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문예출판사_초판 1 쇄 1992년 2월 15일_이한우 옮김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20070222
송은주_0493060

“집단은 왜 이기적이 되는가" 파헤쳐.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윤리와 정치에 관한 연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이 책이 출판된 1932년은 대공황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강타한 시기였다. 19세기부터 급속히 확산된 미국 자본주의가 최초로 경험한 심각한 위기였다. 이 책은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동요를 배경으로 집필 되었고, 니버는 개인 윤리와 사회 윤리를 구분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1. 인간과 사회_ 어울려 사는 법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다. 따라서 사회는 인간 생활에 있어 필수적이며 사람들이 얻고자 하는 필요를 채워 준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은 자연을 정복하고 관리함으로 얻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분배와 소유의 불균형이 발생하고, 그 불균형에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인 모순과 계급이 형성된다.
인간 상호간의 이기심과 사회간의 불균형을 조정하여 최소화 하려고 소위 정치라는 것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기 이익과 욕망을 앞세우려는 경향 때문에 항상 강제력이 뒤따른다. 18세기에 시작된 민주주의는 국가 사회의 응집력으로 이러한 불균형을 다소 극복하기는 하나, 민주주의가 모든 사회적인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앞으로 오는 세기적인 관심은 완전한 평화와 정의가 있는 사회가 아니라, 충분한 정의는 있되, 강제적인 힘이 폭력으로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2. 사회 생활을 위한 개인의 합리적 자원
사회를 이루고 사는 인간은 그 집단 안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고 한다. 이러한 이익이 서로 대립되거나 충돌하면서 사회는 부도덕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고, 그 이성의 힘은 합리적이여서 개인의 정의에 이바지 함은 물론, 사회 전반의 모순을 심판하기도 한다. 비합리적인 사회는 불의를 수용하게 되는데, 이성적인 합리성은 사회 안에 모든 충돌을 억제하는 힘을 가진다. 하지만 이 이성의 합리성에도 한계가 있다. 즉 개인에게 정의를 실현하려는 도덕적인 의지가 있을지라도, 그것은 자기 생존 의지보다 약하다. 더구나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그 기득권을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수단으로 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를 이루는 집단의 단위가 크면 클수록 공동의 지성과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즉 가족 사회보다는 국가 사회가 더욱 어렵고, 국가 사회보다는 국제 사회가 더더욱 공동의 선을 이루기가 어렵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인 능력을 배양하고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개인의 도덕적인 능력이 곧 사회정의의 기초적인 힘이 되기 때문이다.

3. 사회 생활을 위한 개인의 종교적 자원
개인의 도덕적 능력을 발달시킴으로써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려 한다면, 종교의 신적인 영향력으로 개인의 도덕적 능력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 자기가 신봉하는 절대자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사랑과 정의로 나타난다. 이성적인 윤리는 정의를 목적으로 하고, 종교의 윤리는 사랑을 이상으로 삼는다. 절대자에 대한 순종과 경배정신은 곧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며, 이 사랑의 실천적인 노력과 의지가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결국 종교가 사회 정의의 도구가 되고 영감이 되기까지는 많은 과제가 있겠지만, 올바른 사회에 대한 희망에는 언제나 종교적인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공동생활에서 개인적인 이상들을 실현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4. 여러 민족의 도덕성
집단의 윤리는 개인의 것만큼 윤리적일 수 없다. 국가는 모든 인간의 결합체 중에서 가장 절대권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의 감정과 국가의 권위에 의해서 응집력을 공급 받는다. 국제사회에서 이러한 국가 간의 윤리는 자국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나 민족의 문제는 자국의 이익보다 덜 중요하게 취급된다. 각 나라에는 대게 영리하고, 국제 정의를 주장하는 소수의 인재들이 있다. 이들은 인도주의의 입장에서 국제 정의를 주장하며 자국의 비 도덕성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마다 이런 건전한 비판을 잘 수용하지 못하고, 충성심 없는 반항으로 간주하려 한다.
국가는 약간의 국제적인 공헌을 함으로서 자국의 위선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국제 연맹은 국가들 사이에 이해의 상충을 조절하게 하고, 상호 공평한 입장을 취하도록 조정하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국가 간의 현상 유지의 기초 위에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도, 완전한 국제 정의를 실현 할 수 있는 어떠한 증거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5. 특권 계급의 윤리적 태도
한 나라 안에는 경제적 및 사회적으로 특권 계층이 존재 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수단에 능력에 따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이다. 또한, 정치적인 입지에 따라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으로도 나뉜다. 이러한 계층으로 인하여 불 균등한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들 특권 계급의 도덕적인 특성은 자만과 위선이다. 이들은 사회 전체의 복리에 어떤 공헌을 하거나 유용하다고 스스로 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의 지적인 적합성을 주장하는 한편 도덕적인 우월성을 이용하여 이권을 정당화 한다.
특권 계층의 부도덕성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것은 프로레타리아 계급이다. 때문에 프로레타리아 계급은 종종 특권계급에게 반발을 하게 되고, 특권계급은 자기들의 이익과 주장을 보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계급적 특성에서 솟아난 사회의 부정이 도덕적인 설득에 의해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6.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윤리적 태도
기술 문명의 발달하기 이전의 과거 사회는, 불평등한 사회로 인해 희생당한 사람들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부정을 자행해 왔다. 그러나 기술 문명의 대두는 소유 형태의 기구와 대량 생산의 기술에 의한 산업 관계에 있어 인간관계를 애매하게 만들었다. 즉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사회적 정치적 입지가 넓어짐으로 인해 프로레타리아 계급의 자기도 자기 태도를 사회에 반영하게 되었다.
모든 역사는 인간의 품성과 비인격적인 운명과의 투쟁의 연속이다. 이 투쟁에서 기독교는 종국적으로 하나님이 승리할 것이라고 하고, 평등사회를 표방하는 마르크스 주의는 경제력을 통하여 약한 것이 강해짐으로써 정의가 확립될 것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사회가 직면한 문제는 사회 안에서 보존할 가치는 보전하면서도, 권력을 남용하는 부정은 저지르지 않으며, 사회 안에 있는 악을 어떻게 제거할 지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무산자의 의식은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

