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승진 연세대학교 :


 


디자인과 말
디자인에서 ‘말(언어)’를 말할 때 실무 디자이너들이라면 먼저 신경을 곤두세워 준비하는 디자인 프리젠테이션용 능숙한 언변을 먼저 상기시킬 것이고, 아니면 특정 디자인이나 제품,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보고서의 길고 짧은 설명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근대디자인 운동의 시작부터 디자인은 단지 수단과 기재로서 묵묵히 일할 것을 거부해왔으며 이상주의적 이념을 세우고 도덕적 규범과 행동강령을 만드는데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유형의 디자인에 관한 선언manifesto 경구aphorism, 혹은 인용문quotation이 존재한다. 그 선언과 말의 용도가 어떤 것이든 실천보다 말이 앞서고 말은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 디자인의 한 특징이기도 하다. 건축과 예술도 이점에서 비슷하다. 디자인이 결과거나 혹은 과정이나 계획이라 했을 때,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계산대로 진행했으면 해석 값이 나왔을 것이고, 정해진 대로 절차를 밟았으면 공정 설계도를 건네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에 덧붙여 무슨 ‘말'이 필요한 것일까? 도면과 모델의 전달로 끝나지 않고 항상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며 때로는 이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에서 디자인에는 말이 따라다니고 디자이너는 말이 많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남의 디자인에 대하여도 그렇다.


비관적으로 실천에 앞서는 말은 스스로 서지 못하는 디자인을 반영하는 슬픈 현상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는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고 행동의 규범을 세우는 자기 성찰적 과정이기도하다. 현상적으로는 디자인의 효용을 선전하기 위한 대사회적 선언이기도 하고, 디자인의 존재론적 정당성을 위한 매끈한 언변이기도 하며, (엔지니어나 그 비슷한 기술자 집단에게는 없을 법한)철학적 깊이를 가장하기 위한 다양한 수사학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언뜻 스치는 사회 현상에 대한 일말의 통찰이기도 하다. 무엇이 되었건 가장 큰 특징은 (엔지니어나 그 비슷한 기술자 집단과 다를 바 없는)역사적 이해의 결핍과 논리의 엉뚱함, 혹은 단순함이다. 그리고 이런 탈역사성과 상상력이야말로 지나는 논객마다 한번씩은 다 들러볼 자리도 마련하고 그만큼 해석의 풍부함과 유연성을 보장한다. 이 밑도 끝도 없는 '말'잔치가 디자인을 진정 디자인답게 한다. 이것이 디자인과 말의 효용이다. 여기서는 가장 많이 동원되고 그래서 그 효용만큼 남용되고 오용되는 두 개의 말, 기능주의와 근대성을 다시 말해보고자 한다.


기능주의
디자인에 있어 기능주의functionalism는 존재했는가? 그렇지는 않은 것같다. 비록 다양한 기능주의자functionalist는 있었어도 이들 누구도 자신의 이론을 이념화하진 않았다. 기능주의자들의 이론은 있었을 뿐 이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능은 수단일 뿐 목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능이란 것은 효율의 문제에서 상징의 문제까지 너무나 광범위하여 서로 상반된 이론이 가능하고 이론간 충돌도 있기 때문이다. 기능에 관련된 이론은 여러 개 있고 만일 있다면 그 만큼의 기능주의들이 있을 것이다. 언어학과 사회학의 기능 이론을 제외하고 건축에 있어 기능주의 이론은 디자인에까지 연장되는데 그 이론적 유추의 유형을 기계적 유추, 유기적 유추, 도덕적(윤리적) 유추로 분류하기도 한다. 추코의 분류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기계적 유추는 가장 익숙한 기능주의 이론의 배경일 것이다. 이는 형태적 완벽성이 가장 완벽한 기계적 효율성으로부터 자동적으로 발생한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다. 즉, 미를 의식적으로 탐구하지 않더라도 완벽하게 처리된 창조물은 이상적인 미를 성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은유는 대표적 본보기로, 르 코르뷰제는 건축가나 디자이너에게 완벽한 기계는 위대한 영감의 근원으로 공학기술자의 정신으로 자신의 디자인과 건물을 공업적 생산물로 설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역시 ‘건축의 목적은 완벽하고, 따라서 아름답고 효율적 것의 창조다’라고 말하며 공학의 산물, 기계, 기술적 장치와 구조를 존경하였다. 모두 산업발전의 산물로 고도로 완벽해진 기계류의 발전을 가져온 산업혁명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기적 유추는 자연의 미와 그 완벽성에 대한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연은 건축가와 디자이너에게 영감의 주요 근원으로 건축이나 디자인의 유기적 형태는 전체뿐만이 아니라 각 부분도 그 기능에 따라야한다는 생물학적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생각의 바탕은 부퐁Buffon, 라마르크Lamarck, 다윈Darwin 같은 18, 19세기 학자들의 생물학 이론에서 강한 자극을 받은 것이며 이후 윌리엄 모리스나 루리스 H. 설리반, 그리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생각으로 이어진다. 고트프리 젬퍼의 경우 자연은 단순히 그 외적인 형태뿐만이 아니라 그 원리 때문에 영감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였다. 유기적 유추는 기계적 유추보다는 심층적으로 기능의 문제를 생각했다고 볼 수 있는데, 건축과 디자인을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로 간주하고 각 부분은 구조나 기능과 동일한 리듬 따라야 스스로 성장하고 번영할 수 있다는 주장이 그 한 예이다.


