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기술과 사회 변화 Medieval Technology and Social Change
_등자와 쟁기가 바꾼 유렵역사
린 화이트 지음|강일휴 옮김|지식의 풍경 출판 |319page|20051230
물질 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06.02.02
0393068 임주리

■ 차례
옮긴이의 말
머리말

제1장 등자, 기마 충격전, 봉건제, 기사
1. 봉건제의 기원에 관한 전통적 이론과 그 비판
2. 등자의 기원과 전파
3. 기마 충격전과 봉건적 생활의 성격

제2장 중세 초기의 농업 혁명
1. 쟁기와 장원 제도
2. 말의 이용
3. 삼포 윤작제와 영양의 개선
4. 유럽 중심의 북방 이동

제3장 기계 동력과 장치에 대한 중세의 탐구
1. 동력원
2. 기계 설계의 발전
3. 동력 기술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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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은 서유럽 사회의 특징, 다시 말하면 서유럽 사회를 이슬람, 아시아 사회와 구분시켜 주는 요소가 어떻게 해서 성립했는가 하는 문제를 중세의 획기적인 기술 혁신과 관련시켜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근대의 과학, 기계문명, 기술, 도시화 등이 르네상스 이후에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중세 사회에서 시작되었거나 배태되었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책은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장에서는 중세 서양의 지배 계급이 된 기사의 성립과 봉건제의 기원을 등자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는 등자가 결국 기마 충격전이라는 새로운 전투방식을 탄생시켰고, 이로 인해 기사 계급이 중세 사회의 지배자가 되고 봉건제가 성립했다는 논지를 전개시키고 있다. 제 2장에서는 농민에 초점을 맞추고 중세 초의 농업 혁명을 다루고 있다. 중세 사회가 진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지표는 여러 가지지만, 이 가운데 가장근본적인 것은 농업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이었다. 린 화이트는 이 문제를 무거운 쟁기의 사용, 마구의 발전과 말의 이용, 삼포 윤작제의 일반화 등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결국 이런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잉여 농산물이 생겨났고, 그 결과 도시화라는 사회 변화가 가능했고, 유럽의 중심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제 3장에서는 물레방아를 중심으로 하는 기계 동력의 이용, 시계 등에서 볼 수 있는 기계 설계의 발전 등을 추적하여 분석하고, 근대 과학과 기술의 기원을 중세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주고 있다.

■논점
최근 몇 십 년 동안 중세사 연구자들이 거둔 중요한 연구 성과는 서양 중세의 역동성을 발견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를 이끌었던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린 화이트는 '등자, 쟁기, 물레방아와 시계'를 이러한 변화의 주인공으로 지목한다.
‘위대한 것들은 사소한 것을 무시하면 존재할 수 없다’-히에로니무스
저자는 머리말 의 종지부를 히에로니무스란 사람의 말을 한줄 인용하여 전체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우리에게 제시해 주었다.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지은이의 생각을 밑받침해 다른 사례와 함께 반대되는 입장도 토론해 보자.

①등자, 기마 충격전, 봉건제, 기사
등자만큼 단순한 발명도 드물지만, 등자만큼 역사에 그렇게 촉매 작용을 한 발명도 드물다. 등자로 인해서 새로운 전투법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런 새로운 전투법의 필요에 의해서 새롭고 매우 전문화된 방법으로 전투할 수 있도록 토지를 받은 전사 귀족이 지배하는 새로운 서유럽 사회가 등장했다. 필연적으로 이 귀족들은 기마 충격전의 형태와 그 사회적 태도에 부합하는 문화 형태와 사고방식을 발달시켰다. 덴홀름-영의 말처럼, “말이 없다면 기사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 과거 1000년 동안의 ‘말을 탄 남자’는 등자에 의해 가능했다. 등자는 사람과 군마를 결합하여 전투 유기체로 만들었다. 고대인들은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를 상상했다. 중세 초에 그런 자가 유럽의 지배자가 되었다.

②중세 초기의 농업혁명
중세 초의 농업혁명은, 중질토여서 무거운 쟁기가 적절했고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려 대규모 봄 파종이 가능했고 여름 작물로 귀리가 재배되어 무거운 쟁기를 끄는 말의 사육이 가능했던 북유럽의 평원 지대에 한정되었다. 북방 농민의 수확이 증가해서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고, 그 결과 공산품의 구매력도 증가했다. 잉여 식량이 생산되어 10세기부터 급격한 도시화가 발생했다. 새로 등장한 도시들에서 직인과 상인이라는 새로운 계급이 등장하였고 이 시민 계층은 곧 도시 공동체를 장악하고 새롭고 특징적인 생활양식, 즉 민주적 자본주의를 창조했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환경에서 근대 세계의 특징적 양상인 동력 기술이 발달했다.

③기계동력과 장치에 대한 중세의 탐구
13세기 중엽이 되면 적극적인 사람들이 최근의 기술적 성과에 의해 자극 받았을 뿐 아니라
신기한 영구 운동에 이끌려, 기계력의 개념을 일반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주를 인간의 의도에 따라 사용 할 수 있는 에너지의 거대한 보고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망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동력에 대한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 이런 망상과 맹렬한 상상력이 없었으면 서유럽 세계의 동력기술은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에르 드 마리쿠르의 친구인 로저 베이컨은 1260년에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 단 한사람이 거대한 배의 키를 잡고, 여러 사람이 노를 젓는 배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기계가 가능할 것이다. 가축을 사용하지 않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달리는 마차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새처럼 날개를 펄럭이는 비행기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이나 바다 밑으로 다니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말은 그 자신의 견해일 뿐 아니라 당시 엔지니어들의 견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