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주제 : 인류문명의 속성
과목명_ 물질문화론 / 담당교수_ 채승진 / 제출일_20070212
김재희_ 0493071



문명은 물질적으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정신적으로도 발달하여 세상이 진보한 상태를 말한다. 문명이라는 말이 라틴어의 시민과 도시에서 유래했듯이 특히 도시의 문화를 가리키는 일이 많지만, 19세기 말기에 [문화]를 최초로 정의한 E.B. 타일러는 ‘문명’과 ‘문화’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문명의 정의는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서 나타난 결과인 모든 생활양식의 표현이며, 문명이란 이러한 보편적인 문화가 질적, 양적으로 발전하여 도시나 문자에 기반을 둔 인간문화의 발전단계로 이해된다. 따라서 도시, 국가와 문명은 상호 유기체적이고 보완적인 것으로, 이것들을 따로 떼어 내서 독립적으로 연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것이다.
고대문명은 몇몇 지역에서 시기를 달리하여 발생하였는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BC 3500~BC 3000년 무렵, 인더스강 유역에서 BC 2500년 무렵, 중국에서 BC 1500년 무렵에 저마다 문명이 형성되었다. 신대륙에서는 멕시코 계곡과 페루에서 기원 전후에 문명이 발생하였으며, 구대륙의 문명과 독립적으로 탄생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고대문명이 생겨난 이들 지역을 통하여 농경의 발전에 따르는 인구증가, 부의 축적, 직업의 분화, 도시의 형성, 수력통제, 토기제작과 직조 등이 보인다.

1. 인류의 기원과 문명의 발생
최초의 인류는 약 300만 년 전, 에 나타났으며 최초인류의 특징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직립보행을 했다는 것이며,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후에 베이징 인, 자바인 들은 약 50만 년 전, 도구를 제작했으며 가장 중요한 건 이때부터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생인류와 비슷하다는 네안데르탈인은 약20만 년 전 출현했으며 시체를 매장하는 방법을 썼다. 지금의 인류인 현생인류는 오늘날 인류의 직접 조상이며, 약3~4만 년 전 출현했으며, 이를 크로마뇽인이라 칭하며 동굴생활을 하였으며, 활과 낚시를 사용하였고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러한 인류의 특징인 직립보행, 언어의 사용, 도구의 사용, 불의 발견은 인류 문명의 결정적 4가지 요소이다.
직립보행은 인류가 생물학적으로나 문화 또는 문명의 발달측면에서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인류는 직립보행을 통하여 손이 자유로워짐으로써 생물학적으로 손의 근육이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미세한 움직임이 가능하도록 발전하였고, 비로소 도구의 조직적인 사용이 가능해졌다.
언어가 발생하는 데에는 직립보행에 의한 뇌 용량의 증가라든지 뇌신경계통의 발달이 그 전제조건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언어 사용의 효과로 이루어졌을 삶의 변화, 즉 조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함으로 수렵방식 자체가 체계화되었다. 인간이 언어를 얻게 되자 개인적인 경험을 전달 및 고정화하고 축적시켜 나가는 동안에 추상적인 개념이 발생하자 인간에게는 추상적인 사색도 가능하게 되었다. 인류의 문화라는 것이 가령 언어가 없었다고 가정할 때, 물질문화나 기술에서부터 사회 · 종교에 이르기까지 오늘날과 같은 발전이 이룩될 수 있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현생 영장류들이 돌을 주어 야자열매를 깨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도구사용에 의한 생활의 혁명은 다시 농기구와 토기 같은 도구의 다양화를 만들어냈으며, 생산 활동은 계획경제를 가능케 하고 그 결과 인간의 거처를 동굴에서 평지 움막으로 옮겨왔으며, 유랑생활로 바꾸어 나갔다. 이후 인류의 생존력은 더욱 증대되고 가족중심의 유랑생활이 씨족공동체로 집단화된 정착생활이 가능해지고, 동물의 집단생활과는 구분되는 인간사회가 태동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자연계의 다른 동들에 비하면 육체적으로 큰 강점을 가지지 못한 불완전한 동물이다. 하지만 불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용하게 되면서 그 단점을 보완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활동하던 신석기시대에 들어와서 충격이나 타격에 의해서 인류 자신이 직접 불을 일으킬 수 있는 발화기를 발명하였고, 특히 불로써 음식물을 요리하고 건조, 저장할 수 있게 되어 영양 섭취의 급격한 증대에 따라서 생활능력도 더욱 확대되었다. 또 점토를 불로 구워서 만든 토기가 발명되어 생활기술이 한층 더 진보되었으며, 마침내 아주 높은 온도의 화로에서 금속기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됨으로써 석기시대에서 금속기시대로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금속기시대가 되면서 불의 주용도인 난방, 조리, 조명의 기술이 분화하였으며, 불을 이용하여 토기나 금속기를 제작하는 전문적 직업인이 나타났고, 불의 산업적 이용이 시작되었다. 이는 불이 단순히 원시인류의 채온, 채광 도구의 차원을 넘어 에너지로서의 의미를 가지는 발전이었다. 그 후 증기기관에서 불의 열에너지를 기계에너지로 바뀌게 함으로써 산업혁명을 달성하였으며, 오늘날의 화력발전에 이르기까지 불은 근대 공업에 커다란 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산업혁명과 근대화는 인류사회에 그동안 몇 백, 몇 천만 년 동안의 인류사회의 진보와는 전혀 다른 너무도 혁신적인 사회적 분화와 계급과 이념을 만들어냈으며, 현재 정보화 사회로까지 이전되는 불의 역사를 만들고 있다.

