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가치 예측과 디자인발전


민경우(명지대), 이건표(KAIST), 이순종(서울대), 채승진(연세대)_1997년 작성


4.3. 환경요인과 디자인가치의 변화


4.3.1 역사 이후에서 1850년까지
1) 사회이념가치의 변화
사회, 문화적으로 서민 지배, 피지배층이 분리되고  16세기에 등장한 부르조아 계급은 물질문화에 있어 이전의 귀족취만 17세기 이후가 되면서 국제 교역이 증가하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취향을 보여 준다. 경제, 기술은 농경작을 하였으며 건축은 성당이 주를 이루었다. 주동력원은 물레방아를 이용하였으며 유럽은 대양 항해술을 통하여 세계 여러 곳에 식민지를 만든다. 초기 식민지에서 빼앗아온 귀금속류는 국부의 증대에 큰 기여를 했고 18세기가 되면서 식민지는 원료의 공급기지이자 그 가공품의 소비시장을 이루고 이 과정에서 축적된 부는 산업혁명의 원동력을 이루었다. 


2) 규범 및 제도가치와 기술용구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러한 경제여건의 빠른 변화는 광범위한 사회변동을 이끌었는데, 그 핵심어 (개념)은 귀족, 관료, 장인, 노예, 식민주의, 중상계급, 사회주의, 증기기관, 제조, 특허제도, 민족주의, 과학혁명을 들 수 있다. 예술, 디자인은 회화와 조각은 주술적, 종교적, 교육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궁정양식은 양식(style)연구에 중점을 두었고 이는 다시금 세속적 양식으로 복제 재생산되었다.
 
유럽에서 공예품의 생산은 길드(Guild)체제에 의해서 이루어졌지만 사회적 수요의 급속한 증가와 식민지에서 저가 제품의 수입과 매뉴팩처의 발달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도제식(apprenticeship) 방식의 쇠퇴를 가져왔다. 새로 등장한 제도는 기계생산과 특허법(법적 소유권)이다. 디자인은 응용미술로 이해되어 표면장식이 무차별적으로 도입되면서 장식미술의 개념이 생기고 장식적인 것이 당대의 값비싸고 고급품이며 예술적이라는 인식이 이루어졌다.


3) 연표
1493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1506  마젤란 항해
1779  영국 Coalbrookale Bridge: 최초의 철교(주철사용) 설계는 목조다리와 동일하다. 
1830 미하엘 토네트 : 기계생산공정을 사용한 걸상을 대량생산
1832 미국 볼드윈 기관차 제작
1835 미국 기관차 처음 운행
1835 영국 에와르트 특별위원회
1836 에와르트 특별위원회 '미술과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1836 사뮤엘 모르스 전보 발명, 아세틸렌 제조
1837 영국 디자인학교 (RCA전신) 설립
1839 영국 제조상품의 디자인에 대한 소유권보호 법안 통과
1839 다게르와 니엡스 사진이론 발표
1841 번센, 카본징크 배터리 발명, 파리 아크등 등장
1842 주철재료로 가로(街路)건축양식 등장
1843 찰스 서버, 필기체 타이프라이터 발명
1844 프리드리히 고트로브 나무펄프로 제작되는 종이 발명
1845 영국 왕립예술협회, 디자인진흥을 위한 작품공모 : 헨리 콜 '찻잔세트'가 수상
1846 미 엘리어스 하우, 재봉틀 특허 출원
1846 미 자동설걷이 기계, 세탁기 발명
1846 미 리차드 호, 로타리식 석판 인쇄용 프레스 기계 발명
1848 칼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산주의 선언 출판
1849 존 러스킨 '7개의 건축 등불', 이후 이는 윌리엄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에 영향을 미침
1849 조셉 모니어의 철근 콘크리트



4.3.2. 1851년에서 1930년까지


1) 사회이념가치의 변화
사회문화에 있어 특징은 독일과 러시아, 일본 등 후발 열강으로 산업화를 뒤늦게 추진한 나라들까지 절대왕정의 구체제를 포기하고 국민국가의 체제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기간에 산업화를 추진한 나라들은 식민지 쟁탈과정에서 서로 이해가 충돌하여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종의 내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쟁은 이로 인해 그때까지 유럽에 잔존한 왕조의 몰락을 가져왔고 각국의 국력은 일시적으로 쇠퇴한 반면 주변부에 있던 미국이 서방세계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새로운 세계체제는 다시 이념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일파인 공산주의 그리고 국가사회주의(파시즘:facism)으로 나뉜다. 뉴욕증시의 붕괴 이후 산업국 최초의 세계적인 불황을 겪으면서 각 체제의 특징은 좀더 분명해졌고, 이들 국가들은 나름대로의 체제 유지를 위하여 독특한 통치규범과 제도를 만들었다. 특히 극우적 성격을 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는 물질 생활의 규범과 양식까지도 국가 이념에 입각하여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2) 규범 및 제도가치와 기술용구
산업화는 원료확보와 기술개발 - 생산성 향성 - 국부 증대의 순환을 거쳤고, 당시 세계적 수준에서 추진된 각종 박람회에서 국가사회주의 국제주의 (공산주의)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각국들은 국부를 과시하는 경쟁을 벌였는데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와 속도('Speed')의 이미지가 주류를 이룬다.


기술경제는 증기기관과 철도망의 보급으로 운송산업이 증대했으며, 1차 대전을 전후하여 육상과 항공운송에 폭넓게 도입된 내연기관은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을 통하여 기계의 일상 생활화, 도로망 확립을 통한 도시체계를 확립함으로써 도심, 시 외각, 상가와 빌보드 등 도시중심의 인공환경을 조성한다. 산업생산 체계는 표준화, 규격화와 부품호환의 개념이 확립되고 이를 바탕으로 전쟁기술, 군수 체계가 혁신적으로 정비되면서 곧바로 서구열강은 군비 경쟁에 돌입한다. 전화기, 타자기, 사진기, 축음기, 재봉틀, 전구 등의 발명과 실용화한다. 이로써 과학과 기술 협조관계는 명확히 자리잡고 거대 기술과학에 대한 대규모 투자의 발판이 마련된다. 


그러나 20세기 초 까지 예술, 디자인 부문은 기계 기술을 새로운 양식 창조에 이용하기보다는 빅토리아 양식 등 과거 수공예적 장식의 복제에 먼저 응용함으로써 미적인 질서가 교란되는 양상을 보인다. 수작업에 적절한 기법을 기계로 대신하려는데 무리가 따랐고, 한편 당시까지는 기계 가공기술이 저급했기 때문에 수준높은 작업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수공예와 기계가공을 혼합하는 방식이 고가품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고 전통공예는 소멸과정에 있었다.  고고학적 고증도 인기를 끌었는데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역의 고대문명 발굴이 활기를 띄면서 유럽에서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양식이 유행한다.


또다른 경향은 세기말 양식으로 불리우는 신미술(Art Nouveau )운동이다. 새로운 세기의 새양식은 쥬데오-크리스찬(Judeo-Christian)이나 헬레니즘(Hellenism) 보다는 좀더 원초적이며 자연적이고 동시에 이국적(exotic)인 양식에서 찾을 것을 당시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주장했는데 이런 경향을 '신미술운동'이라고 부르게 된다. 양식적 특징에 따라 영국 북부와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한 직선적 아르누보(rectiliniear Art Nouveau)와 유럽의 나머지 지역에 널리퍼진 곡선적 아르누보(curvilinear Art Nouveau)양식으로 분류한다. 특히 시각디자인과 테이블웨어와 실내장식을 포함한 가구 부문에서 활발한 성과가 이루어지는데 예술가, 공예가, 건축가들로 구성된 조직적인 공방활동과 적극적인 출판 홍보활동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토네트 형제의 곡목의자는 이양식을 대변하면서도 대량생산에 적합하게 설계된 사례로 꼽힌다.


또하나의 경향은 오늘날 탈장식주의, 혹은 기능주의로 불리우는 전위적인 조형운동으로 디자인에 있어 모더니즘(modernism) 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공작연맹(Deutscher Werkbund: DWB)에서 주장된 순수 합리적 형태라는 미적 표준의 개념설정을 시도한 기계미학의 이론, 이탈리아 미래파의 속도 집착적인 이미지, 데슈틸의 요소주의와 러시아 전위파의 절대주의와 구성주의, 그리고 이들 제양식을 통합정리 함으로써 근대 디자인운동의 이념과 방법을 종합한 바우하우스(Bauhaus: 1919-1933)가 운동의 실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다른 측면으로 유럽의 여러나라는 디자인 개발을 자국 문화 선전의 한 수단으로써 수출 증진과 관련된 국부 증대의 중요한 요소로 인식하여 디자인 진흥기관을 설립한다. 그러나 양식의 혼재 현상이 두드러져서 독자적인 미적 기준에 의하여 디자인된 제품은 거의 없었다. 이점에 있어 20세기 초 여러 아방가르드 운동의 반역사주의적 구호는 새로운 양식 창조의 기본적 자세였다고 할 수 있다.


