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현대문화의 특징과 비판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20070226
0293013_장하다

현대 한국인의 일상생활 특징적인 구성 원리는 전통적 문화와 한국 현대사의 독특한 경험이 상승 작용해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한국 현대사는 일제 강점기를 지난 후 한국전쟁이 있은 후 1965년 대한민국은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 했다. 이로써 한국은 드디어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연 것이다. 일제 36년이 새겨 놓은 자상이 아물지 않고 일본에 의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은 닫혔으며 이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전쟁과 가난과 혁명의 격류가 몰아쳤던 20년 광복 60년의 초반 20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러나 1965년 대한민국은 드디어 엔진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였고 어떤 민족도 한국인만큼 세계를 놀라게 한 적은 없었다.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고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웠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잡는데 성공한 유일한 나라인 셈이다. 지난 40년의 한국 현대사는 그야말로 산전벽해의 드라마였다. 그러나 이러한 급속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수많은 문제점 또한 성장하였으며, 잘못 된 한국인들의 특징적인 사회성이 사회 전체에 뿌리 깊게 스며들게 되었다. 외모지상주의, 금전 만능주의, 상품화 된 일상, 성역 부재의 극단적 평등주의, 속전속결주의, 결과우선주의 등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사회의 특징적인 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먼저, 얼마 전 신문에는 몇 년 전 비디오 사건으로 곤란을 당했던 여자 탤런트와 모 그룹 회장의 결혼발표가 보도되었다. 그 전에도 유명 벤처 기업가가 당시 최고의 탤런트와 결혼한 적이 있으며, 미스코리아 출신의 어느 탤런트는 국내 굴지 재벌 그룹의 며느리로 들어갔으니 이번 소식이 그리 낯선 풍경만은 아니다. 사실 그동안 여성 스타 연예인들은 재벌이나 이에 준하는 재력을 갖춘 사람들과의 교제나 결혼이 많았다. 재력이 결혼의 조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 여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결혼을 선택할 때 남자들의 기준은 무엇인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남자는 여자의 외모, 성격, 학벌 순으로 여성을 평가한다고 한다. 여성이 남성을 평가 할 때 남성의 능력이 가장 우선시 되었다고 한다면 남성이 여성을 평가할 때는 여성의 외모를 가장 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외모를 강요받다 보니 여성의 외모 가꾸기가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라 생각하는 여성들이 느는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따라 더 나은 외모를 만들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받는 사례도 늘어나는 것이며 이것이 오늘날 한국사회를 성형 천국으로 만든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외모만을 가꾸기에 치중하기 보다는 내면의 미를 쌓으라고 충고하기 이전에 외모만을 바라보는 외모지상주의적인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시선부터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사회에 팽배해 있는 금전 만능주의와 상품화 된 일상은 통과의례로서 인생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장례와 혼례행사를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도시화,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의 단편화, 편의주의란 이름으로 인간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조상 숭배의 근본정신은 점차 퇴색되어가게 만들었고 허례허식과 낭비를 부추김으로서 혼례문화와 장례문화의 의미를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다음으로 문화의 풍경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를 직접 눈여겨볼 때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그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한다. 요즈음의 인터넷 문화는 더 이상 기극권의 권위를 인정하기 못하게 만들었다. 스승의 위대함도 아버지의 권위도 대통령의 위치도 이젠 ‘극단적 평등주의’라고 할 만한 태도와 분위기로 기존의 모든 권위를 무너뜨리고 있다. 우리는 지난 한 세대에 걸쳐서 저명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나타난 부정적인 행태를 무수히 목격해왔다. 사회적 평판이 그 개인의 사람됨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의 상식이 되었다. 많은 명사들이 때로는 권력에 아부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심지어는 거짓을 일삼는 사례를 본다. 오죽하면, '장'이라는 직함을 지닌 사람은 의심할 만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겠는가. 모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이 극단적 평등주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환멸을 느낄 것이다. 특정한 분야에서 무엇인가를 성취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쌓아온 평판과 권위를 평등주의라는 이름 아래 깔아뭉개는 이 시대의 풍조를 말세라고 개탄할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은 기득권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불공정한 경쟁체제와 불평등 구조를 이번에야말로 타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젊은 세대의 평등주의적 분위기에서 그런 개혁을 향한 가능성을 확인할 것이다. 사실 평판과 권위에도 진실이 있다. 한 사람의 성실함과 열정과 참다운 삶을 통해서 형성된 권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가식과 위선을 토대로 쌓아올린 평판과 또 그 권위에 기대어 이 경쟁적인 사회에서 무임승차하려는 태도도 엿보인다. 문제는 오늘날 다수의 사람들이 뒤의 경우가 더 지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어떤 기득권과 권위도 인정하지 않고 도전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정서가 뿌리깊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일상용어 가운데 우리 국민 모두의 일반적인 생활정서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는 어휘가 둘 있다. 그것은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 문화계 등 등, 사회의 모든 주요 분야의 생활양식에도 빈틈없이 골고루 적용되는 ‘범 민족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그 어휘는 바로 ‘일망타진’과 ‘속전속결’이다. 우리 국민 모두는 모든 것을 속전속결로 일망타진하지 않고서는 직성을 풀지 못하는 존재들인 듯하다. 우리 대부분은,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이른바 ‘당일치기’라는 정겨운 생활철학에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아무런 사전 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시험 전날 ‘벼락치기’ 식으로 대충 시험공부를 해치우고서는, 시험장에서는 으레 ‘운명’에 모든 걸 맡기는 것을 말한다. 이미 어린 시절부터 갈고 닦는 이러한 범국민적 습속이 어떤 형태로 사회적으로 발전하게 되겠는가? ‘속전속결’ 정신 아닐까? 교육은 ‘백년지대계’ 라는 매우 그럴싸한 말이 있지만 우리사회 교육정책의 현실은 마치 영화의 장면처럼 빠르게 뒤바뀌고 교육부 장관도 계절 바뀌듯이 경질되니 그 안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자세 또한 매번 바뀌는 교육정책처럼 혼란스럽게 될 것 이다. 비단 교육의 문제만이 아니다. 속전속결주의 및 결과 우선주의는 우리사회 전체에 좀 박혀 있다. 지난 2002 월드컵을 생각해보자.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4강 신화를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불과 1년이라는 연습기간을 남긴 상태에서 감독을 교체시켰고 우리 국민들은 외국인 감독이라는 기대아래 매번 이기는 경기를 기대했지만 히딩크는 경기마다 강한 상대와 대전을 하였고 그 결과 5:0 감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마저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개의치 않고 묵묵히 자기신념을 지키며 준비해온 히딩크 감독은 결국 보란 듯이 축구강국을 상대로 승리를 이끌어내며 4강 신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속전속결과 결과를 우선시하는 사회적 시선들 속에서 만일 외국인 감독 히딩크가 아니라 감독이 한국 사람이었다면 2002 월드컵은 결과로 우리에게 추억이 되고 있을까? 나의 결코 지금과 같은 희열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5:0으로 줄기차게 지기 시작할 때 감독이 경질 되었거나 아니면 국민들의 성원 때문에 평가전부터 힘을 다 쓰고 약한 상대만을 골라 경기를 했을 것이다. 우리사회의 속전속결과 결과우선주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밑바탕이 되었지만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타파하야 할 문제점이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외모지상주의, 금전 만능주의, 상품화 된 일상, 성역 부재의 극단적 평등주의, 속전속결주의, 결과우선주의 등의 문제점을 집어 보았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사회의식은 앞으로 우리사회가 해결해 나아가야 할 숙명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