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탄생(Birth of a Salesman), 월터 A. 프리드만(Walter A. Friedman), 말글빛냄
물질문화론_채승진_20070215
백소정_0493025

1장 자영 행상인이 전국을 순회하다
독립혁명 후 몇 년 동안, 미국인들은 점점 더 새로운 비즈니스 분야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해외무역의 범위도 확대되면서 멀리로는 중국까지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점차 운송과 통신수단도 발전해 나갔다. 제조품, 수입품, 서적을 파는 행상인들은 초창기 미국의 시장 혁명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이들은 농촌 지역, 연안지방의 산골 오지, 도시를 한데 묶는 네트워크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시장 문화라는 것까지 소개했다. 미국 역사의 초기에는 다양한 행상인과 보따리상들이 있었고 이들의 업적은 현대 세일즈맨의 정신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행상인들에게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초창기 미국은 운하와 철도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지만 교통 및 통신수단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행상인들의 또 다른 문제는 주 정부와 군 단위의 행정 조직에서 장사에 부과하는 세금이었다. 행상인들의 생활이 불안정하고 끊임없이 흥정해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 직업을 깎아 내리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2장 마크 트웨인, 『그랜트 회고록』을 팔다
남북전쟁 이후에는 더욱 전문화된 외판원들이 물건을 팔러 다녔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고용주들은 세일즈맨들을 위하여 세일즈 각본을 제공했다. 이 세일즈 각본은 외판원의 판매기술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었다. 이 각본을 통해 세일즈맨들이 지닌 판매의 심리학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은 19세기에 있었던 가장 성공적인 대규모 판매 캠페인을 펼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마크 트웨인은 창작 활동을 하던 초기 30년 동안은 예약 판매 방식을 통해서만 자신의 저서를 팔았다.
한편 웰든의 『탁발승의 20년』은 자신이 피뢰침 외판원, 서적 외판원, 방물장수로 일했던 시절을 자찬하는 책이었다. 그가 기술하고 있는 탁발승은 상품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아도 언제든지 물건에 대해 좋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일컬었다. 이것은 1910년대에서 1920년대에 고조된 판매에 대한 관심이 물건을 파는 방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끊임없는 획득과 시샘의 사이클 안에서 이웃과 이웃들끼리 계속해서 경쟁시키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3장 출장 판매원, 전국 시장을 개척하다
외판원과 서적 외판원들이 농부들에게 여러 가지 세일즈 기법을 실험하고 있을 때, 또 다른 부류의 세일즈맨들이 전국을 횡단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형 도매상에 고용된 사람들로 수당을 받으면서 독립적으로 일했다. 이들은 일회성 매매 거래의 심리학적 측면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고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이들도 잡화 외판원들처럼 현대의 세일즈맨십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일즈맨십이란 출장 판매원들에게는 여전히 상품과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기술이었다.
19세기 중반의 도매상들과 이들이 고용한 방문 판매원들은 여러 가지 상품을 하나로 묶어서 유통하는 것이 전문이었다. 출장 판매원이 고객을 방문하는 횟수는 판매원이 취급한 상품의 종류에 따라 달랐다.
방문 판매원을 위해 쓰인 안내서는 여행을 순조롭게 하고 유통 일정을 짜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는 출장 판매원들의 판매 기술에 관한 책들도 다수 출간되었다.
1879년 미국 경제에서 제조품의 약 70%가 도매상을 통해 유통되었다. 그러나 그 후 몇 년이 지나면서 제조업체들이 소매상이나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팔면서 이 수치는 떨어진다. 판매원들이 사라지게 된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19세기 말, 통신판매 회사들이 도매상이 차지하던 위상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것이다. 백화점도 제조업자들에게서 물건을 직접 구매하며 출장 판매원의 실적을 깎아먹었다. 그러나 방문 판매 직종이 쇠퇴하게 된 더욱 직접적인 원인은 제조업체들이 도매상에 의존하게 된 것보다는 상품을 직접 유통한 것과 관계가 있다. 19세기가 끝날 무렵, 대량 생산과 브랜드 상품에 대한 마케팅이 더욱 활성화됨에 따라 방문 판매원과 이들 고용주들의 비중도 크게 줄어든 것이다.

