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사회에서 현대적 사회로의 이행이란 현대화 과정은 낡은, 과거의, 봉건 등의 패러다임을 소멸시키고, 새로움을 지상과제로 하는 패러다임을 가져오는 파란만장한 과정이었다. 우리라는 현대의 사회공동체가 인류의 보편성으로서 현대를 체험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며, 식민지 피지배의 체험의 역작용으로 서구와 대립되는 개념에 놓인 우리의 전통에 대한 관념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충돌된 과정인 것이다. 실체를 드러내고 있지 않은 우리의 삶의 조건들, 그 조건들을 형성하는 싱상의 과정들이 현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현대이다. 우리의 현대가 서구화주의의 강요된 결과에 의해 형성된 현대일지라도 그 나름의 색깔을 지니고 있을 것임은 분명하며 우리의 일상성의 재구에 의한 현대적 개념을 새로이 찾아 정립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1. 현대를 바라보는 눈

개항이란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한 듯 보이는 우리의 현대사는 기실 그 이전부터 새로운 움직임에 의해 꿈틀대고 있었다. 현대를 향한 조선사회는 이미 나름의 충분한 기운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성의 경험 초기에 현대의 개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현대, 혹은 모던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30년대에 들어서이며 지금 우리가 말하려는 ‘현대’와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었다. 현대가 눈앞에 다가오면서 이를 바라보는 태도는 문명의 이기에서 비롯된 당혹스러움이거나 물질에 대한 소외로부터 오는 열등감이기 쉬웠으며, 이를 상징하는 룸펜, 뿌르조아, 빠, 딴스등의 낯선 용어를 일상어로 만들어 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용어는 모던이며 모던은 그 유입과 함께 곧 대중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캠페인 문화 슬로건 문화 등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사회의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모던 현상은 현대화의 산물인 도시화와도 밀접한 영향을 지니고 있다. 허나 당시대엔 이러한 모던현상에 대해 새로운 서구문명에 대한 호기심이란 측면과 아울러 새로운 서구화에 대한 반발의 심리가 그림자의 이면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2장. 물질과 과학의 시대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놀라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문화로부터 유입된 문물들을 통해서이며 그런 문물들에 묻어 들어온 것이 바로 문명이다. 허나 초기의 서양 문물은 문화적 충격을 앞세운 힘의 논리에 의해 사람들에게 침탈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허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서구문물에 대한 객관화된 인식은 물질을 통해 동시대적인 문화를 공유한 현대화 사회를 가져올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문물과 함께 유입된 서양의 과학기술 역시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과학을 일상화하려는 노력을 보일 정도로 당시의 사람들에게 친숙해져갔다. 과학기술과 문물을 선점한 일본과 서양에 대한 초기의 열등감은 그들의 문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희석시키면서 그들의 문화를 현대문화라 인식하게 만들었고, 우리나라에서의 현대성의 실현은 이러한 유입된 문물과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3장. 지식인, 룸펜과 데카당
현대가 시작되면서 지식인들은 과거의 선비에서 점차 인텔리켄차로 변모해갔다. 그들은 민족주의자, 문화주의자, 사회주의자등의 다양한 겉모습을 지니고 있었지만 내면에는 현대주의자로서의 공통된 정서가 있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현실에 강한 불만을 지니고 있었으나 암울한 식민지적 상황이 가중되자 사회에 대한 비판적 기능의 좌절은 점차 자기혐오로 변모해 데카당으로 변해갔다. 1930년대 신식교육이 확산되어 지식인의 늘어난 수효만큼 고등실업자가 늘어나자 낭만적 지식인이란 의미의 룸펜(독일에서의 ‘누더기’란 의미와는 다른)이란 용어가 유행처럼 번졌고,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룸펜이라 자처했다. 그들은 가난해도 궂은 일은 할수 없다는 지조를 지니고 있었겠지만, 무위도식속에서 타인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허나 지식인들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당시대에서 그들의 역할은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지식인은 딜렝탕트, 데카당으로 말해지는 퇴영 자체로 자아의식을 보듬는 존재였지만 더불어 자아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존재로 그 자체만으로도 현대적 삶의 전형을 이루고 있던 것이다.