8.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도덕 사이의 갈등
개인도덕과 사회도덕 사이에는 상호 모순이 있게 마련이다. 이는 윤리학과 정치학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개인의 도덕적인 기준은 무사성에 근거한 자기 인격의 완성인 반면, 사회도덕의 목적은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개인 도덕은 종교에 의해서 더욱 발전해 왔는데 이는 종교가 선한 동기를 선행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순수한 종교적인 이상주의는 사회문제와 충돌하지 않는다. 이는 예수님의 행적에서도 증명된다. 어떠한 형태에 대해서도 무저항적이며 양보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개인 도덕의 뿌리가 되는 종교적인 이상주의는, 집단적인 도덕의 근거가 되는 정치적인 견지에서 보면 실현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두 입장을 서로 인정하는 이원론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격적, 도덕적 이상주의가 위선이라고 규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집단적인 도덕이 만용을 부리는 시대일 수록, 도덕적 이상주의가 사치가 아니라 추구해야 할 과제이다. 우리는 하늘에 이르는 개인의 사다리를 놓고 사회를 부패와 무절제로부터 구출해야 한다. 이 구출 작업에 선봉자들은 낡은 환상들을 해로운 환상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들의 미래지향적 환상은 인류의 집단 생활이 완전히 정의를 실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환상들이 세속에 의해 파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야 할 것이다.

요약하면,
이 책에서 니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존재가 될 수 있으나 일단 집단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경우에 그 집단-사회나 국가-의 개인은 비도덕적으로 쏠리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집단이나 국가집단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부도덕도 감행한다는 것이다.
한편, 한 국가나 사회집단의 비도덕성은 개인의 윤리적 기준(이성)에 의해 해결 될 수 없기 때문에 폭력이나 비폭력적인 강제력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나 이러한 해결책은 또 다른 집단의 비도덕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종교적인 요소(사랑)가 결부되어야 한다고 필자는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의 도덕과 사회적인 도덕이 양립하는 방향에서 상호 조화를 이루며, 개인의 내면적인 이상이 실현되고 아울러 사회의 정의도 실현되는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 토의

비도덕적인 사회가 도덕적인 인간에게 어느 정도의 구속력과 강제력을 행사해도 된다고 생각하세요?

!!) 토의 요약

- 비도덕적 사회와 더불어 비효율적인 사회를 생각해 보았다. 그 예로, 인적이 드문 곳에 세워진 신호등이
있었다.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의 신호등은 불필요한 정차로 인해 연료를 소모하고, 전력을 낭비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새로운 장치를 고안하여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과 더불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적은 가능성으로 인해
어쩔수 없이 신호를 지킬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결론이였다.

- 가족의 이익만을 위해서 당황스러운 모습도 서슴치 않는 우리시대의 아줌마를 생각해 보았다. 여자는 선하나 아줌마는 악하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자주 들으며 살아왔고, 또 일상생활에서 실감하고 있다. 마트에서 세일하는 제품을 사기 위해서 마구 달려가 사람들을 비집고 결국 구입하는 아줌마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여길 것인가? 어느 누구도 그녀들에 대한 비판을 할 수는 없다. 눈살을 찌푸리는 광경을 연출하기는 하나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진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행동이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란 의견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지나친 투자를 하는 부모도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며 노력하는 행복이기는 하나, 결국 자신이 희생한 가족구성원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스스로가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을 위한 행복이라는 것이였다.

- 니버는 도덕적인 개인이 사회구성원의 일부가 되었을때 비도덕해 지는 숙명때문에, 종교적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종교적인 양태를 보면, 종교 또한 한 집단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집단 역시 비도덕적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종교는 여러사람이 구성된 집합체이기는 하나
그 조직의 목적이 이타적이며 사랑을 추구하는 집단이므로 사회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권력을 행사하려는 구조의 확장이 아니라, 순수한 동기를 가진 사람들의 전도로 인해 확장되는 것임으로 비도덕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 마지막으로 사회가치가 다른 집단에서의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의 판단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물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도덕적 인간의 척도는 다를 것이다. 니버도 책에서 인터뷰를 통해 이부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지만, 전반적인 내용에서 포괄적인 도덕, 즉 자애심 혹은 이타심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므로 각 사회의 법에 의해 구체화 시킨 도덕으로 간주 하지는 않았다.

결국 도덕적인간이 살고있는 비도덕적인 사회는 그 사회의 최초의 본질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사회는 절대적인 관점에서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