4장 하인즈 사, ‘57종류’를 표어로 정하다
19세기 말, 철저하게 관리된 더욱 새롭고 더욱 공격적인 형태의 세일즈 기법이 부상하게 되었다. 대량으로 상품을 생산하게 된 제조기업들은 자사의 정예 세일즈맨들을 채용하기 시작했고 최초의 현대적 영업망을 구축했다.(여기서 ‘현대’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들이 세일즈맨을 활용한 방식이 향후 수십 년 동안 다른 기업들의 표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마지막 수십 년은 미국의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시기였다. 제품을 상표가 없는 채로 내놓지 않고 브랜드를 달아서 팔았다. 제조기업들은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덕분에 도매상들이 취급하던 수많은 상표 없는 제품과 자사 제품들을 차별화 할 수 있었다. 대규모 제조기업들은 자사 제품뿐만 아니라, 자사의 세일즈맨들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브랜드화’했다. 회사명이나 브랜드는 세일즈맨이 아닌 회사를 대표했기 때문에 세일즈맨의 정체성 확립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당대의 주도적 기업가였던 헨리 존 하인즈는 영업 인력과 마케팅 캠페인을 펼쳐서 자신이 꾸려나가던 작은 야채 행상업을 국제적인 기업으로 키워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제조기업의 기업가들은 광고 게시판, 브랜드 홍보, 사은품과 같은 다양한 판촉용 유인 장치를 활용하게 된다. 대규모로 진행된 몇몇 선전 활동은 전국으로 배포되는 잡지에 광고를 실어서 판매원들의 영업 활동과 함께 동시에 진행되었다.
대기업에서 판매부서가 만들어짐으로써 판매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지만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하기도 했다. 판매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현대의 판매 관리는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5장 존 패터슨, 피라미드 판매 계획을 세우다
대규모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판매원들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 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은 존 패터슨이 판매원들에게 독자적인 관리 정책을 전개하면서부터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패터슨은 글로벌 관리 체계를 만들어 판매원들에게 새로운 고객을 찾고 경쟁자들을 제압하라고 압박을 가했다. 패터슨도 대규모 제조업체의 다른 경영자들처럼 생산과 분배를 조절하는 판매관리 체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패터슨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판매의 과학을 확립하려고 했고, 그 결과 현대적 판매 관리의 등장에 큰 기여를 했다. 1890년대 초에 패터슨은 현대정신과 사이비 과학의 상징이던 피라미드에 심취하게 되는데, 그가 그린 회사의 조직표는 피라미드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패터슨은 거의 모든 전략이나 교육 차트를 피라미드 형상 안에 밀접하게 적용했다.
20세기 초의 판매술 분석가들도 패터슨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NCR과 버로우즈 사에서 일했던 엘모 루이스) 패터슨과 루이스의 노력은 판매술에 과학적 자세와 전문가적 식견을 부여한 것으로 20세기 초의 커다란 변화의 일부였다. 판매술에 관한 분석이 더욱 활발해지자 마침내 판매는 더 이상 한 회사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강력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6장 판매를 넘은 ‘판매학’이 시작되다
판매의 경제적 역할이 더욱 커지면서 회계나 금융과 같은 다른 사업에 이미 정착된 전문가 협회나 무역 저널, 학술 서적, 경영대학원 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비즈니스 서적의 저자들과 출판업자들, 경제학자들, 심리학자들도 세기가 바뀌면서 판매에 대한 새로운 분석들을 내놓았다. 이런 전문가들은 서적 외판원, 도매상, 대규모 제조업자들의 뒤를 이어 판매에 대한 신봉자로서 제2의 물결로 등장했다.
새로운 전문가들은 낮은 효율성과 높은 이직률, 대중의 의구심이라는 문제에 대처할 수 있도록 기업가와 판매 관리자들을 돕기로 했다. 이들은 ‘과학적 관리법’의 창시자인 프레데릭 테일러가 개척한 성과의 도움을 받았다. 그로 인하여 통제권은 노동자에서 관리자와 효율적인 비즈니스 과정으로 옮겨갔다. 또한 20세기 초 일부 사업가들과 저술가들은 테일러의 사상을 유통에 적용했다. 하지만 20세기 초의 판매 전문가들이 체계의 구축과 효율성의 향상이라는 테일러의 목표를 따랐던 반면,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판매를 과학으로 전환하는 방법에 있어서 자신들만의 아이디어를 실행해 나갔다. 이로 인해 판매가 더욱 체계적이고 심지어 더 과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상이 확산되었다.
심리학자들은 20세기 초에 판매와 광고 분야에 많은 기여를 했다. 경영대학원의 교수들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자들도 연구 조사에서 질문들을 결정할 때 관리자의 관점을 택했다. 즉 효율성의 향상이 그들의 전반적인 목표였다. 또한 판매의 지위를 격상시키고 판매술의 효율과 윤리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생각들을 장려했다.

