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화론_중간보고서_채승진
백소정_0493025




인류는 자신의 유전자 구조를 밝혀내 질병의 예방과 치료를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했다. 그로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 되고 있다. 문명(文 ㉠글월 ㉡글자 ㉢무늬 ㉣문서 ㉤책 ㉥몸에 새기다 ㉦꾸미다)은 인간이 창조해낸 디자인 작품이라 생각한다. 문명은 말 그대로 무늬의 세계이고 무늬란 곳 디자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아니 삶을 구성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 자원 그리고 다른 인간 집단 간의 관계를 설정이라는 아주 거창한 것까지 두루 아우르는 매우 폭넓은 개념이다.

인류의 기원을 보면 지구상에서 생명체는 35억 년 전, 포유류는 1.5억 년 전, 영작류는 7000만 년 전으로 인류는 50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하였다. 어떻게 인간으로 진화 할 수 있었을까?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직립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아프리카 땅에서 시작되었는데 500-700만 년 전 나무를 타던 큰 유인원이 나무 위에서 살다가 몸집이 너무 커지면서 또한 먹이가 풍부해져 땅으로 내려와서 살다가 다시 나무 위에 매달리며 살았다. 나무 위를 오르내리는 동작과 직립은 중둔근을 많이 사용하는 비슷한 동작이었다. 나무에 매달리는 것도 똑바로 서기 위한 연습이 되었다. 이 이후 인간과 침팬지로 갈라졌는데 약 490만 년 전이며 갈라진 순서는 오랑우탄과 인간이 먼저 갈라지고 그 후 인간과 침팬지가 갈라져다. 그 당시 아프리카의 지각활동이 천만 년 전부터 진행되어 대륙이 솟아올라 표면의 용암에 의해 아프리카의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프리카 대륙은 남북으로 산맥이 생겨 인간과 침팬지의 공동조상이 산맥에 의해 왕래가 불가능해지면서 지리적 격리에 의해 생식적 격리에 의해 종의 분화가 일어났다. 산맥 동쪽은 비가 오지 않아 초원이 되었고 건조기후가 계속되면서 숲이 사라져 먹이가 모자르고 먼 숲으로 이동하기 위해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하였다. 반면에 산맥서쪽은 환경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 공동의 조상이 그대로 침팬지로 남았다. 현대의 침팬지는 잠재력이 있었으나 발휘될 기회가 없었다. 만약 아프리카의 지각 변동이 일어나지 않아 아프리카 대륙이 동서로 ㄴ나누어지지 않아서 먹이가 풍부한 생활에 만족했다면 인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의 문명은 인류의 탄생과 같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려고하는 욕구가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연이 가지고 있는 것만 충족하는 생활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이 수렵채집 생활을 벗어나 농경을 하게 된 것이다. 수렵채집민들이 초본류(키는 크지만 줄기의 부피는 생장하지 않는 그러므로 나이테가 없는 식물. 우리주위의 풀들이 모두 초본성 식물이다.)가 매년 싹을 틔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농경을 시작하지는 않았고 농경이 세계 여러 곳에서 아주 큰 시차를 두고 시작하였다. 농경의 시작에 대해서는 아직도 거의 알려진 바는 없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일단의 복잡한 문화적, 환경적 요잉ㄴ들이 인구증가와 결합함으로써 서로 멀리 떨어진 세계 여러 곳의 사회들이 비교적 짧은 기간, 때료는 몇 세대만에 식량을 채집하는 단계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단계로 전환하게 만들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왜 농경이 세계 여러 곳에서 아주 큰 시차를 두고 시작하였을까?

빙하시대 말에는 서남아시아와 메조아메리카 고지대같이 가뭄이 쉽게 드는 아열대의 채집민들이 재배 잠재력이 있는 야생 초본류들과 뿌리 식물들을 점점 집중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채집할 수 있는 식물 먹거리가 불과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 이런 지방에서는 그러한 먹거리에 전부터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한 의존은 장기적 생존에 필수불가결 했으며, 거의 필연적으로 야생 곡류의 의도적 재배 실험으로, 그리고 결국은 재배로 이어졌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우림같이 좀 더 습하고 식물이 풍부한 열대 지방에서는 비교적 온난한 지방에서 농경이 등장하고 한참 지나서야 비로서 흉년에 기아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작 몇 가지 야생종들을 재배하는 정도였을 것이다. 열대 아프리카에 곡류 농경이 도래한 것은 겨우 지난 3천 년 전 이내의 일이고, 널리 퍼진 것은 수세기 더 뒤에 철 기술이 도입되고 나서였다. 아프리카나 아마존의 우림같이 열대 지방에서는 식물이 풍부한 지방에서는 수렵과 채짐만으로도 그들의 생활을 충족해 왔기 때문에 농사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지만 아열대의 채집민들은 식물이 풍부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아와 허덕이게 되었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농경이 보다 일찍 발달하였다.

