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휴, 송승철, 윤혜준_산업혁명과 기계문명_서울대학교출판사_1997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07/02/06
김화진 0393071

1. 머리말
산업혁명의 혁명성에 대한 규명에 기초하여, 그것의 감각적․사상적 반응의 주된 흐름을 파악하되, 논의의 초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최초로 산업혁명을 완수한 영국의 경우에 한정시켜 알아본다. 먼저 산업혁명의 경제사적 의에서의 혁명성을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산업혁명에 대한 재현이라는 문화사 및 문학사적 단계로 넘어간 후, 산업혁명과 기계문명에 대한 총체적 평가를 도모하기 위하여 그 사상사적 파장을 탐색하되, 먼저 기계에 관련된 담론을 중심으로 살펴본 후, 산업사회에 대한 독특한 이론적 비판의 맥인 ‘문화와 사회’ 전통을 검토함으로써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인문적 전통을 조감해 본다.

2. 산업혁명
정의의 문제
산업혁명이 어떠한 면에서 본질적인 단절이었는가를 설명하는 많은 학설이 있는데,
토인비의 ‘사회적 변화설’은 경쟁시장의 성립을 중시하여 재화와 용역의 생산 및 분배, 또한 생산요소들의 배분이 시장기구에 의해 운행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
마르크스, 망투의 ‘산업조직설’은 구래의 기능공 중심 또는 선대제 생산으로부터 공장제 대량생산으로 전환한 것이 가장 혁신적이 것이며, 유동자본보다 고정자본의 비중이 커지고 산업노동자계층이 형성되는 것을 이러한 과정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랑데스를 중심으로 하는 ‘기술진보설’은 석탄을 비롯한 에너지 사용에서의 혁신, 각종 기계의 발달, 합성원자재의 등장 그리고 공장생산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복잡한 기술진보를 산업혁명의 본질로 평가하고 있다.
쿠즈네츠, 로스토우류의 수량경제사가들은 ‘거시경제설’이라 하여 국민소득, 자본형성, 노동공급의 양적 성장이 급속히 가속된 것을 산업혁명으로 이해한다.
가장 포괄적인 정의는 퍼킨의 ‘인간의 생활 수단에 대한 접근방법의 혁명’이라 할 수 있
있는데, 이는 인간이 생태적 환경을 통제하는 데에서, 자연의 독재와 인색함으로부터 도피하는 능력에 있어서의 혁명이라고 규정한다.

성장률 및 생산성 추계
최신추계에 의하면 성장률이 전반적으로 낮고 소비수준 증가나 생산성 향상의 정도가 낮았을 것이다. 1760년 이전에 이미 상당한 정도의 농업 생산 증가가 있었고 성장률 향상의 정도가 완만하게 진행되었고 또 성장률도 연 2%정도로 지속적이 된 것은 1820년대 이후에나 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와 같은 추계는 산업혁명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률에 있어서의 혁명성 보다는 제한적․점진적 성장 가운데 경제사회의 구조적인 변화, 공업화, 도시화, 국제경제 내에서의 역할 급변 등의 혁명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산업혁명의 원인
산업혁명의 원인을 구명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이며 백과전서적 접근으로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Hartwell 1975). 그렇다면 산업혁명의 원인이라는 문제는 왜 프랑스나 네덜란드가 아니고 영국인가라는 식으로 질문의 형태를 바꾸어 묻는 쪽이 가장 적절한 접근이다. 영국의18세기 당시 자연자원 풍부, 섬나라의 이점, 전쟁에 의한 파괴로부터 제외됨, 타고난 국민성 등등
장자상속제_대토지 소유에 의해 새로운 영농기술의 도입이 가능, 차남 이후는 새로운 경영계층에 참여(Landes 1969)
토지재산에 기반을 둔 열린 귀족제_물질적 부와 정치적 권력이 밀접히 연결(Perkin1969) 사유재산권을 보호, 기업행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
이 밖에도 정부보조가 없이도 도로, 운하 등의 정비로 일찍 국내시장이 통일.
소발명에 비교우위_영국이 교육이나 과학에서 앞서지는 않았지만 숙련공, 기능공들의 층이 두텁고 이들의 교류가 활발하였음. 여러 가지 특이점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비1차 산업 생산성과 1차 산업 생산성의 차이가 영국의 경우 유렵 평균과 비교하여 산업혁명 기간에 급속히 줄어들어 소멸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산업간 자원의 이동성이 영국에서 한결 높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자본 조달
이전까지의 통설은 새로운 회사들의 초기자본, 또는 기존기업의 확장에 필요한 자금수요가 그다지 크지 않아 외부자본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가족, 친지의 도움이나 이윤재투자 등으로 충분히 자본을 조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금융혁명을 중시하고 새로운 기업의 진입으로 인해 고정자본 비율이 상승했다는 추계가 나오면서 전통설에 반박하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아직 확실한 근거를 가진 주장은 없는 것 같다.

