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권력 SWEETNESS AND POWER
시드니 민츠 지음 | 김문호 옮김 | 지호 출판 | 384p | 국외1985, 국내1998
물질문화론 | 지도교수 채승진 | 2006.02.06
물질문명3 0393058 황금진


+ 목 차
서장_현대사에서 설탕의 지위
설탕의 역사로 들어가면서
설탕을 얻기 위한 대가
가난한 것도 전통이다
농업이 아니라 산업이다
역사 인류학이어야 하는 이유

1장_음식과 사회성, 그리고 설탕
단맛에 길들여진다는 것
사람들이 먹는 것들의 전통은 어떻게 바뀌었는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단맛을 좋아한다

2장_설탕과 자본주의
아버지 사탕수수와 아들 사탕수수
유럽을 단맛에 길들은 것은 아랍
옛세계에서 신세계로
설탕의 위치가 곧 국가의 미래
설탕 농장은 벤처사업
설탕의 가치는 담배의 두 배
온 영국인이 설탕에 푹 빠져 버리다
가장 중요한 거래 품목은 노예
대중을 위한 설탕 시장 등장
제일 중요한 관건은 시간 계획
자본주의에 대한 본능
자본주의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새로운 소비 습관으로 길들이기
노예제도가 무너진 뒤엔 채찍 대신 배고픔이
설탕, 수백만 명의 노예들을 움직이는 힘

3장_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설탕을 맛보기 시작했을 때의 식탁 위는 어땠을까
처음에는 향신료와 의약품으로
왕족이나 귀족만 살 수 있는 호사품
양념으로서의 역할
권력과 권위의 상징인 “솜씨음식”
인간이 가진 과시 욕구
설탕은 확실한 만병통치약
사람들이 선망하는 설탕을 먹어치운다는 것은
여성이야말로 설탕의 수호자들
술 대신 달콤한 설탕을 탄 차를
차의 성공은 곧 설탕의 성공
이제 노동자들도 차를 마신다
말수가 적은 영국인에겐 차가 제격이야
점점 유명해지고 가정적이 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설탕
달콤한 음식들은 디저트로 자리를 잡다
차, 커피, 초콜릿
차를 마시는 티 타임
가장에게는 고기를,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설탕을
설탕을 소비하는 사람들

4장_설탕과 권력
설탕에 깃들어 있는 상징적 의미들
설탕에 부여한 역사적 의미
아메리카를 넘어서는 발전
소비와 시장의 기대 이상의 변화
설탕으로 권력을 행사한 사람들
설탕을 통해 본 영국의 지배 계급들
그 기원을 밝힌다는 것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다
대신 거기에서 얻은 위로들

5장_먹는 것과 사는 것
프랑스인들의 설탕 체험
전통적인 소비와 현대적인 소비
가정 소비는 줄었지만 산업 소비는 늘었다
“식사”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먹는 것의 뜻도 변한다
맛이 아니라 느낌이다
진보라는 이데올로기


+요약
권력에 의해 휘둘렸던 설탕의 단맛 뒤에 공존하였던 달지만은 않은 역사적, 인류학적 배경을 보여준다.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설탕은 희소성의 가치로 인하여 특권층을 일반인들과 구분하게 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카리브지역 식민지에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거래되는 수많은 노예와 농장주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노예들은 생을 연맹하기 위해 사탕수수를 씹고, 농장주들은 더 많은 부를 위해 사탕수수로 설탕을 만들어 자국에 공급하고 다른 나라로 수출한다. 설탕에 환장하는 영국인들에게 초기의 설탕은 부의 상징이었다. 향신료, 의약품, 호사품(장식품, 솜씨음식)의 모습으로 등장했던 설탕은 열량이 높아 하층민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있으며, 점차 그 가격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점점 노동자 계층까지도 소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에게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리고 상위계층의 생활모습을 따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욕구도 설탕 소비의 증가에 한 몫 하였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식민지에서 들여오는 차를 마심으로 설탕의 성공은 더욱더 가속화 되고, 관세폐지로 가격하락이 소비를 촉진, 누구나 더 많은 설탕을 먹고 싶어 함으로 안정된 설탕가격으로 이제 설탕은 음식의 재료로서 소비가 이뤄지고, 사회생활로 집 밖에서 식사를 할 수 밖에 없는 생활상에 맞추어 저장, 보존능력이 탁월한 설탕은 가공식품의 증가로 이어졌다. 가정뿐만 아니라 공장들에서 소비하는 설탕은 실로 엄청났다. 이것은 식사의 의미 또한 변화시켰다.

자본주의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설탕의 공급과 소비, 가혹하게 착취당한 노예들의 모습에서 유럽의 화려한 문명의 그림자에는 권력에 의해 희생되어지는 동양과 남미 식민지가 존재했었다.