3) 1860년대의 예술민주화와 품질회복운동
런던 세계국제박람회(1851)를 시작으로 다양한 제품과 디자인을 접하는 기회를 주면서 여러나라와 도시에서 열리는 각종 엑스포는 그 시대정신과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당시의 디자인은 장식문법에 기초하여 장식을 통한 과거, 역사주의의 재현에 힘썼고 디자인은 장식미술로 이해되었다. 영국의 윌리엄 모리스에 의해 추진된 미술공예운동이 대표적 조형운동이며 인공물의 질을 회복을 통하여 민주사회를 건설하고자한 운동의 이념은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기계생산을 반대하고 중세적 제조방법으로 회귀하고자한 행동방법은 실패할 운명이었다. 이는 형태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최초의 품질회복 운동으로 19c 심미적 이상주의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예술의 민주화의 이념은 모든 대중을 위한 생활용품이 예술적으로 그리고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사상으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두고 있다. 한편 기계산업이 바탕이 되었던 미국의 미술공예운동은 중산층 가정환경을 문화적으로 개선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영국에서 장식미술 박물관이 설립되고,  인공염료개발, 석판 색채 인쇄가 실용화한다.


4) 1870년대의 기술혁신과 역사주의의 잔재
미국은 1870년대는 주철, 가공철재가구가 유행하였고 신재료와 가공기술로 상업용 타자기와 같은 기계제품 - 전화기, 타자기, 사진기, 축음기, 재봉틀, 전구 등- 이 발명되고 상업화되었다. 한편, 건축분야는 시카고 대화재 사건을 계기로 마천루와 같은 구조건축이 출현하였다. 인쇄와 사진술이 발달하고 일본미술이 소개되어 평면성과 간결성이 도입되었다. 미술공예전시협회가 생겼다.  세기말의 역사주의가 만연하였고 장식미술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리고 주조기술과 마천루 건축이 철골구조를 통하여 가능하게 되었다.


5) 1890년대의  새로운 양식탐색
신미술운동인 아르누보양식 - 1890년대 초에서 1914년 세계대전 전까지 고전적 형태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를 탐색-이 나타났으나 하나의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자연물의 유기적 형태에서 모티브를 찾은 신미술운동은 비대칭적이고 생동적이나 결국 사치, 환상적, 여성적, 쾌락적, 곡선적, 과잉장식으로 남았다. 비엔나 분리파는 과거의 양식과 분리되고자 하는 구호를 내새우며 직선적 양식의 아르누보 운동을 추진한다. 영국 글래스고우에서 활동한 챨스 레니 매킨토쉬도 비슷한 양식으로 비엔나 공방과 교류한다. 기하학적인 간결성을 목표를 예술적인 표현을 하였으나 전체적인 내용은 장식적이었다. 기하학적 처리가 독자적인 조형표현으로 의의를 획득하는 것은 데사우 바우하우스에 이르러서이다.  가사노동의 의미가 변화하고 과거 하녀가 담당하던 가사노동이 주부에게 넘어 가면서 가사 노동을 대치할 기계로서 가정용 기구와 가전제품이 도입되고 동시에 이의 디자인이 발달하였다.
1851 영국 런던 국제산업 대박람회
1851 조셉 펙스톤 수정궁 (조립공법과 시스템 빌딩 건축의 효시) : 철골구조와 유리 사용
1851 재봉틀 특허 
1851 윌리엄 모리스, 존 러스킨  미술공예운동
1852 영국 장식미술 박물관 설립
1852 안전 엘리베이터 개발
1853 뉴욕 엑스포
1853 러시아, 파벨 오브치니코프 회사 설립
1854 석판색채 인쇄로 가구 카달로그 제작
1855 데이비드 휴즈 : 인쇄 전보
1855 프란츠 쾰러 : 텅스텐 강
1856 오웬 존스, <장식문법>
1856 인공염료 연보라색 : 영국의 화학자 위릴엄 페르킨
1857 엘리샤 그레이브 오티스 : 안전 엘리베이터 설치
1858 쉐레 최초의 원색 석판 인쇄 포스터 - 석판 색채 포스터 <지옥의 올페>인쇄 제작
1859 미하엘 토네트 곡목의자 생산
1860 알렉산더 파크스 - 파크신 젤라틴과 목화섬유로 된 혼합물을 발명 : 셀룰로이드
1861 제철 생산 공정 새롭게 개발 - 철제품 생산 급속히 증가 (베서미 평론법)
1861 윌리엄 모리스,  <모리스 마샬 포크너>사 설립 : 미술공예운동 실천의 장
1861 미국 남북 전쟁
1865 최초 카펫 청소기와 접시 설거지 기계가 개발
1866 알프레드 노벨 : 다이너마이트 발명
1867 독일 베를린 장식미술박물관이 사립재단으로 설립
1867 파리 엑스포 개최 - 레밍톤 타자기 선보임
1869 전기 세탁기 개발
1869 최초 우편엽서 소개
1871 빌헬름 1세 독일 왕국 선포
1871 시카고 대화재, 마천루 건축
1872 토마스 에디슨 : 복식전보 완성
1872 미국, 몽고메리 와드 : 우편주문 판매 시스템 이용하는 기업 설립
1872 미국, 흔들의자
1873 비엔나 엑스포 개최.
1873 레밍톤 회사가 특허를 구입하여 타자기 생산
1873 윈체스트 73 카빈총 생산
1875 레밍톤 회사에 의해 상업용 타자기 출현
1875 미국, 토비 가구 회사 : 일반용 상업가구 제품 생산
1875 런던 리버티 컴퍼니 상점 개관
1876 필라델피아 엑스포: 산업기계, 차량, 농기구 등 새로 발명된 산업제품들은 주로 주물에 의해 만들어졌고 경우에 따라 조잡한 장식이 덧붙여짐.
1876 크리스토퍼 드레서 : '디자인연구' 출판 (각지고 양식화된 식물장식과 기하학적 장식, 실내장식용 채색도판)
1876 미국, 소파겸용 침대
1877 미국, 벨 전화기 회사의 상업용 전화기 등장
1877 최초의 공중전화기
1877 토마스 에디슨 : 원통형 축음기 발명
1878 토마스 에디슨 : 실용 전등 발명
1878 영국 크리스토퍼 드레서 : 드레서 앤드 홀므라는 동양제품 판매점 개업
1878 미국 회전시킬 수 있는 탁자
1879 미국 제임스 리티 : 금전 등록기 특허
1879 조지 셀던 : 자동차 특허
1880 애니메이션의 효시 : 말달리기 연구라는 사진작품
1880 영국 크리스토퍼 드레서 : 실내설비 미술동맹 설립 - 여러 가지 문화 혼합된 양식의 가구생산
1880 독일 로젠탈 도자기 회사 설립 :
     레이몬드로위, 빌헬름 바겐펠트, 그로피우스, 타피오 비르칼라 들의 도자기 생산
1880 뉴욕 전기 가로등 등장
1881 영국 전기판매
1881 애스틀리, 병제조 기계 만듦.
1882 쉐이크 교도의 생활용품 : 일상제품 제작에서 일체의 장식을 제거, 형태 그 자체로써 기능을 나타냄.
1882 오스카 와일드 18일간 미국 강연 여행, 미술의 미적 이상과 장식의 가치를 선전.
1882 센츄리 길드 : 영국의 아서 헤이 게이트 맥머도가 설립, 공예의 올바른 위치 회복하고 부흥하려는 미술공예운동의 연장으로 아르누보로 이어짐
1883 독일 만하임에 벤츠 자동차 공장이 설립
1883 전국금전등록기회사(NCR)가 금전등록기 처음 시판
1883 최초의 마천루건축 시카고에 등장 - 윌리엄 베론 제니 : 시카고 구조 철골 구조공법
1883 윌리엄 브래들리 : <레이디스 홈 저널> 창간 - 일반 가정용 가구와 설비를 다룬 잡지      
1884 찰즈 파슨스,  처음으로 실용 증기 터빈 발전기 조립
1884 칼 벤츠, 단기통 엔진 자동차 제조 (4륜차) 
1884 에벤 워터맨, 만년필 개발
1884 반 디폴, 전기 트롤리 카 개발
1884 조지 이스트만, 필름 제조회사 설립
1885 마천루 상업건축 : 철골구조 공법 - 철도역, 호텔, 공장, 공공 건물 등에 적용.
1885 티파니 : 유리공예회사 설립 - 후에 아르누보 양식의 상징이 됨
1885 영국 스탈리 로버모델의 자전거 생산
1885 다이믈러 : 연소 엔진 발명 - 칼 벤츠가 이를 자동차에 장착하여 현대 자동차 시조 생산
1886 미국 웨스팅 하우스 회사가 전기 조명기구 산업에 진입.
1886 미국 리차드 시어스 : 시어스 뢰벅사 설립, 우편주문판매 시스템을 개발.
1887 AGE (독일 연합전기 회사)가 정식 등록, 기업 활동함. : 당시 독일 산업의 축소판
1887 파리에 에펠탑이 착공 : 구스타브 에펠이 설계
1888 코닥 카메라 : 조지 이스트만 '코닥 박스 카메라' 시판
1888 에밀 벨리너 : 디스크 축음기 발명
1888 프랑스 사무엘 빙 <예술적인 일본>이라는 잡지 발간
1888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북구 산업전시회 개최
     만연하던 양식 모방 타파의 전환점. 편견 없는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려는 시도
     유럽에서는 아르누보, 유겐트 스틸 등의 신미술(양식)운동이 나타남
1889 조지 이스트만 : 셀룰로이드 필름 생산
1889 다이믈러 : 고속 가솔린 모터 발명
1889 오티스 : 증기동력을 이용한 엘리베이터 개발
1889 파리엑스포 : 기계의 승리, 기능주의적 사고가 받아들여지기 시작.
1889 에펠탑 완성
1891 리차드 시어스 우편판매 카탈로그 발행
1891 미국 브로드웨이에 처음 전기 광고판 등장
1891 사진의 대중화 (코닥 카메라 90,000대 판매)
1892 프랑스와 헤네비크 철근 콘크리트 공법 특허 출원 : 유럽 고층건물 건축의 선두 주자
1892 제너럴 일렉트릭 회사가 미국에 설립 (톰슨·휴스톤과 에디슨회사 합병)
1893 미국 시카고에서 칼럼비아 엑스포 개최
     부가적인 장식이 없이 최상의 미적 감각을 추구, 실용적인 간결성을 최고도로 나타냄
1893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역사주의를 반대하고 유기적 건축 철학을 실천.
1894 젠킨의 활동사진기 등장
1895 아르누보 운동의 이름 명명 (사무엘 빙 '신예술의 집, 아르누보의 집'이라는 상점 개업 : 모던디자인발전 창구)
1895 질레트 안전면도날 생산
1895 프로이트 <히스테리 연구> 발표
1896 형태는 기능으로부터 유래한다. (Form follows funtion) : 루이스 설리반
1896 미국의 언더우드 타자기 1호 나옴 ( 후에 휴대용 타자기로 발전 )
1896 독일 칼쾨핑은 아주 얇은 유리공예품을 만들기 시작.
1896 제 1회 올림픽대회가 아테네에서 열림
1897 비엔나 분리파 : 요제프 호프만, 오토 바그너, 요제프 올리브히, 콜로만 모저, 쿠스타프 클림트
    아르누보와 글래스코파의 맥킨토쉬의 영향을 받음
1897 새로운 기술의 사진 제판법이 개발 (착색 석판인쇄 시대의 마감)
1898 파리 지하철 등장 
1899 미국 자전거 붐
1899 독일 율리우스 마이어 그래페 : 파리에 '현대주택'이라는 상점 개업


