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번스타인 (William Bernstein)
부의 탄생 (The Birth of Plenty) : 시아출판사_2005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20070206
유상욱_0293081

- 제1부. 무엇이 성장을 낳는가 -

제1장. 번영에 꼭 필요한 4가지 요소

지난 반세기동안 인류는 거의 모든 사회진보의 척도 상에서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인구는 유례없이 증가하고 있는데, 19세기 들어 경제 성장이 ‘집약화’됨에 따라 인류는 맬서스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의 부를 창조하는 요소로는 재산권의 확립 과학적 합리주의 효과적인 자본시장의 형성 빠르고 효율적인 통신과 수송이다. 근대 이전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부재하였고 번영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전통적으로 부의 생산은 토지, 노동, 자본이라는 세 가지 투입물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의 빠르고 지속적인 생산성의 증대는 위의 세 가지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지식이 네 번째 투입물로 제시되고 있다. 인류 역사가 수렵 채취 사회, 농경 사회, 공업 사회, 탈산업 사회로 이동함에 따라 점차 자본-지식 집약적으로 되어 갔다. 서구 사회들은 네 가지 과제가 달성된 다음에야 탈산업사회라는 결실을 향유할 수 있었다.

제2장. 재산권의 등장과 확립

재산권은 근대적 번영의 네 가지 기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재산권의 기원은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집트와 수메르, 바빌로니아 등 고대 국가에서 재산권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강력한 재산권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서구 민주주의의 기원인 그리스에서였다. 초기 그리스 소농들은 재산권, 금권정치. 군사적 자족성을 통해 자신들의 독립성을 명확히 표출했다. 솔론은 국가권력과 독립된 사법제도를 설치함으로써 평민들의 생명과 재산권을 보장하였다. 기원전 500년경 등장한 로마는 상업적 거래와 재산권에 대해 매우 엄격하고 상세하며 정교한 법률을 적용하였다. 그러나 로마는 대외정복이 경제적 추동력이었으며, 군대 징집을 연장함으로써 빈농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부과하였으며, 황제가 자의적으로 법률을 제정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정치적, 시민적 권리가 재산권에 종속되어 있어 사회구조를 불안정하게 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재산권과 개인적 권리가 근대의 경제적 번영과 결합되어 나타나게 된 것은 1000여 년 전 잉글랜드에서였다. 1215년 존 왕이 대헌장에 서명한 것이 그것인데, 이로써 축적된 판례를 통해 성립된 보통법의 우위가 확립되었다. 즉 역사상 처음으로 왕이 법 위에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달리 말해 왕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자의적으로 빼앗을 수 없었다. 대헌장은 적법절차를 요구했다. 모든 실질적인 이유에서 마그나카르타는 개인들의 인격적 권리와 재산권의 폭발을 야기한 계기였고, 그 여파는 오늘날에도 전 지구적으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그 후 5백 년 동안 군주들은 지속적으로 재산권과 법치를 공격했으나 에드워드 코크와 존 로크와 같은 옹호자들에 의해 유지될 수 있었다.

재산권에는 지적 재산, 특히 특허권(발명)도 포함된다. 특허권의 경우, 과소 보호 할 경우 창조와 생산에 대한 동기를 약화시키는 반면, 과도한 보호는 경쟁을 방해하고 상업을 억압하는 역설적인 문제가 있다. 영국의 경우, 초기에는 국왕이 이윤의 일부를 거두는 대가로 궁정 내 총리들에게 독점권을 부여하곤 했는데, 특히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특허장을 남용했다. 특허 제도에서 왕의 개입이 비로소 배제된 것은 1852년이 되어서였다. 미국의 경우, 특허를 포함한 상업 활동에 대한 규제와 과세는 연방이 아닌 개별 州가 담당하는 분권적 시스템이었는데, 이러한 분권적 제도는 비효율적이어서 1790년에 연방이 담당하도록 하는 특허법이 제정되었다. 1836년에는 전문가들의 보좌를 받는 특허국장 제도를 만들어 더욱 엄격한 검사 절차를 제도화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곧 미국의 많은 유명 산업기업들의 탄생에 기여했다.

