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20070212
국민철_0293053

지리적 환경으로 인한 인류문명의 속성과 나아갈 길

현재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잘사는 나라가 문화를 발달시켰으며 풍부한 식량과 첨단의 무기를 보유한 강한 나라로 문명이 발전했을 동안 뉴기니 같은 지역의 원주민은 아직도 석기도구를 가지고 생활을 하는 인종적 민족적으로 느껴지는 불평등은 어떻게 설명이 되어져야 하는 것인가? 인종적으로 열성인자를 타고 났다던가 민족적으로 열등하다는 논리는 단순히 침략자들의 정복을 위한 논리일 뿐이다. 이 같은 불평등의 차이를 과학적인 사고로 연구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의 주장에 따르면, 각 지역간에 존재하는 자연 환경의 경쟁력의 차이라는 것이다. 그의 이론에 입각하여 인류문명의 속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인류가 수렵 채집 생활만으로 존재할 때 생존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때는 하루를 식량공급으로 전부 지냈기 때문에 어느 지역간의 불평등의 차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식량공급과 사냥이 원활한 곳을 찾아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 인류는 계속적으로 사냥기술을 발전시켜나갔으며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이르러서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라시아라는 지리적 이점이 인류의 농경과 목축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먼저 농경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점은 가장 넓은 지중해성 기후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동식물 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물화 시킬 수 있는 야생 작물이 이미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았기 때문에 과거 수렵 생활에서 얻었던 식량보다 경쟁력이 더 커졌고 정착생활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유라시아 지역은 목축과정에 대해서도 쉽게 이루어졌다. 가축화 시킬 수 있었던 야생 동물의 조건에 맞는 종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많았다는 것이다. 유라시아는 다른 지역보다 가축화 시킬 수 있었던 후보종이 많았으며 가축화의 6가지 조건에 맞는 종의 거의 대부분이 속해있다. 가축화의 조건에 대해서 말하자면 초식성이거나 잡식성을 가져야 하며 빠른 성장속도를 보여야 가축화의 경제성을 가질 수 있다. 감금상태에서의 번식이 가능해야하며 난폭한 성격은 제외해야한다. 겁먹는 버릇으로 인한 부적응하고 죽어버리는 동물은 가축화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구조를 가져야 인간을 지도자로 보고 순순히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가축화 후보종은 많았지만 위의 가축화의 조건에 맞는 것이 없었다. 또한 남북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의 경우 인류가 건너가면서 상대적으로 인류를 접할 기회가 없었던 가축들이 인류의 무서움을 몰랐기에 대부분이 학살 되면서 가축화를 이룰 수 없었던 것도 있다. 유라시아의 지리적 이점은 이처럼 압도적으로 유리했고 그만큼 우월한 위치에서 시작을 했다.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큰 혁명은 가축화였다. 가축화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의 차이는 이후 유라시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민족들과의 격차를 설명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가축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중요한 이득은 단순한 식량으로써의 활용뿐만 아니다. 첫 번째로 농경화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사에 대형 가축을 사용함으로써 인간들은 가축들의 강한 근력을 이용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땅을 적은 인원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식량 생산량이 늘어나게 되어 인구도 급속도로 증가되었다. 이후 잉여 식량으로 부양할 수 있는 인구가 남게 되고 문자와 칼과 같은 금속 기술, 총과 같은 무기 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로 병기로써 탈것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말을 탈수 있게 되면서 위압감과 속도를 얻게 되었고 이후에 전쟁에 계속 사용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병원균으로 정복지에서의 세균병기로 쓰였다는 것이다. 세균은 가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라시아 대륙은 가축의 전염병을 견디어 가면서 내성이 생겼다. 그러나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지리적으로 가축화를 시킬 후보종도 거의 없었기에 가축과 함께 생활할 기회도 없었다. 따라서 내성도 없었으며 새로운 전염병에 대책 없이 대부분이 죽어 나갔다.