식량을 생산하는 데에는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농민들은 혼합 농경을 실시하는 경우 농경과 소 및 작은 가축을 사육하였다. 식량생산은 가축 사육과 작물 재배가 가용 식량을 증대시키고 안정화하는 경제 전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종국적으로 많은 지점에서 훨씬 높은 인구밀집을 가져왔다. 취락들은 한층 영속적이 되면서 다른 변화를 몰고 왔다. 많은 수렵채집민들이 식물들이 떨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에 운반하기 쉽고 가벼운 재질의 소유물을 사용하였지만 농경을 시작하면서 무거운 도구와 한층 영구적인 집으로 대체되었다. 갈아서 날을 세운 도끼와 갈판은 채집사회에서 그랬던 것보다 농경문화에 더욱더 중요하게 되었다. 호미와 다른 역작 도구들은 작물을 심고 거두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한층 영속적인 본거지가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사회단위들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사회적 결속 관계들은 토지의 사유와 세습을 반영하고 당시까지 흩어져 살았던 인구집단들을 더 가깝게 정기적으로 접촉하도록 만든 훨씬 큰 취락들이 낳았다.

식량생산은 환경에 대한 태도를 바꾸어 놓았다. 알곡 작물은 사람들이 겨울에 대비한 먹거리로 저장할 수 있는 작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계절적 강우 지역에서는 장기간의 가뭄이 흔히 일어난다. 인구밀도가 증가함에 따라 기근은 언제든지 실제로 일어날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초기 농민들은 틀림없이 하늘을 근심스럽게 지켜보았을 터이고 가뭄이 들면 흉작이 흔하였을 것이다. 지난 계절에 저장해 놓은 소량의 곡식으로는, 더욱이 잉여 식량을 부주의하게 관리했다면 한해를 더 버티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때는 농민들이 경제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최초의 농민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농업을 보완하기 위해 오늘날 일부 농민들이 흉년에 살아남는 데 야생 식물 먹거리와 사냥에 크게 의존하는 것과 꼭같이 사냥감 동물과 식물 먹거리를 이용했음을 알고 있다. 많은 수렵채집민 유단들은 자신들의 넓은 영역 안에 있는 먹을 수 있는 식물 중 단 몇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채집한다. 먹을 수 있는 다른 많은 야채류를 알고만 있다가 곤란에 처했을 때에 비로써 채집을 한다. 이렇게 극한 상황이 되어서야 다른 채소류들을 재배하였다.

일부 인간집단은 아마도 다른 대안들이 더 이상 통할 수 없을 때 비로써 식량생산에 의지하였을 것이다. 전형적 예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단의 원주민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뉴기니아 이웃들이 집약 농경에 종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또 야생 얌이 재생하도록 그 꼭대기 부분을 심는 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식량생산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여가 시간을 줄이고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식량을 산출하는 생활 방식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인간들이 언제나 기회를 선용해 왔으며 먹거리 작물의 재배와 가축의 최소 사육이 단순한 작용의 결과였을 것이라는 점이라는 것이다.

관개농경은 더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인구의 증가, 정주 취락의 증가, 재화 재분배의 중심지들을 가진 교역은 모두가 생산 증대와 잉여 증가를 향한 압력이었으며, 그것은 사회내의 주도적 집단들이 활발하게 조장하였다. 엄청나게 확대된 잉여물 덕택에 그것들을 관리한 자들은 직접 작물을 기르지 않는 더 많은 장인들과 다른 기술자들을 고용할 수 있었다. 잉여 식량의 창출과 계층화된 사회의 출현은 결정적인 진전들이었다.

식량생산은 세계 최초 문명들의 토대였지만, 농경이 언제나 국가조직 사회나 도시를 낳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은 분명 같은 이유해서 자기들이 극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환경 속에서 발생한 문명들이지만 인류는 자신들에 자라온 환경 속에서 맞는 여러 가지 시련을 극복하면서 인류는 발견, 창조하여 문명이 발전하였다고 생각한다. 예로 미국이 발전한 이유는 신대륙을 발견했을 그 당시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었고 그들에게는 필요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뉴기니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은 그들의 환경이 풍요로웠기 때문에 다른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열악한 상황의 미국인들은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발전하였고 그로인해 큰 힘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인류의 선사문화:선사시대 인류의 문화와 문명, 브라이언 페이건, 도서출판 사회평론
-문명은 디자인이다, 권삼윤,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