4장. 유행과 대중문화의 형성

대중문화의 존재는 사회의 지배방식을 뒤바꿔 놓는다. 대중매체의 확산을 통해 문화적 지배를 가능하게 한 대중문화가 역사를 말하지는 않는다. 현대가 시작된 조선 대중문화의 본질은 외래 의존적이며 무저항적이며 감각적이었다. 즐기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패러다임이 없던 조선에 새롭게 등장한 스포츠나 대중문화 형성에 큰 기여를 한 영화 등은 당시의 현대화에 큰 역할을 했다. 1920.30년대의 유행은 주로 상류계층의 일종의 문화적 특권의식에서 시작되어 ‘개성화’의 의미로 시작되었는데 일반대중들에게 유행되면서부터 개성은 사라지고 대중화된 소비 패턴화 되어버린다. 감각적 유행을 좇는 일은 많은 당시대 사람들의 갑론을박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런 논쟁 중 가장 빈번하였던 것이 여성들의 단발에 관한 것이었다. ‘신체발부수지부모’의 관념이 편리성과 현대성을 추구하는 태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준들을 깨고 새로운 가치관을 삼자는 의도를 드러냈으며,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의 단발은 진정한 현대화의 표상이랄 수 있을것이다.

5장. 신식여성의 등장

현대화 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중 하나는 여성들에 관한 것이다. 신여성으로 불리었던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나갔으며, 사회에서도 여성에 대한 배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시대에서 여성의 역할에 주목한다면 기생을 중심으로 한 흐름에도 주의해야 할 정도로 당시 기생의 존재는 여성해방의 새로운 측면에서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시각이 근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대중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새로이 등장한 미디어의 중심에는 기생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대중문화의 핵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 기생들의 이면에는 후에 위안부라 불리 우는 성적노예로 내몰리게 되는 비극적 결말이 예정되어 있었으니 일제 식민시대를 살아야했던 당시 조선여성들은 모던과 함께 열린 새로운 시대를 슬피 떠나보내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6. 도시의 꿈과 도시의 삶

새로운 문물의 도입이 가장 먼저 이뤄진 도시화는 문명화의 척도에 다름없었다.
도시는 점차 현대화의 모습을 띠었지만 그것은 쪼개지고 갈라진 식민도시의 구조를 형성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전되는 도시화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편리함을 느꼈고 점점 도시화를 당연시하며 합리적인 새로운 질서를 도시에서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먼저 도시를 장식한 신식건물과 간판, 거리의 곳곳에 광고가 붙기 시작한 현대적 도시의 풍광은 사람들의 시선을 자극했다. 허나 식민지의 어려운 경제사정은 도시생활문화 자체를 회하 시키기도 하였고 외양적으론 봉건시대보다 나아진 듯 보였으나 일제식민지하의 사람들의 경제 사정만은 이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7. 현대적 인간의 탄생

