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 자딘 _ Lisa Jardine
상품의 역사 _ WORLDLY GOODS A New History of the Renaissance
영림 카디널 ; 2003년 8월 30일 초판 1쇄 발행
물질문화론 _ 채승진 _ 20070212
김선영 _ 0393027

런던에는 National Gallery(국립박물관)라는 명소가 있다. 북미에서 초대받은 건축가 로버트벤투리가 설계하고 슈퍼마켓 사업에서 거대한 부를 축적한 거상 세인즈베리 가문이 후원하여 세워진 이 국립미술관의 부속 건물인 세인즈베리관은 초기 르네상스 시대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리사 자딘은 세인즈베리관의 미술 작품들을 들여다보며 화려한 인류문명의 황금기 르네상스 시대를 그대로 재현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위대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탄생되었다. 위풍당당한 세인즈베리관 전시실 한쪽에 놓여있는 리스본 대성당의 재단화<수태고지>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답고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 뒤편에 지극히 세속적이면서도 훌륭한 상품들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번쩍거리는 놋 쟁반, 화려한 촛대, 마개가 있는 병, 경첩과 자물쇠가 딸린 장롱, 정교한 타일이 깔린 바닥, 화려한 책상과 긴 의자, 붉은 비단 걸개와 자수방석으로 치장된 캐노피 침대........
아직 종교적 신성, 혹은 형이상학이 그 자취를 다 감춘 것은 아니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사물의 사실적인 현상 방식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대상이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 충실하게 사물을 묘사한다. 화가들은 그 대상이 세계의 가상이 아니라 실재이며 그것에서 비롯되는 감각적인 경험이 인간의 존엄성을 고양시킨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오늘날 완벽한 묘사 기교 때문에 감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초기 르네상스의 미술작품들은 당시 활발하게 발전하던 세계적인 사치품 시장의 한 부분이었으며, 경쟁적으로 무엇인가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과, 부를 축적한 이들의 자기과시가 고가의 미술작품 생산을 촉진하는데 큰 동기가 되었다. 그 작품들은 미적 환희의 원천이면서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과, 그 작품의 소유가 구매자의 지위를 한층 높아 보이게 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전문 중개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거래의 도구가 되었다. 즉, 그 시대 화가에 대한 평판은 몇 가지 지적 가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이 상업적 이익을 낳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문명의 개화, 고전 학문의 부활과 널리 알려진 위대한 예술가와 사상가들의 출현,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에 대한 전통적 시각이다. 하지만 《상품의 역사》에서 리사 자딘은 유럽 문화의 황금기인 르네상스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을 시도한다. 세인즈베리관에 있는 그림들을 통해 볼 때 르네상스는 소유 욕구를 찬양하는 시대였다. 다른 문화권의 보물들을 소유하려는 욕심, 평범한 상품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내고자 하는 새로운 장인정신과 그에 대한 자부심이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시대였던 것이다.
한마디로 르네상스 시대엔 개인이나 가문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운 물품을 구입하려는 욕망이 넘쳤었다. 무자비한 경쟁, 강렬한 소비주의, 탐험과 발견, 그리고 혁신이라는 보다 넓은 지평에 대해 끊임없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야말로 오늘날과 같은 다문화주의와 소비주의가 싹트기 시작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리사 자딘은 서쪽의 기독교 세계에서 동쪽의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교역의 양상과 새롭게 싹튼 다문화주의, 소비주의를 조명한다. 명문가의 귀족들과 새로 부를 쌓은 상인들은 가문의 권력과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화가들에게 호화로운 그림을 주문했다. 그뿐만 아니라 귀족과 상인들은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픈 욕망이 시키는 대로 화가들에게 집안을 장식할 그림을 주문하고 이국적인 상품의 구매에 열을 올렸다.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에게 값비싼 상품은 인간의 위엄과 능력을 보여주는 물질적 현존이며 수호신이었던 것이다.
국제무역의 상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동안 국제무역은 활성화 되고 동서를 잇는 교역로는 확대된다. 그 교역로를 통해 오간 무수한 상품들은 풍요로운 물질생활의 향락에 빠져버린 르네상스 소비자들의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킨다. 이렇듯 교역로 확보에 대한 절심함과 동방 상품에 대한 욕구가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계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질적 욕망은 인간의 위엄에 대한 욕망과 겹쳐진 것이다. 위엄을 갖춘다는 것은 욕심나는 물건을 구매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된다는 것과 동일시됐다. 값비싼 물건을 사들이고 즐기는 동안 물질에 대한 감성과 기호는 나날이 고급화하는 반면 수입을 초과하는 명품의 구매로 사치스런 소유물이 쌓이는 만큼 빚도 늘어났다. 값비싼 물건을 사들이고 풍부한 물질생활을 누리려는 욕망에는 부자와 귀족들뿐만 아니라 교황이나 추기경도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외 없이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다. 프란체스코 곤차가 추기경의 소유품 목록은 아름다운 보석에서 필사본까지 휘황찬란했지만 그가 죽자 엄청난 빛이 드러났다. 결국 호화스런 소유물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채권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교황 바오로 2세도 마찬가지로 사후 엄청난 빚을 상환하기 위해 값진 보석과 예술품들을 모두 팔아야만 했다. 이때 곤차가 추기경이나 교황은 은행 및 채권자 들이게 자금을 조달 받았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의 상업주의와 금융사업의 발전을 가져다 주었다. 금융업자들은 자금을 대출해주는 대신 권력자들로부터 각종 상업상의 특혜를 받을 수 있었고, 시장의 상인들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어 상품들을 유통하여 상업주의가 활발하게 발전해 나갔다. 상업주의가 활성화되고 유럽 어디에서나 강력한 금융거상들이 출현할 수 있었던 데는 적절한 상품과, 시장에 투자할 수 있었던 상인과 은행가의 예리한 안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성공과 번영, 막강한 자신의 지위를 알리기 위해 예술품을 생산하도록 하였고, 이 값비싼 상품들은 권력과 부를 의미했다. 그 당시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는 성모와 성인들이 많이 출현한다. 이 그림 속의 성모와 성인들은 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한 사람과 같은 수준으로 사치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이것은 곧 진정한 거룩함은 우리들에게 부와 안락, 아름다운 물품을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듯 상품이 많이 성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당대 사람들의 심리를 잘 파악한 상인들과 금융업자들의 미래에 대한 빈틈없는 계산과 정확한 예언 때문이었다.