도덕적 유추는 디자인이 도덕적 혹은 윤리적 이상을 반영하고 이에 공헌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건축과 디자인은 진실되어야 하며 불성실해서는 안되고 형태는 보이는 그것이 보이는 그대로 이어야 한다. 사물은 그 목적과 시대의 진실한 표현이어야한다. 여러 형태가 조합되었을 경우 이는 조화를 향하는 협동을 보여 줘야하며 이러한 인간의 실천하는 미덕은 사물의 제작과 건축에도 반영되어야한다는 생각이다. 아돌프 로스의 경우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현대건축에 있어 장식은 사회에 대한 죄악으로 가정하였다. 1890년대 베를라헤H.P. Berlage는 일반에게 많이 보급된 건축을 허위의 건축, 즉 모방으로서 거짓이라고 비난하였는데, 그에게 있어 진실한 건축은 그가 살고있는 시대를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기 헨리 반데 벨데 역시 ‘형태의 허위’에 반대하는 혁명을 또 하나의 도덕혁명으로 서술하였다. 기데온과 모리스가 주장한 ‘목적에 대한 적합성 fitness for purpose'도 이 생각의 연장선에서 당시의 예술을 노예상태나 허위성을 고발하는 것이었는데, 모리스의 경우 ’사람에게 사용거나 만들어야하는 사물에서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도덕적 예술을 주장하였다. 라이트가 말한 양식있는 건축의 덕목으로서 완전함, 정직함, 그 자체의 진실함 같은 표현을 통하여 ’새로운 종류의 미로서 양호한 생활을 자신의 구조물 내에서 구축해야만 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에 있다. 도덕적 태도는 기계적 유추나 유기적 유추에 모두 적용되어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의 기능 중심적 입장을 강화하였다. Edward Robert de Zurko, Origins of Functionalist Theory, Columbia Univ. Press, 1957, (기능주의 이론의 계보, 세진사, 1991년)