한 시기의 사회적 변화를 가장 민감히 체득하는 곳은 육체이며, 육체의 변화는 곧 삶의 변화를 의미한다. 192.30년대는 서구적 자유연애의 만연과 일본식 성문화의 유입으로 성과 육체에 대한 상업적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당시의 이런 상업적 풍조는 서구문화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구전통의 패러다임과 충돌하였다. 이와 더불어 서구적 여성의 이미지에 대한 관심 역시 크게 높아져갔으며 이런 성의식과 서구 여성에 대한 이미지와 표현이 일상속에 그대로 적용되어 조선인의 육체뿐 아니라 정서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시각의 서구화가 현대화 과정에서 주요한 특징일수 있지만 서구화가 아니더라도 이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성과 육체에 대한 태도는 곧 인간에 대한 태도이며, 이를 통해 사고의 변화가 촉발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개인적인 느낌 : 불확정 개념인 시대라는 개념을 정확히 집어내는 것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뗀석기를 사용하던 구석기인들이 “내일부턴 신석기가 오니 우리 모두 간석기를 사용하자.”라며 신석기 시대가 하루아침에 도래한 것이 아니듯이, 후세의 사람들이 정의한 선대의 시대간 간극은 어디까지나 당시 사람들의 주관적 관점에 의한 것일 뿐이다. 이는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저자인 김진송씨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시대적 흐름일 수밖에 없었던 개화로 인해 유입된 무수한 서구의 물질, 정신문명으로 인해 근대를 벗어나 현대화로 넘어가게 된 당시. 특히 그 속도가 가속화된 192.30년대의 시기를 현대화의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명확한 현대사회로 정의하고 당대의 많은 사회적 특성들이 오늘 날의 현대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여러 가지 정황과 자료들을 제시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저자는 급격한 서구문명의 유입으로 기존의 봉건가치관이 무너져 사람들의 의식 변화가 일어나면서 현대성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192.30년대를 현대성의 특징을 지닌 시대의 시초로 보고 있다. 또한 저자는 현대성을 사건으로 얼룩직 역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당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밝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사실 192.30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현대란 의미는 자생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닌 타인, 즉 서구열강에 의해 전해진 것이라 초창기의 거부반응이 상당하였으며 그러한 거부반응은 알게 모르게 지금까지도 계속 되오고 있다. 새로움에 대한 충격, 공포와 함께 그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작용한 이중적 태도 속에서 현대성이란 의미는 시간을 지나 오늘 날에 이르렀으며 그러한 우리들의 보편적 심상은 당시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양면적 관점에서 현대성의 문제를 물질과 과학, 지식인, 룸펜과 데카탕, 유행과 대중문화의 형성, 신식여성의 등장, 도시의 꿈과 도시의 삶, 현대적 인간의 탄생 등으로 나누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구한말 당시의 집권세력은 개항 이후 나타날 기득권 박탈의 두려움과 조선의 멸망을 두려워하며 서양 세력의 유입을 막아내기 위해 애썼고, 일반민들 역시 해안에 출몰하는 이양선의 모습에 두려움을 나타냈다. 그것은 그들이 알게 모르게 개항 이후 나타날 미지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해 그들 자신이 겪어야 할 혼란을 은연중에 감지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허나 그러한 우려와 달리 변화를 인지하고 그에 맞춰 대응할 만한 힘을 이미 일반민들은 지니고 있었기에 당시 우리나라의 현대화는 전적으로 외세에 의존한 문물의 유입도 아니요, 문물의 유입으로 인한 사회의 변화 역시 수동적인 변화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현대를 바라보는 눈’이란 제하에 당시의 전반적 사회상을 살피고 있는데 저자는 주로 자유와 평등을 앞세워 감성을 견인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일반대중들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허나 과학이 점차 발전하고 사회가 급속도로 진전 되가면서 대중들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으며, 현대적 물질들을 소유하지 못한 대중들은 그를 소유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주눅 들어야 했던 모순이 발생하기도 했다. 저자는 당시의 과학화가 가져다 준 편리함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당시의 과학화의 부작용, 즉 일반대중들이 느낄 수 있던 물질문명에 대한 소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과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진지하게 살피고 있다.
어느 사회에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고 이끌어나가는 것은 대체로 지식인계층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우리 사회의 지식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당시의 신지식인들은 이른바 일본이나 서구의 나라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조선의 뒤쳐진 문명과 불안한 경제여건 등에서 벗어나 진보된 문명을 받아들이고 시대적 개혁을 통해 국가의 강건을 기원하며 서구의 문화와 철학적 기조를 수용하고 이를 조선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들의 능력을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당시의 변화하는 혼란기를 이끌어갈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허나 그들이 선구적 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은 식민지란 당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현대적 국가의 한 축을 담당하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현대적 자아는 시대적 좌절감에서 비롯된 열등의식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당시의 이런 상황이 지식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퇴영의 길로 인도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당시 대중문화의 특성을 주목하고 있다. 대중매체의 확산을 통해 문화적 지배가 가능하고, 대중매체가 일본에 의해 통제되던 당시의 식민 상황에선 대중문화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하여 현대화가 진행되던 조선에서 대중문화의 본질은 비극적이며 무저항적이고 퇴폐적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새로운 문화의 전파는 필연적으로 새로우면서도 때에 따라선 파격적인 인식을 대중들에게 파급시킨다. 저자는 당시 유교적 억압과 구습에서 벗어나고자 하던 현대화의 여정에서 여성의 변화야말로 가장 두드러진 일대 사건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교육 여건으로 여성의 지위는 점차 상승하였으며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의 등장과 함께 여성에 대한 각종 담론들이 대두되었다. 흔히 신여성이라고 불렀던 이들과 기생들에 의해 보여 진 현대화 시대의 새로운 여성의 모습과 그들이 주장한 남녀평등의 주장이 당시 사람들에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긴 했지만 그와 함께 그들, 여성을 위한 사회의 배려가 싹 틔어졌다는 점에 있어 오늘 날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시대는 분명 현대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과거라 말하는 당시를 살던 사람들에겐 그들의 시간이 현대였을 것이며, 미래의 사람들에게 우리의 현대가 과거사로 인식될 것이다. 이처럼 현대란 개념은 불완전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저자가 주장하였듯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연결고리로써 작용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로 우리의 192.30년대와 오늘 날을 현대화, 즉 현대성이 생겨나기 시작한 초기와 성숙단계로 연결하여 그에 대한 근거를 자신만의 논리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질적일수도 있는 이런 논리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라 여기며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에 대한 감상을 마친다.