이렇게 강력한 총(무기), 균(병균), 쇠(금속)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되었지만 인류의 무차별적인 자연 파괴로 인해서 비옥한 토지의 자원이 고갈되었고 인류는 대이동을 시작한다. 여기서도 지리학적 조건이 중요시된다. 인류는 이동을 하면서 자신들의 가축과 농작물을 예전과 같은 방법으로 키울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지리학적으로 같은 위도 상에 존재하는 지역은 낮의 길이와 계절이 같은 자연적 조건이 같기 때문에 유라시아 전역으로 퍼져감에 있어서 제약이 적었다. 유라시아가 같은 위도의 지역이 가로로 넓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북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경우 세로로 길게 퍼져있는 형태이기에 다른 위도 상을 지나가야 했으며 자연적 조건이 달라졌다. 가축화를 시키고 농경을 시작하기가 어려웠었다. 그만큼 그 지역의 문명의 전파가 더디게 일어났으며 수렵과 채집의 비중이 계속적으로 높았다.

문명은 유라시아 지역을 위주로 발달하게 되었고 유럽은 인구 포화상태를 느끼며 정복의 필요성을 느끼는 대항해시대가 점점 다가왔다. 유럽이 식민지를 늘리기 위해 찾은 신대륙에서도 문명의 발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잉카 문명이 대표적인데 이미 독자적으로 문화와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고 사회적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풍요한 문명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침략에 그 찬란한 문명은 무너지게 된다. 군사적으로도 스페인 군대에게 무참히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수적으로는 스페인 군대가 열세였다. 그럼 왜 그렇게 멸망한 것인가? 잉카 제국의 왕이 방심한 것도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스페인이 지리적 이점으로 먼저 발달시킬 수 있었던 총(무기), 균(병균), 쇠(금속)의 도움이 컸다. 여기서 가축화를 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빠른 속도전을 가능케 해서 잉카 왕을 생포 할 수 있었던 기병의 무기적인 사용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가축의 전염병을 가축을 가까이 하지 못해서 내성을 지니지 못한 잉카인들에게 퍼트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총과 칼과 같은 뛰어난 기술도 도움이 되었지만, 빠른 시일 안에 잉카인들을 전멸 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세균이다. 잉카인들이 미개한 원주민이여서가 쉽게 정복당한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유럽인들이 지리적 환경의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적으로 지리적 이점을 지녔던 유럽인들은 식민지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이르러서는 반대로 지리적 환경으로 인해서 피해를 보게 된다. 정복자들은 강력한 무기와 병원균으로 쉽게 식민지를 건설해 나갔지만 아프리카의 적도 부근에 이르러서는 새로운 전염병에 접하게 된다. 이것이 ‘말라리아’이다. 적도 부근의 원주민들은 말라리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내성과 피할 대처법을 알고 있었기에 습한 지역을 피해서 건조한 지역에서 살았으며 모기를 철저하게 피했다. 하지만 식수를 구하기 편한 강 근처의 생활패턴을 유지해왔던 정복자들은 전염병에 대한 내성이 없었고 점점 죽어갔다. 게다가 정복자들의 농작물도 적응을 하지 못했다. 열대지역의 기후는 ‘건기’와 ‘우기’만으로 존재할 뿐이라서 유럽식 곡물은 메말라갈 뿐 이였다. 이처럼 세균의 역습을 당하고 열대기후에 농경을 할 수 없었기에 정착하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정착만을 못했을 뿐 강한 군사력과 철도를 이용해서 주민들을 노예로 잡아가 강제적으로 인력으로 사용했으며 아프리카의 자원을 약탈해 갔다. 이 자원을 바탕으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먼저 시작했던 유럽의 정복자들은 더욱더 강대해지기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유라시아와 남북 아메리카의 지역의 차이점에 지리적 환경의 조건을 적용시켜 정리해보면 문명의 발달에 지리적 환경이 어떻게 작용되었는지를 정리 할 수 있다. 남북아메리카의 자연환경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이후 이주민들이 세운 미국의 경우를 봐도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전쟁을 거치면서 급속도로 성장할 수가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적인 변수가 있다. 