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기와 감시 응시의 경계는 무척 모호하다. 특히나 훔쳐보기와 응시는 단순히 구별하기 어렵다. 우선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는 대상이 되는 자의 상관관계가 중요하다. 내가 상대를 바라보고 있음을 상대 또한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응시’ 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상대의 동의 없이 상대를 바라보면서 상대 또한 나의 시선을 느끼지 못했을 때는 ‘훔쳐보기’ 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응시되기를 바란다. 화려한 악세서리로 치장을 하고 화장을 하는 것도 응시되고 싶어 하는 심리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보고 싶어 한다. 동네 아낙네들이 모여 손가락에 침을 묻히고 창호지를 뚫어서 신혼부부의 첫날밤을 훔쳐보는 모습이나 오늘날 우리들이 온라인을 통해 주변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모습은 다를 바가 없다. 이렇게 인간이 누군가에게 응시되어 주목 받기를 바라고, 또한 남의 사생활에 대해 ‘훔쳐보고’ 싶어 하는 심리는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인간의 시각적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감시는 종교적, 정치적 요소로도 큰 의미를 갖는데, 신은 언제나 모든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심판하고 있다는 종교적 관념과 독재적 사회주의에서 독재자의 감시 체제가 그것을 대표한다. 독재자들의 초상화를 가정과 학교 및 공공장소에 걸어두게 하는 것도 항상 그가 지켜보고 있으니 모든 행동을 조심하고 유념하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초상화에 묘사된 주체의 눈은 감상자가 움직일 때에 그 감상자를 향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이런 사실이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힘을 초상화에게 부여한다. 이러한 신, 독재자, 권력자에 의한 감시는 일반적으로 공포와 더불어 경외감을 조성하여 다수의 대중을 통솔하기 유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