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문화 비판 (이미지 문화와 쿨&핫 미디어의 인터넷)
물질문화론_채승진_20070225
김경수_0289228

현재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미디어를 포괄할 수 있는 미디어, 인터넷과 이미지문화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대중은 매스미디어들이 생산해내는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많은 정보의 홍수를 대중들은 매스미디어의 특성상 수동적이고 일방적으로 소화해내고 있으며, 그 소화를 해내고, 또한 그 미디어들을 생산해내는 주체들 - 방송국, 잡지사, 광고회사 등 - 은 일반 대중들이 자신들이 생산해내는 정보를 그 많은 정보 속에서 자신들이 대중들에게 어필하고자하는 정보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그 것들을 억지로라도 대중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소화시키도록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으로 미디어를 생산해내는 주체들은 자신들의 미디어를 그것의 소비자인 대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고, 인식하기 쉽도록 단순하고, 이상과 이미지사이를 모호하게 만들어 환상을 품게 만들고, 사실보다 왜곡되고, 자극적인 표현을 남발한다. 그리고 미디어는 대량생산의 성격상 대중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검열을 거쳐 예술성을 떨어뜨리고, 값싼 복제품의 난립을 조장하여 진실을 왜곡한다.
일반적인 매스미디어를 받아들이는 대중은 미디어에 대하여 낮은 참여도를 가져왔었다. 즉 대중들은 매스미디어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미디어가 대중들에게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하더라도, 대중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마샬 맥루한은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의 구분을 지어 대중의 참여도가 낮고, 그리고 단일 감각이 높은 정세도에 까지 확장된 것을 ‘핫 미디어’, 그 반대가 ‘쿨 미디어’라고 하였다. 미디어는 쿨 미디어에서 점점 핫 미디어로 발달되어져 왔다. 맥루한은 텔레비전의 등장을 인간 커뮤니케이션 역사에서 커다란 사건이라고 하였는데, 텔레비전을 핫 미디어가 아닌 참여도가 높은 쿨 미디어로 파악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연 텔레비전이 쿨미디어라고 할수 있을지 나는 매우 의심스러웠다. 텔레비전에 얼마나 대중들이 참여할수 있고,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수 있을까? 텔레비전은 단방향 통신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한계에 있다. 단방향 통신, 양방향 통신이라고 하더라도, 양방향으로 동시에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보를 표현을 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좁음에 따라 대중의 미디어에 대한 참여도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매체인 텔레비전을 쿨미디어라고 한 이유는 아마 시대적인 상황, 그리고 차갑고 뜨거운 것은 상대적이기에 그 시대에 살았던 맥루한은 텔레비전을 쿨미디어로 본 것이다.
맥루한의 핫미디어와, 쿨미디어의 분류법으로 볼 때, 가장 획기적인 미디어인 인터넷은 핫 미디어의 높은 정세도와 쿨미디어의 높은 참여도를 가지고 있다. 여때껏 있어왔던 미디어 중 인터넷은 엄청난 양의 정보를 검색하고 공유할 수 있고, 여러 종류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의 엄청난 자료는 단지 미디어의 집합일 뿐, 기존의 미디어의 성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상의 정보는 과연 믿을만한 것 인가? 오히려 가짜 사건이 만들어지고,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사에 대한 가십거리, 본래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진품의 독창성을 떨어뜨리는 가짜품 복제의 가속화, 진실의 현실속 세계가 아닌 가상의 인터넷공간으로부터 이상보다 이미지를 선호하고 이미지를 이상으로 착각하는 경향은 현실과 비교해 볼 수 있는 미래상과 야망보다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이미지, 곧 환상만 쫓게 하고 있다.
전문가가 아닌 대중의 참여도 비중이 높은 인터넷은 대중에 의해 거짓정보가 급격하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비 전문가인 대중이 아무런 가l책없이 거짓된 정보를 진실이라 생각하여 퍼뜨린 정보는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오히려 참여도가 낮은 미디어에서는 전문가의 의견이 주가 되어, 진실성 여부에 있어서는 인터넷보다 확실하지 않을까. 대중들에게 제공하기위한 정보의 검열, 그 검열이란 시스템은 대상의 독창성을 떨어뜨리고, 값싼 복제품으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검열로 인해 그것은 공적인, 진실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검열이라는 공적인 시스템이 사적인 시스템으로 변모하기 전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그 사적인 검열, 왜곡된 검열은 인터넷상에서가 더 심하다고 생각된다.
인터넷은 유명인사가 될 수 있는 영웅, 일반인을 제공한다. 영웅적인 행동을 한 사람, 그리고 어떠한 방면에서 존경받는 사람들은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보다 대중에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대중들에 노출된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명성을 얻게 되고, 대중의 흥미를 이끌어 내는 대상이 되어, 시장에 팔릴만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 되어 버린다. 인터넷의 사이버 공간은 대중을 이미지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인터넷 게시판, 온라인 게임과 같은 가상의 사이버 공간과 현실세계를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가상의 게임아이템이 현금으로 거래가 되고, 게시판 상의 악성 댓글들과 같은 사이버상의 마찰이 현실로 이어져 구타, 살인, 자살, 폭행으로 이어지는 사건도 발생하기도 한다.
인터넷은 미디어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라는 속성의 집합체이다. 사이버 공간, 이 공간은 이미지를 현실화 시키고, 현실을 이미지화 시키는 공간이다.
왜 이렇게 이미지에 얽메이게 된 것인가?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게된 순간부터 사람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감각을 확장 시켰다. 생각을 글로써, 그림으로써 이미지화 하였다. 생각은 인쇄와 그림에 가두어지기 시작했다. 미디어는 더욱 발달하고 양도 늘어났다. 수 많은 양의 정보의 홍수 속에 미디어는 효과적인 정보 전달을 위해 대중의 감각을 더욱 자극시켜야만 하였다. 대중은 글로써만 혹은 그림으로만, 소리만의 단일 감각으로는 그 작은 자극으로는 미디어를 이해하기 힘들어 졌다.
책보다는 영화를 보고, 그림을 보기보다 만화를 본다. 만화도 그냥 만화책으로는 기대에 차지 않는다 애니메이션으로 다시 제작되어진다. 음악도 뮤직비디오를 봐야 한다.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이뻐져야 하고, 연기자가 노래를 잘해야 한다. 상품을 팔기위해 비싼 광고모델을 영입해 제품 이미지를 높이는 경쟁을 한다. 이제 대중은 이미지가 없으면 재미없어 하는 차원을 벗어나, 바보가 되어 버린다.
날로 허황되어 가는 이미지 문화 속에서 우리는 본질을 추구해야한다. 이미지가 나쁜 것이 아니라, 그것의 본질을 알고 수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현실 감각, 판단력, 꿈을 잃고,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환상 속에서 사는 노예가 되어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