에 쥔 여자의 위치가 평등을 유지 할 것인가...?

▷여자는 자신의 자본으로 육아를 이행하고, 육아로 인해 얻은 자식은 새로운 노동력으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함과 동시에 여성과 자식은 가족이라는 혈연 유대관계를 생성, 또한 사슬고리 식의 노후보장관계를
맺게된 다. 여기서 남자가 제공 할 수 있는 것은 육아의 전단계인 수정뿐이다. 남자가 이러한 가족계약
관계에 들어서기 위해서 무언가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반면, 기술의 발달로 인간은 수정, 육아 모두를 다른 매체를 사용하여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에게
그 역할을 양도 한다면(EX.육아-보육원) 인간은 각 분야 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집단으로 각각 발전, 각
분야의 ‘전문 인간’이 발생할지도...(ㅡㅡ;;;) 개미처럼... 지금도 전문가가 있지만 더 효율적으로 발전
한다면, 이런 경우 가족보다는 집단의 의미로 인식되며 성의 차이도 불분명해지고... 이런 일이 아직까지
이루어 지지 않고 있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다른 무언가를 가지고 있 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미래에 대한 것은 결론 내릴 수 없음으로 물음표로 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