6)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시장, 20세기 초의 디자인
독일과 미국이 새로운 산업 강국으로 등장함. 특히 미국식 대량생산 체계(Fordism)가 완성되고 인구증가와 사람들의 금전 지출능력의 증가하여 소비수요가 증가하면서 광고 마케팅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미국식 생산체제는 있어 생산방식이 수단만이 아닌 제품형태까지 결정하였다. 표준화와 규격화는 필수 요소가 되어 먼저 농업용 기기의 기계화에 적용되고 곧이어 무기(총)제품으로, 1900년대가 되면 좀더 복잡한 자동차의 대량생산체계에 적용된다.


새로운 생활양식들을 위한 신제품이 속속 출시되는데 아직 기술혁신에 따라 제품이 태어나고 디자인은 여기에 미술을 응용하는 수준이었으나 새로운 제품(상품)들과 사회간의 갈등이 커진다. 가스에 이은 가정용 전기전력의 보급은 전기기구의 생산과 수요를 높인다. 세탁기, 진공 청소기는 가사노동의 과학적 관리방식과 세균발견에 따른 위생 관념의 확산에 따라 판매 증진을 했고, 이를 여성해방 과정으로 이해하는 측면도 있었다. 소득 수준 향상과 여가 시간이 많아짐에 따라 이에 대응하여 카메라, 라디오, 축음기, 자전거, 자동차 등이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라디오, 타자기 등은 가구의 개념으로 나타났는데, 반세기 후 나타난 텔레비젼 역시 가구의 일부로 인식되었다.     


20세기의 디자인 이론의 기반이 이시기에 자리잡는다. 19C 중반의 건축과 공학에서 영감을 얻고, 20C 초반의 분명해진 부르조아 개인주의는 이전의 취향과는 차별화한 미적 기준을 모색하기 시작하는데 차츰 대상물 자체의 구조를 장식(미적인 대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기술적용과 생산과정을 합리적으로 고려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제품의 형태에 대하여 미학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하나의 양식으로 기하학적 순수조형을 추구하는 신조형주의는 순수주의, 에스쁘리 누보운동과 맥락을 같이하여 진행된다. 기계미학은 이를 현상적으로 해석한 것이고 기능주의는 이 태도를 하나의 이념으로 생각한 것이다. 1930년대가 끝날 무렵 이러한 생각은 많은 건축가와 예술가, 디자이너들에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잡는다. 이는 다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생산 제품에서 기하학적 균형미를 찾는 굿폼 (Good Form)운동 같은 형식주의로 이어지는데, 기계미학이 추구한 장식 제거와 절대주의적 법칙에 매달린 기능주의의 미학은 전후의 소비제품 시장에서 대중적 저항에 부딛친다(예: 50년대 팝디자인 운동).


한편 디자인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의 산물로서 디자인진흥단체가 활발히 설립된다(디자인 진흥의 사회 제도화 과정). 미술공예운동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나 협회는 다음과 같다.
 ·독일공작연맹 - 독일 상품의 디자인과 품질을 개선하고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의 협의체 성격
 ·디자인 및 산업협회 - 영국 DIA로 새로운 정신을 넣음
 ·"굿디자인운동"  - 디자인 진흥책으로 대중 기호와 수준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함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방법: 공예의 현대화를 집중 장려하여 공예가와 디자이너가 동시에 산업체 여러 분야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함


디자인을 본격적으로 인식한 최초의 근대기업으로 독일의 AEG사는 디자인에 관심을 높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CIS(cooperate identity system)도입과 전문디자인 자문인으로서 페터 베렌스(Peter Behrens)의 선임을 들 수 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었다. AEG, FORD, GM 등의 근대적 체제를 갖춘 미국과 독일의 대기업들이 세계 시장에 전면부상하고 이들은 당시의 기술개발과 디자인을 주도하는 세력된다. 