여러 가지 유추 혹은 이론적 근원이 나열되었지만 기능이론의 원류는 생물학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특히 그중 진화 생물학의 한 분야인 형태학morphology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태와 기능과의 관계를 통하여 생물의 구조와 진화를 규명하고자 하였는데 이 전통에서 시작한 비교 형태학은 다윈주의 이후까지 이어진다. 대표적인 현상으로 19세기 유럽과 20세기 초 미국에서 나타난 생물학적 전통이 있다. 생물체와 생체기관에 관한 두가지 두드러진 경향이 나타나는데, 하나가 독일에서 발전한 초해부학 transcendental anatomy 과 또하나는 미국의 생체 발전학 developmental mechanics이다. 이 둘은 씨줄과 날줄이 되어 ‘형태에 대한 기능의 관계 the problem of the relation of function to form 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엮어낸다. 기능은 형태의 기계적 결과인가, 아니면 형태는 단순히 기능이나 행동의 발현인가? 생체 조직과 활동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당시 형태와 기능과의 문제를 규명하는 접근은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뉘는데 하나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퀴비에Cuvier로 이어지는 연구 전통으로, 형태의 일차적 결정요인으로 기능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 접근이 의도하는 바는 생체구조와 이의 설계원리, 그리고 이들의 연관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헥켈Heckel과 같은 초해부학 전통의 독일 생물학자들이 주장한 내용은 형태에 종속된 기능function followed form이란 생각이다. 유기체에 내재한 완벽한 설계도는 생물의 형태학적 다양성을 분석하는 지침이 된다는 생각이다. 선험론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유기체의 설계도bauplan가 생체기관에 적용할 수 있는 기능에 한계를 부여하는 쇠창살iron limit가 된다는 개념 때문이다. 대표적 연구가 헥켈이 주창한 ’가스트레아Gastrea‘는 생물형태에서 전형archytypal form을 찾고자 한 결과다. 세 번째는 계통발생표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생물체의 형태와 기능과 분포를 시대별로 분석하여 이를 기초로 유기체 발생의 계통적 연관성과 그 유형을 발견하자는 접근이다,(E. S. Russel, Form and Function, John Murray Ltd., 1916(reprinted in Chicago Univ. Press, 1982), introduction, p. xxxiii.)


생물학의 전통으로서 형태학적 설계에 있어 형태와 기능의 선후 관계에 대한 분석과 유추에 관한 생각은 예술과 문학 그리고 건축에까지 그대로 이어져 각 분야가 이전의 전통에 저항하는 반대 명제의 역할을 했다. 설리번이 주장한 내용도 같은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생물학적 유기체 형태론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 기능주의 이론에 관한 한 건축가나 디자이너들은 설리번보다 인식의 기초에 있어 오히려 더 막연한 수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리번은 실상 훌륭한 장식가로 장식이 건축의 본질적 부분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에게 장식이 건축에 기능주의적으로 접근하는 방법과 반드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단순히 말해 장식도 하나의 기능으로 간주한 것이다. 특정한 기능을 가장 단순하고 저렴하게 실행하는 원리(고안물:device)를 만드는데 있다는 기계 설계의 목적에 집착하는 한 이러한 기능의 뜻은 보일 수 없다. 상품성이란 제품과 기계의 일차적 기능 위에 덧씌워진 별개의 기능이 될 것이다.


생물은 종종 자연선택만큼이나 자웅선택에 전념하는데, 그는 이것이 생물에 있어 좀더 궁극적인 생존 목적에 봉사한다는 사실을 인지했던 것이다. 공작의 꼬리 깃털과 사자의 갈기가 아무런 실용적 용도는 없지만 이 멋진 장식은 훌륭한 형질을 과시하는 것이고 이로써 짝짓기의 우위를 점하므로써 생물의 궁극적인 생존전략으로 번식전략의 목적을 훌륭히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란한 색채와 거치장스러운 장식은 오히려 포식자에게 쉽게 발각되고 먹이를 쫓는 행동을 제한한다. 과시적 장식으로 인하여 짝짓기 상대를 만나기도 전에 잡아먹히거나 굶어 죽을 확률도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요란한 겉치레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역으로 그런 위험을 감수할만한 용기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우수한 형질을 과시하는 것이다. 광범위하게 채택되는 이 방법은 분명 생물 일반에 있어 번식전략, 혹은 유전자 전달전략으로 성공하고 있다. 인간 역시 비슷하여 젊은 남녀는 화려한 옷차림과 과장스런 몸짓 혹은 비싼 자동차로 상대를 유혹하려 들고, 결혼에 대비하여 고가의 (아무런 기능이 없는)사치품을 교환한다. 오늘날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이 방법이 반드시 유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유리함은 사실이다. ‘감정은 형태를 따른다’고 해야 할까? 생명체에게 장식은 분명한 기능을 갖고있으며 형태가 기능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생체 기능의 연장으로서 도구와 사물에도 이 논리는 그대로 연장된다. 후대의 이론가들은 이런 상식마저 망각했는데 르 코르뷰제가 그리스 건축을 원래부터 대리석이 드러난 흰색이었다고 착각한 것이 그랬고, 아돌프 로스가 말한 ‘장식은 죄악‘ 조악하고 단순한 인종차별적 발언일 뿐이다. 이는 마치 생물 형태학이 대륙의 골상학phrenology 머리나 두개골의 생긴 모습으로 인성과 인간적 특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음. 나중에는 인종 분류에도 적용됨.
과 두개골학craniology 인간의 두개골과 뇌의 용량을 측정하고 이를 통하여 인종간의 특징과 지적 우열을 파악하고자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폭넓게 연구된 사이비 과학으로 원주민의 학살과 흑인의 열등함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됨.
이란 사이비과학으로 발전한 것과 비슷하다.


