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주제 : 인류문명의 속성
과목명_ 물질문화론 / 담당교수_ 채승진 / 제출일_20070212
발표자_ 이준원 0393057

< 인류문명과 역사의 이해 >

최근 개봉한 영화 ‘아포칼립토’를 보았다. 이 영화의 핵심은 '문명의 충돌'이라 본다. 전쟁의 발생은 영토와 식량 그리고 노예, 인구증가를 위함도 있지만, 문명 간의 충돌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의 기본은 '그들은 우리와 다르다'란 것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밀림 속 작은 부락에서 행복하게 살던 '표범 발'은 어느 날 잔인한 침입자들에게 공격받고 부락의 사람들과 함께 노예로 끌려간다. 밀림 밖의 세상은 한번도 본적이 없는 또 다른 세상, 바로 거대마야문명이 있었던 것이다.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돌로 쌓은 신전들과 부락의 몇 천배는 되는 사람들. 주인공은 새로운 문명에 충격을 받는다. 죽음 직전에서 탈출하고 숨어 있던 아내와 자식을 구하면서 해피엔딩인가 싶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새로운 문명의 충돌이 발생한다. 신대륙을 발견한 유럽인들과 인디오들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대한 2척의 범선은 새로움, 파괴의 전조를 예고하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얼마 전 수업시간에 감상한 ‘총, 균, 쇠’가 자꾸 겹쳐졌다. 문명의 격차를 설명하는 관점 중에 서양 문명의 세계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흔히 동원되는 것이 인종주의적 관점이다. 유럽인이 선천적으로 뛰어나서 세계를 정복할 문명을 갖게 되었고, 아시아인은 그보다 하등한 종족이어서 식민지 시절을 겪었고, 아메리카 인은 더 하등해서 자신의 땅에서 몰려났다는 요지의 주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인종주의 적 시각의 완전한 반대 지점에서의 답변을 내놓는다. 초기 인류의 이동, 작물, 가축, 기후, 지형, 세균, 문자, 권력구조 등의 자료를 토대로 유사 이전에 예고된 문명의 불균형을 설명해낸다. 이에 따르면 인종간의 선천적인 능력 차는 무시할 만한 것이며, 놀라운 문명의 격차는 지리적 환경에 의한다는 것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왜 어떤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의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는가? 등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 사뮤엘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다시한번 펼쳐보았다. 헌팅턴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이념, 정치, 경제가 아니라 문명이라 한다. 문명의 핵심은 종교이다. 따라서 세계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고 한다. 탈냉전 세계는 일곱 내지 여덟 개의 주요 문명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이다. 즉, 서구기독교 문명, 동방정교 문명, 이슬람 문명, 아프리카 문명, 인도의 힌두 문명, 일본 문명, 유교 문명 등이다. 라틴 아메리카 문명과 불교 문명의 독자성은 유보하고 있다. 냉전 시대의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과 동맹국, 위성국, 종속국, 중립국, 비동맹국으로서 관계를 맺었다. 반면에 탈냉전 시대의 국가들은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문화적 중심인 핵심국을 중심으로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서구 문명은 미국과 독일과 프랑스가 핵심국이며, 유교 문명은 중국이 핵심국이지만 이슬람·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 문명은 핵심국이 없다. 문명의 핵심국들은 문명 내부에 존재하는 질서의 원천이면서 문명 사이에 성립하는 질서의 원천이다. 핵심국이 질서 부여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소속국들이 그와 문화적 유대감을 느끼기 때문에 문명의 핵심국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문명 내부의 질서를 세우거나 다른 문명과 질서를 구축하는 절충은 매우 어렵다. 이슬람 문명은 여러 국가들이 핵심국의 지위를 얻으려고 각축하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탈냉전 시대의 국제 분쟁은 이러한 문명들 사이에서 일어나며, 그 중 가장 위험한 분쟁은 문명과 문명의 단층선에서 발생한다. 단층선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인접국 사이나 한 국가 안의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오늘날 이슬람 문명과 비 이슬람 문명 사이에서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나아가 인도와 중국이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문명적 정체성을 더욱 강화할 것이며, 그것은 서구 문명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탈냉전 시대의 국제 정세를 예견한 헌팅턴의 '문명 패러다임'이다. 문명은 충돌하기 시작했으며, 충돌하고 있으며, 충돌할 것이다. 