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류문명의 속성_문명의 붕괴와 자연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2007/02/12
0393071_김화진

위대한 문명은 정복당하지 않는다. 스스로 붕괴되기 전까지
- 윌 듀란트-

아포칼립토(새로운 시작) 라는 영화의 도입부분에 나오는 문구다. 이 문구가 등장하면서 나는 단지 주인공의 영웅담 보다는 문명의 쇠퇴와 몰락에 관한 궁금증으로 영화의 초점을 맞추면서 보았다.
마야문명이 쇠퇴해 가는 시절, 평화로운 부족 마을의 젊은 전사 ‘표범 발’은 부족과 함께 사냥을 하며 걱정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잔인한 전사로 구성된 침략자들이 마을을 습격하여 부족민을 학살하고 그들을 어디론가 끌고 가는 일이 발생한다. ‘표범 발’은 이 혼란 속에 그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깊숙한 우물에 숨긴 채 자신은 인질로 끌려가게 된다. 인질들이 붙잡혀 간 곳은 그들이 한번도 본적 없는 또 다른 세상이다. 마야 도시이다. 그곳에는 하늘 높이 쌓여 올려진 큰 제단들과 제단 꼭대기에 끌려가 태양신에게 제물로 바쳐지는 사람들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의 배를 가리고 뛰는 심장을 꺼낸 뒤 목을 자른다. 그들은 인간사냥의 사냥감으로 잡혀온 것이었고, 가뭄에 시달리던 마야사람들의 염원을 담아 산제물로 바쳐지는 제물이 된 것이다. 그 속에서 그는 간신히 살아남아 아내와 자식을 구한다. 이것이 영화 ‘아포칼립토’의 내용이다.
영화 속 마야문명은 내가 알고 있던 찬란한 문명과는 다른 잔혹한 사실적인 표현으로 양면성을 보여준다. 감독(멜깁슨) 역시 사실적인 표현에 주력했다고 한다. 마야문명이 멸망한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추측들만 무성하다. 자연재해? 농업실패? 전쟁? 전염병? 군대의 침략? 등등 아직도 가설들은 난무하는데 영화 속에서 조차 확실한 몰락의 원인은 보여주고 있진 않지만, 추측은 가능케 하고 있다. 나는 이 영화로 문명의 발생과 몰락에 관한 중남미 문명 중, 마야와 이스터섬을 예로 들어 문명의 발생과 소멸에 관한 짧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마야문명은 인간이 살기에 아주 부적합하다고 여겨지는 열대 밀림 속에서 도시를 세우고, 중앙집권의 단일 지도 체재가 아닌 수많은 부족의 집합으로써 도시 국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천문, 역법, 수학, 미술 공예 등이 놀랄 만큼 과학적이고 정교하였으며, 일종의 상형 문자인 신성 문자를 사용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룩하였다. 가장 빛난다고 여겨지는 것은 수학과 천문학으로, 그들은 0의 개념을 알았으며, 20진법을 썼고, 막대기와 점 모양으로 숫자를 나타냈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신관의 지시에 따라 어느 날 모든 건축 활동을 딱 멈추고 한 사람 남김없이 도시를 버리고 떠나기도 했다. 수만명이 400㎞가 넘게 밀림 속을 이동해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신관들이 시키는 날부터 새 도시 건설을 시작했다. 가장 뛰어났던 문명인들이 가장 어리석은 미신에 사로잡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진 것이 바로 마야인이었다고 한다. 