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 문화론_채승진교수님_20070226
김선영_0393027

해방 이후 남북의 분단과 6·25전쟁의 체험, 그리고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한국사회의 급격한 산업화와 국제화는 한국문화에 있어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그리고 고유의 것과 외래의 것을 뒤섞이게 했다. 스포츠 분야, 도시생활 분야,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외래어들이 우리의 일상용어 속에 자리잡게 되었다. 한국의 언어에도 내재되어 있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고유의 것과 외래의 것의 혼합, 그리고 언어생활 그 자체가 체험하고 있는 급격한 변동의 과정과 그 역동성은 오늘의 한국문화 전반을 규정하는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산업화·도시화·대중화·민주화·국제화로 가고 있는 현대 한국의 사회변동의 추세는 문화의 각 분야에 있어서도 문화적 가치의 변화, 그 전달수단의 확충과 전달대상의 확대, 나아가 문화적 창조행위에의 참여 내지는 참여욕구의 확산 등 폭넓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변화의 모습을 정치·경제·문화 분야에서 다음과 같이 개관해본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과거에는 군사정권의 '권위주의식 정치문화'에서 현재의 '대중중심의 정치문화'로 이행되었다. 과거에는 상명하복의 군사문화가 정치에도 반영되어 '안되면 되게 하라', '까라면 깐다' 등의 구호에 맞게 시키면 하는 것이 정치였다. 물론 이것은 개개인의 의견을 묵살하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을 막아버리는 부작용이 있지만 의견의 통일이 잘되고 의사결정이 빨라 큰 사업을 추진하는데 유리했다. 군사정권 시절 고도의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지만 자신외의 모든 사공이 나올 여지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과거의 권위주의식 정치문화였다. 이때는 일반인들도 대통령을 지칭할 때 반드시 군대에서 장군 이상을 지칭할 때 쓰는 호칭인 '각하'를 붙여야만 했다. 그러던 것이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점차 대중 중심의 정치문화로 이행되는데 이 때 부터 대통령에 대한 '각하' 칭호가 사라지고 대통령에 대해 비판을 가해도 괜찮은 세상이 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대중 중심의 정치문화는 부작용도 상당하여 현재는 '포퓰리즘 정치'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는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 그 일의 정당성보다는 국민 인기가 더 우선이 되는 것인데 과거 아테나가 이로 인해 멸망한 적도 있어 민주주의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사항이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우리 경제는 외부 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비판했다. 또 기술 발전과 함께 사회·제도적 변화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경제는 소강상태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실물경제는 처음부터 그다지 부실하지 않았는지 도 모른다. 경제위기를 부른 직접적인 원인은 한국은행의 외화준비고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간접적으로는 미국에서 너무 많은 돈을 빌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채무변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미국은 한국경제가 붕괴하자마자 IMF 구제 시스템을 가동했다. 그런데 당시 원조는 한국에 돈을 빌려준 미국 은행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한국이 IMF에서 지원받은 자금은 미국은행 대출금을 갚는데 쓰였다는 얘기다. 그때 만약 미국은행들이 한국 대출금을 떼였더라면 상당히 위험한 지경까지 갔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경제위기의 진상이다. 한국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장기간 방치하고 있다. 그것은 자국의 장기 산업정책을 진지하게 마련해보려는 지도자가 정계나 경제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매출 부풀리기에 혈안이고 정부는 당장의 무역흑자에만 눈 이 팔려 있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부품개발 과정을 빼먹고 반도체다 OA기기다 핸드폰이다 하면서 겉만 번지르 한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있다. 그러고는 `우리도 이만큼 할 수 있다'고 뻐기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는 백년하청(아무리 기다려도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 어렵다)이다. 몇 세대가 지나도 한국의 후손들은 환율조건만 바뀌면 국가 전체가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소동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중국이나 미국 등 외적인 상황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자국 내의 힘을 길러 혁신을 강조해야 한다. 혁신을 강조하면 많은 내부 저항이 따라올 수밖에 없지만 이런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근대화와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신문·방송과 같은 언론의 대중매체(매스 미디어)가 널리 보급되어 거의 모든 시민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게 되었음은 현대문화의 주요 특징의 하나이다. 우리는 이런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며, 이런 미디어에 의해 생활의 모든 것을 간섭받고 있다. 미디어의 발달은 과거에 비해 행동을 빠르게 만들었고 시간의 분배를 정확하게 하여 생활의 효율성을 높였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쉽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들의 소식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미디어의 과도한 다양성과 무분별한 발전은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기도 했는데, 짜여진 스케줄에 움직이는 현대인들은 정신적인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고, 오히려 인간 소외라는 특이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올바르지 않은 정보의 남용으로 사람들은 오히려 혼란을 느꼈고 잘못된 정보들이 마치 옳은 것인 마냥 판치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매스미디어를 믿지만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렸고, 우리는 정보 사회를 살고 있지만 과거의 깊고 신뢰 있는 지식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바뀌고, 컴퓨터가 책을 대신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올바른 문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성찰이 필요하고, 오늘날의 현대 문화는 자국의 발전과 더불어 상대 국가에 대한 강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것이며, 재성찰을 통한 올바른 문화는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사회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