다른 한편 비엔나 공방과 바우하우스가 일종의 근대적 공예(디자인) 전문 생산 판매회사로 등장하였으나 부분적 성공에 그친다. 그러나 이들은 기능과 재료의 정직성, 진실성, 세련된 비례감각의 추구등 근대 디자인의 형식미학을 확립시킨다. 바우하우스는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비한 근대적 교육을 실시한다. 이 기관은 모든 예술 분야가 협력하여 디자인을 일상 생활에 적용한 총체 예술로 발전시키고자 했는데, 방법은 조형교육과 기술교육을 병행, 분야간의 일관성 있는 협동을 꾀하며 경제발전과 산업발전을 예술활동과 디자인의 전제 조건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7) 극단의 이념과 상업주의 디자인가치 
민주체제와 독재체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가 공존하며 이념적 경쟁을 벌이고 각국은 내부적으로 산업발전과 국민후생에 힘쓴다. 1930년대 경제불황은 대규모 실업사태와 경제적 국수주의, 국제무역의 부진, 세계경제의 블록화로 이어진다. 이런 배타적 분위기는 독일의 국가 이미지 통합(이과정에서 바우하우스를 비롯한 전위운동이 체계적으로 억압됨)과 사회주의 리얼리즘(1931년 소련 공산당은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을 국가 공식 예술로 정하면서 구성주의, 절대주의로 추진된 아방가르드 조형운동은 사실상 종말을 고한다)과 같은 극단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미국에서 스타일링 중심으로 전개된 상업적 디자인의 성장과 정부주도로 국가 이미지 확립에 집착한 나치 독일의 디자인 정책이 30년대의 큰 특징을 이룬다. 한편 이런 극단의 과정에서도 물리적 외관과 생활양식의 합리화에 대한 개념은 산업사회의 일반 원리로 폭넓게 확산된다.(바우하우스의 인간공학적 부엌설계, 미국에서 급진전한 가사노동의 기계화)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미국과 유럽의 정부 부문과 사회간접자본 투자로 건설되는 건축물에 폭넓게 도입됨.
.모더니즘: 개념적인 접근, 금욕적인 것, 자의적인 것, 멋진 양식등 다양한 해석을 시도.
.유토피아적 모더니즘 : 1차세계대전이후 근대화 운동으로 검소, 기하학, 기능적인 것을 추구.  
.이탈리아 : 합리주의 
.독일 : 합리적인 생산과 합리적인 형식을 지니며 민족공동체를 이루어 나감. 전통 토속 양식의 부활(민간 부문)과 첨단 기계미학(군비 부문)을 병행하여 추진.
.미국의 미술과 산업: 산업디자이너들은 생산보다 판매에 주력하고 소비자 심리를 강조하는 철저한 상업성을 추구(GM, FORD는 스타일링 지지로 판매경쟁에서 차별화를 경쟁). 대중의 기호, 대중의 스타일로, 취향조사, 소비 패턴에 따른 생활양식과 사회적 지위를 반영 등을 기초로경제불황의 탈출 수단으로 디자인을 해결방법으로 선택. 
.영국의 컨설턴트디자이너와 디자인 파트너쉽 개념이 생김
스웨덴 : 중립, 전통과 기술혁신을 종합하고 디자인에 천연 소재를 적용시킴.
.유선형 : 공기역학(공학적 측면)의 대두, 미래파(조형, 상징적 측면)영향, 힘·속도·미래·기계화를 상징하면서 기하학적이고 정적인 독일식 모더니즘 양식과 평행선을 이루는 또하나의 기계미학으로 평가할 수 있슴. 
.대중적인 상징주의,  이론에서 실천으로  아르데코와 모더니즘의 공존은 장식 배제의 운동 속에서도 새롭고 이해하기 쉬운  또다른 장식에 대한 대중적 집착을 보여줌.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형태 ( 신소재와 대량생산에 있어 보다 값싼 방식 ) :  철과 강철, 알루미늄(가공성과 색상의 불변, 그러나 세계대전으로 유리와 세라믹으로 민간 수요는 대체되고 이과정에서 유기적 스타일의 미학이 적용됨). 플라스틱의 광범한 적용과 일반화, 성형기법의 발전.
.각 시대정신을 집약시키고 새로운 디자인의 창구역할을 하는 밀라노 트리엔날레가 실시되었다.
.크랜브룩크 아카데미 : 디자인 창조에 있어 앵글로 색슨과 스칸디나비아의 정신을 따름.
1900 파리 엑스포 (1900) : 아르누보 양식
1900 비엔나 분리파 8회 전시회 : 직선적인 양식으로의 변화 (글래스코파 맥킨토쉬의 영향받음)
1900 루이스 티파니 : 티파니 스튜디오 설립하여 유리 외에 청동제품, 메달 등을 제작
1901 영국 빅토리아 시대가 끝남 - 빅토리아 양식이라는 역사주의 양식의 퇴조, 신미술양식 대두
1901 조지 이스트만 : 1달러 짜리 '브라우니 카메라' 성공 - 국제 카메라 회사 설립
1901 미국 디트로이트 새 자동차 회사 설립 : 캐딜락
1901 파리 철도역에 처음으로 공중전화 설치
1901 영국 세실 부스가 발명한 진공청소기의 생활화
1901 영국 영국공학기술 표준위원회가 설립
1902 앙리 반 데 벨데 : 바이마르 공예학교 개교
1902 토마스 에디슨 : 이전 것보다 가볍고 오래 쓸 수 있는 건전지 발명
1902 독일 베를린 지하철 개통
1902 러시아 산업미술학교에서 이론과 실기를 결합한 교육강조 : 디플로머 도입
1903 포드 자동차 설립 대량생산 ( 최초모델 2기통 모델 A ) - 자동차 생산의 표준화 선언
1903 영국 최초의 자동차 회사인 복스홀 자동차 회사 설립
1903 런던 자동차 택시가 처음으로 운행
1903 요제프 호프만과 콜로먼 모저등이 비엔나 공예제작소 설립 : 직선적 양식 강조 (장기판 양식)
1903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폴 쁘와레 ' 재봉틀의 집' 개설
1904 영국 처음 대서양 일기예보를 무선 전신으로 수신
1904 우편엽서가 유행
1904 영국 국내시장용 진공청소기 생산
1904 런던 지하철 개통
1904 덴마크 게오르그 옌센 : 코펜하겐에 공방 개설하여 은제품 제작 판매
1905 네온사인이 처음 등장
1905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 발표
1905 라이트 형제가 38분 3초의 비행기록을 수립  
1906 독일 아서 콘 교수 : 전송사진 실험
1906 독일 최초의 잠수함 U-1호 취항 : 미국 남북전쟁전후 개발된 잠수함 조사 
1907 독일 베르크분트  뮌헨에서 결성
     공예가, 기업가, 산업인, 언론인, 공무원 등 공업, 상업 예술분야의 결집으로 제품품질 개선
1907 제 1회 입체파 전시회가 파리에서 개최
1907 로맨틱한 형태와 독창성 면에서 인기있던 에디슨의 축음기가 에밀 베를리너의 디스크형 축음기로 대체
1907 파리의 일러스트레이션 신문의 사진이 처음으로 런던의 데일리 미러 신문에 전송
1908 이태리 올리베티사 창립
1908 포드 T모델 자동차 '틴리지' - 대량소비 시장에 적합한 차로 개발
1908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GM자동차 회사 설립하여 포드와 경쟁
1908 미국의 뮤레이 스팽글러가 발명한 후버 흡인 전기 청소기가 처음으로 신문광고를 게재
1908 런던 국제 자동차 전시회 개최
1908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비행기 쇼 개최
1909 미래파운동이 시작 
1910 르 꼬르뷔지에, 그로피우스, 미스 반데어 로에가 피터 베렌스 연구실에 입문
1910 아르누보운동의 쇠퇴. 아르 데코양식의 등장
1910 전기가 선진국의 모든 도시에 공통적으로 사용
1910 진공청소기, 세탁기, 식기세척기 등 가정용 전기제품의 보편화 : 검소한 기하학적 형태로 만들어짐
1911 미국 싱어 재봉틀 회사가 모터 달린 가구형 재봉틀을 생산
1912 독일 베르크분트 미국전시회 : 미란 희소성, 시대 그리고 가격과 관계가 없다고 전제.
     미국 제조업자들이 디자인의 중요성과 책임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줌
1912 크리스틴 프레데릭의 과학적인 관리방법론을 가사노동연구에 응용 : 1920년대 독일 합리화운동에 영향
1913 오스카 바르나크가 라이카 카메라의 원형(최초의 35mm 카메라 프로토타입)을 디자인
1913 포드사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의 조립식 대량생산체제로 전환
1913 미국 코닝 유리회사 파이렉스라는 오븐용 유리그릇을 개발
1914 1차 세계대전이 발발, 전쟁 중 미국이 세계 제1의 공업대국으로 등장하였다.
1914 영국에 독일의 베르크분트와 동일한 기관 설립건의
1914 독일 쾰른에서 베르크분트 전시회개최 : 이전 장식미술과 달리 검소하고 기능적인이고 기하학적 형태의 제품 등장
1914 에른스트 노이만과 발터 그로피우스가 리무진 자동차와 기차의 침대 칸을 디자인
1915 영국의 디자인 진흥기관 디자인과 산업협회(DIA)가 설립
1915 미국 코닝 유리회사가 파이렉스라는 상품명의 유리제품을 개발 생산
1915 러시아 말레비치 : 최초의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로 된 작품을 발표 (여덟 개의 빨간 사각형)
1915 곡선적인 윤곽선이 특징인 코카콜라 병디자인 개발 : 이후 미국 문화상징하며 상업적인 우상화
1916 취리히 다다이즘 운동이 시작
1916 독일의 공업표준 규격 (DIN)
1917 네덜란드 게리트 리트벨트가 '드 스타일' 운동 시작 : 모더니즘 디자인의 형성에 중요한 바탕
1917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 프롤레타리아 계급 등장, 공산주의 인간상에 적합한 조형과 물질문화 모색, 조형개념의 획일화
1918 오장팡과 르 꼬르뷔지에 의한 순수주의 운동이 시작
1919 독일에서 국립디자인대학이라 할 수 있는 바우하우스(Staatliches Bauhaus im Weimar) 설립
1919 최초의 헬리콥터 비행이 성공
1919 모터 스쿠터가 처음 등장
1920 장식없는 철근 콘크리트 건축
1920 공업디자인이라는 용어 사용 : 미국의 조셉 사이넬
1920 독일 합리화 운동 전개: 공업제품의 과학성 성취를 목적으로 생활의 합리화, 효율화 추진
1921 네덜란드 테오 반 되스부르크가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드 스타일(De Stijl) 운동의 이론을 교육함
1921 독일 정부에 국립효용위원회가 설립 : 빛, 작업의 위치, 공정 등에 있어 능률성과 생산과 공정의 효율적인 방안을 제안 (cf. 종이규격의 표준화)
1922 미국의 폴 재레이,  최초의 유체역학 자동차 특허
1922 영국에서 처음으로 라디오 방송이 시작
1922 월터 도윈 티그 : 소득세 환불 소송으로 공업 디자이너는 비즈니스 맨이라기 보다 전문가임을 주장
1923 바우하우스 예비과정에 구성(構成)적 사고(思考)를 바탕으로한 기초디자인 교육을 함
1924 다다이즘운동에 뿌리를 둔 프랑스 작가, 시인들에 의한 초현실주의 운동이 나타남 : 프로이트의 사상 영향줌.
1925 아르데코 양식이 파급 : 명확한 기하학적인 형태에서 디자인 모티브 찾음
1925 르 꼬르뷔지에 : 오늘날의 장식미술은 더 이상 장식을 갖지 않는다고 역설.<오늘의 장식미술>
1926 마르셀 브로이어 : 강철봉과 가죽으로 만든 걸상이 베를린 가구회사에서 생산
1926 라디오의 대중화
1927 공업디자이너의 츨현 : 노먼 벨 게데스가 공업디자인 사무실을 개업. : 새로운 전문직업은 그 자체가 미적으로 실제적인 면에서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유선형으로 된 간결한 형태로 해결하는 직업이라고 정의
1927 최초의 유성영화 상영
1928 GM자동차가 처음으로 사내 디자인실을 설치하고, 자동차 형태 변화를 추구, 스타일 차별화를 통한 소비 촉진의 원리를 적용함.
1928 미국 레이몬드 로위가 최초로 디자인 게스트너 복사기가 생산됨
1928 월터 디즈니 미키마우스 등장
1929 미국 공업 디자이너 헨리 드레이퍼스  디자인 사무실 개설
1929 16mm 코닥 천연색 필름이 개발
1929 영국 BBC방송이 실험방송에 들어감
1929 뉴욕 중권시장이 붕괴
1929 미국 앨트만 백화점에서 < 20세기의 취향> 전시개최 :  모더니즘 디자인이 일반대중이 받아들이고 있었음
1930 독일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디자인 사무실을 개설
1930 스톡홀름 엑스포 :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우아하고 개성이 있는 디자인 보여줌
1930 영국과 독일 사이에 사진 전송업무가 개통, 사진 촬영용 후레시 벨브가 발명
1930 아크릴 플라스틱이 발명
1930 가구형으로 디자인되어 오던 라디오에 영국에서 베이클라이트라는 신소재 사용
1932 제네럴 일렉트릭 회사와 웨스팅하우스회사가 요리연구소를 개설 :
     부엌디자인 시스템을 연구 - 주방의 레이아웃과 주방용구의 디자인 개선
1933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에 대한 아이디어가 정부에 보내짐 :
     이는 포르쉐의 폭스바겐 개발회사 설립으로 발전하였으나 대량생산은 나중에 들어감
1933 미국 더글러스 항공회사가 유선형 DC-1 비행기 개발
1933 덴마크 카레 클린트의 사파리 걸상이 라스무센 가구회사에서 생산
1933 시카고 엑스포 : 미래의 주택에서 미국인의 미래에 대한 신념이 반영
1934 미국 신문기자 해롤드 와드가 공기역학의 진보라는 기사를 통하여 스피드 시대임을 시사
1934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의 산업미술전 : 공업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전문직업의 창구 역할
     기선의 프로펠러, 가솔린 펌프, 금전등록기, 화학용기, 의료기기, 망원경, 현미경 등등
1935 핀란드 건축가 알바알토가 '아르테크'라는 연구실을 개설하고 조명기구 및 직물, 곡목기술실험등 하여 가구 디자인에 응용
1935 35mm 코닥크롬 필름이 나옴
1936 독일 폴크스바겐 비틀이 완성. 그러나 생산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하였다.
1936 올리베티사 마르첼로 니졸리를 채용하여 타자기 디자인 개발 시작
1937 모흘리나기가 시카고에 새로운 디자인 학교를 설립하여 바우하우스 디자인 교육의 이념을 미국에서 실천.
1937 이태리 국민차 '피아트 500' 개발
1938 볼펜 발명
1939 2차세계대전 터짐
1939 뉴욕 엑스포에서 스웨덴의 현대디자인 제품이 출품되어 국제적인 디자인 개념의 표본으로 각광받음
1939 키치 : < 키치와 아방가르드 >라는 책 출판. 키치는 세련되고 성숙한 오늘날의 문화에 식상한 미술과 디자인의 한 경향으로서 소비자를 속이기 위한 피상적인 트릭 효과라고 정의


