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I-1, 일상생활의 구조 上
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 xve-xviiie siècle
Tom 1. Les structures du quotidien : Le possible et l'impossible
까치, 1995

물질문화론, 채승진 교수님, 07.01.31
김경수 0289228

물질문명이란?

이 책은 페르낭 브로델의 삼분법적 구조 - 물질문명, 시장경제, 자본주의 - 중 물질문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물질문명이란 이 책의 첫 장에서 인간과 사물, 사물과 인간이라고 정의 하였으며, 머리말에서는 삼분법적 구조 중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명료하게 파악되는 ‘시장경제‘의 하부 구조인,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폭넓은 인간의 기본활동 영역을 ‘물질문명’이라고 명명하였다.

1. 수(數)의 무게
인구는 문명, 문화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 할 수 있는 훌륭한 지표로서 활용된다.
오늘날의 세계와 1800년 이전의 세계를 놓고 볼 때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외적 표지는 비상한 인구 증가이다. 과거 15~18세기의 인구는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였다. 15~18세기 동안의 인구 증가 작용에 따른 수요와 공급사이의 불균형을 안정시키려는 과정은 기근이나 질병에 따른 인구의 감소의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질병은 문명이 새로운 문화나 문명을 접촉할 때 발생하게 되었다. 각각의 문명에 있었던 질병들은 서로간에 큰 위협이 되었고, 심지어는 문명이 다른 문화와 문명을 정복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2. 일상의 양식 : 빵
15-18세기에 사람들이 먹는 기본음식은 주로 식물성 음식이었다. 이런 식물성 음식은 농업에 의해서 획득되어진다. 15-18세기의 기간에 대해서 주목되는 것은 주요 식물, 즉 모든 산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산업인 농업에 의해서 획득되는 식량이다. 그런데 농업은 시초부터 하나의 중요한 작물이 있었고 이 선택에 따라 그 다음의 모든 것, 적어도 거의 모든 것이 의존하게 되는 일종의 우선권이 형성된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는 밀, 쌀, 옥수수였다.
이것들은 인간의 심층적인 물질생활과 때로는 정신생활을 조직하여 결국 거의 되돌이킬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내는 “문명의 작물”이다.
밀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서유럽의 곡물이지만 서유럽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15세기 훨씬 이전에 중국 북부 지역의 평원에서는 조와 수수와 함께 밀을 재배했다. 또 인더스 강변이나 갠지스 강 상류의 메마른 평원에서도 질 좋은 밀이 생산되었으며, 이 밀은 짐 끄는 소를 이용한 대규모 카라반이 인도 전역을 통과하면서 쌀과 교환했다. 하지만 유럽은 먼 곳까지 밀을 전파하는 역할을 자주 맡아서 했다. 러시아의 식민화의 결과 동쪽의 시베리아에서는 톰스크와 이르쿠츠크 너머에까지 밀이 보급되었다. 밀의 동반자로는 다른 더 중요한 곡물들이 있다. 보리가 그 예이다. 남쪽 지방에서는 보리가 말의 사료로 쓰였다. 호밀은 꽤 늦은 시기에 도입된 것으로서 아마도 5세기의 게르만 족의 대이동 이전에 북유럽 지역에 들어온 것 같지는 않다. 그 후 호밀은 이곳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고 삼포제와 함께 발전해갔다. 유럽에 기근이 심해지면서 발틱 지역의 배들이 이곳의 곡물을 아주 일찍부터, 그리고 점점 더 먼 곳까지 수출하게 되었는데 이 때 주요 수출 곡물은 밀과 호밀이었다. 이 수출은 북해지역과 영불 해협, 나가가서 이베리아의 항구에까지 이르렀으며, 1590년대의 위기 때에는 지중해에서까지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발틱 지역의 곡물들은 18세기까지도 밀이 부족한 곳에서 빵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어디에서나 밀과 보조 곡물 사이에는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었고 그 상관관계의 변화를 통하여 기근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밀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절반을 차지한다. 밀의 재고량, 수송조건, 또 수확을 예고하고 결정짓는 기후의 변동에 따라, 그리고 바로 그 수확량에 따라, 마지막으로 1년 중 어느 때인가에 따라 밀 가격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과거의 밀 가격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마치 지진계의 변동처럼 나타난다.
결론은 이러하다. 도시의 임금 노동자들은 비참했고, 현물임금이 거의 같은 리듬으로 변화했던 시골 사람들 역시 비참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은 아주 명료한 규칙을 따랐다. 즉, 저급한 곡물은 농민들이 먹는 음식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었다.