1960년대 말 생물형태학에서 기능주의 이론과 진화론은 평형론equilibrium theory으로 수렴된다. 각 유기체와 유기체 인구집단은 근본적으로 환경과 평형상태를 이루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환경적 요인도 생물체의 기능 설계에 이용된다는 생각이다. 형태와 기능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모습을 통하여 생명체의 변이를 설명하는 것인데, 이는 현상적으로 보이는 생물의 형태를 현재의 환경 영향으로만 분석할 것이 아니라 오래 전 환경에 대한 지속적 적응과정의 표출이라고 보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생물에 있어 지금의 기준만으로 형태와 기능의 관계를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오래 전부터 존재해온 특정 인공물이 오늘날 시점에서 보아 기능적이 아니라고 바로 비난할 수는 없다. 사물과 사물사이에 존재하는 기능적 효율상의 비합리성은 환경적 평형상태를 향하는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다. 변화에 있어 역사적 연속성을 적용하고자 한 시도는 인공물에 있어서도 제법 흔하다. 새로운 재료와 가공기법이 적용되었음에도 과거의 수작업 공정에서 쓰인 세부처리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같은 용도의 선행 모델이 존재할 경우 이 현상은 규칙적으로 일어나는데 인류학자들은 이를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이라고 정의한다(George Basalla, The Evolution of Technology, Cambridge Univ. press, 1988: p.165, 조지 바살라, 김동광 옮김, 기술의 진화, 도서출판 까치, 1996). 환경과 인공물의 불규칙한 변화 속도와 양상은 현상적으로 형태와 기능사이의 불균형을 보여주지만 이는 다시 수렴하여 평형상태를 이루게 되며, 다시 또 그 반대 현상이 반복되는 것이다. 본능과 생존전략으로 생명체가 환경과 평형상태를 지향하며 그런 가운데서 형태와 기능의 문제를 조절한다는 생각은 1970년대 이후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서 이슈화한 환경친화적 디자인 운동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성과 근대화
근대(모던:modern)이란 말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과거(ancient)와 단절을 강조하고자 쓰기 시작했고, 16-17세기의 과학혁명 동안 기계적 자연관과 진보주의가 더해진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사회는 부르주아 모더니티가 지배하였고 모더니즘은 모더니티가 성숙, 변화하면서 산업혁명 기간동안 드러난 산업화에 따라 자본주의의 전일화, 근대화(모더니제이션:modernization)가 진행되자 모더니티 원래의 도전의식과 파괴성을 회복하고자 1870-80년대 이에 대한 반발로 생겨났다. 감각과 주관성을 중시하는 점에서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모더니즘을 좀더 광범한 영역에서 다루는 연장선이라고 봐야한다. 벨(Daniel Bell)도 모더니즘을 19세기의 미학적 현상으로 그 습성은 도시문화와 혼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적절한 비유로 ‘근대화는 근대성을 건너는 다리고 근대주의는 이를 건넌 후 다리를 파괴해버렸다’는 말이 세 개의 개념 관계 통찰력 있게 설명한다.


