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쾌락> 의 저자는 미학을 ‘모든 감각을 통해 발생하는 미적 효용성을 다룬 학문’ 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 초점이 맞춰져야 할 부분은 ‘모든 감각’ 이다. 대대적으로 미학의 분야에 있어 중요시 되었던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었다. 즉, 회화, 조각, 건축과 같이 시각적이거나 음악과 같이 청각적 요소를 지닌 분야에서만 주로 미학적 고찰이 이뤄졌다. 이 두 가지 감각은 미학과 훌륭한 미적 감각에 대한 문제들이 다루어질 때 가장 ‘지적이며 고급한’ 감각으로 간주되어왔다. 반면 후각, 촉각, 미각은 미학에서 등한시되어 왔다. 이들은 너무 타의적이고, 너무 육체적이며, 너무 욕구적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통념적 의견에 반기를 들고 있다.

     저자는 감각을 중요성이나 가치에 따라 구분하기 보다는 몸에서 가까운 감각과 먼 감각으로 구분한다. 몸에서 먼 감각은 시각과 청각이다. 몸에서 멀리 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시각과 청각을 통해서는 감지할 수 있고, 오히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실체를 분간하기가 힘들다. 즉,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것은 언제나 공간적인 거리를 동반한다는 뜻이다. 반면, 미각과 촉각은 몸에 아주 가까운 감각들이다.음식은 씹어서 몸 안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손을 뻗어 피부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만 대상물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후각은 그 중간에 위치하는 감각으로 일정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대상물을 느낄 수는 있지만, 시각과 청각보다는 몸에 가까운 감각이다.

     저자는 시각과 청각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느낌과 기억은 미각과 촉각에 의한 것보다 일시적이고 순간적이며, 인간의 신체적 욕구와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미각과 촉각에 의한 경험은 직접 몸에
닿아 느껴지는 것이므로 이를 통한 감동은 훨씬 크고 오래 지속된다.
즉, 어느 미술관에서 봤던 추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지만 어릴 적 맛보았던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음식에 대한 기억은 평생 지속된다는 것이다.

     신체적 욕구를 유발하고 수용하는 미각과 촉각에 의한 경험이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육체적이고 사적인 영역은 저급하다는 인간의 오랜 고정관념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훌륭한 음식을 맛보는 것보다 미술관에서 추상화를 관람하는 것이 더욱 ‘고급한’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훈련받아 왔는지도 모른다. 사실 미술관의 추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누구라도 음식을 맛보고 자신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는 익숙할 것이다. 즉, 본능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은 훈련과 학습에 의한 이성적 판단에 비해 그 범위가 넓고 다양하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이성적 판단은 보편적이지 못하기에, 즉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인간은 그 가치를 높이 사고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