역사를 통틀어 재산권을 강조했던 사회는 그렇지 않은 이웃에 비해 경쟁적 우위를 지녔다. 재산권의 의미가 과거 몇 세기동안 극적으로 변했으나 공산주의가 붕괴한 지금 현대 세계의 번영의 원천으로 재산권과 개인적 권리가 첫 번째 조건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제3장. 과학적 합리주의의 등장과 확산

근대 서구를 정의하는 하나의 상수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 진보를 향한 거침없는 전진이다. 고대와 중세 서구와 중동에서 조직된 종교들은 연구와 이견을 금지하는 정태적인 신념체제로 경화되었다. 기술 혁신에 자극을 가할 과학이 혁명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과학이 철저히 분리될 필요가 있었다.

서기 2세기 클라우디오스 프롤레마이오스는 천동설을 설명하는 체계를 발견했다. 과학적 모델로서 프롤레마이오스의 것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문제는 그것이 만들어진 이래 1천 년 동안 교회가 그것을 채택하고 그것에 신성한 권위를 부여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것에 반하는 모델을 제안하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는 태양 중심적 이론을 내세워 당시의 교착 상태를 깨뜨리고 과학의 혁명을 격발시킨 인물은 코페르니쿠스였다. 그 이후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오 등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더욱 진전시켰고 관찰적, 이론적 측면에서 놀라운 과학적 진보를 이루어냈다. 또한 프란시스 베이컨은 서구의 기존 지적 틀에 내재된 결함을 탁월하게 진단하고 새로운 과학적 방법을 명확히 제시했다. 1세기 후 아이작 뉴턴과 에드먼드 핼리는 우주 비밀의 빗장을 벗김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연역적 체계를 완전히 극복했고, 이와 더불어 과학계에서 교회의 영향력도 시들해졌다. 이와 같이 17세기 동안 일어난 중요한 진보는 인간과 그 주변 환경 사이의 관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제4장. 자본 시장의 활성화

시장 자본주의에 있어 자본은 필수요소이다. 서구 사회의 번영은 발명을 경제적 실재로 전환시키기 위한 막대한 자본과 그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튼튼한 금융시스템에 의한 것이었다. 자본은 비용을 수반하며 그 비용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업이 수행될지, 부가 얼마나 빨리 증가할 지가 결정된다. 그 비용은 바로 이자율이다. 이자율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결정되며, 위험의 정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자본 거래를 위해서는 차입자와 대부자를 연결시켜줄 효율적인 시장도 필요하다.

근대 이전 세계에서 정보는 매우 비쌌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아 매우 높은 이자율의 부채를 통한 자금 조달 환경을 조성했고 경제 성장을 저해했다. 15세기 이후 자본은 북유럽으로 향했고, 앤트워프를 거쳐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금융 정보가 담긴 인쇄물이 정기적으로 발행되고 금융 서비스 기관들이 집중적으로 존재하는 등, 네덜란드의 금융에 있어 우위가 더욱 공고해졌다. 이러한 네덜란드도 1770년 이후 쇠퇴하는데 이는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았고, 잉글랜드의 성장이 네덜란드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경우, 1688년 명예혁명 이후 네덜란드의 빌렘 3세가 영국의 왕위를 잇자 네덜란드의 금융 엘리트들도 함께 잉글랜드로 건너오게 되었다. 이후 국채시장의 건전성이 확보되고 잉글랜드의 금융상황이 급속히 호전되었다. 합자회사 제도와 유한 책임 지위의 확대는 개인투자자들의 위험도를 더욱 낮추고 투자자들의 자본 제공 의사는 더욱 높여 경제 발전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19세기말 잉글랜드는 지구상에서 투자자본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 되었고 이러한 가용자본의 풍부함은 일련의 항구적인 기술적, 상업적 혁신의 흐름, 즉 경제성장 자체를 낳았다.

제5장. 수송과 통신의 발달

마지막으로 번영을 위해 남은 요소는 수송과 효율적인 통신, 제조를 위한 믿을만한 동력이었다. 인류가 자연의 변덕에서 독립하여 마음대로 동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1712년 증기를 이용한 뉴커먼 기관이 발명되면서부터이다. 증기 엔진은 이후 점차 개선되었는데 볼턴-와트 엔진의 발명으로 산업적 혁신을 가져오게 되었다.

