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의 속성
물질문화론_채승진_20070212
박동명_0293016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문명의 기본 꼴은 약 1만 년 전에 시작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무렵 인간은 채집과 수렵의 기나긴 유랑 생활을 끝내고 정착하여 농경을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의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자연이 제공하는 것에만 의존하며 살았다. 그래서 자연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지 않았다. 그런데 농경과 더불어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은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만 취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자연에 힘을 가해 자신의 계획대로 소출을 거두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바야흐로 인간은 자연의 굴레에 완전히 복속되어 있던 단계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의 걸음마를 내 딛기 시작한 것이다. 그 비결은 이성의 힘이었다. 자연에 대한 통제와 그 조작을 통한 인간 욕망의 확대, 바로 이것이 이후 전개된 모든 과학적 사고와 기술 발달의 기초가 된 셈이다.
신석기 혁명 덕분에 생겨난 잉여 생산의 중요한 산물이 바로 도시이다. 그전까지 사람들이 노동력은 자기 몸 하나를 생물학적으로 연명해 가는 데 거의 소모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생존을 보장하고도 남는 잉여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따라서 그 여분을 바탕으로 자기가 먹을 것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내신 다른 일에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출현하였다.
바로 여기서 다양한 직능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제, 학자, 정치 권력자, 행정관료, 기술자, 군인 등의 전문 영역들이 생겨나고, 그것들이 점점 긴밀하게 상호 연관되면서 도시의 힘은 점점 커졌다. 그렇게 해서 커진 집단의 힘으로 다른 지역들을 전쟁을 통해 복속시켰고, 그 팽창의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고대 문화의 ‘찬란한’ 유산들이 생성되었다. 이른바 문명이라는 것이 비약적으로 폭발하는 중심에는 도시라는 제도라는 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잉여 생산으로 인해 인간을 노예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대됨에 따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도 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신석기 혁명 이전의 수렵 채취 단계에서는 자원이 공유되었고 협동과 분배라는 가치가 사회의 주된 원리였다. 권위는 상황마다 달리 조성되었고 위신이라는 것도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이에게 주어졌다. 따라서 어떤 절대적인 권력이 생겨날 수 없었다.
그런데 노동혁명과 도시 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인간을 경제적인 도구(노예)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직업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그 사이에 위계적인 권력 구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지배와 불평등의 관계 속에 묶이게 되었다.
간추리자면 문명은 기본적으로 타자를 착취함으로써 구축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착취 대상 중 하나는 자연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다. 기원전 4천~3천년 경 여러 곳에서 출현한 도시, 야금술, 태양력, 문자 등은 그 원리가 집약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이는 이후에 전개된 사회 문화적 진화의 시발점이 되었다. 즉, 그때부터 복잡해진 사회 조직, 급속히 발전하는 지식, 나날이 정교해지는 도구 등이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광범위하게 변화되어 온 것이다. 따라서 문명의 진보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조직화하면서 이뤄진 셈이다.
-포항공대 박이문 교수의 논문 일부 참조

