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살라와 코완의 논지를 현대의 기술(컴퓨터, 휴대전화, 고속철 등)이나 가정환경(아파트 생활, 웰빙에 관련된 여러 이슈와 물품)에 적용하여 분석비판내용 보충


바살라는 ‘기술의 진화’에서 기술을 진보한다기보다는 진화한다고 하였다. 즉, 현대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편하고 좋도록 진보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사물들의 연속성 안에서 진화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인공물은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으며, 기술은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보았다. 그리고 코완도 과학기술의 발전이 특히, 가정에서의 그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편하고 이롭게 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의 발전, 그 기술을 이용한 공학 문명 발전의 겉보기만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과학의 발달이야말로 인류의 무궁한 미래를 보증할 행복의 복권이라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곤 한다. 이러한 통념에 대해 두 저자 모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는 면에서 비슷하다. 기술 문명이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인들이 과연 그렇지 못했던 옛 사람들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기술문명, 물질문명의 발달에 비례하는 행복이 도래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는 거의 공감을 가질 것이다.

컴퓨터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개막된 디지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정보 사회를 낳음으로써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냈다.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빠르게 처리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반대로 방대한 양의 정보와 빠른 정보처리는 우리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디지털 시대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수록 사람들은 점차 피로감에 젖고 정신적 질병을 겪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와 함께 인터넷의 확산은 신 경제(New Economy)를 탄생시켰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들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현실과 멀어지게 한다.

휴대전화 또한 우리에게 많은 편리를 준 듯 하다. 국민 두 명 가운데 한명이 갖고 있을 정도로 이동전화는 생활필수품이 됐다. 휴대전화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필요할 때 전화를 걸거나 받을 수 있지만, 그에 따라 현대인들은 이제 더 이상 휴대전화 없이는 불안해 살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연락 가능하다는 것은 반대로 그 사람에 대한 족쇄로 다가 오기도 한다. 또한 비뚤어진 이용문화 때문에 '휴대폰은 공해' 로 여겨질 지경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구 울려대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예사고 잘못된 사용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일본.유럽 등지는 물론 급기야 정부도 하반기부터 운전 중 휴대폰 통화를 규제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핸드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도 인체에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경고도 무시 할 수 없다.

고속철은 어떠한가. 각 나라들이 속도 향상을 위한 기술, 연구개발에 매달려 현재는 시속 300km/h 대의 고속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속철도(KTX)는 350km/h로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운행 시에는 최고 300km/h로 달리면서 우리의 시간의 제약을 많이 해소해 주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이제 1일 생활권에서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한 것은 이미 예전의 일이다. 뿐만 아니라 고속철은 교통과 물류의 이동에 있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국내 항공교통의 부하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시속300Km의 속력을 내기위해 토목측량이나 시공시에 세밀하고 안전한 시공을 해야 하기 때문에 토목 거축기술의 발달 할 수 있고, 고속철은 빠르기 때문에 항공기처럼 유선형이어야 되고 중요한 인자인 공기저항, 소음진동의 역학을 연구함으로써 항공역학기술을 연마하게 한다. 또한 고속철은 수도권집중해소에도 기여한다.
반면 우리가 고속철을 이용하기에 앞서 우리의 세금이 포함된 과대한 공사비가 들었고,후에 막대한 유지비도 감당해내야 한다.

과학 기술이 가정환경에 미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봤을 때, 아파트는 우리생활에 많은 이점을 준듯하다. 과거 우리의 전통 가옥과 달리 화장실까지도 뒷간의 개념이 아닌 정식으로 생활공간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수세식의 화장실을 가까이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 대신, 우리 특히 가정주부들은 더욱더 화장실을 더욱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관리해야만 되게 되었다. 또, 마당이 없어져서 관리해야 할 부분이 줄어든 듯하지만 대신에 베란다가 생겼고 그곳 역시 더욱더 깨끗하고 깔끔하게 유지해야만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아파트가 과거에 비해 더욱더 많은 이웃과 한데 모여 더불어 살게 해준 듯하지만, 오히려 우리 가족만이 자기집의 독립된 성에 사는 것 같은 삭막한 도시 주거생활을 하도록 만들었다. 아파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실내의 전용부분만 내집으로 생각하고 공용부분은 나와 상관없는 공간으로 명확히 구분하여 공간을 인식하고 있다. 같은 동이나 단지 내에 사는 사람들이 같이 사용하는 통로, 주 현관, 녹지공간 등의 공용부분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외부공간은 주차공간이 충분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내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한 달에 한번 날아드는 관리비 청구서를 보며 내집 이외의 다른 공간은 관리 사무소에서 알아서 해주리라는 생각이 더욱 가중된다. 이 밖에도 아파트의 고층화로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멋진 경관을 선사해 줄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도시경관을 파괴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웰빙 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매일 매일 잘 먹고 잘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원래의 웰빙은 생명과 자연의 가치를 중시하고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며 행복을 위해 환경을 개조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개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뜻하는 것이지만 ‘족’이라는 신조어가 붙은 국내의 ‘웰빙족’은 하나의 유행처럼 물질적 풍요, 지나친 건강과 미용에의 집착, 상업적 고급화로 흐르고 있다. TV 프로그램은 앞 다투어 웰빙 라이프를 위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쉼 없이 건강과 행복에 이르기 위한 비결을 쏟아내고 있다. TV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광고에서도 웰빙을 빼놓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하다. 웰빙 체조, 웰빙 주택, 웰빙 수면법 등 의식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결국 웰빙이 기업에게는 개척할 영역으로서의 새 시장이 되었을 뿐이고, 소비자들에게는 추가적으로 달성해야할 새로운 욕구의 창출이 되었을 뿐이다. 즉,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웰빙이 다시 인간을 자본주의 체제 하에 종속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서 이러한 사례들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분명 과학기술은 사회구조에서 개인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많은 변화를 초래하였다. 하지만 기술문명은 그 자체로도 양면의 칼이어서 이로움을 주는 반면 해로움도 야기한다. 이제 더 이상 기술 문명의 진보로 인류는 풍요로운 세상을 이룩하게 되고 이렇게 함으로써 저절로 행복이 도래한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 과학의 진보가 인류에게 미래의 이상향을 저절로 가져다주는 요술 방망이는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