그러나 이주민들이 가지고온 가축과 농작물로 정착을 했고 무기와 기술을 가지고온 문화적인 교류가 그 때부터 가능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다. 그 전까진 가축도 없었으며, 가축을 이용한 농경보다는 대부분 인력으로 농경을 하거나 수렵의 비중이 컸던 생활이었다. 그렇기에 유라시아와 다르게 총, 균, 쇠 부분의 발달이 늦었다는 것은 위의 내용을 토대로 이미 설명된다. 지리적 조건에서 더욱 파고들어가 보면 남북 아메리카의 세로구조의 대륙 형태와 남북 사이가 거의 단절 되어있는 형태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유라시아와는 다른 이런 구조는 위도상의 문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가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를 예를 들 수가 있는데 문자가 발달을 하기에는 식량 문제가 해결한 후에 가능하며, 그 이후 교역하기 위해 문자가 필요하게 되고 필요성에 의해 발명되었다. 그리고 문화와 종교를 위해 인쇄술이 발명되었고 이는 획기적으로 지식의 축척을 이루어내었다. 이는 서로 문화나 기술의 전파를 가능케 했다. 이렇게 서로의 교류와 전파를 통해서 계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유라시아는 이것이 가능한 지리였기에 기술과 같은 문명의 열세가 교류를 통해 극복이 가능한 지역이 있었던 반면 남북 아메리카는 가능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이루어져있는 민족적, 인종적 불평등이 단순히 인종적인 차별적인 관점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과학적인 연구방법을 통한 역사연구를 했었다. 그 연구결과를 종합해서 간단히 말하고자 하면 ‘지리적인 환경의 차이가 문명의 불평등을 야기 시켰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지 ‘비옥한 초승달 지대’ 근처가 아니었고 유라시아 대륙이 주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러서 불평등의 피해를 받고 있는 민족이나 인종들은 이대로 인정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인종적으로 지능이 낮고 게으른 유전자를 타고 난 것이 아니라 지리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것뿐이기에 이를 극복하고 불평등을 타파할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지금 세계는 발달함에 있어 지리적 환경의 영향을 뛰어넘을 정도로 정보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역사는 지리적 환경의 영향뿐만 아니라 예측 못하는 특별한 개인의 출현으로도 충분하게 변화를 한다. 예수, 석가, 공자의 성인의 출현이나 포드, 히틀러, 빌게이츠의 사업가나 독재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수를 지니게 되었으며 영향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런 변수를 기다리기 보단 정부나 전 국민의 차원에서 노력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자신의 지리적 환경을 인지하고 그 단점을 보완하면서 발달한 충분한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과거의 지리적 환경의 영향으로 식민지의 상황을 거쳤지만 현재는 더 나아질 수도 있는데, 정치적 상황이 혼란스럽고 내전이 심한 것이 이와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국가가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아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복지를 향상시키고 경제를 개발시키는데 노력을 다하면 10년 20년 후에는 더 나아갈 수 있다.

과거의 지리적인 환경의 불평등이 현재에 국가의 경제력, 국방력까지 이어졌다는 건 인정할 수 있다. 불평등을 겪어왔던 나라들이 식민지의 상황을 거쳐 독립해왔고 소수의 나라는 부흥을 이루었지만 아직 많은 나라들이 혼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고립된 상태의 나라들이 아니다. 불평등의 피해자인 민족과 인종에게 나아가야 될 길을 제시한다면 정말 이것만 알았으면 한다. 지리적 환경의 영향을 받는 정도는 과거의 절대적인 상태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환경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 누구라도 미래를 예측해서 자기 개발로 더 나은 생활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할 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