8) 핵심어(개념)
대량생산. 박람회, 사진술. 공산주의. 아방가르드. 민족주의. 국제주과학. 기술. 작업분석. 기계. 기능. 자동차. 석유. 속도. 아시아. 이국. 이국적 양식, 전체주의, 파시즘, 우수혈통, 소박한 삶(전원주의), 유선형, 국민차, 산업디자이너, 전면전, 생산을 위한 디자인,



4.3.3 대전 이후에서 1960년까지


1) 사회이념가치의 변화
사회, 문화는 독일, 일본 등 파시스트 정권의 패망으로 반파시즘 투쟁을 끝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다시 서로 경쟁함으로써 냉전체제(the Cold War)를  정착시킨다. 핵무기 경쟁은 승자 없는 상호 절멸이라는 새로운 전쟁 방식에 대한 개념을 세웠고, 이는 전후의 급속한 경제성장에서 비롯된 낙관주의에 암울한 그림자를 던진다. 핵전쟁의 잠재적 위협과 천박한 소비주의의 확산에 저항하여 실존주의와 신좌파운동이 서구 사회에서 일어나고, 이는 68운동으로 연결된다.


산업화에 대한 불신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시기는 풍요의 사회로 정의할 수 있으며, 대중매체 통한 유행창조, 변화, 폐기, 출산율 감소(경구 피임약의 개발에 따른), 여성의 사회진출, 마약문화(Drug Culture)의 확산은 이시기의 특징이다. 기술, 경제에서 전쟁후 유럽은 미국과 소련의 투자를 바탕으로 국가주도적 경제개발계획을 통하여 단시간에 급속한 성장과 발전을 이룬다. 전쟁 동안 축적된 알루미늄, 합금강, 플라스틱, 복합재료, 적층 플라스틱 등 신소재의 발명과 활용 기술은 민간부문에 곧바로 적용된다. 전기, 전자, 항공, 주택부문의 발전 성장은 라디오, 관광여행, 조립식 주택개발, 가정의 기계화, 자동화에 따른 세탁기, 식기세척기, 냉장고, 오븐, 커피머신 등 오늘날과 다름없는 다양한 제품을 등장시켰다. 한편 트랜지스터의 발명과 음향기기에 응용은 당시의 젊은 층을 유혹하고 전자제품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였다.


2) 규범 및 제도가치와 기술용구
50년대 말에 시작된 우주개발 경쟁은 광범위한 파급효과를 가져와 선진국을 중심으로 거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대규모 과학기술연구 시스템(Big Science)을 낳고, 이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y system)의 핵심적 요소로 운영된다. 국방우주과학 분야의 발전은 다시금 마이크로 프로세서와 컴퓨터, 항공 부문의 급속한 발전을 가져온다.


소비산업 부문에서는 가속적인 생산, 공급, 소비의 사이클을 목적으로 하는 인위적 폐기 현상과 할부구입의 일반화와 신용카드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예술과 디자인 분야에 있어 인간공학적 데이터와 접근방법의 활용,  게임이론, OR이론 등으로 대표되는 체계적 디자인 조사방법(systematic design method)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산업사회에 합당한 과학적 디자인 방법을 연구 교육한 대표적인 교육기관으로 울름조형대학(HfG Ulm, 1953-1968)을 들 수 있으며 여기서 신기능주의, 합리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디자인의 문법이 확립되었다. 이후 20년동안 울름대를 통하여 확립된 디자인 철학과 방법은 현대 디자인의 중심과제가 된다.


대전이후 양식의 근원은 유선형으로 칼더, 미로, 무어의 작품에서 보여진 유기적인 조각적 양식과 팝아트 ( Pop Art )와 우주시대의 이미지(Space Look), 대중양식, 청년양식으로 표현된 팝디자인(Pop Design)과 스트리트 스타일(Street Style), 과잉디자인 현상을 들 수 있다. 1950년대에 선호되었던 제품디자인의 주로 유기적인 형태였다. 르 코르뷔지에가 '종교적인' 기능을 가진 건물을 제작하도록 위촉받았을 때, 그는 롱샹에 보트 모양의 노트르담 두오 순례성당을 디자인했다(1950∼54). 20세기 후반들어 산업디자인의 기술적 우위가 분명해지면서 예술 양식의 파악을 통하여 왜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모양이 인기가 있었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설득력을 잃는다. 전후에 단순한 유기적 형태가 받아들여진 것은 심리적 영향이 컸다. 즉 디자이너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보다는 '친근한' 물건을 만들고 싶어했던 것이며 한편 속도와 우주시대의 상징적 이미지를 부여하자했던 것이다.