드러나는 것만으로 설탕의 과거를 알 수 없고, 그 시대의 사회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과 생활상을 이해하여야 즉, 인류학적으로 바라봐야 비로소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논점
설탕이 이토록 널리 퍼지고 중독된 이유는?
설탕 Vs 석유_일하는 사람 따로 있고 목돈 쥐는 사람 따로 있다

+본문내용
영국인들의 설탕 거래의 변화 추이를 살펴보면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지중해 선원들로부터 미미한 양의 설탕을 사들이는 것에서 시작하여, 점차 독자적으로 보다 많은 양의 설탕을 수입해 들이면서 포르투갈로부터 상당량을 사들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서양 제도에서 생산된 것을 사들이다가 나중엔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것을 수입하였으나 잉글랜드 바깥에서 정제된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설탕 식민지들을 건설하였다. 처음에는 자국에 설탕을 공급하다가, 다음으로는 소비자들을 놓고 포르투갈과 경쟁을 벌였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들만 소비를 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제소에서 완성된 설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면 거의 필연적인 과정을 거쳤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그런 변화의 과정들은 제국이 외적으로 확장되는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온 국민이 설탕의 소비로 빠져들게 된 것, 즉 설탕에 푹빠져 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차와 마찬가지로 설탕은 영국인의 “성격”을 대변하는 게 되어 버렸다. p103

자본주의를 연구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본주의 자체는 18세기 말엽부터 주류를 이루는 경제형태가 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생은 그 이전의 경제 체제(특히 유럽 봉건주의)의 파괴와 세계 무역 체제의 생성을 수반하였다. 자본주의의 발생은 또한 식민지들의 건설, 세계 여러 지역들에서의 실험적인 경제 기업들의 설립, 신세계에서 노예 노동에 기초한 새로운 생산 형태의 발전 등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수입한 노예들을 이용한 것이 아마도 유럽의 경제적 발전에 가장 큰 외형적 공헌이 되었을 것이다. 카리브 지역의 농장들이 바로 이런 과정의 핵심으로서, 이런 모든 특징들을 구체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유럽인들의 소비를 위해서, 그리고 중요한 유럽 생산품 시장을 위해서 주요 산물들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이와 같이 카리브 농장들은 (대분분의 권위자들의 의견에 따라서) 자본주의가 그곳에 등장하기 이전에 벌써 유럽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논지는 앞에서 농장을 산업 조직의 초기 형태로 이야기했던 나의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임을 독자들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논지는 자본주의의 전조가 된 산업조직이 유럽 본토가 아닌 곳에서 먼저 발전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형태나 조직에 있어서 농장은 하나의 기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농장은 유럽의 의도에 근거하여 존재하였으며, 농장은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서 유럽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설사 그것이 “자본주의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자본주의를 향한 중요한 한 단계임에는 틀림없다. p132

17세기는 아직 산업 사회가 형성되기 전이었다. 따라서 본토에서 “산업”이라고 하는 것이 생기기도 전에 식민지 농장에서 먼저 그것이 있었다는 것은 아주 이단적인 주장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첫째, 농장은 주로 농업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왜냐하면 농장은 식민지 기업이었고, 대부분이 노동력이 자유노동보다는 강제 노동으로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농장은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생산한 것이지 작물이나 도구들, 또는 식품 이외의 제품을 기계로 생산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학자들은 해외에서 모험적으로 시작된 산업보다는 유럽에서 기능공들과 장인들이 등장하고, 그 뒤를 이어 그들이 만들어 낸 작업장들과 더불어서 예측가능하게 시작된 서양 산업사에 더 관심을 가져 왔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자연스럽게 농장을 작업장에서 공장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하나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유럽인들의 노력의 부산물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선입견들이 무슨 이유 때문에 농장 발전의 산업적 측면들을 인식하는 데 방해가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렇게 이른 시기에 공장들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내는 것은 서양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탕수수 농장은 농업의 형태와 공업의 형태를 독특하게 결합하고 있다는 인식이 점차적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17세기의 전형적인 산업 형태에 아주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p119