이 복잡한 역법과 건축 설계술은 신관들만이 알았다. 그들은 일식과 월식 따위를 예언해 평민들로부터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오로지 천체를 관측하고 역법을 계산하면서 시간의 비밀을 풀고 그 해의 길흉을 점치면서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렸다. 신관들은 또 노예나 평민을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산 사람의 가슴을 돌칼로 가르고 뜨거운 심장을 꺼내어 신에게 바치는 잔인한 의식이었다. 신관들은 사람 제물을 많이 구하려고 포로를 잡기 위한 전쟁을 자주 부추겼다. 마야의 전쟁기록에는 어떤 사람을 얼마나 잡았다는 기록만 있을 뿐 어떤 도시나 땅을 빼앗았다는 기록은 아무 데도 없지만, 찬란함 속에 잔혹함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의 수학적인 계산으로 52년째가 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하여 52년마다 도시를 옮기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는데, 따라서 스페인에 점령되기 전에 그들이 버린 도시는 그대로 밀림에 묻혀 버렸고, 스페인군에 정복된 도시는 이교도의 도시라는 이유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이런 까닭으로 유적지를 발견한 뒤에도 마야의 역사는 수수께끼 투성이가 된 것이다.
영화 속 마야문명도 스페인에 점령되기 바로 전의 모습을 그린다. 피는 신성하다고 여기고 지금의 생각을 뛰어넘는 많은 잔혹한 행위들이 그 당시 많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상처를 많이 가진 자들은 영웅처럼 여겨졌고 왕 역시도 피를 보기 위해 자해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피를 보는 것이 신에 대한 숭배요, 축복이니, 산 사람의 뛰고 있는 심장을 잘라 태워버리고, 목을 잘라 버림으로써 태양신에게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사람들의 염원은, 핏빛으로 물든 마야 제단과 인간들의 마지막 발버둥이 찬란한 마야문명의 종말을 알리는 듯했다. 이러한 문명으로부터 탈출한 주인공은 가족과 함께 다시 밀림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바닷가를 응시한다. 거기에는 그들이 한번도 본적 없는 새로운 문명이 대기하고 있다. 커다란 전함 두 척과 눈이 파란 사람들. 새로운 문명의 충돌을 예고하면서 영화는 끝을 내린다. 영화의 결말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마야는 1528년 에스파냐의 정복으로 멸망한다. 영화에서는 그 당시 마야를 자연의 파괴와 가뭄으로 인한 붕괴직전의 모습을 그리는데, 영화 속에서 포로가 마야를“땅이 피를 흘리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마야는 발달된 문명과 함께 자연을 훼손시키다가 결국 자연에 의해 붕괴되기 직전에 스페인에 정복당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 마야문명이 어떻게 정확히 붕괴되었는지는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 살펴볼 이스터 섬과 비교해 보면 나의 문명의 붕괴에 대한 원인은 결국 자연에 의한 스스로의 붕괴라고 판단되어진다.