서구에 있어 비록 근대사회는 15세기쯤 출현했지만 근대란 개념이 좀 더 결정적으로 형성된 것은 18세기 계몽주의 담론이다. 그 핵심은 인간의 진보에 대한 믿음으로 19세기에 산업혁명의 성과가 가시화하면서 근대성은 산업주의가 불러온 전반적인 사회, 문화, 경제적 변화와 일치하게 되었다.(Stuart Hall, David eld, and Tony McGrew ed. Modernity and its Futures, Polity Press, 1992 : p. 11, 모더니티의 미래, 현실문화연구). 연구가들이 지목하는 근대성의 근원은 시간의식의 변화와 기계론적 세계관이다. 먼저 세계를 수량화하여 도식을 만들고 투입과 산출을 계산함으로써 이전의 기술-art 혹은 techne-에서 다른 기술-engineering 혹은 technology-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는 신의 의지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이성적 주관을 갖고 생산적이고 구성적인 방법주의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진보시간론은 미래를 앞당겨 계산하고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는 행위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진보한다는 생각이다(p.53, 이마무라 히토시, 근대성의 구조, 민음사, 1999). 물론 이는 결코 근대적 사고는 아니다. 서양의 기독교 사상이야말로 창조에서 소멸에 이르는 직선적 시간관에 철저하여 오랫동안 사후세계를 담보로한 성직자의 권한을 공고히 해왔다. 근대적 사고는 그 형태는 비슷하나 이에 비하여 좀더 적극적인 인간 의지를 개입시킨 점에서 다르다. 시민사회는 기계장치처럼 정연하고 합리적으로 움직이며 자기 통제의 원리를 갖는다는 의식은 프랑스혁명 이후 계속 발전했다. 뒤이어 등장한 산업주의는 이전과는 다른 정치체제를 만들었는데 그 특징은 경제와 정치의 결합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시민혁명 직전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륙에서 추진된 중상주의를 뿌리로 하고 있다.


현대성 혹은 근대성(여기선 이 말을 채택한다)으로 옮겨지는 모더니티modernity를 현대사회를 특징짓는 사회생활의 독자적이며 특수한 형태로 볼때. 모더니제니션modernization으로 알려진 근대화는 기계기술과 산업화를 기반으로 시민사회의 삶을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물질적 생활 수준을 기능케한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서유럽과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시작되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산업국가는 세계 제2차대전 후에 일어났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이후 디자인이 대량생산되는 인공물의 기능과 형태를 결정하는 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면서 산업주의를 매개로 디자인과 근대성의 성립, 그리고 근대화와 디자인 분야의 성장은 밀접한 관련을 맺기 시작하였다. 모던 디자인 프로젝트modern design project는 성장을 전제로 하는 근대국가 정책이 채택한 포괄적 의미의 근대기획 혹은 근대화 프로젝트에 대한 디자인, 혹은 산업미술의 대응과 역할로 서술되고 있다(강현주, 20세기 디자인과 근대화 프로젝트, 디자인학연구 33호, 한국디자인학회, 1999). 디자인이 근대화에 어떤 역할을 했고 스스로 근대성을 어떻게 표현하려했는가는 여러 경구가 말하듯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며 디자인의 이념과 역사 서술에 중심주제를 지켜왔다.