수송에서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은 증기가 수송에 적용된 이후이다. 초기의 증기선은 빈번한 연료 보충이라는 문제가 있었으나 고압 선박 엔진과 스크루프로펠러가 완성되면서 실용화되었다. 증기 수송의 출현은 미국과 잉글랜드 사이의 가격과 임금 수준을 평준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지 스티븐슨은 강력한 엔진을 개발하여 철도 기관차를 실용화시켰는데 철도의 발달은 사람들의 시간과 여행에 대한 관념을 뒤바꿔 놓았다.

또한 1830년대 영국의 쿡과 미국의 모스에 의한 전신기의 발명은 미국-유럽(1858), 인도, 오스트레일리아(1870)로 이어지는 케이블의 부설로 이어지면서 전 세계적인 웹망을 구축하게 하였다.


제6장. 부의 창출을 위한 틀의 완성

19세기 초 이후 부의 확고한 성장을 격발시킨 것은 무엇인가? 이는 확고한 재산권 보호가 장인들을 혁신을 일으키도록 충동했고, 과학적 합리주의가 그 도구를 제공했으며, 자본 시장이 그 놀라운 발명품을 개발하고 생산할 자본을 제공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증기 엔진과 전신의 발명이 재화를 생산할 동력을 제공하고 생산된 재화를 수송하고 조정했던 것이다. 문제는 제도들이다. 그렇다면 경제 성장을 위한 네 가지 주요 요인들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 사실 각 요소는 다른 모든 요소를 지탱하며, 모든 것이 확고히 제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으면 어떤 것도 유지될 수 없다. 모두가 필수적인 것이다.

- 제2부.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 -

제7장. 가장 먼저 부를 창출한 국가 -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네덜란드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16세기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모든 종교를 허용하는 정책, 국토의 절반이 해수면 아래에 있다는 네덜란드의 독특한 지리적 요건, 곡물 가격의 상승과 운하의 발달은 네덜란드의 부를 늘려주었다. 1700년에 네덜란드는 영국보다 일인당 GDP가 거의 2배에 이르렀고 이자율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이러한 네덜란드가 쇠퇴한 이유는 작은 인구 규모, 독점적 상업 체계, 기술진보의 부재, 막대한 국가 부채, 강력한 중앙은행과 전국적인 특허제도 부재 때문이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의회에 법률의 우위를 보장되었다. 이로써 일반 영국 국민은 더 이상 왕의 채무 불이행과 강탈을 우려하지 않게 되었고, 자본시장을 믿기 시작했다. 또한 1650년 정점에 달했던 인클로저 운동은 농업 생산성의 증가와 유휴인력의 증가를 가져왔고 이는 산업혁명을 부추겼다. 노동 전문화와 기술개발로 인한 생산성 증대, 현금기반시스템을 기초로 한 소비의 전문화는 세계를 끊임없는 번영의 길로 들어서게 하였다. 산업 혁명은 그 대가를 수반했다. 아동 노동, 저임금의 극악한 노동 조건, 인간 소외가 그것이다. 산업 혁명에 대한 평가는 학자마다 엇갈리나 분명한 것은 산업 혁명으로 인해 영국은 맬서스적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잉글랜드는 총GDP와 일인당GDP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첫 번째 나라였는데 이는 잉글랜드가 부의 원인이 되는 네 가지 제도적 요인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 선진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은 갖가지 오랜 규제들과 독점적 전통, 거품방지법등의 제약을 지니고 있었고, 곧 미국에 의해 추월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8장. 두 번째로 부를 창출한 국가 - 프랑스, 스페인, 일본

프랑스에서 봉건제는 1589년 앙리 4세 재위 초기에 거의 소멸된 상태여서 재산제도는 소유권이 허락된 상태였다. 그러나 귀족과 성직자들에 대한 면세 제도, 그에 따른 심각한 지대 추구 행위, 궁정의 사치, 잘못된 중상주의와 온갖 규제는 경제적 악영향을 끼쳤다. 과학 진보에 있어서도 프랑스의 종교적 불관용성, 과학자와 기술자와의 단절, 온갖 경제규제들은 발명품을 개발하고 상업화하는데 있어 불리하게 작용했다. 또한 자본과 국내 투자의 단절, 종교적 불관용성으로 인한 프로테스탄트 자본의 추방은 자본시장을 빈약하게 만들었다. 프랑스는 효율적인 도로와 운하 시스템을 갖고 있었으나 과중한 통행세에 시달렸다. 앙시앙 레짐 전복 이후에는 국내 통행세의 일소, 혁명적 토지 청산으로 인한 소유권 확보로 빈사 상태의 프랑스 경제를 소생시킬 수 있었다.