아쉬운점 :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아쉬움이었다. 좋은 내용이고 좋은 삽화임에도 불구하고 책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삽화가 자질구레하게 느껴지는 점이 첫 번째 아쉬움이었다. 그러기에 내용의 흐름이 불명확하여 글이 자주 끊어지고 재미가 반감되어, 읽히는 속도가 느렸다. 몇 번 반복해서 읽음으로 흐름을 흐리게나마 찾을 수 있었고, 좋은 내용임을 알 수 있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두 번째 아쉬움은 오늘날의 시각 반영이 적었다는 것이다. 오늘날과 대조, 비교하였더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이고, 읽기 쉬웠으리라는 나의 짧은 생각이다.
그리고 가장 큰 아쉬움은 예전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것, 서양에 의존적인 것 등이다. 내가 예전 사람들에게서 이런 느낌을 가졌듯이, 후세 사람들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고서도 아쉬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아쉬움은 느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것이기에 되도록 이면 최소한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후세 사람들이 나중에 지금 우리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곰곰이 고민해 보아야겠다. (토론주제)
미래에도 지금과 비슷한 여성의 육체가 각광 받을까, 조상들이 우리 것을 너무 쉽게 대하고 함부로 대했다고 투정을 하지는 않을까, 대중 스타에 대한 관심이 많을까, 지식인들의 고민은 계속될까,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얼마만큼 향상될까 등 갑자기 많은 것들이 궁금해진다. 미래에 이 책과 같은 맥락의 책이 나온다면 과연 어떤 내용이며, 어떤 제목일까? 나의 흥미를 가득 채워주지 못한 책이었지만, 나에게 많은 의문을 주고 많은 것을 생각하고 반성하며 비판하게끔 해주었기에 좋은 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토론내용 요약]
수업 일정상 하루에 4개의 발제문을 소화해내야하는 과정중에 하나의 발제문에 대한 토론이었기에 본인의 토론주제에 관한 토론은 없었다.
따라서 본인이 토론주제에 관해 하고싶은 말을 남긴다.
군복무 시절 고려대학교의 역사학과 교수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내용을 짥막하게 요약한다면 "일본의 역사는 50년 마다 바뀐다"라는 것이다. 일본은 역사를 50년 마다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를 왜곡한지 50년이 지나면 항상 우리나라를 침략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정확히 50년 전부터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하였으며 우리나라 명성황후를 시해하며 국권을 침탈 할때에도 정확히 48년 전부터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하였다. 또다시 일본은 1990년대 초반부터 "독도는 일본땅"이 라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여기서 50년을 더해보면 2040년이란 시기가 나오는데...지금 현재 20대 중반이후의 연령대 사람들은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일본인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아이들은 왜곡된 역사를 배우며 자라게 된다. 2040년에 이르러 지금의 어린아이들이 사회의 중심의 축에 서게 될때 쯤에는 그 아이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알고 자라왔으며 왜 대한민국 땅에 속해있냐며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적극성으로 자기의 땅이라고 주장하게 될것이며 결국엔 빼앗기게 될것이다.
우리는 디자이너이다. 물론 여기에 어떻게 관여할 수도 없고, 우리 앞길 헤쳐나가기에도 바쁘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마인드를 다시 한번 각인 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후세 사람들이 우리가 무능력하여 국토를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마음속으로 나마 한번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