사회적 경제적 동인과 기술적 과학적 진보에 따른 시각문화의 급속한 확장 현상이 생기고 소득수준이 높아진 전후세대 젊은이들은 자신의 스타일을 창조한다. 모더니즘과 팝아트, 반문화적 운동가 있는 반면 신모더니즘이 병존하였다.  인위적 폐기처분 현상. 판매와 소비를 위한 디자인 시대를 맞아 국가 역시 앞장선 것이 특징인데, 공공단체의 후원으로 일본을 포함한 서구 사회의 굿디자인 운동은  정부기구와 디자인 전문단체가 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디자인 진흥을 꾀하는 공조 체계를 통하여 유용한 제품이 곧 굿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가느다란 선, 추상적인 덩어리, 균형, 간결, 순수, 비대칭, 자유로운 조형성을 지닌 형태가 나타나고 이러한 양식(유기적 모더니즘)을 따르는 것이 굿디자인으로 인식되었다.


전후 재건을 위하여 각 국가들이 추진한 국제무역 증진은 양적으로 상품을 통한 세계적 규모의 물질 대중문화를 형성하면서 다시 물질문화의 질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상품의 국적화를 추진하게 된다. 다국적 기업은 세계적 상품개발과 애드매스 사회 (society of mass advertising communication)를 지향하고 각국의 기업과 정부는 굿디자인 운동을 통하여 국적 제품의 이미지(national style)를 높히는데 주력한다. 이시기 디자인과 관련된  여러나라의 전략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이탈리아의 경우 소규모의 회사들로 구성되어 여러 정세에 대한 신축적인 대응을 하였다. 제조업자들은 당시의 재능있는 디자이너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스타 개인주의적 관심을 기업(올리베티, 카시나) 이미지에 적극 활용하여 디자이너의 명망과 기업의 지명도가 함께 하는 방향을 추구하였다.


스칸디나비안 국가들은 정통유산에 접목시킨 디자인 이념으로 국제성과 고유성을 나타내어 우아한 기능주의 디자인을 내놓기 시작했다. 반면 핀란드는 현대 디자인을 뒤떨어진 자국의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수단으로 보고 북구 다른 나라와는 차별되는 고도의 표현주의 양식을 취했으며 알버 알토(Alvar Alto)나 비르칼라(Tapio Wirrkala)와 같은 슈퍼스타 디자이너를 전략적으로 육성한다.  옛 서독은 바우하우스와 울름조형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초합리적인 스타일을 추구하였는데 이를 실천한 대표적인 기업이 브라운(Braun)사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디자인과 제조업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유용한 품질 높은 디자인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디자인 파트너쉽의 형성은 전문 디자이너의 출현 이후 디자인 경영 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일본에서는 기업에 속한 디자인실을 중심으로 기업고유의 경영정책과 집단 창의성(collective creativeness)에 기초한 안정된 디자인 개발환경의 조성이 주류를 이루었다. 일본의 기업은 전략적으로 소수집단의 특수문화를 일반 대중문화에 적용하여 라이프 스타일(life style)의 개념을 창조하고 이에 수반된 디자인 유행의 붐을 적절하게 활용하였다. 일본의 산업과 디자이너의 관계를 통하여 볼 때 디자인의 개념발달은 제조회사의 규모, 구조, 정책 등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60년대에 들어 아메리칸 드림의 종말과 그간 누적된 상업주의 디자인에 대한 염증, 그리고 가수요를 위한 디자인의 추구에 대한 양심의 위기는 반디자인 운동(Counter Culture Design Movement)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디자이너들은 급진적인 디자인(radical design), 반디자인(anti design movement)운동을 통하여 현실적이 아니라도 경제적 결정 론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디자인 모델들을 제시한다.


3) 연표
1940 유선형이 제품양식으로서 성공, 유선형은 유체역학이 응용되는 분야에서 적용되어야 하나 기능적으로 정적인 물건들의 형태에도 적용
1942 미국에서 전기두뇌, 자동컴퓨터라 불리는 기계가 개발
1942 미국 다우 케미컬과 코닝 유리회사가 파트너쉽으로 실리콘 개발에 착수
1943 IBM 사가 디자인 부서를 설치
1944 영국 산업디자인 협의회가 설립되어 영국의 디자인 진흥기관으로서 오늘날까지 존속
1944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 창립
1944 과학으로서 디자인 : 미국의 공업디자이너 해롤드 반 도렌은 미술보다는 과학으로서 산업디자인정의
1945 2차 세계대전이 종식
1945 레이더 개발 및 많은 기술이 발명
1945 이태리 디자인이 국제시장에 등장
1946 에토레 소트사스가 밀라노에서 디자인 사무실을 개설
1946 베스파 스쿠터가 생산 : 유선형 공기 역학을 받아들인 디자인
1946 레이몬드 로위 : 그레이 하운드 버스 디자인
1946 한스 앤드 프로렌스 놀의 가구회사는 미스 반 데어 로에, 마르셀 브로이어, 르 꼬르뷔지에,
     이에로 싸린, 헨리 베르토이아등이 디자인한 가구를 생산
1947 크리스찬 디오르가 파리에 패션 살롱을 개업 : 로맨틱한 패션을 유행
1947 미국의 조지넬슨이 디자인 사무실 개설
1948 벨 전화기 회사에서 트랜지스터가 발명
1948 뉴욕 근대미술관 '저렴한 가격의 가구'라는 주제의 국제가구디자인 공모전 개최
1948 <도무스> 잡지 통하여 도전적인 절충양식의 디자인을 탐색하는 대변지
1949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디자인됨
1950 베르토이아의 철선으로 만든 걸상 (크랜부르크 삼총사중의 한 사람)
1950 미국에서 최초의 칼러 TV가 등장
1950 울름디자인대학이 독일 울름시에 설립
1951 핀란드 디자인이 산업디자인전 출품되어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됨.
1951 제 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 : 이태리의 미와 실용성의 효과적인 결합, 디자인의 문화적 의미, 전통의 중요성, 환상적인 형태의 강조   양식적인 면은 30년대 후기 간결하고 기능적인 디자인부터 장식적이고 표현적인 수공예품을 포함함.
1951 미국에서 '디자인 : 기능과 매니지먼트'라는 주제의 회의를 개최하여 디자인의 실제와 이론에 대한 토론을 함
1951 헤일리 얼 : 꿈의 자동차 원형이 점토모형으로 만들어짐 : 우주공간이미지
1951 마쯔시다 : 일본 산업계에서 처음으로 공업디자인과를 설치
1951 독일 프리츠 아이흘러 박사 : 브라운사의 제품디자인에 기하학적인 요소를 합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적용(바우하우스의 이념을 적용)
1952 뉴욕 근대 미술관에서 올리베티 디자인전 개최
1953 아르네 야콥센 ' 개미' 걸상 디자인
1953 일본 캐논 카메라회사가 공업디자인실 개설
1955 헨리 드레이퍼스 < 대중을 위한 디자인 > 출판 : 인체 측정에 대한 서술 - 인간공학원리 도입
1955 월터 디즈니의 디즈니랜드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개장
1955 찰스 이임즈의 가죽 안락의자에서 영감얻은 걸상 디자인
1955 스웨덴 H55디자인전 : 기능주의와 휴머니즘이 공존하는 스웨디쉬 모던 나타냄
1955 영국에서 상업 텔레비전 방송 시작
1955 을름디자인 학교 개교     
1955 영국 콘란 디자인 그룹이 설립
1955 프랑스 상공부 굿디자인상 제도 제정
1956 영국 디자인 센터 굿 디자인 표본으로 선정된 제품에 굿디자인 상을 수여
1957 일본 GK연구소 설립
1957 소련 스푸트닉 인공위성 발사
1959 프랭크로이드 라이트가 유기적 모더니즘 특성의 구갠허암 미술관 완공
1959 미국 엘리어트 노이스가 IBM 타자기 '이그제큐티브' 디자인
1959 이태리 올리베티에서는 에토레 소트사스의 '테크너 3'이디자인
1960 인위적 폐기처분 현상 : 헤일리 얼, 밴스 패카드, 라이너 밴햄.
1960 컴퓨터 그래픽스라는 용어가 보잉 항공회사에서 항공기 이착륙시에 사용되기 시작
1960 미국 레이저 광선 개발
1960 영국 왕립미술대학안에 사업디자인 연구소가 설립되어 디자인 방법론에 대한 연구 
1960 이브 생 로랑의 비트 컬렉션


4) 핵심어 (개념)
마샬플랜, NATO, 한국전쟁, 냉전,  스위디쉬 모던, Moma, 록엔롤, 울름조형대학, 사이버네틱스 사회, 철의 장막, 핵, 자동차, 인간공학, 가정과 주방의 기계화, 우주개발, 팝아트, 국제주의 양식, 브루탈리즘, 유행, 인스탄트, 대중스타, 기업이미지 전략, 미니, 휴대용, 여행, 레져, 조각적 형태, 소비자주의, 여권운동, 합성섬유, 플라스틱, 매스미디어,  광고이미지, 대중적, 번영, 라인강의 기적, 소비는 미덕, 전자, 대량소비, 인위적 폐기현상, 증기압착(새로운 목공기술)