스페인의 봉건적 역사와 신세계 재보의 풍부한 유입은 효과적인 경제적 인센티브의 중요성에 눈뜨지 못하게 했다. 또한 목양업자조합에 대한 목양 독점권, 방목권 부여는 농업을 황폐화시켰고, 17세기의 끝없는 전쟁은 스페인을 재정적 악순환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스페인의 학문적 전통은 펠리페 2세의 반종교개혁 테러로 무너졌는데, 계몽주의 철학자나 과학자는 종교재판의 희생양이 되었다. 지리적으로도 스페인은 불모의 방대한 산악지형으로 인해 쓸 수 있는 수로가 없다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었다. 결국 스페인의 경제 시스템은 손대는 것마다 망쳐놓았고, 이러한 낡은 제도를 라틴아메리카에 그대로 전해주었다. 스페인의 제도 개혁은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일본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제도들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근대를 맞이하였다. 159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를 창설하고 정치적 카오스 상태를 종식시켰으나 그 후 일본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되고 엄격한 봉건적 구조가 구축되었다. 도쿠가와는 일본에서 경제 번영을 위한 네 가지 요인을 체계적으로 질식시켰다. 엄격한 사회구조는 거의 모든 인구에게서 재산권 비슷한 것은 모두 박탈했고, 해외 접촉의 결여는 서구의 과학적 합리주의가 유입되는 것을 막았으며, 스스로 정한 금수조치는 유리한 섬 지형의 자연적 장점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1853년 미국 페리의 원정으로 막부는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결국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일어났다. 개혁은 철저히 봉건적 일본을 해체시켰고, 번영을 위한 네 가지 요인을 대대적으로 도입했다. 1870년과 1940년 사이에 일본은 일인당 실질GDP가 연 1.9퍼센트의 비율로 성장했다. 그러나 메이지 시기 동안 일본은 스페인과 같이 군사적 정복을 통해 번영을 추구한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파멸적인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다시 성장에 불을 붙였는데 이는 그 시기가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한 황금기였으며, 미국의 냉전 우산이 일본의 군비 지출을 거의 제로로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제9장. 뒤처진 국가들 - 이슬람 세계와 라틴 아메리카

이슬람 세계는 왜 뒤처졌는가? 15세기 오스만제국의 절정기에는 그 규모나 힘, 문화적 업적, 과학적 정교함은 당대에 견줄 나라가 없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오스만인들은 자신들의 군사 기술이 서구에 한참 뒤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무기와 자문관들을 한꺼번에 수입함으로써 상황을 개선하려고 했다. 그러나 충실한 법적, 지적, 재정적 기초 없이 단순히 서구식 공장만 건설하였기에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 그들은 종교적 보수주의로의 후퇴를 선택했다. 자유로운 지적 연구에 대한 금지는 경제적 번영에 필요한 과학적 합리주의 확립을 저해했다. 더욱이 술탄이 자의적으로 재산을 몰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본시장은 존재할 수 없었다. 오늘날 이슬람 세계는 아직도 서구식 권리 개념이 생소하다. 이슬람 세계가 경제적 함정에서 벗어나려면 가족과 종교에 기반을 둔 전통적 통치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 결국은 이슬람 세계에도 문화적 변혁이 나타나겠지만 그 과정은 고통으로 가득 찬 많은 세대를 거친 뒤일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성장을 촉진하는 네 요인 중 가장 문제되는 것은 재산권 제도이다.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 속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스페인으로부터 벗어났으나 민주적인 겉모습 뒤에는 합스부르크의 전제주의적이고 폭력적인 시스템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재산법은 부조리하기 짝이 없었고, 인민주의적인 정치적 설득 역시 경제환경에 유해한 영향을 미쳤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자본 시장의 제도적 인프라(신용, 대부 등등)들은 무시됐다. 다만 미약하나마 재산제도를 갖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는 이슬람 세계의 경우보다는 경제적 전망이 밝아 보이나 여전히 부패하고 폭력적이며 경제적으로 결함투성이인 식민지적 유산에 사로잡혀 있는 한, 번영은 요원하다.

