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윌슨_Edward O. Wilson
인간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주)사이언스북스 2000년12월 15일 1판 1쇄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20070222
최은경_0493040


이 책에서 윌슨은, 종교와 윤리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은 결국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하며 집단생물학과 진화학적 방법론으로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 전개되어 있는 윌슨의 논리는 그가 영국의 소설가 버틀러의 말을 새롭게 표현한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개체에 불과하다>는 한마디로 축약할 수 있다.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생명을 바라보는 이 새로운 관점에 따르면, 사랑, 윤리, 자기희생, 종교 등 인간만이 갖고 있을 법한 특성들조차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번식을 도와 왔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우리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번식을 돕는 성향을 조절하는 유전자는 그만큼 더 많은 복제자를 후세에 남겼을 것이고 또 그래서 그 성향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 많이 발현된다는 것이다.


<1장> 인간 본성의 딜레마
윌슨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궁극적인 본성은 무엇일까?'에 대해 결코 간단치 않는 답들을 내어놓는다. 그는 인간 본성의 두 가지 딜레마를 제시하면서 이들 딜레마로부터의 해결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첫번째 딜레마는 인간은 포함한 그 어떤 종도 자신의 유전적 역사가 부과한 의무를 초월하는 다른 어떠한 목적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두번째 딜레마는 우리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에 내재한 윤리적 전제들을 놓고〈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장> 유전적 진화
사회생물학의 기원, 필요성, 그리고 정의를 설명하고 있다. 사회과학이란 동물행동학, 생태학, 유전학 등을 총괄하는 종합적인 학문으로서, 비교 연구를 토대로 사회 전체의 생물학적 특성에 관한 일반원리를 도출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 사회생물학에 따르면 개인은 자신의 환경, 특히 문화적 환경과 사회적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에 있어서의 주된 도구는 물론 '유전적 진화'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수많은 생물학적 다양성들이 사례로서 제시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모든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원리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사회생물학의 주요 연구 대상이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해서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원숭이가 이럭저럭 문화적 진화의 임계점을 건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영역 속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인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의 유전적 진화가 대부분 문명이 발생하기 이전인 500만 년 전에 일어났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그 뒤 약 만 년 전, 농경과 도시가 출현한 뒤에는 훨씬 더 대규모의 문화적 진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인간이 역사적으로 질주하는 동안에도 일부 유전적 진화가 계속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본성 형질 중 미미한 부분만을 형성하는 데 그쳤다.


<3장> 준비된 학습
인간 행동이 유전자에 어느 정도 구속되어 있으며, 우리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는 유전자 결정론에 의해 알 수 있다. 우리는 행동함에 있어서 어떤 형질의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 중 어느 쪽인가를 배울 편향성을 물려받았다. 인간의 경우 초기에는 유전자에 의해 가능성에 있어서 많은 제약을 받지만 성장하고 사회화됨에 따라 학습과 문화의 양이 증가하여 사회적 압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인간의 정신은 경험을 통해 선과 점으로 뒤엉킨 그림들이 그려지는 백지가 아니다. 그것은 여러 대안 중에 어떤 특정한 대안에 먼저 다가가서 본능적으로 특정한 하나를 선택하고, 유아에서 어른으로 자동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화하도록 정해진 신축적인 계획표에 따라 육체한테 어떤 행동을 하라고 촉구하는, 주변 환경을 빈틈없이 경계하는 탐색자, 즉 자치적 의사 결정 기구로 기술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오랫동안 해온 선택의 축적, 그것들의 기억, 앞으로 해야 할 선택에 대한 심사숙고, 각인된 감정들의 재경험, 이 모든 것이 정신을 구성한다.

<4장> 문화적 진화
인간은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된다. 여기서 우리의 자유의지는 주어진 가능성의 항들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유전적 속박이 있고 인간이 살아나갈 수 있는 환경의 수가 유한하기 때문에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 결과들, 즉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행동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지 여부를 알 수 없다.
인간의 사회적 진화는 문화적 진화와 생물학적 진화 양자의 상호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문화적 진화는 획득형질이 유전되는 라마르크 진화를 따르며 매우 빠른 반면 생물학적 진화는 다윈적이고 대체로 느리다. 이 두 진화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멀리까지 나아갈 수 없다. 문화적 진화로 창조된 사회 환경이 결국에는 생물학적 자연선택의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유전적 진화의 한계 속에서 문화적 진화가 이루어지며, 이 문화적 진화의 길을 유전적 진화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그 사이의 한계 속에서 유한한 사회 행동의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된다.