노동공급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이 탄력적으로 공급되어야 공업화가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것이 고전적이 해석이었으나, 산업혁명 당시 노동시장은 지리적․계층적․직종별로 분할되어 있었기 때문에 논리적이지 못하다. 노동문제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인 문제로 귀착되고 그것은 작업장 노동, 선대제 노동에서 시간관념과 규율이 강제되는 근대적 공장노동으로의 변화를 고찰하는 것이 중요함을 의미한다.


공장제와 가정경제 변모
선대제의 가장 큰 약점은 노동 통제에 있어서의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기계화 자체라기보다 규율이요, 노동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조직으로서 공장제의 본질을 찾을 수 있겠다. 그것의 궁극적 성패는 기술진보가 동반되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고 단기간에 갑작스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것이다. 그 전까지 사람들은 시간관념과 규율이 없는 자유스러운 노동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공장제는 기술의 특성상 단시간에 습득 가능하고 단순하였으며 강한 체력을 요구하지 않는 면이 있었기 때문에 여성, 아동, 부랑자 등 한계적 노동에 많이 의존하였다. 그러던 것이 19세기가 되면서 기계가 커지고 중량이 늘어나면서 성년 노동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임노동으로의 고용 전환을 가져왔다. 특히 1830년대에는 아동노동에 입법적 규제가 가해지면서 연소자 비율이 낮아졌다. 그리고 공장규율과 정확성에 단련된 새로운 세대가 성년층에 도달하면서 공장제의 작업방식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공동체보다 친족에 감정적으로 더 가까워져 핵가족이 대두하게 된다. 이는 도시 성격에 따라 공장노동자나 가내하녀 등 달라질 수 있지만, 기혼녀를 비롯한 여성의 노동참여가 높아진 것도 그 영향이라 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일터가 분리되고 임금노동이 증가하면서 가족들간의 유대가 소원해지고 가부장의 권위가 약화되는 모습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것에 가까운 이론이 프로토 공업화론(proto-industrialization)이다. 이것은 농촌수공업을 공업화의 첫 단계로 보면서 바로 이 프로토 공업화 지대에서 봉건질서가 해체되고 지역별 생산 특화가 이루어졌으며 가족내 분업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자본형성의 원천은 매우 다양했고 노동공급 또한 프로토 공업화 지대 이외 지역에서 더욱 많았다는 반론이 있다.
다양한 논쟁 사이에서 산업혁명으로 공장제로의 변화와 가족제도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동노동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던 시기에는 자녀들을 소비재가 아닌 생산 참여 가능한 투자재로 간주하는 관습적 측면이 팽배했다. 그래서 수공업경제나 가내 공업에서도 아동노동은 필수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장제가 이루어지면서 예전에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 다양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단조롭고 불유쾌한 생활양식이 강제되어 연소자들의 질병과 재해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런 것을 보호할 제도적, 사상적 장치가 없었는데 1819년 <면직 공장 규법>과 1833년 공장법이 제정되면서 근대적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첫 단계가 되고 그에 따라 연소노동자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생활수준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었는지, 아니면 악화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다. 전통적인 지표로 실질임금, 소비수준, 주거 등이 있다. 감자, 차, 설탕 등의 소비가 증가했으나 밀빵, 육류, 맥주 등의 섭취가 감소하였다. 그리고 주택은 개선되었으나 상하수도 설비가 없었고 공중 위생이 열악하여 전염병이 만연하였다. 특히 공장 지역은 위생조건이 극악해 평균 수명이 20세 이하였다는 추계도 있다. 순 영양상태를 간접적으로 나타내주는 평균신장은 1760년에서 1820년 사이에 향상되었으나 그 이후 반세기 가량은 악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즉 1820년 이후 실질임금이 향상되었다면 이는 신체적 희생의 대가라는 것이다. 더구나 소득분배의 변화로 상대적 빈곤감이 더 커졌을 것이다. 그러나 산업혁명기의 생활수준 논쟁의 결과는 실질임금수준, 소비수준, 건강상태 어느 척도로 보더라도 낙관론으로 결정 내리기는 어렵다.