따라서 디자인에 있어 근대성과 근대화 담론의 습성과 문제를 비판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근대화 즉, 모더니제이션modernization은 국가경제에 발맞추는 정치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경제계획 혹은 계획경제가 가시적으로 적용된 20세기 이후의 현상이다. 따라서 근대화(운동), 즉, 모더니제이션을 통하여 그 이전의 근대성 혹은 모더니티를 서술하는데는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근대화는 산업화를 의식한 개념으로 자본집중화와 사회간접자본 투자 등 산업성장에 대한 구체적이며 체계적인 개념이 포함한다. 그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20세기 초 관리경제와 계획경제를 접목한 자본주의(구체적으로 미국의 뉴딜정책), 사회주의, 파시즘-국가사회주의Nazism와 일본 군국주의 등- 의 정체들을 통해서이다. 이에 비하여 근대 디자인 운동에 관한 대부분의 저술이 논리적 혼란에 빠져있는 것은 근대성과 근대화, 그리고 근대주의를 혼동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디자인논리의 연결 고리를 미술의 산업응용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의 문제의식과 같은 영국에서 발생한 몇 개의 사건에 국한하고 있다. 이는 근대 디자인 역사의 서술을 윌리암 모리스에서 시작하여 바우하우스로 연결하는 펩스너 Nikolaus Pevsner, 건축사가, 디자인사가, 근대디자인운동의 선구자들 Pioneers of Modern Design: From William Morris to Walter Gropius(London: Harmondsworth, 1936, Penguin 1968), 근대건축과 디자인의 근원 The Sources of Modern Architecture and Design(London, Thames&Hudson, 1981) 등의 저술을 남김
의 서술방법을 기본 틀로 하는데서 오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로 영국정부가 추진한 산업에 대한 미술의 적용에 관한 것인데, 이는 당시 면직물 패턴에 관한 영국국회자료와 같은 사례를 말하는 것이라면, 이것 역시 19세기 중반 영국이 인식한 면직물 산업에 대한 이해는 자국의 수출입에 대한 미시적 분석에 기초한 것이란 점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당시 영국은 아직 면직물산업에서 부동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며 가장 큰 수익을 보장하는 부문이었다. 오히려 문제는 성숙기에 접어든 면직물 산업의 막대한 이익에 가려 영국이 가능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산업의 대두였는데 철강, 전기, 화학이 그것이다. 이 부문을 중심으로 독일, 미국, 프랑스가 후기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영국이 성공적으로 미술을 응용하여 면직물의 패턴을 디자인했다해도 19세기 후반 산업화의 주도권이 대륙과 미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음으로 모리스가 지적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비민주성과 폐해는 당시의 현황에 대한 공정한 시각일까? 이 무렵 공장 생산품의 질은 이전의 수공업품에 대해 상대적으로 질은 떨어졌지만 이전과 비교가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공산품을 공급함으로써 당시의 폭증하는 도시인구의 생활에 큰 기여를 했다. 문제는 이와 동시에 유행한 졸부와 귀족을 위한 고품질, 혹은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고가의 공예품의 존재였다. 품질과 가격의 다양함은 오늘날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지속해온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의 상식이었다. 이 시기 영국에서 오히려 문제가 되었던 것은 귀족의 스타일이 대량생산 직물과 화학적 날염법으로 부르조아에 의해 너무 쉽게 모방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롤드 퍼킨은 이른바 ‘계층 추종 social emulation'이 19세기의 영국사회를 특징지었다고 하면서 부르조아 중산층 가정에서 경쟁적으로 사들인 웨지우드 도자기가 왕실이나 귀족의 도자기를 모방했다는 점, 염색산업의 번성이 모직에 귀족의 비단옷처럼 물을 들이는 점등의 사례를 들고 있다.(Harold Perkin, Origins of Modern English Society, Routledge, 1991; first ed. 1969)
. 산업화나 품질저하라는 당면한 문제의식 이전에 모리스는 역사의 일반성을 간과한 것이다. 그가 이상 사회로 설정한 ‘중세’는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다. 모리스의 생각과 실천은 현상적으로 신미술-아르누보Art Nouveau- 운동과 유사한데, 이는 그가 직접 창조하고자한 자연주의적 양식과 디자인 접근 방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즉, 모리스의 이념적 부분보다는 그의 양식적 특징적 분석 평가하는 것이 근대 디자인 운동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된다. 공장과 산업은 과연 지탄받아 마땅한 것이었을까? 당시 공장과 공장노동의 환경에 대한 사료는 그 ‘사악함과 음울함’보다는 환경의 깨끗함과 쾌적함, 기계설비의 체계적이고 정교한 설계에 대한 인상에 관한 서술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생산 활동은 산업화 과정을 통하여 무질서한 가정과 예측하기 어려운 토지경작에서 벗어나 체계적 공장과 계획적인 도시로 이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공장과 대도시 역시 분명한 삶의 터전으로 인식되었고 환경개선의 노력도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산업화를 긍정하는 극단적인 예는 자동화에 대한 포드의 설명에 일부 나타난다. 그는 특히 제빵업, 직조, 주택건설, 목재선박조립 등 공장제 이전의 가내공업에 비판적이었는데, 이 같은 일은 생산성도 형편없으면서 가정의 평안함까지 빼앗아 갔다고 말하며 자동화한 대량생산체계야말로 생산성은 물론 쾌적한 작업 환경과 안정된 가정을 이끈다고 주장했다.(p. 821, Henry Ford, The Origines of "Mass Production", Encyclopedia Britannica 13th ed, 1926)
. 위생적이고 쾌적한 산업환경은 생산성을 높였고 생산성과 품질향상, 임금상승은 서로 연계되어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 관심 대상이 된다.


