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속성_물질문화론
담당교수_채승진 교수님
제출일_20070226
제출자_박동명 0293106

미디어란 말의 쓰임새는 아주 다양하다. 가장 흔하게는 메시지의 전달 수단을 의미한다. 책, 신문, 잡지, TV, 라디오, 영화, 광고전단, 메일, 전화, 인터넷 등 다양한 미디어가 있다. 이중 신문, 잡지, TV, 라디오 같은 대량의 수신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디어를 매스미디어라고 부르며, 이를 줄여서 그냥 미디어라고도 한다. 우리는 각종 미디어에 둘러싸여 있다. 라디오와 TV, 신문, 잡지, 인터넷, 영화, 음악 등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20세기 초에 등장한 미디어는 인류 역사상 인간이 일찍이 격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체험을 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와 너무 친숙한 나머지 미디어와 접하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한다. 미디어를 마치 공기처럼 여기는 것이다. 미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얼려면 미디어가 없는 일상생활을 상상해 보면 된다. 내일 아침 미디어가 없는 상황에서 깨어난다고 상상해보라. TV, 영화, 음악, 컴퓨터, 인터넷, 잡지책도 없는 세상을 우리는 상상 할 수도 없다. 미디어가 없다면 우리의 엔터테인먼트도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여가의 하나인 음악도 들을 수 없을 을 것이고 정치에 대한 이해도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문이나 TV, 잡지 책등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과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려주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지각체계도 알라질 것이다. TV에서 보여주는 인물들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비교되는 이미지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개인은 사회화를 걸쳐 보다 넓은 사회와 관계를 맺는다. 사회화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의 가치와 신념, 문화적 규범 등을 내재화하고 배워나가며 자신의 감성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일컫는다.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미디어는 우리의 일상생활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디어의 사회학적 중대성은 미디어 메시지의 내용을 뛰어 넘는다. 미디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어떻게 학습하는가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인간 간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미디어 소사이어티(Media Society) 사계절 문헌 참조

미디어를 좀 더 간단히 이해하려면 Communication system 속에서 미디어의 역할을 본다면 알 수 있다. Communication system 속에는 발신자인 sounder가 있고, 수신자인 receiver가 있다. 발신자인 sounder와 수신자인 receiver를 연결하는 message가 존재하는데 이를 미디어라 일컫는다. 여기서 한 방향 수신, 양뱡향 수신 그리고 수신자인 receiver가 다수가 존재 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 수신자인 receiver가 다수 존재 할 경우를 매스 커뮤니케이션(매스 미디어)이라고 일컫는다.
-연세대학교 디자인 학부장 채승진 교수님 수업 참조

마샬 멕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하였다. 모든 미디어가 우리 자신의 확장이며, 이 미디어의 개인적 및 사회적 여향은 우리 하나한의 확장, 새로운 테크놀로지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도입되는 새로운 척도로서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의미라던가 메시지라는 것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사람 이 그 기계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상화 관계와 행동의 척도나 형태를 만들어내고 제어하는 것이 미디어이므로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맥루한은 모든 매체가 인간능력의 확장이라 하였다. 책은 인간의 눈의 확장, 바퀴는 인간의 발의 확장, 옷은 인간의 피부의 확장, 전자 회로는 중추신경계의 확장이라고 하였다. 미디어가 인간의 확장으로서 드러남으로서 동시에 인간자체를 변화시키게 된다. 모든 미디어는 우리 인간 감각의 확장이지만 그 감각도 역시 우리 개인의 에너지에 부과되는 기본요금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감각이 개개인의 인식과 경험을 형성 하고 있다.