이 같은 내용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무기, 병균, 금속이 어떻게 문명의 불평등을 나았는가)라는 책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는 ‘총, 균, 쇠’ 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인류 문명의 속성을 파헤치고 있다.
기존의 인간들은 수렵채집의 유목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 지역에서 식량과 생활에 필요한 여러 자원을 다 소모하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그런 생활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인간이 가축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함에 따라 정착생활이 가능해 졌다. 농경생활이 열렸던 것이다. 가축이 도입됨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이점에는 먼저 고기를 자체에서 얻을 수 있고 여러 가지 가공을 통해 유제품, 가죽, 비료를 얻을 수 있으며 육상운송, 탈것, 그리고 농기구를 끄는 힘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가축을 농경에 이용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농경생활에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이 다룰 수 있는 가축의 조건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로 몸무게가 45kg이상 나가야 한다. 아마도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농기구나 식량들을 끌거나 옮기기에는 이 무게 이상이여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둘째로는 온순한 성격을 지녀야 한다. 즉 인간에게 겁먹는 버릇이 있어야 한다. 얼룩말이 가축으로 이용되지 못한 까닭에는 여기에 있다. 셋째로 번식이 쉬워야 한다. 번식이 어려우면 그 품종을 오래토록 가축으로 이용하는데 문제가 있다.
이렇게 가축이 도입되어 수렵채집의 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인류의 문명이 변천함에 따라 식량 생산의 경쟁력이 더 커졌다. 야생 먹 거리가 감소하고 작물 화 할 수 있는 야생식물의 증가로 작물 화에 따른 보상이 증가하였으며, 식량생산에 필요한 각종 기술(야생 먹 거리를 채집, 가공, 저장하는 기술)이 발전 하였다. 여기에서 잉여 식량이 발생하고 인구가 증가하고 점차적으로 중앙집권화, 사회의 계층화,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혁신적인 정주 형 사회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구상에서 모든 지역에서 이렇게 문명이 번영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 농경을 시작하고 가장 번성했던 곳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이다. 이곳의 이점은 겨울은 온난 다습하고 여름은 무덥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의 특성을 가졌다. 작물 화 시켰던 야생작물이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았다. 또한 자웅동주 형 ‘제꽃가루받이’ 식물의 비율이 높았다. 더 나아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다른 지중해성 기후의 지역에 대해 갖은 이점은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나 칠레의 지중해성 기후에 비해 넓은 지중해성 기후대를 가져 야생 동식물이 다양했다. 그리고 계절별 연도별 기후의 변화가 아주 커서 한해살이 식물 제배가 가능했다. 또한 짧은 거리 안에서도 고도 및 지형의 변동이 심하여 다양한 동식물 군을 가질 수 있었고 또한 식량의 수확기가 제 각각이 였다. 예를 들자면 다른 지중해 기후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사과를 작물 화 시키지 못한 이유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주어진 야생 동식물 전체의 문제였다. 그 동식물들이 가축화 작물 화에 그다지 유망하지 않아서 북아메리카에서는 식량생산이 늦게 시작 되었다.
적도상의 같은 위도상의 같은 지역이라 할지라도 유라시아지역과 남북아메리카지역의 번영은 차이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유라시아지역은 대륙의 형태가 가로로 넓게 포진 되어있었기 때문에 번영할 지리적 요건을 갖추었으나 남북아메리카 지역은 대륙의 형태가 세로로 넓게 포진 되어있었기 때문에 같은 지리적, 기후적 요건을 가진 지역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번영 속도에 있어 더딘 점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같은 위도상의 지역은 기후가 비슷하여 같은 종의 동식물들이 분포할 확률이 높아 농경사회가 발달 한 곳이 많았지만 이렇게 지역적으로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가축이 이렇게 우리 인류에게 농경생활을 가능케 해주었지만 치명적인 대가로 세균을 선물로 주었다. 세균의 특징은 첫째로, 감염된 한사람에서부터 주변의 다른 사람으로 비교적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퍼져 나간다. 둘째로, 급성 병이므로 단기간에 죽거나 완치된다. 셋째로, 운 좋게 좋은 사람에게는 항체가 형성되어서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 넷째로, 대체로 인간에게만 발생한다. 이런 세균은 주로 동물에게서부터 시작되는데 돌물의 질병이 인간의 질병으로 진화 되는 데는 3가지 단계를 거친다. 첫째로, 애완동물이나 가축에게서 직접 전염되는 수십 가지 질병에서 둘째로, 원래 동물의 병원체였던 세균이 진화하여 사람들 사이에서도 직접 전염되고 셋째로, 원래 동물의 병원체였던 세균이 인간의 병원체로 자리 잡았는데 소멸되지 않아서 앞으로 인간을 죽이는 주요 전염병으로 발전한다.
유라시아의 병원균은 많은 지역의 원주민들을 몰살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반대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있던 풍토병인 말라리아, 콜레라, 황열병 등은 유럽인들이 열대지방을 식민지화 할 때 가장 심한 장애 물이였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가축과 오랜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이 점점 그 세균에 대해 면역 항체를 가지게 되고 그 면역 항체를 가진 사람들은 가지지 않은 민족을 정복할 때 그 세균이 아주 큰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정복을 타개할 때에도 세균이 큰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어떠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침략하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세균이 큰 역할을 하였으며 인류의 문명이 번영하기 쇠퇴하기도 했다.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것에는 ‘쇠(금속)’의 발명을 들 수 있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다시 농경생활의 시작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왜냐하면 잉여식량의 발생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농경생활을 통해 인간은 잉여식량을 비축하게 되었으며 삶이 보다 윤택해 지자 더욱더 윤택해 지길 원했다. 그러한 욕망이 연금술사 같은 과학자(엔지니어)들을 나았고 그러한 엔지니어들에게 일종의 보상으로 잉여식량을 지급함으로 해서 인류에게 ‘쇠(금속)’이 탄생하였다. 이러한 ‘쇠(금속)’의 발명과 함께 과학은 더욱더 발전하게 되었으며 ‘총’이라는 무기가 탄생 하게 되었다. ‘총’은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할 때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 위협적인 소리로 잉카제국의 군대를 혼란에 빠트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말이라는 가축은 공격을 하는데 스피드와 파괴력을 높이는데 힘이 되었으며 유럽에서 온 천연두의 공격으로 잉카제국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쇠(총), 가축(말). 세균(천연두)가 잉카제국의 멸망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에서 포항공대 박이문 교수의 논문의 참고 문에서도 말했듯이 이렇게 인류 문명의 번영은 이렇게 폭력(정복)을 조직화 하면서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참조