이제까지 논의에서 풍부한 광물자원은 축복이 아니라 장기적 번영을 위한 제도를 부식시키는 저주이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지배 자체는 빈곤을 야기하지 않으나 그것이 어떤 형태를 취했는가에 따라 국가의 빈부가 결정된다. 결국 지구경제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제도인 것이다.

- 제3부. 번영의 결과와 부의 흐름 -

제10장. 국가의 번영과 개인의 행복

과거 몇 십 년 동안 1백여 개 이상의 나라들에 관한 다양한 데이터에 따르면 시민적 권한(S/SE 지수)은 민주주의를 강화시킨다. 시민적 권한은 경제적 부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민주주의가 강한 민주주의를 낳는 것은 아니라고 나타나고 있다(잉글하트/벨첼). 성장에 대한 민주주의의 관계는 뒤집힌 U자 형태, 즉 특정시점까지는 민주주의가 성장에 도움이 되나 그 이상 민주주의가 진전하면 성장이 타격을 받음을 알 수 있다.

일인당 GDP와 평균 복지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면 양자 간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으나 그 효과는 비교적 작음을 알 수 있다. 일인당 GDP가 1.5만 달러 이상인 국가들에서는 부와 행복 사이에 거의 아무런 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라 안에서는 부가 중요해서, 부와 복지는 로그함수의 비율로 증대한다. 결국 오늘날의 경제는 성장하고 있으나 빈부 격차는 커져가고 있으며 이러한 상대적 빈곤은 재분배 정책을 통해 개선할 수 있으나 그 과정에서 성장을 희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11장. 부를 둘러싼 거대한 상충관계

부와 소득 불평등이 충분히 커지면 일반 시민의 복지는 손상되며, 그럴 경우 재산권 집행비용이 치솟고,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역사적으로 상당한 부의 불평등은 적당히 불편한 세금 부담보다 훨씬 해로운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가장 안정되고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도 해당되었다. 오늘날 경제성장과 사회적 통합 사이의 상충관계 상에서 미국은 좀 더 부의 불평등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북유럽 국가들은 성장을 다소 희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제12장. 부와 세계 헤게모니의 장악

번영과 힘의 관계에 있어, 역사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나라가 일반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해왔음을 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의 승자는 오히려 전쟁 전보다 더 악화된다는 법칙이 성립되어 왔다. 미국의 경우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동안 금융기구가 전비를 조달하는데 효율적으로 작동했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 20세기동안 미국의 지정학적 힘이 상승한 것은 그 경제력과 기술적 역량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였다. 향후 미국의 세계주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 권력의 지위는 혁신적 에너지와 부를 일정 정도만이라도 군사에 할애할 의지가 있는 자유시장을 기반으로 한 모든 크고 성공적인 나라에 열려 있다.

제13장. 성장이 이대로 지속될 수 있을까

1970년대 로마클럽은 현대의 경제 성장에 대해 부정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이는 기술혁신을 무시한 것이었다. 성장을 가로막을 요인으로 인구학적 힘은 일시적으로 성장률을 둔화시키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고 군사적 재난의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이며, 테러 위협은 일상에서 직면한 위험들보다 더 위력적이지 않다. 성장에 있어 가장 큰 잠재적 위협은 공적 급부의 성장이다. 국가의 부가 증가하면 이는 즉각적으로 정부 서비스 수요의 증가로 소멸할 것이다. 그러나 미래에 관해 예측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

제14장. 언제, 어디서, 어디로

한 나라의 장기적인 번영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제도다. 네 가지 결정적인 제도들(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효율적 자본 시장, 현대적인 동력, 수송, 통신)의 현존과 각국의 경제적 도약 사이에 거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그 중 나머지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으나 재산권의 유무는 여전히 전 지구적으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나누는 기준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인류는 이러한 요인을 다시는 상실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세계의 광범위한 지역의 부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1.책을 읽고 :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네 개의 요소들이 다 있어야 번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매장마다 반복을 하기에 1부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읽을 만 했으나 2부 부터는 고문 수준 이였음.

2.토의 주제 :
번영이란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과연 4가지 요소(재산권, 과학적 합리주의, 효율적 자본 시장, 현대적인 동력, 수송, 통신)가 모두 갖추어 져야만 번영이 가능 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