맥루한이 보면 비분강개할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일상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40년 가까운 시차가 정말 무색해질 지경이다. 맥루한을 분노케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집단은 영상물등급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 정보통신 윤리위원회 등등이다. 주로 짐승이 먹이를 노리듯 눈을 부릅뜨고 각종 미디어를 감시하다가 음란이나 폭력 장면이 나타나면 지체없이 달려들어 체포, 구금에 공개 처형하는 게 주 임무다. 미디어를 거기 담긴 내용으로 판단하는 이런 시각은 맥루한이 "미디어가 메시지다"라는 명제로 반박하고자 했던 타겟이었다. 이들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미디어는 (전달도구이므로)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문제는 미디어가 실어 나르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저질 음란 폭력물이 문제다. 이런 것들은 직접적으로 사회 내에서 성적 문란과 폭력을 야기 시킨다. 특히 청소년 범죄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 따라서 지속적인 미디어 감시 활동을 통해 이런 쓰레기 같은 내용들을 검열, 차단해야 한다. 미디어의 강효과 이론과 맞물린 내용 중심 미디어 접근법은 언뜻 타당한 듯 보일 뿐더러,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으로 제법 폭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예컨대 시민단체에서 운영되는 미디어 모니터링 활동들은, 물론 앞의 단체들과 동일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해도, 미디어에 대한 접근법에 있어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맥루한의 견해는 사뭇 다르다. "미디어의 메시지란 정신의 감시견을 따돌리기 위해 도둑이 미끼로 던지는 고깃덩어리와 같다. 미디어의 내용이 미치는 영향은 미디어 그 자체가 미치는 영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미디어의 진정한 메시지는 미디어 그 자체, 더 나아가 미디어에 의해 구성되는 우리 자신이다." 이것이 "미디어는 메시지이다"란 명제의 의미이다. 여기서 맥루한이 강조하는 바는 미디어가 인간의 감각 비율 내지는 감각 균형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있다. 맥루한에 따르면, 과거 인쇄미디어가 시각 위주의 감각의 분리와 파편화를 초래했던 데 비해, 텔레비전과 같은 맥루한 시대의 전자미디어는 분리됐던 감각의 통합과 최대한의 감각 확장을 통해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시각적이기보다는 촉각적인, 파편적이기보다는 통합적인 문자 이전의 인간형을 부활시킨다고 한다. 아울러 전파의 동시성과 즉각성으로 인해 시공간의 제약이 소멸되고, 세계가 하나의 부족 단위, 즉 지구촌으로 재편된다고 말한다. 미디어의 진정한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것들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맥루한의 접근법에 기본적으로 공감하면서도, 미디어 '그 자체'의 메시지를 주로 감각비율 같은 측면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조금 이견이 있다. 즉 "미디어가 메시지"라는 얘기를 좀더 폭넓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텔레비전의 저녁 9시 뉴스를 예로 들어 보자. 9시 뉴스의 '진짜' 메시지는 개개의 사건을 보여주는 뉴스 화면이 아니다. 그보다는 일차적으로, TV란 물건이 항상 거실의 중심을 차고 앉아 있으면서 매일 저녁 9시마다 전국 수백만 사람들을 불러 앉혀 마치 끼가 되면 밥 먹듯이 뉴스를 시청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미디어는 곧 메시지라는 명제와 더불어 맥루한의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또 하나의 척도는 핫미디어와 쿨미디어의 구분이다. 핫 미디어(hot media)와 쿨 미디어(cool media)는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에서 제시된 또 다른 중요 개념입니다. 맥루한은 미디어를 데이터의 정세도(definition)와 수신자에게 허용된 참여 수준에 따라 핫 미디어와 쿨 미디어로 분류하고 있다. 라디오와 같은 핫 미디어와 전화 같은 쿨 미디어, 혹은 영화 같은 핫 미디어와 텔레비전 같은 쿨 미디어를 구분하는 데는 기본적인 원리가 있다. 핫 미디어란 단일한 감각을 높은 정세도에까지 미치게 하는 미디어이다. 높은 정세도란 데이터가 꽉 채워져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예컨대 사진은 시각적으로 높은 정세도를 지니는 반면에 만화는 제공되는 시각적 정보가 매우 적다는 점에서 낮은 정세도를 지닌다. 전화는 귀에 주어지는 정보의 양이 적으므로 쿨 미디어 혹은 낮은 정세도의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연설 역시 청중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적고 많은 부분을 청중이 메워 나가야 하므로 낮은 정세도를 지닌 쿨 미디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핫 미디어는 수신자 측에서 채우거나 완성해야 할 부분이 별로 없다. 요컨대 핫 미디어는 수신자에게 허용된 참여의 수준이 낮은 반면, 쿨 미디어는 높은 참여와 보완을 허용한다. 따라서 당연한 얘기지만, 라디오와 같은 핫 미디어와 전화와 같은 쿨 미디어는 이용자에게 미치는 효과가 사뭇 다르다.