<5장> 공격성
인간의 공격성은 타고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종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공격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종마다 특이성을 띤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같은 종의 구성원 사이에 일어나는 공격 행동들은 대부분의 환경의 과밀화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밀도 의존적 요인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자원이 풍족하다면 유연성이 발현될 것이고 부족하다면 공격성이 발현될 것이다. 하지만 이 유연성의 범위 자체, 즉 인간의 텃세 행동의 발현 정도와 방식은 유전자에 의해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공격성이 더 폭력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욕구-배설 모델보다는 폭력적 문화가 공격성의 과격화를 낳는다는 문화-패턴 모델이 더 타당한 설명이다. 이 때 공격성의 문화적 진화는 유전적 성향, 환경이 부과하는 필연성, 집단의 역사에 의해 이끌려 발전한다.
즉 공격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성향, 현재 환경의 요구 사항, 문화적 표류에 기여하는 세부 사항들을 고찰해야 하는 것이다.

<6장> 성(性)
인간 성행위의 기초적 목적은 번식도 쾌락도 아니며, 다양성을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성행위 자체는 어떤 의미에서는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위험한 활동이지만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한 다양성을 위해 만들어졌다. 성에 있어서 주류를 이루는 것은 양성 체제인데 이는 가장 효율적인 분업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유전자에 의한 수컷과 암컷의 생리적 차이점 때문에 남성과 여성의 성격과 역할에 있어서의 구분이 생겨났다.
하지만 성적 결합과 가족의 기능은 기존 목적으로 설명해낼 수 없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협력 행동을 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 분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따라서 분업과 결속을 유지하기 위해 남녀의 사랑과 가족생활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 되어있다.
성적 활동의 강도와 다양성 면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독특하다. 생식기의 발달과 여성에게 발정기가 없다는 것은 성적 행위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그 형질이 서로간의 결속을 촉진시키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성행위는 번식과 다양성이라는 기능도 있지만,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은 서로간의 결속 유지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동성애는 자연스러운 유전적 행위일 뿐이다.

<7장> 이타주의
이타주의는 결과적으로 자신 혹은 자신의 집단에게 이익을 가져다주게 된다. 이타주의는 두 가지로 분류 가능한데, 맹목성 이타주의와 목적성 이타주의이다. 맹목성 이타주의는 친족선택, 가족선택을 통해 진화해왔으며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주로 가까운 친족관계일수록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목적성 이타주의는 개체 선택을 통해 진화해왔으며 보답을 바란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이기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맹목성 이타주의와 목적성 이타주의의 스펙트럼 상에서 목적적 이타주의에 더 가깝다. 만약 맹목성 이타주의에 더 가깝다면 자신과 혈연관계 집단의 이익만을 바라는 경향에 의해 인류의 미래는 황량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목적성 이타주의에 더 가까운 관계로 사회계약과 같은 것을 형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8장> 종교
종교는 그 중요성을 약화시킬 수 있을지는 몰라도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종교 자체는 유전적으로 이익을 주는 형질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한 사회 집단의 경계를 정하고 결속시키는 작용을 한다.
인간 정신 중 가장 복잡하고 강력한 힘인 종교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그의 표현을 빌자면 ‘철저한 오만함에 의해 뒷받침되는 시원시원한 논리적 폭격은 강철 탄환처럼 안개를 뚫고 나아가는 모습과 닮아있다.’라고 할 수 있다. 종교 행위들을 유전적 이득과 진화적 변화라는 이차원 상에서 측량할 수 있다. 과학이 고대 신화들을 하나씩 붕괴시켜 왔기 때문에, 이제 신학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마지막 발판을 딛고 서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 자체가 자연과학의 설명 대상이 되는 시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이며, 사회생물학은 유전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뇌 속의 물질 구조에 작용하는 자연선택 원리를 통해, 신화의 근원 자체를 설명해 낼 수 있다.