4.3.4. 1961년에서 1970년대까지 



1) 사회이념가치의 변화
사회, 문화적으로 전후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세계경제는 60년대 말에 대두된 산업화와 근대화에 대한 불신, 반체제운동, 반전운동, 반핵운동, 환경보호운동, 68운동으로 기성세대 대항하는 기운이 팽배해진다. 중국, 일본 정치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가운데 아프리카, 남미의 산업화의 실패는 자명해지고, 70년대 두차례의 오일쇼크는 세계 경제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2) 규범 및 제도가치와 기술용구
기술, 경제에 있어 큰 사건은 역시 70년대 1, 2차 오일 파동과 반도체와 컴퓨터의 등장이다. 이는 이후 80년대의 디지털 혁명을 예고한다. 전기전자 부문의 극소화는 가속적으로 진행되어 가전제품의 소형화가 붐을 이루었는데 워크맨과 컴팩트 디스크(Compact Disk, 1979 년)의 개발이 그 한 예이다. 1971년에 미국의 인텔사는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생산했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단 하나의 실리콘칲을 지닌 전자계산기였다. 이러한 발전으로 소형, 그 다음에는 극소형 포켓용 계산기가 만들어졌고 그 후에 디지탈 시계가 등장했다.


컴퓨터 기술은 여러부문으로 확산되어 '인공지능' 세탁기, 자동차, 재봉틀, 토스터, 그리고 전자오븐에도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응용되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는 기억능력과 조절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탁기 안에 수십개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설치할 수 있으며 자동차 운전자가 코너를 돌거나 민첩하게 브레이크를 밟을 때 속도가 느려지지 않도록 브레이크나 차체 현가 장치를 빨리 조절해낸다. 이것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일련의 기계류들을 불필요하게 만들었다.


마이크로 전자공학은 세가지 방식으로 디자이너에게 영향을 주었다. 우선 작동부분의 소형화는 하나의 물건이 더 작아지거나 혹은 진기한 물건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외부의 형태가 더 이상 내부 작동의 지시에 따라 달라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두번째로 소형화는 특정 품목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했다. 그래서 값싼 소형 라디오들과 더 작은 값싼 포켓용 계산기들이 사용과 휴대에 편리하다는 점 때문에 볼펜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디자이너는 그래서 더 이상 값비싼 물건을 만드는데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세번째 영향은 디자이너 개인에 대한 것인데 새로운 컴퓨터들의 전산능력은 디자이너의 능력에 도전했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디자인,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생산(CAD-CAM)의 영향력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1970년대에 갑작스럽게 일어난 디지탈 수정시계 산업의 발전과정에서 볼 수 있다. 디지탈 수정시계는 아날로그 시계의 존재를 위협했다. 소형 전기부품들 덕분에 디자이너들은 복잡한 물건들을 손에 쥘 정도의 크기로 디자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가전제품들이 장난감같이 되었다.


카메라, 계산기, 전기 면도기, 라디오, 텔레비젼, 그리고 휴대용 전화기들이 장난감처럼 보이는 것은 중요한 점을 말해준다. 어른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모양새와 재미있는 구조를 가진 작고 편리하며 사용하기 쉬운 물건들을 다룰 때 본능적인 기쁨을 느낀다는 점이다. 만일 기능적인 면들이 잘 디자인된다면, 예를 들어 손가락에 닿는 버튼의 촉감이 좋으면 그 물건은 좋은 것이다. 브라운 사는 제품을 소형화하고 보석과 같은 재질로 정교하게 만들어 이 본능적인 즐거움을 잘 활용했다. 그러나 금속은 이제 세력이 확장된 폴리머(플라스틱) 계열의 재료들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디자인에 있어서는 반디자인 운동의 지속적 전개와 이탈리아의 전위파의 실험 디자인과 멤피스 그룹의 활동, 그리고 하이테크(high tech), 하이터치(high touch) 디자인의 유행, 디자인에 있어 포스트모던이란 용어의 등장(1975년)과 신기능주의, 제품의미론(Product Semantics)에 관한 연구는 모던디자인에 하나의 대안으로 나타난다, 디자인의 사회적응과 다양성 - 새롭고 혁신적이며 대중적인 디자인 언어를 사용하여 인간성을 표현하고자 한다. 하나의 미디어로서 컴퓨터가 등장하고 성능. 기술적인 것을 미적 가시화하는 하이테크 디자인이 나타난다. 멤피스 디자인그룹에서는 장식적 잠재력을 표현함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추구하여 이를 신국제주의 양식, 네오 모던디자인으로 나타낸다.  여러 양식의 절충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형성되고 자연보호, 생태계, 필요성에 의한 디자인, 도덕적인 문제들이 대두하면서 환경디자인에 대한 인식도가 높아진다.


대체 디자인 운동가 빅터 파파넥이 주장한 소외계층, 제 3세계를 위한 디자인과 장애자와 노약자를 위한 디자인을 주도한 에르고노미 디자인 그룹 (스웨덴, 1970년)의 활동은 디자인의 사회공익적 기능을 찾는 계기가 된다. 그런 가운데 디자인 실무는 좀더 전문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하는데 세계 유수 기업의 기업디자인 전략설정과 사내 디자인 팀의 활성화 그리고 이탈디자인(Ital Design, 주지아로, 1969년)과 같은 세계적인 디자인전문회사의 출현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디자인의 연구체계는 에르고노믹, 사이버네틱스등 첨단과학을 원용한 '디자인테크노크라시'가 개발과 전문 영역 간의 팀워크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디자인 행위의 과학화는 가속적으로 성취되지만, 공학 분야의 한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익명성, 무명성이 디자인에 있어서도 일반화한다.


시각디자인 부문에 있어 1960년대의 자유주의와 분방함은 절충주의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독일, 영국, 그리고 가장 유명하게는 1968년 5월 파리에서 벌어진 60년대 후반의 학생 '혁명'은 잡지, 팜플렛, 포스터, 그리고 배지의 홍수를 낳았고 두가지 형태의 새로운 그래픽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아르누보의 부활이었으며 구체적으로는 에로틱한 일러스트레이션 덕분에 1890년대 영국을 휩쓸었던 오브리 비어즐리의 드로잉 스타일을 되살려낸 것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이 스타일에는 '사이키델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일본에서 텍스트와 이미지의 결합은 더 복잡하고 은유적인 (그리고 교묘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 그래픽 디자인은 모든 분야의 시각 및 텍스트 상의 의사소통에서 효과를 발휘했다. 그것은 또한 미술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의 개념미술 운동들(90년대에 네오컨셉추얼리즘으로 다시 등장하는)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제공한 교훈에 힘입은 것이었다.  수공예적 질과 다양성 구현을 위한 새로운 형태를 탐색은 대중적, 자연적, 전통적인 면을 찾는 반모더니즘 디자인 경향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3) 연표 
1961 영국 아키르램이 설립 : 팝아트적인 그래픽과 콜라주 기법 사용
1961 일본 SONY사에 디자인과 창설 : 디자이너 채용은 54년부터 하여 왔다.
1962 이태리 안젤로 만지아로티가 '섹션'이라는 이름의 시계를 디자인
     기능적인 요소에 대해 합리적으로 접근하여 조각적인 형태를 나타냈던 일면을 보여줌
1962 코닥은 직육면체에서 슬라이드 상자를 원형으로 디자인한 '캐루젤 - S 프로젝터'를 내놓음
1962 브라운 녹음기 '포노 수퍼 SK 4' 디자인
1962 최초의 시스템 디자인 방법에 대한 회의가 개최
1964 영국 콘란이 런던에 가구 체인상점을 개점
1965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기회주기 위한 아일랜드 디자인 센터 킬케니 디자인 공방이 개관
1966 이태리 플로렌스에서 아키줌이라는 디자인 그룹이 생김
1966 로버트 벤츄리 < 건축의 복잡다단함과 모순 > 출판 - 포스트 모더니즘건축 대변
1967 덴마크 아르네 야콥센이 원통형 스테인레스 커피 주전자 '실린더' 디자인
1968 레이몬드 로위 NASA 디자인 컨설턴트 담당
1968 일본 동경 컴퓨터 테크닉 그룹 창립
1969 14회 밀라노 트리엔날레 : 키치 및 대중문화의 디자인에 대한 탐색이 지배적
1969 독일 울름대학 폐쇄
1969 이태리 주지아로 '이탈디자인' 설립
1969 스웨덴 A&E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제품디자인 개발
1969 미국 아폴로 우주선 11호가 최초로 인간을 달에 착륙
1970 미국, 지구의 날(환경운동)
1970 롤랑 바르트 <신화>출간.
1970 스웨덴 <에르고노미 디자인>설립 : 의료기구,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디자인함.
1970 이태리 데 파스 두르비노 그룹의 로마치 야구장갑 모양의 걸상 '조' 디자인 : 팝아트적인 반디자인운동
1971 루이지 꼴라니가 로젠탈 도자기 회사를 위해 '물방울'이라는 도자기세트를 디자인 : 유기적인 형태
1972 노르웨이 디자이너 피터 옵스틱 : 허리(요통)에 인간공학적으로 적합한걸상 개발
1973 빅터 파파넥 '실제 세계를 위한 디자인' 출판 : 필요로서의 디자인사상
1973 이태리 디자이너 마리오 벨리니 : 올리베티사의 전자계산기 '디비주마' 디자인 : 실제성의 가치를 창조
1975 영국 1960년대 공예부흥운동으로부터 비롯된 크래프트 카운실 발족
1976 이태리 '스튜디오 알카미아'가 설립
     : 이미지 중심의 디자인보다 실제 생산 및 판매를 위한 혁신적인 디자인 센타
1976 혼타 아코드 자동차 시판 : SED 시스템으로 개발 ( Sales/판매, Engineering/공학, Development/개발 )
1977 미국 찰스 젠크스 <포스트 모더니즘의 언어>발표 : 모더니즘의 죽음을 예고
1977 퍼스널 컴퓨터가 처음 생산
1977 1960년대 사이키델릭, 히피 숭배이후 펑크족인 나타나 패션과 그래픽에 많은 영향을 미침
1978 브라운사 전기 칫솔 개발
1978 덴마크 디자이너 헤닝 안드레아센 'F 28'이라는 전화기 디자인
1978 일본 소니 워크맨 생산 : 극소주의 전자제품의 효시
1979 이태리 로버트 벤츄리, 마이클 그레이브스, 리차드 마이어 등 11명의 건축가는 금속제품회사 '알레시'를 위한 제품을 디자인함 : 포스트 모더니즘과 클래식 디자인 경향보여줌