7장 월터 딜 스캇, 소비자를 분석하다
손더스 노벨, 아사 캔들러, 존 패터슨과 같이 현대 세일즈맨십을 신봉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월터 딜 스캇도 현대 세일즈맨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연구는 사업가들에게 심리학을 받아들이도록 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경제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유통과 소비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개성이나 동기 부여, 능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스캇은 판매가 더욱 효과적이고 호소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인간 정신의 작용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활용했다. 또한 기업이 가장 유능한 판매원들을 채용하고 긍정적인 정신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만들어냈다. 그는 산업 심리학이 발달하던 당시에 이루어진 다수의 논쟁에도 참여했다.
판매술은 소비자들에게 구매를 위한 동기를 자극하고, 구매에 대한 망설임을 극복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소비자들이 단지 조금 논리적일 뿐이며 대부분은 몹시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8장 주 고객은 ‘그녀들’이다
1920년대가 되자 미국 기업들은 판매술을 현대적 전략의 필수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21년에서 1922년 사이의 경기 침제 이후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호황을 맞았다. 1920년대의 가정에서는 다양한 제품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판매원들이 판매했다. 소비재의 판매에 있어서 두 종류의 판매원이 특히 눈에 띄었다. 바로 자동차 딜러와 가정용품과 가전제품을 파는 방문 판매원이었다. 방문 판매원들은 대량 생산된 가전제품과 소형 소비재들을 교외에 사는 주부들에게 제공했다. 판매원의 전략은 비슷했다. 판매원들은 남성과 여성 고객에 따라 다른 설득방식을 고안해 냈다. 1920년대에 방문 판매의 증가는 주부들에게 새로운 노동 절약 장치들을 제공해 주는 과학적 가사 운동을 활성화시켰다.
자동차 회사들은 방문 판매 기업들보다 훨씬 규모가 컸으며 수요를 창출하고, 정보를 다시 관리자들에게 넘겨주고, 경쟁을 이겨내고, 고객들에게 내구재를 사도록 신뢰를 주기 위해 판매원들을 이용했다.
방문 판매 기업들과 기타 기업들뿐 아니라 자동차 회사들도 판매술에 대한 기대가 높던 1920년대에 크게 발전했다.

9장 세일즈맨십을 팔아라
미국 비즈니스의 규모와 범위는 기반을 잡았지만 1929년 10월의 주가 대폭락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소비는 대공황 당시 처음 4년 동안 20%가 감소한 반면, 투자는 거의 90% 감소했다.
데일 카네기의 『친구를 얻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방법』(1937) 또한 판매술에 대한 보수적인 신념을 표현했다. 그 책은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해 판매 기술을 습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카네기의 책은 상품 가치만큼이나 자기 가치가 시장에 의해 결정되고 고객, 판매원, 관리자 등 개인들은 끊임없는 변화와 계산된 전략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에드먼드 윌슨이 ‘미국 대지진’이라 불렀던 대공황 기간 동안 판매원들의 이미지, 더 일반적으로는 사업가들의 이미지가 추락하자 많은 대규모 제조업체들은 그들의 홍보 방식을 개선하기 시작했다. 홍보는 대공황 기간 동안 더욱 더 정교해졌다.
광고와 판매에 관한 지식인들의 비난은 대공황기의 후반과 제2차 대전 이후 10년 동안 절정에 달했다. 이런 특성에 대한 비난은 특히 아서 밀러의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1949)과 맥락을 같이 한다. 밀러의 이 희곡은 판매술의 원리에 기초한 자본주의의 잔혹함을 보여주었는데 인간은 효용성이 없어지자마자 대체되는 상품처럼 취급받는다는 것을 강조했다.

10장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의 주인공 윌리 로만을 넘어서
사람들은 20세기가 되면서 판매원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광고 산업이 20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였고 모든 상품의 판매 방식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광고가 20세기에 걸쳐 양적으로 증가하고 더욱 세련되었다 할지라도 판매원을 대체하지는 못했다. 판매와 광고는 다르다. 세일즈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국가 경제에서 고유의 기능을 담당했다.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말에 더욱 뚜렷해졌고 21세기 초까지 이어진다.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면과 방문, 설득 등의 정보 교환은 애덤 스미스가 1776년에 ‘거래와 물물교환’에 대해 인간이 강한 선호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던 그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도 생생히 이어져오고 있다.
오늘날의 ‘판매기술’은 일, 자본, 자기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모든 시대에 걸쳐 모든 나라에는 사람을 이끌고 설득하는 능력을 소유한 카리스마적인 인물들이 있었다. 판매원이 그런 인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대기업이 증가하면서 그에 버금가는 인력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 결과 경제적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판매원들은 산업화, 혁신, 변화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들이 하는 약속, 질문, 고객의 거절을 다루는 기법, 방문 등 판매는 악덕이면서 미덕이었고, 전 세계 곳곳에 자본주의의 이념을 펼쳤다.


토의 : 역사학자들은 세일즈를 여성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현대 세일즈는 남성들이 향유하게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