15세기에 성공하여 유명하게 된 대부업자들은 한 방향으로만 자신의 에너지를 집중하지 않았다. 문화적 혁신과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금융투자가 가장 활발하게 나타난 곳은 새로이 부상하는 인쇄본 영역이었다. 인쇄본은 1470년대 과시를 위한 부호들의 서적 컬렉션에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유자 이름이 넣어진 장정(화려하게 꾸민 책)은 필사본이든 인쇄본이든 일류 컬렉션으로는 손색이 없는 품목이었다.
인쇄본 영역의 투자 가치를 안 상인들에 의해 많은 인쇄소가 나타나게 되었고, 16세기 초 인쇄본은 빵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시장에서 사고 팔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인쇄가 시작 된지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인쇄본 발행 자체는 광채를 잃어 거의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다. 과시를 위해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인쇄본은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 정보 중에는 정치적으로는 파괴적이고 교리 상으로는 이단이거나, 또는 개인이나 당국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 있는 내용들도 있었다. 따라서 국가나 교회는 인쇄본과 그것이 담고 있는 정보의 유통을 감시하고 통제하려했지만 인쇄본의 원활한 생산과 유통을 효과적으로 막지는 못했다.
인쇄본은 지식의 전달과정을 혁신했고, 유럽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필사본은 오직 한 권뿐이었지만, 인쇄본은 처음으로 두 독자가 같은 페이지를 함께 읽으면서 토론할 수 있게 하였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다량의 부수를 발행한다는 것은 인쇄본을 통해 과거의 사본들과 방대한 양의 지식을 더 신속하고 광범위하고 정확하게 전파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엄처나게 싸진 인쇄본의 가격 또한 대규모의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손쉽게 읽을거리에 접근할 수 이게 해준 요인이었다.
결국 인쇄본은 출판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준 최초이자 최고의 상품이었다. 16세기에 있었던 책 생산의 폭발적인 증가는 상업적 목적에 의해 추진된 것이었으나, 결국에는 르네상스의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어떤 책을 인쇄할 것인가와 그 배포는 바로 인쇄업자와 그 후원자가 산정한 시장수요에 의해 결정되었다.

졸부가 아닌 자신이 진정한 귀족으로 인식되길 원한 사람들은 마치 다른 예술품들을 수집하듯 고급사본들도 모아들였다. 그것은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해서 감정가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림과 예술품들을 구입할 때와 마찬가지로 도서관 건립계획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체계적으로 시작되었다. 커다란 도서관들은 두 가지 차원에서 운영되었다. 첫째, 건립자의 지위를 상징하거나 예술 수집품의 과시적인 전시. 둘째, 진정한 문헌은행이자 재발견된 고대문헌 원고나 원본이 체계적으로 소장된 장소, 즉 고전학문의 부흥과 새로운 학문적 전통을 세우기 위한 원천이었다. 수집가들은 자신의 도서관 진열대에 전시하기 위해서 희귀한, 가능하다면 유일한 저작들을 구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경쟁하였다. 페데리고와 코시모 같은 수집가들이 진귀한 책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엄청난 가격을 지불했기 때문에 희귀본 시장이 활기를 띠었고, 따라서 희귀본들이 계속해서 발굴되었다.
인쇄업에선 교과서와 교재를 돈벌이가 되는 상품으로 간주하였다.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교양교육을 통한 자기개발이야말로 취직과 출세의 지름길로 보고 있었다. 지식의 신속한 확산이라는 교육적 이념에 의해 교과서 시장 역시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고, 그에 따라 인쇄업자와 저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 분야의 사업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렇듯 책(인쇄본)은 출연한지 반세기도 채 안되어 학자와 전문가들의 통제를 넘어선 상업제품이 되어버렸고, 학자들과 교육자들이 그 힘과 영향력에 적응할 시간도 갖기 전에 전 유럽에서 문자문화의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통째로 접수하고 말았다.