초기의 후원자들은 서인도 제도의 이익을 보호하는 일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게 되자, 그들은 국내에서 아직 개발되지 않은 설탕 소비시장의 잠재력이 엄청난 것이며 설탕 값이 싸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권력을 다른 방식으로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권력 행사 방식의 변화는 노예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노예 폐지론자들(처음에는 노예무역을 반대하다가 뒤에는 노예제도 자체에 반대하였다)은 농장주들의 이익과는 전혀 다른 경제적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었으며, 농장주들은 그들의 주장이 농장 자체를 파괴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익 집단들은 한동안 서로 결탁하기는 했으나, 경제적인 이익에 따라서 그런 막강한 동맹자들이 서로 싸우는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했다.
여러 이익 권력 집단들은 언제라도 이익을 따라서 합종연횡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또 실제로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변덕스러워 보이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상황에서 행사 할 수 있는 그들의 권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권력을 행사하는 계층들은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이용하여 설탕이라든가 그와 유사한 생산품들을 영국 전체가 사용할 수 있는 양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들을 결정하였다. 이런 영향력은 구체적인 입법적 주도권의 형태를 취하여 관세나 세율을 좌우하기도 하고, 해군이나 빈민 구호소 같은 정부 기관을 통하여 설탕, 당밀, 럼 등을 구매하고 배급하도록 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그러한 생산품들의 순도라든가 품질 기준들을 정하는 조례들을 좌우하기도 했다. p312~313

차는 결국 가정에서 담그던 맥주의 자리를 대신할 정도가 되었으며, 설탕으로 단맛을 내 인기있는 포도주와도 경쟁을 할 정도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진이나 다른 독한 술들과도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이 새로운 세 음료를 부자들과 세도가들만 마셨으나, 점차 가난한 사람들도 마시고 싶어했고, 결국 그들도 다른 비알코올 음료들보다 차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노동자들까지도 차나 그 비슷한 음료들을 마시게 되자 그 음료수를 뜨겁게 하여 설탕을 타서 마시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18세기에 칼로리 섭취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좋을뿐더러, 또한 뜨겁고 달콤한 음료가 영국인들의 식단과 영국의 날씨와도 잘 어울려 환영받았기 때문에, 이런 음료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인기를 더해갔다. 영국인들이 이런 새로운 음료들을 보다 더 많이 마시게 되면서, 그 음료 자체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보다 더 영국식으로 탈바꿈해 갔다. 그런 변화는 한편으로는 그런 음료들을 마시는 것이 의례화해 가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식민지들에서 더욱 더 많은 양이 생산됨으로써 이루어 졌던 것이다. p218

알코올이나 담배처럼 그것들은 현실을 잠시 잊도록 만들어주고, 배고픔의 고통을 잠시 마비시켜 준다. 커피나 초콜릿이나 차처럼 그것들은 영양가를 공급해 주지도 않으면서도 더 큰 노력을 자극한다.
영국인 노동자 한 사람이 최초로 뜨거운 차에 설탕을 타서 마셨던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p.337, p.384

인간과 물질과 행위가 의미있게 통합되는 방식에 대한 인류학적 과제는 원시사회에서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추구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일상생활을 연구하고, 식품과 같은 평범한 물질들의 성격이 변화해 가는 것을 생산과 소비, 용도와 기능의 공통된 관점에서 연구하고, 또 그 의미들이 차별적으로 등장하고 다양화하는 것과 연관시켜서 연구하게 된다면, 이런 작업이 거의 목적의식을 상실해 가고 있는 한 학문 분야에 새로운 혼을 불어 넣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p384

+설탕제조과정_분밀, 정제, 결정화
사탕수수를 밭에서 벤 다음 줄기에서 즙액을 짜냄
-산성인 즙액에 석회를 가하여 중화시키는 동시에 1번 걸러서 농축
-결정이 나오면 원심분리기에 걸러 당밀분을 분리하여 원료당을 얻음(한국은 이러한 상태의 원료당을 여러 나라에서 수입하여 정당)
-정당공장에서 원료당을 일단 물에 용해한 후 백토(白土)·활성탄·이온교환수지 등으로 정제하고 농축관에 보내어 감압상태에서 농축
-과포화상태가 되었을 때 모결정(seed crystal)을 넣어 결정을 만듦(모결정을 많이 넣고 급속히 냉각시키면 작은 결정이 생기고 반대로 모결정을 적게 넣고 천천히 냉각시키면 커다란 결정이 생김)
-결정이 생기면 원심분리하여 모액과 분리하고 다시 결정의 표면을 물로 씻어 모액을 잘 씻어낸 다음 건조시켜 포장

사탕무로 만드는 무설탕은 사탕무를 얇게 썰어 더운 물로 당분을 침출시킨 다음 당액을 정제·농축·결정과정을 거쳐 제조한다. 이때에는 당밀분을 함유하지 않으므로 백설탕만이 나온다.


+후기
설탕...
지금의 정제된 작은 하얀 알갱이가 그 초기의 모습은 갈색 덩어리였고,
물에 넣으면 사르르 녹으며 달콤함을 내던 그 약하디 약한 모습뒤에
생각지도 못했던 권력과 힘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