4.3.5. 1980년대 이후



1) 사회이념가치의 변화
70년대의 경제 위기 이후 1980년대는 체제의 위기 시대로 특징 지울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무역전쟁은 디자인에 좀더 강도 높은 경쟁력을 요구하면서 경영전략적 차원에서 디자인의 역할이 좀더 부각되면서 디자인 비즈니스가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돌아선다. 동시에 디자인 진흥단체 활동의 활성화가 이루어지면서 런던 디자인 박물관 (1984년)의 설립등 공공정책 차원에서 각국은 디자인 진흥에 힘쓴다. 비즈니스 매니지먼트 측면으로 국가 산업, 경제발전의 대세로서 디자인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에 대한 경계는 그린 디자인 운동으로 나타나는데, '녹색강령(green imperative)'은 재활용과 공해와 환경문제를 적극 고려하는데 굿디자인이 추구되어야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디자인 민주화, 테크놀로지의 표현, 디자인 전쟁,  본격적인 디자인 시대 도래, 디자인 다원주의, 디자인 국제협력, 디자인 박물관, 역사주의와 모더니즘 혼재는 80년대 이후의 특징을 대변하는 용어들이다.


2) 규범 및 제도가치와 기술용구
1990년대의 가장 큰사건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의 종식으로 이제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경쟁상대 없이 외로이 미래를 찾아나가게 된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공백을 채운 것은 전자 혁명, 디지털 혁명으로 기술결정론(technology determinism)의 한 형태인 정보결정론(information determinism)의 이념을 세운 것이다. 인터넷(Internet)으로 세계 인류의 일상생활은 전자적으로 통합하면서 국제경제 사회와의 융화와 국제사회에 대한 공헌에 이바지하고 기술혁신, 정보화 등 국제경제 제요인의 변화에 긍정적 작용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아직 이 기술의 배타적 독점이 초래할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가치관의 다양화, 장수사회(실버층의 대두)등이 초래하는 새로운 문화적 라이프스타일 창조, 장수사회, 여성의 사회진출증가,
국민의식과 가치관의 다양화, 개성화, 자기실현욕구 및 창조성의 증대, 커뮤니티지향
재화의 생산분배에서 상품이면에 있는 사회문화적 의미 즉 기호의 생산 분배, 그리고
양보다 질에 충실하고 부가 서비스에 중심을 두는 탈물질적 생활관이 중시되고 있다.


이런 태도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로서 3R은 생활적 측면에서의 풍요 (Riches), 의식·정신 측면에서의 성숙(Ripeness), 시간측면에서의 여유(Rest)를 뜻한다. 구매태도는 '고질화지향', 자아·사회·지구환경 등의 사회성 배려하는 '성숙한' 생활 인상구현, 자유시간확대로 자신의 새로운 생활창조와 물질사회에서 코드사회로 변환 환경생활관점의 고양, 오리지날지향성, 레저생활관점의 변화. 소유라는 측면에서부터 생활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강조하게 되는 주거관과 가족의 의미를 회복하고 가족간의 접촉을 늘리는 관점에서 주생활을 영위도 한 특징이 될 것이다. 예로 복수주거-전원주택, 대형빌라, 농장 등을 구입하여 도시내 주거시설과 병행한 상시적 주거지로 이용-와 거주대상별 특화주택-동거형 3세대 주택, 인거형 3세대 주택, 근거형 3세대주택 -, 그리고 수직도시시대-지하공간, 스카이 공간활용 및 개발-도 미래 생활 양식의 한 모습이 될 것이다. 여가 생활에 있어서는 가족단위레져, 모험과 체험을 추구하는 레져, 자연지향 레져, 자기발견·자기표현형 레져의 양상을 Elf 것이다.  여피에서 덤피(가족본위)·트위너(금전본위보다 마음의 평안 중히 여김), 심플라이프, 밸루마케팅(Value Marketing) 등도 미래의 가치를 대변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3) 연표 
1981 이태리 에토레 소트사스의 주도로 '멤피스' 창립 : 상업주의 모더니즘 거부하고 장식성과 표현성을 회복
1981 이태리 제 2세대 디자이너 비코 마지스트레티 : '신드바드' 걸상이 까시나 회사에 의해 생산
1982 영국 대처 수상이 다우닝 10번지에서 디자인 세미나 개최 : 국가 경제성장의 주요 원인으로서 디자인의 부가가치를 역설 
1982 이태리 디자이너 리차드 새퍼 : 새로운 디자인의 주전자: 간결한 형태 깨끗한 마감등 하이테크 디자인과 포스트 모터니즘디자인이 결합한 국제적인 디자인함, 1980년대 이후 IBM회사 제품디자인 주임 자문 디자이너로 일함
1983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1945년 이후의 <디자인> 개최. 이때의 카달로그에서 에토레 소트사스는 산업 기계화로부터 디자인은 벗어나야 하며 폭넓은 영역에서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고 반디자인은 디자인 이벤트를 확대하고 깊게 하는 것이라 주장.
1986 포드 자동차는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 경영철학을 내놓음 : 기동적인 차량이념, 디자인에서 성능, 품질, 내구성, 외관, 경비 등의 중요 요소를 창조적`으로 융합하는 '디자인 믹스' 개념
1987 영국 런던에서 독일 디자인전 : 독일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제품의 미는 경제적 완벽함의 구체화이며 그 미적 특성은 순수하고 기능적인 목적을 이식하는 것임을 보여줌
1988 소련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에 따라 디자인 사절단을 영국에 보냄
1989 디자인 기호론 : 핀란드 헬싱키에서 처음 '제품의미론'에 관한 국제회의 개최. 디자인은 사물의 의미를 형성하고 제품의 의미는 디자인의 의미를 형성. 제품의미론은 물건과 시스템을 이해하는 원리를 명확히 하는 데에 목적을 둠


4) 핵심어 (개념)  
히피, 청년문화, 마약, 실존주의, 문화혁명, 68운동, 반핵반전운동, 밀리터리 룩, 옵아트, 극사실주의, 펑크, 대안문화, 반문화, 생체역학, 제3세계, 종속이론, 네오막시즘, 오일쇼크, 경박단소, Ware Design (전자제품에 의복 스타일 개념의 도입), 가제트화, 프로덕트 아이덴티티, 하이테크, 하이터치, 아키그램, 제품의미론, 의인화, 놀이, 유희, 래디컬 디자인, 스튜디오 알키미아(1981), 멤피스그룹, 이탈리안 디자인, 건축적 형태, 포스트 모던, 해체주의, 다원주의, 양식혼합, 컴퓨터 혁명, 정보화, 신세대, 사회주의 블록 붕괴, 우리식 사회주의, 주체사상, 세계화, 컴맹, 신자유주의, 전세계적 첨단취향 : 다국적 디자인 기업, 전자오락게임, 인터넷, 가상공간, 인터페이스 디자인, 비자금, 구제금융, 통화위기, 준비된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