그러나 이 개념들을 오늘날의 미디어에 적용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몇 가지 코멘트를 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핫과 쿨의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점입니다. 맥루한은 텔레비전을 쿨 미디어로 분류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좀 더 쿨한 미디어, 이를테면 오늘날의 인터액티브 미디어와 비교하면 오히려 핫 미디어라고 얘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핫과 쿨을 구분하는 기준으로서의 정세도를 지나치게 데이터의 밀도 같은 형식적인 요소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미디어마다 그 특성에 따라 정세도를 얘기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 아울러 정세도란 개념을 오히려 수신자의 참여 수준이라는 개념에 수렴시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영화와 TV는 화면 해상도에서도 차이가 나지만 더 나아가 관람 방식의 밀도 내지는 허용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요소를 주요하게 포함하고 있는 미디어의 경우에는 사진이나 만화처럼 이미지 자체의 밀도로만 핫과 쿨을 구분할 수 없다.
셋째, 핫과 쿨은 좁은 의미의 미디어만이 아니라 예술 장르나 구체적 작품의 특질을 설명하는 데도 매우 유용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극영화와 TV 주말연속극을 핫과 쿨 개념을 적용해서 설명할 수 있다. 2시간 내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극영화는 이틀 한 뒤 닷새 쉬는 주말 연속극에 비해 내러티브나 다른 미적 형식에 있어 훨씬 '핫'한 특질을 지니게 된다. 그런가 하면 전통적인 주말연속극에 비해 <순풍산부인과> 같은 시트콤은 같은 기준에서 더 쿨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넷째, 맥루한의 핫과 쿨 분류는 당연히 맥루한 사후에 이루어진 미디어 발전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다. 가장 비근하게 거론되는 예가 인터넷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외 없이, 맥루한이 살아 있었다면 웹을 쿨 미디어로 분류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쿨미디어도, 핫미디어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미디어의 이해(마샬 맥루한) 커뮤니케이션 북스 참조

맥루한의 미디어에 대한 개념은 단순히 매스미디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넓은 의미로 인간이 고안한 도구나 기술까지도 그에게는 미디어 인 것이다. 또한 그는 기본적으로 미디어가 인간, 사회 및 문화와 맺고 있는 관계를 중요시 하였다. 모든 미디어는 인간이 지닌 재능의 심리적 또는 물리학적 확장으로 보았다. 이는 인간은 미디어의 원인인 동시에 효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결국 미디어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 될 수 있으며, 메시지는 특정 미디어와 인간이 만날 때 발생되어진다고 보았다. 가의 미디어 관은 기본적으로 미디어가 인간, 사회 및 문화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20세기 들어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변화는 초기 사회학자들에게 그들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힘을 제공해 주었다. 미국 사회에서도 여러 모로 산업주의가 새로이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산업사회의 등장이 공장 생산을 가능하게 한 기술 혁신에 의존 했듯이, 새로운 기술의 발전은 심오한 사회, 경제, 정치적 변화의 과정 중 일부이다. 전자 커뮤니케이션과 전산화의 발전은 제조업보다는 정보와 서비스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는 경제사회를 등장 시켰다. 이렇게 우리 가 지금 살고 있는 정보화 사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MTV에서는 수천 장의 이미지와 사운다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디어의 급류는 인간에게 더 많은 감각의 자극의 필요를 가져왔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재미를 찾는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더 많은 감각의 상실을 초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나는 든다. 엄청난 속도로 쏟아지는 미디어에 영향을 받는 우리들이 얼핏 보기엔 각기 다른 미디어를 통해 각기 다른 개성을 지녀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엔 큰 미디어의 틀에 오히려 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거대한 미디어의 힘에 결국에는 획일화 되어 가고 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미디어의 속도 문화는 우리의 삶을 더 바쁘고 빠르게 만들었다. 아무리 많은 매개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쏟아지는 미디어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인은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항상 불안하고 낙오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항상 빠름을 추구한다. 더욱 빠르지 않으면 이 모든 것 들을 잃어버린다는 공포에 빠져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미디어를 받아들일 때 무분별하게 쫒아 가기만 해서는 안된다. 자기 자신의 지적수준을 계속 높여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미디어를 분별하게 자신의 입장에서 걸러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