3. 산업혁명의 재현
1804년 근대적 의미의 철도인 증기기관차의 출현 이후로, 철도위로 질주하는 증기기관이 당대의 영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정치경제학적으로는 물론 전 분야에 걸쳐 막대한 것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산업혁명으로 인한 새로운 변화의 모습을 가장 총체적으로 드러내 주는 것은 ‘공장도시’들이었다. 공장도시들이란 대규모 상품 제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맨체스터 등의 신흥도시들이란 점에서 특이했는데, 증기기관과 철도 등의 새로운 기계적 발견들이 산업혁명의 혁명적인 새로움을 집약한 상징물들이었다면, 산업도시는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의 총체적 변화의 공간적 표현이었다. 하지만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나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한 관망자들에게 검은 연기에 휩싸인 공장도시들은 비인간적이고 비자연적인 재난의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여러 가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공장도시의 재현은 그것을 자연과의 대조,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하나의 비자연적인 새로운 자연으로 비유하는 형식을 취한다. 마치 새로운 기계문명의 힘으로 창조되는 제2의 자연을 인간언어의 힘으로 다시 자연화 시키려는 듯이 보인다. 문학인이나 관찰자들은 공장도시의 기계적 근대성이 배제 또는 억압하려는 원초적 자연을 다시 불러내려는 충동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언어적 재현은 산업혁명의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으나, 동시에 비유적 변형을 통해 현상의 처절함을 왜곡할 수도 있다.
산업혁명의 기계화에 의해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무력화되고, 폐기되므로, 노동자들은 집단적․사회적 주체로 부상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에 태동한 기계적 인식과 기계적 이상들은 바로 기계에 의한 인간의 제어에 대한 염원의 표출이기도 하다. 그 염원은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탈산업화와 생산 자동화를 통해서 드디어 전면적으로 ‘노동의 종말’에 대한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4. 기계의 철학과 기계문명의 이상
산업혁명은 그것의 감각적 재현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산업자본주의에 대해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보다 논리적인 담론체계를 만들어냈다. ‘산업주의’라고 통칭할 수 있는 이 담론은, 한편으로 산업혁명에 대한 특정한 감각적 재현의 입장에서 출발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사회, 인간, 역사에 대한 일반론으로 추상화하면서 특정방향으로 사회의 변화를 옹호하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다. 또, 산업혁명의 자비와 축복은 인간을 열등한 기계의 부품으로 변화시키는 비인간화를 수반한다.
산업혁명에 대한 다양한 역사철학적 평가는 한편으로는 산업혁명의 혁명적 진보성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 이전의 역사에 대한 복고적 이상화라는 두 극단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유어는 ‘제조의 철학 또는 대브리튼 공장체제의 과학적.도덕적.상업적 경제의 해설’이라는 책에서, 기계화와 산업자본주의의 영웅적인 혁명성에 반대하며,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재앙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쌩씨몽은 기계문명에 대한 이상주의의 기초는 산업혁명이 보여주는 과학의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유어에게 과학이 노동자들을 길들이고자 하는 자본의 동원된 힘이었다면, 쌩씨몽에게는 과학이 자본가에게 이로울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는 전 인류적인 보편성을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쌩씨몽은 사회를 귀족, 금융 부르주아지, 산업계급으로 삼등분 했다. 쌩씨몽의 이상주의는 산업혁명의 과학기수혁명이 갖는 진보성에대한 신뢰로 요약될 수 있는데, 그러나 이 신뢰는 산업혁명의 사회적, 도적적 폐해에 대한 묵인에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인 의미에서 쌩씨몽적인 ‘산업의 지도자’로 사회적 책임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려 한 사람이 있다면,
로버트 오웬을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산업의 수장이면서도 산업의 노예들도 산업혁명의 진보의 혜택을 받도록 했다.
공리주의의 기계적 사회인식 오웬주의와 공리주의의 결합을 보여주는 사회개조의 실제 모습은 제임스 버킹엄이 제안한 빅토리아라는 가상의 모범도시에서 볼 수 있다. 버킹엄이 산업도시의 사회적 및 환경적 폐해를 해소할 방안으로 제시하는 이 모범도시 계획에는, 8시간 노동을 일괄적으로 실시하고 아이들 및 여성들의 노동을 규제하고, 공공위생을 극대화하는 등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생각들이 담겨있었다. 한편, 벤담은 그의 기계적 사회관을 특징적으로 대변하는 파노티콘 모형을 제시하였지만, 그것의 내적 모순도 만만치 않았다.
맬서스는 인간사회가 인구문제라는 영원한 제어장치에 걸려있는 숙명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강력한 괴물’이라 칭한 민중은 종족의 번식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정치적 세력으로 조직화하고 사회의 변화를 도모해왔다. 산업혁명이 개시한 이 괴물의 끝없는 창조 및 동시에 그 괴물과의 끝없는 싸움이라는 모순적 전개는 근대성의 가장 근본적인 축을 이룬다.