2. 고대문명의 발상지
BC 4000~BC 3000년경 큰 강 유역에서 발달한 최초의 인류문명 발생지. 고대문명의 발상지로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문명, 인더스강 유역의 인도문명, 황하 유역의 중국문명,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있다.
4대 문명의 발생지들은 모두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큰 강을 끼고 있었다. 고대에 강은 교통수단이 되기도 했고 때때로 범람하여 유역의 평야를 비옥하게 하여 정착농업을 발달시켰으며, 음료수가 풍부하여 도시의 발달을 촉진하였다는 점에서 고대문명의 발달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또한 대부분이 온대 기후에 속해 기후가 좋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었다. 지금의 중동 지방은 주로 사막으로 덮혀 있지만, 당시의 기후나 토양은 오늘날과 매우 달랐다. 6, 7쳔년 전에는 중동 지방의 기후는 현재보다도 더 온화했고 강수량도 많았다. 또한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도 오늘날처럼 대부분의 지역이 사막이 아니라 푸르고 울창한 숲으로 덮혀 있었다.
이 4대강 유역에 도시가 형성하게 되자 사회적 규범 · 제도 · 기술 · 언어 등이 발달하여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문명이 형성되었다. 특히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고대 그리스 · 로마 문명에 커다란 영행을 끼쳐 ‘서구문명의 요람’이 되었다.
4대 문명 발상지에는 다섯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첫째, 큰 강 유역에서 발생하였고, 농사가 잘 되었다. 4대 문명이 발생한 지역은 기후가 따뜻하고, 큰 강을 끼고 있어 홍수 때면 상류로부터 기름진 흙이 내려오기 때문에 식량이 풍부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번째로, 전제 군주가 출현하였다. 큰 강을 끼고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의 수리 사업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 서로 간에 협동, 단결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은 대규모 수리 사업을 감독하고 이것을 이끌 만한 강력한 권력을 필요로 했다. 여기에 덧붙여 풍부하고 윤택한 경제생활을 배경으로 해서 풍성한 문화가 다른 지역에 비해서 매우 발달하였던 것이라고 평가한다.
세 번째로, 도시가 형성되었고 문명(문자 등)이 발생하였다. 신석기 시대 농업 혁명을 거치면서 인류의 생산력은 크게 증대하였다. 특히 관개 농업이 행해진 큰 강 유역은 토지가 비옥하여 생산이 늘어나 많은 인구가 한 곳에 모여 살 수 있었다. 그리하여 큰 촌락이 형성되었으며 청동기가 제작되고 바퀴, 쟁기, 돛단배 등이 발명되어 생산이 늘어나고 교통도 발달하였다. 이리하여 촌락들이 뭉쳐 도시가 형성되었는데, 각 도시는 주변에 성을 쌓고, 제각기 독립하여 국가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 국가에서는 각종 기록을 위하여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문명의 단계에 들어서게 되었다.
네 번째로, 법률이 제정되었다. 지배층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법률을 만들어 놓았으며, 저항할 경우 곧바로 군대를 파견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하였다.
다섯 번째로, 지배자의 권위를 과시하는 사업이 활발하였다. 궁전과 무덤의 크기는 국왕의 권위에 비례한다.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뚜렷하게 나뉜 사회에서 지배자들은 피지배층이 자신의 지배에 순순히 복종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값비싼 장신구로 휘감아서 위대해 보이도록 애를 썼다. 또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자신이 사는 집을 거대하고 웅장하게 만들고, 죽은 후에도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무덤에 들어감으로써 지위의 영속성을 보장받으려 하였다.