3. 사치품과 일상용품 : 음식과 음료

밀, 쌀, 옥수수 같은 일반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양식은 상대적으로 쉬운 문제이다. 하지만 보다 덜 일반적인 음식들 예를 들어 육류나 의복, 주거 등의 다양한 요구와 관련된 문제의 경우에는 모든 것이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이 영역들 안에서는 일상적인 것과 사치가 늘 함께 존재하고, 또 서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즉 사치라는 것은 시대, 나라, 문명에 따라 여러 가지 면모를 가지고 있다.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면 처음부터 사치와 가난, 풍요와 결핍이라는 양측면이 쉽게 구분된다. 15-16세기 이전에 유럽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식탁의 사치, 조금 달리 말하자면 세련된 식탁이라는 것이 없었다.
프랑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 프랑스는 지방마다 다양한 음식문화가 있고 또 지난 4-5세기 동안 요리가 개발되었으며, 맛있고 다양한 재료를 솜씨 있게 이용할 줄 아는 것이 사실이다. 또 가정에서 여러 종류의 음식 보존법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농민은 그의 “잉여물”만 파는 것이 아니라 흔히 그 이상의 것을 팔았고, 특히 그가 생산한 최상품을 그 자신이 먹지 못했다. 그는 조와 옥수수를 먹고 밀을 내다팔았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의 음식은 요리책에 나오는 음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사치란 것은 식탁의 요리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릇, 은식기, 테이블보, 냅킨, 촛불, 식당의 장식도 필요하다.
일상적인 사치품으로 소금이 가장 전형적인 예가 된다. 소금은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필수적이고 육류와 생선류를 염장하는데에도 필수적이며, 또 여기에 국가가 개입하는 만큼 더욱 중요성을 띤다. 그것은 국가나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이며 그 점에서는 유럽이나 중국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전쟁이 나더라도 소금 무역은 언제나 지속되었으며 상인들의 컨소시엄에 가장 큰 이득이 돌아갔다. 마찬가지로 사하라의 암염 덩어리들은 낙타 대상에 의해서 사막을 넘어서 블랙 아프리카로 전해졌고 사금, 상아, 흑인 노예 등과 교환되었다. 핵심적이고 대체가 불가능한 소금은 성스러운 음식이었다. 밀가루로 만든 무미건조한 죽을 먹는 유럽은 많은 양의 소금을 소비하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의사 겸 역사가는 16세기에 프랑스 서부의 농민들이 염세에 대항하며 봉기한 것은 세금 때문에 소금 소비가 위축된 결과이며, 다시 말하면 소금에 대한 갈증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치즈, 계란, 우유, 버터 같은 것도 사치품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값싼 단백질원인 치즈는 유럽의 일반 대중들이 먹는 아주 중요한 음식의 하나였으며, 유럽에서 멀리 떠나 살게 되어 치즈를 먹지 못하고 사는 농민들에게는 이것이 아주 큰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요리책에서 치즈는 아주 작은 자리밖에 차지하지 못했으며, 품질이나 특출한 품명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염소젖으로 만든 치즈는 양이나 소의 젖으로 만든 것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겨져서 경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유명품목의 치즈에는 이미 단골과 애호가 있었다.
또한 계란도 많이 소비되었다. 계란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조리법이 많이 유행했다. 시장에서의 계란 값은 아주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계란은 일반인들이 널리 먹는 음식이었다. 또 계란 값 하나만으로도 어떤 도시나 어떤 지방의 생활수준이나 화폐가치에 대한 유용한 테스트가 된다. 하지만 동양의 중국, 일본, 인도에서는 이 소중하면서도 흔한 음식인 계란을 거의 먹지 못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계란은 아주 귀한 것이라서 일반인들이 많이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소금물에 30여 일 동안 담가두었다가 만드는 그 유명한 중국의 오리알은 부자들인 식도락가의 별식일 뿐이었다.

4. 사치품과 일상용품 : 주택, 의복, 그리고 유행

앞의 장에서 육류와 담배와 이르는 영역에서 사치와 일상생활을 구분했었다. 하지만 집, 가구, 의복 같은 선택의 영역에서 사치가 더 쉽게 퍼질 수 있다. 의복사(依服史)는 원료, 제조과정, 원가, 문화적 고착성, 유행, 사회계층 등의 모든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기분 내키는 대로 변화하는 듯 한 의복이 사실은 도체에서 끈질기게도 사회적 대립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사치 금지법은 정부의 조심성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신흥 졸부들이 자신들을 모방하는 것을 보고 사회 상층이 분노를 일으킨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어느 것으로도 출세하려는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으며, 또 아무리 사소한 정도라도 사회적으로 상승했을 때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의복을 입고 싶어하는 욕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정부 역시 대귀족의 과시적인 사치를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유럽 농민들의 의상을 보면, 그들의 의상이 겉보기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아도 내복이나, 상복 등 중요한 부분에서는 변화했음이 틀림없다.
유행. 겉으로 보기에 유행은 그 행동과 변덕이 자유로운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갈 수 있는 길은 크게 보아 사전에 이미 정해져 있고 결국 선택영역은 한정되어 있다. 유행의 메커니즘은 문화의 전달, 적어도 그 전파 법칙과 관련을 가진다.. 그리고 이런 것들의 보급과정은 성질상 매우 느리며, 그 메커니즘과 그 제약에 연결되어 있다.
유행은 지나갔다가는 혁신된다는 것, 그것은 이중의 작업이며 곧 이중의 어려움이다. 또한 유행의 문제는 특권층 사람이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그들의 추종자들과 구분되기를 원해서 일종의 장애물을 설치하려는 욕구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행은 상인들이 의식적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일상생활을 역사에 도입하고 있다. 일상성이란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겨우 표시가 날까말까한 일이다. 관찰공간을 좁힐수록 물질생활의 배경 그 자체 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더 커진다. 큰 단위는 일반적으로 큰 역사에 해당한다. 즉 원거리 무역, 국가경제나 도시경제의 망(網)등이 그것이다. 관찰시간을 아주 짧은 시간영역에 한정시키면, 사건이나 신문의 잡보면에 나오는 것 같은 일상사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건은 유일한 것이나 유일하다고 믿는 것이다. 잡보면의 일상사는 반복되고 또 반복되면서 일반성 혹은 구조가 된다. 그것은 사회의 각 층에 침투하여 영구히 반복되는 존재양식, 행동양식을 특징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