오늘날 모더니티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소비 영역이다. 이곳이야말로 지출하는 노동자와 공급하는 기업주가 만나서 이들의 이해를 타협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에 항상 디자이너가 있다. 소비문화는 근대화가 추구한 근대세계의 일상생활에 의미있는 관행의 핵심이며 서구가 정의하는 선택, 개인주의, 시장 관계같은 모더니티의 핵심적 가치, 관행, 제도들과 결합한다. 모던 디자인 프로젝트, 즉, 근대기획이 개인의 물질 생활에 이전보다 발전된 일정한 이상의 수준을 목표로 이를 계획하고 실현하며 궁극적으로 일상 생활 영역에서 부단한 선택의 자유를 추구한 것이라면 이는 바로 소비주의를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이념이 무엇이었든 모더니티는 근대 시민으로 모든 개인이 향유하고 추종할 수 있는 물질적 접근기회의 확대와 새로움을 향한 끊임없는 취향과 유행창출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여기에 새로운 시장을 겨냥하는 쇼핑, 광고, 마케팅 같은 조직체와 복합적 실천이 더해진다 Don Slater, Consumer Culture and Modernity(p.15, p.29, 소비문화와 현대성, 문예출판사, 1997)
. 디자인의 모습과 역할도 바로 이것이다. 소비문화처럼 디자인 역시 산업화의 결과다. 따라서 20세기 초까지 서구에서 진행된 근대화 과정이 지향한 금욕적이며 노동지향적 윤리가 이른바 디자인의 모더니티에 깔려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궁극적 지향점은 좀더 많은 이에게 많은 사물을 제공하는 것이다. 공급과잉이 분명한 이 시대에 인간의 욕구는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탈근대주의가 새삼 깨달은 것은 아니다.


단지 겉치레 언변으로 끝날 것인가?
탈근대주의 담론의 특징으로 이야기story나 내용보다는 문체 style 과 텍스트text 가 중요진 현상을 들고 있다. 거칠게 말해 뻔한 거짓말이라도 말싸움에서 이기면 된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하비(David Harvey)는 이글턴의 말을 인용하며, 진리와 권위, 그리고 수사적 유혹 사이에 아무런 차이점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장 말을 유창하게 하는 자나 인종문제에 대한 얘깃거리를 지닌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는 현상'같은 것이다. ‘레이건’이 백악관에서 8년간 카리스마적인 이야기꾼으로 군림했던 사실로 미루어 보어, ‘잘돌아가는 혀’가 정치문제와 크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요즘은 토니 블레어가 그 비슷한 스타일을 구사한다.) 모더니티에 대해 단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불확실성이라고 하던가? 탈근대성을 말하기 전에 아직도 할 일은 많은데 그것은 모더니티의 조건을 만들어낸 사회적 동력에 좀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한다는 것이다(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 Modernity, Blackwell, Oxford UK, 1989: p. 160데이비드 하비, 포스트 모더니티의 조건, 한울, 1994).


그 조건과 동인을 설명하는데 있어 그 말이 현상에 대한 해석인지, 행동의 지침인지, 혹은 원리의 선언 혹은 재확인지 구별할 필요가 있다. 유형에 따라 분석과 평가의 방향도 다를 것이다. ‘굿디자인은 굿비즈니스’라고 새삼스레 강조한다면 그 배경에는 디자인은 말보다 실천이란 것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때문이다. 메타 이론으로서 기능주의와 근대성 같은 말이 항상 동원되어 문제를 복잡하게 할 필요도 없다. 웬만하면 불필요한 짐은 먼저 덜어내고 시작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것이 경구거나 명제거나, 말로만 존재하는 말에 대한 허망함이야 따져서 무엇하랴만, 해석의 풍부함은 여전히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이에 대한 또 다른 비판에도 막힘이 있을 순 없다. 이미 말은 빛의 속도만큼 빨라졌고 광자량 만큼이나 가벼워졌다. 거기에 불필요한 권위를 얹고 해석을 붙일 때 속도와 민첩함도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