<9장> 희망
여기에서 저자는 왜 과학정신을 종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다시 한번 말한다. 교조화한 세속적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여 모든 종교가 뇌의 진화 산물로서 체계적으로 분석되고 설명될 수 있다면, 종교가 지닌 도덕성의 외부 근원으로서의 힘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마침내 인간 본성의 두번째 딜레마의 해답은 현실적인 필연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회과학자들과 인문학자, 신학자들까지도 결국은 과학적 자연주의가 정신 과정 그 자체를 재정의함으로써 그들의 체계적인 탐구의 토대를 바꿔놓을 운명을 지녔다는 것을 수긍해야만 한다.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지식이 증가할수록, 그리고 마침내 냉철한 정신이 따뜻한 가슴과 만날 때, 인간 본성의 유전 법칙에 속박된 진화 궤도의 집합 가운데 어느 하나를 따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인류는 세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이 될 정신적 딜레마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느낀점>
2000년 '커밍 아웃'을 선언한 홍석천씨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아시아판이 선정한 ‘ 아시아의 젊은 영웅 20인'에 뽑혀 다시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 대한 편견도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부족의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 윌슨의 주장이라 보면, 인간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특징들의 생물학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의 중요성은 보다 분명해지는 것 같다.
이 책이 다른 책의 참고문헌으로도 많이 인용될 만큼 유명한 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과제를 위해 억지로 읽었다는 점을 비춰보면, 이 책을 통해 얻은 소득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무게와 깊이만큼이나 많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쏟은 시간들이 흥미로움과 유익함, 즐거움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

작가는 인간의 성행위는 번식과 다양성이라는 기능도 있지만, 또 다른 중요한 기능으로 서로간의 결속 유지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하는가?


- 동성애에 대한 문화적 관념은 편견이라 여겨진다. 동성애는 생물학적 의미에서 정상일 뿐 아니라, 초기 인류 사회 조직의 중요한 요소로서 진화해 온 독특한 자선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동성애자들은 인류의 존귀한 이타적 충동 중 일부를 운반하는 유전자 담체일지 모른다. 그들이 조재함으로써 그들의 가까운 친족들이 더 많은 아이들을 가질수 있었다. 원시시대의 동성애자들은 사냥과 채집을 하거나 또는 주거지에서 더 가정적인 역활을 함으로써 같은 성별을 지닌 사회 구성원들은 도왔을 수도 있다. 그들은 부모의 의무라는 특수한 의무에서 해방됨으로써, 특히 가까운 친족들은 보조하는데 영향력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동성애는 비록 소수이지만 이성과의 사랑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야 할것이며, 인간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특징들의 생물학적 토대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작가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과학이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인간사회에 풍요로움을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가?

-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세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더 나은 단계, 새로운 시대에 맞춰 또다른 과학적 유물론의 신화를 구축할 것이다. 과학적 방법의 교정 장치들의 인도를 받음으로써, 인간본성의 가장 심층적인 욕구를 향해 정확하고 신중하게 감정을 뒤흔드는 호소를 함으로써 우리는 더 나아갈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살수 있을것이다.


추가 )수업중 토의내용 + 추가 조사

과학적 자연주의가 정신과정 그자체를 재정의한다.(?)

- 종교자체가 과학적으로 설명된다기보다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의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할수 있다는 의미이다. 종교를 믿는 행휘자체는 인간이 완벽할 수 없기 떄문에 스스로에 대한 불안정성에 대한 거울로 삼고 자신을 계속해서 성찰 할수 있게 하는 역활인것 같다.
또한 작가는 우리가 종교의 사회생물학에 적절히 주의를 기울인다면, 비록 종교적 경험이 찬란하고 다면적이여서 가장 세심한 정신분석학자들과 철학자들 조차 그 미궁에서 해맬정도로 복잡하다고 할지라도, 종교행위들을 유전적 이득과 진화적 변화라는 이차원 상에서 측량할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