3. 문명과 도시
문명의 발전에 대하여 도시가 해낸 역할은 크다. V.G. 차일드는 도시가 문명의 기본적 요소였음을 역설하고, 신석기시대의 농경문화에서 문명으로의 추이를 [도시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리하여 도시는 문명을 나타낼 뿐 아니라, 문명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그러나 예를 들어 중앙아메리카 저지대에서 번영하였던 올멕문화(BC 800?~BC 300?)의 중심은 도시라기보다는 제사의 중심지였고, 올멕문화와 거의 같은 무렵에 형성된 남아메리카의 차빈문화에서도 도시의 발달은 미약했다.
따라서 문명과 ‘도시화’를 단순하게 동일시하는 것은 반드시 적절하다고 할 수 없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대도시 중에는 인구 1만에서 2만에 이르는 것도 있었지만, 후세의 이를테면 16세기 서유럽의 도시는 그만큼 대규모적이지 못하고 2000에서 2만 정도의 인구였다. 17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10만이 넘는 도시가 나타났다.
고대문명에서도 도시는 저장 · 관개 등에 의해 자연에 의한 재해를 많이 피할 수가 있었지만, 도시생활은 신체적 · 정신적 건강에 부적당한 요소를 안겨주기도 했다. 교역 · 채광 · 군사활동, 성벽과 도로, 수도와 하수도의 건설, 신전 등의 장대한 건축을 통하여 고대도시는 환경의 파괴 · 변형을 대규모로 진행시켰으며, 그 흐름의 방향은 현대도시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었다. 고대 로마의 하수도는 공중변소로 직결되어 테베강을 오염시켰다. 도시화가 진행되는 만큼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있었지만, 환경의 파괴 또한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문명의 발전, 도시화에 수반되는 심각한 딜레마였다.
이러한 문명화 · 도시화에 따르는 자연의 파괴는 19세기에 들어서자 이전에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심해졌다. 즉 과학과 기술의 진보에 따르는 기계화의 진전,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의 실현, 대공장 건설에 의한 환경 파괴가 한층 진척되었으며, 석탄사용 · 철강제조 · 화학공장은 대기와 하천을 오염시켰다.
이렇듯 문명 그 자체는 자연의 극복 과정에서 발달했으나, 그 문명의 발달은 결국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의 파괴 · 변형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순은 소규모적이나마 고대도시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었는데, 그것이 현대에서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4. 현대의 기술문명
현대문명이라면 무엇보다도 기술문명이 상기된다. 이 경우의 문명 개념에는 2가지가 합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독일계 문회사회학자, 특히 A.베버가 주장한 문화에 대한 문명개념으로, 문명이란 ‘무한히 진보해 간다고 여겨지고 있었던 기술적인 여러 수단의 총체’를 뜻하고 있다. 또 하나는 민족문화에 대한 세계문화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문화가 대개의 경우 민족 · 언어 · 전통과 연관되어 국경을 넘지 못하는 데 비해 문명은 민족 · 국가를 초월하여 보급되어 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듯 국경을 넘어 퍼져가는 것을 M. 모스는‘문명사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현대문명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기계 · 컴퓨터시스템이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그곳에 광범하고도 밀접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내어‘기술환경’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새로운 인간 환경을 이루어냄으로써, 과거의 문명과는 구별된다.
이 기술 환경은 공장과 기업의 과학적 관리법, 컨베이어시스템에 의한 대량생산, 매스미디어, 활발한 선전광고, 대량소비와 매스레저 등의‘문명사상’의 집합이며, 산업화된 여러 나라 사이에서 국경을 초월하여 보이는 현상일 뿐 아니라 동서체제의 차이도 넘어서 공통되고 있다. 게다가 기술문명은 보편주의적이어서 세계를 계속 일체화하고 있다.
기술문명은‘문명사상’을 집적해 감으로써 인류의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을 이미 만들어냈다. 그러나 H.L. 베르그송이래 많은 사상가들에 의해서 논란되고 있듯이, 현대문명은 인간의 신체만을 인공적으로 확장하여 영혼이 결여된 존재처럼 보인다. 문명의 개념은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에 의해 진보의 관념에 바탕한 계몽으로서 정신적 · 인간적인 자각을 포함한 것으로서 제기되었는데, 현대문명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 기술적 수단의 총계로서의 문명과 국경을 초월하는 ‘문명사상’에 더하여 이 측면도 고려해야만 될 것이다.

앞으로 인류가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진화되고 진보되어 있을지를 상상하는 것은 매우 흥미롭지만 예단할 수 없음은, 아직도 학문의 많은 부분에서 절대 진리라 믿었던 것들이 인간의 타고난 호기심으로 너무도 쉽게 무너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불, 언어, 도구의 사용과 같이 어쩌면 사소해 보이는 인류의 특징이 수 억년동안 존재하여 왔던 지구상의 어떠한 생명체보다도 인간을 우월한 존재로 군림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이는 지구와 생명체의 역사에 있어서 지극히 일부분일 뿐이라는 데서 앞으로도 우월한 생명체로 존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또한 공동체로서 수렵과 농경의 문명을 시작하면서부터 물질문명에 걸 맞는 사회적인 제도를 함께 발전시켜왔던 계급과 국가를 이루는 많은 제도와 주의가 변천하여왔고 이러한 문명, 문화의 축적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바뀌어갈지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러나 분명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인간은 매번 인간이 살아가기에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더 좋은 방법들을 찾아냈었다는 것이다.
현재에 와서 정신적인 가치로서 궁핍함과 폐해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역사적으로 어느 시기에나 선각자들에 의해 제기되었던 문제들과 궁극적인 면에서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인류의 역사는 정신적인 측면과는 별개로 생물학적인 삶 자체는 윤택한 방향으로 발전하여 왔던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결국 인간은 늘 그랬듯이 더 좋은 방법으로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믿고 싶다.




참고문헌 :
중학교 사회 교과서(1,2학년)
김용환. 〔인류진화의 오디세이〕 가람기획. 2003
브라이언 페이건. 〔인류의 선사시대〕 을주문화사

엠파스 백과사전
야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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