또 다른 문명을 살펴본다. 폴리네시안을 기원으로 하는 사람들로, 서기 8~9년에 아나케나 해변에 정착한 이들은, 섬의 전설에 따르면 한 족장이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정착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후에 이스터라고 이름 붙여진 섬에 문명을 일으킨 첫 정착민이라고 한다. 1722년 3월. 네덜란드 해군의 야코브 로헤벤 제독이 남태평양을 항해하다가 지도에 없는 외딴섬을 발견했다. 섬에 다가간 그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망망대해 속의 작은 섬에 엄청난 거인 석상이 수도 없이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섬에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뒤섞여 살고 있었다. 가장 놀라운 것은 5m도 넘는 귀가 큰 석상들이 섬을 빙 둘러 세워져 있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섬에 도착한 날이 마침 부활주일(Easter Day)이었으므로 우리는 그 섬을 ‘이스터’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렇게 이스터 섬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 섬에 있는 거대한 석상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후에 석상은‘모아이’라는 전통어로 불리어지고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진다.

이스터 섬은 초기 정착민에 의해 발견되었을 당시, 20미터에 달하는 1억 그루의 풍부한 야자수들과 육지새 등 먹을 것이 풍부한 섬이었다고 추정되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섬에서 쉽게 주울 수 있는 뼈들을 조사한 결과 33%의 돌고래 뼈가 그들이 돌고래를 식량으로 사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는 풍부한 자원으로 소인원으로 살아가던 그들은 족장과 함께 6개의 씨족으로 분리되고 각자의 영토 안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야자수를 베고 땅을 넓혔고, 족장은 주민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모아이 제단을 설립하도록 하였다. 모아이를 만들게 함으로써 그들을 바쁘게 만들고, 바쁘게 만들어 사회적 통합이 되게 하는 것이 우두머리의 역할인 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아이를 만드는데 필요한 인력과 그에 따른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6만평 이상의 농지가 필요했다. 모아이가 이스터 섬을 죽였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때마침 1200년경에는 심각한 토양침식이 시작되기 시작한다. 생존하기 위해 자연에 의지했던 것이다. 자원은 고갈되고 있었고 1400년경에는 산림 황폐화가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 졌다. 심각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의 불안은 모아이를 점점 더 커지게 했고, 자연이 파괴되어 섬이 황폐해지자 돌고래의 사냥도 줄어들었다. 즉 카누를 만들 수 있는 나무가 없었기 때문에 어업기술이 상실된 것이다. 그리고 씨족간의 전쟁으로 황폐해질대로 황폐해진 이스터 섬은 새로운 풍습이 등장한다. 바로 식인풍습이다. 굶주린 사람들의 마지막 살기위한 발버둥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씨족에 대한 복수심이었을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하지만 식량의 고갈로 인한 전쟁과 굶주림으로 인해 결국 이스터섬은 붕괴하게 되었다.
연대표 : 800~900 섬 도착
1200 토양침식
1300 식량고갈
1400 살림벌재 최고조. 모아이 설립
1500 야자나무 멸종 돌고래, 육지새 사라짐
1600 석상제작 중단. 인간사냥시작. 굶주림
1620 마지막 모아이 건립
1640 이스터섬 사회 붕괴
그들은 모아이로 하여금 사회를 통합하고 신을 모심으로써 축복이 내릴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때 2만명에 이르던 이스터 섬 사람들은, 발견당시에는 몇 되지 않은 작고 마르고 겁 많고 초라한 사람들로 기억되어져 오고 있다.

앞의 두 문명에서 보여주듯,‘윌 듀란트’의 말처럼 문명은 결국 그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나사지 문명과 마야문명에서도 그랬듯이,
인구, 기념물의 건축, 환경의 충격이 궁극점에 이르면서 이스터 사회는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 제레드 다이아몬드 -

찬란했던 마야문명도, 번성했던 이스터 섬도 궁극점에 이르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사회가 붕괴되기 시작한다. 인구의 통계를 보았을 때도 이스터 섬에서 인구가 급증하고 정점에 이른 후, 급격하게 감소된다. 이는 인구의 증가와 함께 자연 파괴, 식량부족의 결과를 낳았고, 마야문명 또한 화전농업으로 인한 농작지 부족과 가뭄으로 인한 식량부족, 문명의 발달에 따른 자연훼손이 결국엔 사람들을 광기로 치닫게 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의 견해로 보아, 문명이란 인간이 만드는 동시에 자연과 함께 해야 만이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스터 섬과 현대 사회는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하다.
- 제레드 다이아몬드 -
이스터 섬의 운명에 얽힌 사연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절박하고 깊은 자각을 불러 일으킨다
- 존 클펜리-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스터 섬과 현대 사회의 비슷함을 설명하면서 우리 지구인이 곤경에 빠진다면 우리가 누구에게 의지할 것인가 질문한다. 구원의 손길이 닿지 않는 바깥세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스터섬 사람들 역시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 역시도 커다란 문명으로 보자면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환경문제들을 보라. 녹기 시작한 빙하와 이산화탄소로 인한 오존의 파괴 등등 내부의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문명을 파괴하고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언젠가 이스터섬이나 마야문명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참고자료 : 네이버백과사전, SBS스페셜_29일째되던날, 영화‘아포칼립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