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
김선영_현대 산업의 속성_070212

현대 산업의 속성이라는 대전제로 나는 앞으로 현대산업문명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이어질까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나는 전문가의 말을 인용할 것이며, 인류 문명과 산업 문명의 역사를 하나로 보고 현대 산업의 본질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인류의 삶에 대해 고찰하려 한다.
한 공동체 속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인식방법과 지식내용을 우리는 패러다임(paradigm :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사고나 인식을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이라고 부른다. 패러다임은 사람의 의식을 장악하면서 인간, 사회, 자연의 구성과 모양을 바꿔 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대를 장악한다. 인류 문명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우리네 삶의 형태를 간섭하고 있다. 자연의 지배 속에서 살아가던 인간이 서서히 자연을 지배하게 되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이 인간을 정복하고 다스리려 했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법칙과 규율을 만들었고, 우리가 한 시대라고 일컬을 만한 문명을 만들어 냈다. 과거의 가공할 만한 문명들은 인간 생존에 관한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창조하고 생산해냈다. 가장 대표적인 철의 발견은 산업문명을 만들어내는 기초적인 지표가 됐다고 생각한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붕괴되는 원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람이 환경에 가하는 피해 즉, 환경의 무자비한 훼손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웬델 베리는 산업문명이란 ‘철거 문명’이라고 말한다. 이 둘은 문명 붕괴에 있어서 깊은 관련이 되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인류 문명의 붕괴에 있어서 환경 파괴는 가장 큰 원인이 되만, 환경이 파괴되는 가장 큰 원인은 산업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소위 전근대적인 농업사회에서처럼 한자리에 오래 붙어있는 것들은 돈이 되지 못한다. 자꾸 새로운 시장을 찾아낼수록, 자꾸 옮겨 다닐수록, 즉 자꾸 철거할수록 GNP(국민총생산)는 올라간다. 웬델 베리의《삶은 기적이다》에는 과연 이런 식으로도 앞으로 계속해서 인류의 삶이 이어질 수 있겠느냐는 작가의 통탄이 담겨있다. 인간은 삶이 풍요로워 졌다고 느낄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한다. 이들의 욕망은 자연을 파괴시킨다. 산은 터널을 위해 존재하고, 강은 댐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한쪽에선 우량농지 확보를 위해 기름진 바다를 메우고, 다른 한쪽에선 군사시설을 위해 기름진 땅을 파헤친다. 모두가 철거되는 것이다. 인류는 세계화를 위해 경제 성장에 힘써야 하고 경제가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가 산업화 되어야 한다고 외친다. 산업 주의를 외침으로써 철거 문명이 지속 된다면 우리의 인류 문명은 어떻게 될까? 내 주장이 극단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현재 산업화의 지속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제대로 인식하고 생각해 본다면 그렇지 만은 않을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기계를 사용하여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 분업화와 대량생산이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낳는다. 이것은 오늘날의 산업화의 밑거름이 된다. 하지만 머지않아 20세기는 큰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된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는 그에 따른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은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도록 했고, 일거리를 잃은 사람들은 그동안 인간이 느끼지 못했던 좌절과 절망에 빠지고 만다. 1930년대 전쟁을 비로소 생산과 교역이 회복되게 된다. 이 후 산업화가 활발히 가동되고 동시에 과학문명도 발달하게 된다.
과학은 인류 문명에 있어서 우연이고 기적이라고 여겼던 신비로운 사실들을 수학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설명해 낸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은 현대산업문명을 이루었고, 인류 문명의 발전은 다양한 문화와 경제적 가치를 생산했으며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기에 살아남기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웬델 베리는 현대문명의 이런 속성을 “고도의 생산성과 영구혁신”이라는 현대 산업주의의 경제적 이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 성공과 발전은 모두 숫자와 크기로만 측정된다. 개인의 성공은 연봉으로 측정되고, 국가의 발전은 GNP로 결정된다. 예술이건, 교육이건 모두 얼마나 상품성이 있는지가 생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정부도, 교육도, 종교도, 병원도 마치 기업조직처럼 변질되고, 규모의 성장과 이윤의 확대를 추구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자비와 동정, 돌봄과 나눔의 법칙으로 삶을 이어온 인류가 이제부터는 산업주의적 방식으로 인간 대 자연, 만인 대 만인의 생존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에르빈 샤르가프는 “모든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인류가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될 무언가를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리게 만든다”라고 하였다. 에드윈 뮈어와 웬델 베리와 에르빈 샤르가프가 통탄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적과 신비로서의 온전한 삶”이다. 웬델 베리는 묻는다. 우리는 과연 삶을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아기가 태어나고, 죽음이 찾아오는지 알 수 있는가? 왜 슬픔은 찾아오고, 착한 사람이 고통에 빠지게 되는지 정말 알 수 있는가? 세상의 많은 일들은 알 수 없고, 알지 못하도록 짜여져 있다. 하지만 바로 알지 못하기에 인간은 자신을 낮추고 기도할 수 있다. 우리는 신비로운 탄생과 죽음에 참여함으로써, 또 알 수 없는 기쁨과 슬픔을 겪음으로써만 온전한 일생을 마칠 수 있다. 왜냐하면 샤르가프의 말처럼 참된 “삶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산업문명의 본질은 인간정신파괴에 있다. 물질적 가치와 삶의 진정한 정신문화적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가장먼저 산업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를 누린 유럽은 산업화가 가져다주는 불이익도 일찍 경험하게 되었지만 이러한 불이익의 해결책 또한 물질과 산업생산의 이익에서 찾았다. 인간 정신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인간 정신의 창의성은 수많은 정신문명과 물질문명들을 낳지만, 이들을 사라지게 할 가공할 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웬델 베리는 말한다. 사람은 모든 친숙한 다른 존재들에 둘러싸여야 한다고.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기계가 아닌 풀과 흙과 인정(人情)에 둘러싸여야 한다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살았던 땅 위에서 한때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듯이 이제 아들이 아버지를 뒤따라 걸어가는 것, 이것이 삶의 행진이라고 말한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아들에서 손자로 이어지는 이 행진으로 우리의 삶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의 기술이 전해지는 길이며, 공동체의 삶이 온전하게 뿌리내리는 길이다. 언젠가 이 행진이 멎는 날이 온다면, 그래서 함께 걷던 들길도, 들풀도 사라지고 모두가 낯섦 속에 둘러싸이는 그런 날이 온다면, 웬델 베리는 그 날이 바로 지구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대 산업의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고 실천에 옮긴다면 웬델 베리가 말하는 행진의 끝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