각 나라의 군주들은 자신들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전문지식을 갖춘 학자나 비서를 고용했다. 귀족들은 여러 행사에 사용되는 축사를 짓거나 중요한 축일(경사스러운 날)에 사용될 적당한 고전을 찾아내기 위해 고전예술과 문헌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춤과 더불어 비서직과 필생 기술도 함께 갖춘 사람을 고용해야했다.
또한 고용인들은 자신을 고용한 후원자가 원하는 대로 봉사해야 했다.
최고급 외교관들은 상당기간 동안 해외에 파견되어 ‘주재대사’가 되기도 했다. 16세기 초 모든 열강들은 상대방 국가의 궁전에 주재대사를 파견하였고, 많은 명문가들도 자신의 대리인들을 이웃국가나 동맹국의 궁정에 주재(직무상 파견되어 그곳에 머물러 있는 것)시켰다.
16세기 후반에 들어서서 명문귀족들은 자녀들을 교육시키기 시작했고 인문학자들로부터 배운 학생들의 문학과 예술 취향은 전반적으로 장식적이면서도 동시에 기본적인 것이었으며, 그것을 통해 자연스레 그들 생활의 품격도 높아지게 되었다.(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과거의 무지했던 귀족들에 비해 기본적으로 좋은 문학과 예술을 볼 안목이 생겼다는 말인 것 같다)
이렇듯 인쇄본의 발달로 이에 관련된 전문 지식인이 생겨났고, 지식을 사고 팔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다. 또한 이러한 전문가들은 교육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품격도 조금 높일 수 있었다.
각 나라는 혁신과 발견을 위해 치열하게 대립했고, 결국 그 시대의 모든 상품은 자신의 지위와 명성, 과시를 위해 이용되었다.(또는 나라의 자존심 싸움이 되기도 했음)

런던 국립미술관에는 한스 홀바인이 그린 <대사들>이라는 거의 실물 크기의 그림이 걸려있다. 그것은 1533년 봄에 이 독일인 화가가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의 런던 주재 대사 장 드 댕트뷰를 그린 것이다. 홀바인의 그림은 프랑스 외교관들이 후대에 기억되길 바라는 소망을 잘 표현한 동시에, 우리가 20세기 말에도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당시 여러 호화 상품들에 대해 찬양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림에 나타나는 아주 값비싼 물품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동시에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거장들의 작품이다. 이 그림에서 위엄과 권력은 값비싼 물건들과 호화로운 복장, 그리고 세상일에는 무심한 듯하며 자기중심적인 인물의 표정과 자세에서 표현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엔 개인이나 가문의 성공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 진귀하고 아름다운 물품을 구입하려는 욕망이 넘쳤었다. 무자비한 경쟁, 강렬한 소비주의, 탐험과 발견, 그리고 혁신이라는 보다 넓은 지편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 즉, 비열한 민족주의나 종교적 편협함에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고 또한 그러한 것들에 대한 숭배도 거부하는 오늘날의 세계는 바로 르네상스 시대의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는 세계인 것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다 들어 있고, 그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1) 르네상스는 "무자비한 경쟁, 강렬한 소비주의, 탐험과 발견, 그리고 혁신이라는 보다 넓은 지평에 대해 끊임없는 욕망을 표출하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의 원형으로서 파악될 수 있다.

2) 따라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 인쇄본, 학문과 지식 등의 문화는 '상품'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당대의 사람들 역시 이러한 개념을 통해 상품과 인간관계를 엮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상품과 르네상스시대의 상품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가장 큰 공통점은 ‘사고파는 물품’이라는 상품의 개념이다. 르네상스시대나 현대나 모든 상품은 화폐와 교환하여 구입할 수 있었다. 소비자들은 높은 값을 들여서라도 욕망을 해결한다.

차이점은 가장 일반적으로 그 수와 양에 있을 것 이다. 르네상스의 상품들도 그 시대에 비하면 철철 넘치는 양이었겠지만 오늘날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은 수이다.
르네상스시대의 상품은 모두 부와 권력의 과시로만 이용되었지만 오늘날의 상품은 과시라는 상징적 의미 뿐 아니라 사용, 필요 등에 의한 기술적, 미적의 기능이 추가되었다. 르네상스의 권력자들은 인쇄본 컬렉션을 열면서 부를 과시했다. 이 때 인쇄본들은 장정(예쁘게 꾸밈)하길 좋아했다. 이처럼 그 당시 사람들은 상품 자체를 꾸며 그 것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상품이 예쁘지 않아도 사용성에 비중을 두어 사는 경우도 있고, 시장 바닥에서 값싼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 값싼 물건들은 사용자의 권력과 명예를 높여주지는 않는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층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