농업혁명과 도시 숙가의 문명에서 이야기된 자연의 변화는 약 20여 세기 동안 그렇게 심각하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파괴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분에 국한된 것이었다. 현대의 거대한 공업 문명과 거기에 수반되는 엄청난 자연 개조는 18세기에 불붙기 시작한 산업혁명과 더불어 본격화되었다. 산업혁명은 3가지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이론이 있다. 첫째로 자본 집중설이다. 기존의 유동자본시스템에서 고정자본시스템이 생겨남으로 해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둘째로, 산업 조직설이다. 규율화, 분업화를 통해 대량생산 체제를 구축함으로 인해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셋째로, 기술진보설이다. 증기, 내연, 철강과 같은 기술의 진보가 산업 혁명을 촉진 시켰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이 세 가지 원인이 설득력 있는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농업혁명에 이어 또 한 번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가 전환되었다. 그 이전까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끌어내 이용한 에너지의 80‰는 바람이나 물 또는 가축의 힘처럼 순환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대한 기계 체제가 건설되면서 인간은 화석연료와 같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에 전력투구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유사 이래 처음으로 문명은 자연이 낳는 이자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저축해 온 원금까지 까먹기 시작한 셈이다. 게다가 대량 생산 체제가 급속도로 가동되면서 대기와 수질의 오염, 합성수지라는 썩지 않는 물질의 개발로 인해 생태계에 걷잡을 수 없는 교란이 일어났다.
농경사회에서 인간이 자연에 가한 영향이 산들바람이었다면 산업사회에서의 그것은 폭풍에 비견할 만하다. 이제 자연이 스스로 원래 상태를 회복하는 속도보다 휠 씬 더 빠르게 인간의 자연 파괴가 진행 되기 시작했다.

미국 포드사의 프레드릭 윈슬러 테일러는 작업속도의 향상을 위해 최초로 작업의 분업화를 통하여 노동자들이 단순 작업을 반복하게 함으로 해서 작업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공장에 컨베이어 망을 구축하였다. 아마도 인간공학은 여기서부터 시작 된 것 같다.
그 후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점차 새로운 경영기법과 자본주의 제도의 물결 아래 미국, 영국, 독일 그리고 일본에서 거대 기업이 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국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띈 기업도 출현하게 된다.
오늘날 기업은 창의성을 바탕으로 고도성장을 이끌어냈다가 구조 조정을 통해 대량실업을 유발한 다음에는 부정부패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기업들로 현재 우리의 자본주의 경제 시장은 유동되고 있다.

-양동휴, 송승철, 유혜준의 ‘산업혁명과 기계문명’, 존 미클스웨이트, 에이드리언 올드리지의 ‘기업의 역사’ 참조

산업 혁명을 계기로 이룩된 물질문명이 인류의 생활에 편리를 가져다주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철학을 가지지 않은 과학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목표를 상실한 채 제멋대로 놀아나, 인류복지에 이바지하기는커녕 대량 살상의 전쟁 무기를 출현시켰고, 또 천연 자원의 고갈과 함께 각종 공해를 낳아 인류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진보가 인간의 번영을 의미하고 인간의 번영이 생리학적 욕망 충족에 있다면 문명은 진보해 왔고 앞으로 더욱 계속될 듯싶다.
생리학적 욕망은 물질적 욕망을 뜻하고 그러한 시각에서 본 진보는 물질문명의 진보를 뜻한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서 진보의 첨단에 이르고 있는 현대와 이런 측면에서 가속적으로 발달될 앞으로의 삶의 양식과 상황, 즉 문명을 반성하고 상상해볼 때 진보의 잣대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가 절실히 필요하게 된다. 무제한적 물질문명의 발전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물질문명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인류의 번영으로만 믿어 왔던 물질적 풍요과 편의가 결과적으로 생태계의 파괴, 자연의 죽음만이 아니라 인류의 존속까지를 위협하게 된 상황에 이르렀다. 현대문명은 자멸의 길을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는 듯싶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자연의 무절제한 정복과 물질적 충족은 결코 참다운 인류의 번영을 지칭하는 진보의 척도일 수 없다.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빵만의 만족은 무한히 공허하다. 의미는 정신적 속성이다. 정신적 삶이 있을 때만 인간다운 삶이 있고, 정신적 번영을 동반하지 않는 물질적 번영은 참된 진보일 수 없다. 문명과 역사의 진보를 측정하는 궁극적 잣대는 정신적, 더 정확히 말해서 '도덕적' 가치이다. 이런 점에서 근대 이후의 문명이 그 이전에 비추어 진보했는지 의심스럽다.
과학의 발달은 합리적. 실용적 사고방식을 보급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물을 대할 때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만 이용하려는 공리적 사고를 성행시킨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따라서 오늘날의 물질문명의 결함을 보완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첫째, 과학이 잃어버렸던 철학을 되찾을 것, 그리하여 인류의 미래에 대한 위대한 비전을 가지고 고삐 풀린 과학, 즉 과학을 위한 과학을 인류를 위한 과학으로 통제하도록 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뜨거운 인류애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정신문화를 일으켜 물질문명 사이에 균형을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 이성과 합리적 사고 또는 능률과 실용성 추구 대신, 감정의 존중과 심정의 풍요로움을 지니면서 비실용성을 본질로 하고 그 자체에 존재 의의를 내포하는 유희나 예술을 북돋워 나가야 한다.
현대의 여러 직장에서 각자가 맡은 일을 기계의 부품처럼 해 가고 있는 인간들, 각 부품이 망가지면 새 부품으로 교환되듯이 그 사람이 병들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는 현대 사회의 매카니즘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해 나가고 인생 그 자체의 의의를 주장하려면, 위에서 말한 철학이 있고 정신문화가 있는 사회의 전설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