5. 산업사회에 대한 인문적 대응 -‘문화와 사회’ 전통
문화와 사회의 전통이 하나의 ‘사실’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윌리엄즈가 1957년 ‘문화와 사회’를 발표한 이후부터이다. 이 전통은 에드먼드 버크에서 출발해서 낭만주의를 거쳐 심화되고 칼라일, 러스킨, 모리스 등 빅토리아조의 사상가들에 의해 확립되며, 20세기에 T.S. 엘리엇과 F.R. 리비스를 거쳐 사회주의적 전통과 접목되는데, 이 전통의 특징은 문화개념의 ‘추상화’와 ‘절대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전통에 속한 지식인들은 문화 개념을 일상의 영역에서 분리시킴으로써, 문화 개념에 한편으로는 산업화가 가져온 사회적 변화의 의미를 읽어내는 ‘판단의 대법관’의 역할을,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페해를 고발하고 완화하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다. 즉, 문화는 산업화 이후 계급적 이해관계에 의해 파편화되지 않은, 동시에 삶의 전체적 모습을 유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대안적 전망을 제시하는 인식의 틀이 되는 것이다.
문화는 미증유의 사회적 변화에 지식인들이 능동적으로 대응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윌리엄즈의 주장은 톰슨에 오면 더욱 강조된다. 톰슨은 계급이란 구조나 범주처럼 역사를 결정하는 고정 개념일 수 없으며, 인간관계에서 주체와 구조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일어나는 역사적 과정으로 이해한다.

6. 맺음말
근대사회의 형성에 큰 의미를 갖는 산업혁명이 과연 ‘혁명적’이었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산업혁명은 오늘날 우리의 삶의 기본구조를 만들어 내었다. 20세기 말에 이른 오늘날의 시점에서 산업혁명과 산업자본주의, 그리고 그것이 낳은 모든 사회적, 문화적, 사상적 산물들은 여러 가지의 후기 산업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삶의 기본틀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사회와 그 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 및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고, 최초로 산업혁명을 겪은 영국의 상황을 개괄하고 그 목소리를 다시 들어본다면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1. 책을 읽고 : 산업혁명의 원인과 과정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려주지 못하는 답답함을 다소 느꼈다.
2. 토의 주제: 산업혁명이 과연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