헌팅턴에 의하면, 이러한 문명 충돌로 인한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핵심국들이 '자제의 원칙', '공동중재의 원칙', '동질성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자제의 원칙'은 핵심국들이 다른 문명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으로, 다문명화, 다극화 세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기본 전제 조건이다. '중재의 원칙'은 핵심국들 끼리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 간의 단층선 전쟁을 억제하거나 종식시키기 위하여 타협을 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다. '동질성의 원칙'은 어떤 문명에 속한 인간은 다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관, 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그 방안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것으로, 다극화, 다문명화 세계에서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쌓이면 문명의 충돌 가능성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는 단일 문명의 실현 가능성도 높아진다. 단일, 보편 문명은 수준 높은 윤리, 종교, 학문, 예술, 철학, 기술, 물질생활이 복합적으로 섞인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명과 문명의 충돌은 세계 평화에 가장 큰 위협이 되며, 단일 문명에 바탕을 둔 국제 질서만이 세계 대전을 막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도 문명은 충돌하고 있다. '문명의 충돌'은 21세기는 이념이나 경제 대신 종교를 구심점으로 한 '문명'이 국제 분쟁을 주도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헌팅턴에 따르면, 탈냉전 시대는 문명의 차이가 국제 분쟁의 주된 원인이 될 것이며, 각 문명권은 핵심국을 중심으로 문화적 동질성으로 통합되지만 다른 문명권과는 분열하고 반목할 것이다. 미국은 아직도 테러의 위험에 떨고 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국제 정세에 다시한번 그의 이론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과도한 서구중심주의나 논리의 단순함으로 인하여 무수한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반박하고 있는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은 어떨까. 뮐러는 헌팅턴의 논리가 지나치게 단순한 잣대로 복잡한 현상을 싸잡아 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세계를 '우리와 그들'로 양분하여 바라보는 관점을 취하여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문명은 정치의 행위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계정치무대에서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동시에 분쟁의 원인은 단일요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합요소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뮐러는 21세기에도 문명 간의 충돌로 인한 전쟁보다는 세계 평화가 오길 바라면서,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영화 ‘아포칼립토’ 를 보면서도 거대 잉카제국을 그저 잔인한 야만족의 나라로 묘사했다는 점, 그리고 거대문명은 외세의 침략(외부의 문명충돌)이전에 내부로부터의 갈등(내부의 문명충돌)으로 인해 멸망이 시작된다는 감독의 서구 중심적 시각은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느 쪽의 이론이든 21세기 현실을 바라보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문명 간의 교류와 발전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충돌과 갈등이 있어왔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지난 45억년동안 지구 위에서 진행된 것은 창세기의 7일로 비유한다면 어떨까. 하루는 6억 6천만 년에 해당하는데, 지구는 월요일 오전 0시에 생겨나 수요일 정오까지 그 모습이 완성된다. 바로 그때 생명이 탄생되어 4일 동안 유기적으로 훌륭하게 진화한다. 일요일 오후 4시에 공룡이 출현했다가 밤 9시에 자취를 감춘다. 지금은 일요일 오전 0시. 인류는 3분전에 등장했고 산업혁명은 40분전의 1초 전에 시작되었다. 우리는 지금 당장 눈앞의 것에 급급해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숙명이기도 하다. 철학서 ‘소피의 세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지구에 사는 우리들은 토끼 가죽 아래 깊숙한 곳에서 우글거리는 벌레들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철학자는 가느다란 털을 붙잡고, 위대한 마법사(신, 또는 세상질서)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위해 마냥 위로 기어오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란다.’ 철학자뿐만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 넓은 시각을 지녀야 한다. 멀리 봐야 한다.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파멸의 위협을 상징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가 북한 핵개발을 비롯한 여러 변수로 자정에 2분 더 다가간 오후 11시 55분에 맞춰질 예정이라고 이 시계의 시간을 정하는 ‘핵과학자회보’가 얼마 전 발표했다. 인류문명에 위기의 순간은 항상 존재했지만 극복했고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이야말로 다시한번 전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