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시엥 레짐’의 극복과 문명의 경쟁으로 본 인류문명의 속성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07.02.12
김경수_0289228


문명이란, 라틴어의 키비스(civis:시민)나 키빌리타스(civilitas:도시)에서 유래하였다. 문명이라는 용어는 실제에 있어 매우 다양한 뜻으로 쓰이나 문화와 대치(對置)되는 것으로 파악하는 입장과 문화의 특수한 한 형태로 파악하는 입장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었던 여러 문화 - 문명의 시발점 - 중에서 몇몇의 문화는 문명으로 발달하였고, 나머지 문화는 문명으로 발달하지 못한 채 문화의 상태로 현재까지 남아있거나 쇠퇴하여 없어지거나, 또는 다른 문화나 문명 속에 스며들어있기도 하다.
문명으로 발전한 문화, 문화에서 발전한 문명들의 공통점은 자연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문명이 발생되기 전의 인류는 자연 앞에서 매우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였다. 오로지 생존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며 그 외의 것은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알맞은 기후와 지질학적인 요건과 농경에 알맞은 작물을 확보한 인류는 곧 문명을 이룩하게 된다.
농경생활로 인해 전보다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하게 됨으로써 인류는 약간의 여유를 가지게 된다. 이 여유는 무형의 잉여 자산이 되어, 여유는 인간이 생각을 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또 다른 발전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여러 문명들이 조금씩 다른 방법의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차이 또한 문명마다 다른 발전 방향을 갖도록 하였으며, 각 문명이 위치한 지리적, 기후적 특징 또한 각 문명의 발전방향에 영향을 끼쳤다.
동양문명의 농경은 쌀농사이다. 쌀농사는 서양의 밀농사 보다 훨씬 안정적인 수확을 할 수 있었으며, 영양가 또한 밀보다 우수하였다. 쌀농사를 짓는 동양 문명권의 인구 부양능력은 서양을 앞질렀다. 이로써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명들은 서양보다 더 많은 여유와 인적 자원을 가질 수 있었고, 문명의 발전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밀농사의 서양문명권과의 레이스에서 쌀농사의 동양문명권이 먼저 앞서게 되었다. 하지만 곧 동양문명권은 발전의 속도가 더뎌져만 가고 곧 서양문명에 추월당하게 된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문명이 서양에 추월당한 요인은 서양문명과의 레이스에서 동양문명을 이끌었던 쌀농사였다. 서양은 밀농사로 인해 안정적인 수확을 거두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고, 그 노력으로 일환으로 고지대를 활용하였다. 그것은 목축 발전을 이끌었다. 반면 쌀농사의 문명에서는 고지대를 활용하려하지 않았다. 쌀농사는 적은 힘으로 안정적인 수확을 할 수 있었고, 쌀은 밀처럼 많은 지력을 소모하지 않았기 때문에 밀 농사보다 적은 물리적인 힘으로도 충분하였다. 많은 힘이 들어가는 밀농사를 위해 서양에서는 가축을 키우는데 주력하였고, 목축업이 발달하였다. 중국문명권에서도 가축을 사용하긴 하였으나 인력으로도 충분히 농사를 지을수 있었기 때문에 서양에 비해서 가축보다 인력에 더 많이 의지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서양문명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문명에 비해 좀 더 응용력을 발휘해야 하는 상황에 더 자주 놓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성공적인 쌀농사는 중국의 인구 압력을 완화 시켜줄 수 있었고, 그에 비해 서양의 밀농사는 서양의 인구 압력을 감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이므로, 서양은 신대륙으로 진출하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동양이 서양에게 추월당한 이유로 형이상학적 배경, 곧 유교의 발달이 동양의 발달을 저해하였다는 의견이 있는데, 현상유지에 중점을 두는 유교 또한 쌀농사를 근본으로 삼는 것에 의해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양의 문명이 동양에 비해서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을 띄는 것, 기독교의 호전적인 성향 또한 밀 농사의 완벽하지 못한 점으로 비롯된 듯싶다.
서양 유럽 문명은 동양 중국 문명권에 비해 더욱 노력을 해야 했다. 부단한 노력과 희생,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노력에 대한 대가도 충분하였고, 그 댓가는 서양 문명이 현재 세계의 표준이 되게 하였다. 동양문명은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였던 것이다.
동양문명권은 서양 문명의 역사에서 프로낭 브로델이 말하는 ‘앙시엥 레짐’을 서양보다 빨리 도달하여 무너뜨렸지만, 그 이후의 현실에 만족하고 더욱 발전하지 못한채 안주해 버린 것이다. 그에 반해 서양문명은 ‘앙시엥 레짐’을 동양보다 늦게 무너뜨렸지만 그 이후에 잠깐 동안의 침체기가 있었지만 발전에 박차를 가하였다. 여기서 ‘앙시엥 레짐’이란 프랑스 혁명 전의 사회, 경제, 정치 체제, 또는 ‘구체제’, ‘구제도’ 등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앙시엥 레짐 시기’를 극복한 후에는 동양은 물론 서양에서도 침체기가 왔었다.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그 현상에서 잠시 공회전만 하는 모터처럼 누적된 자본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경제상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앙시엥 레짐’의 진리이며, 또 병이기도 한 특성, 바로 ‘사치’가 존재하게 되었다.
사치는 산업혁명 이전에 성장이 한계에 부딪친 사회 내에서, 생산된 ‘잉여’를 부당하게, 건전하지 못하게, 그러나 멋지게 비경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사치는 그 어느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사회적 수준의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 수준차이는 매번 변동이 있을 때마다 새로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곧 영원한 “계급투쟁”이며 이 투쟁은 계급만이 아니라 문명 간의 투쟁이기도 하다. 부자들이 빈자들에 대해서 행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문명간에 사치의 사회적 코미디를 행한다. 예를 들면 서구의 불필요한 발명품들은 동양이나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값비싼 사치품을 비롯한 자원과 교환이 이루어진 현상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필요의 존재 이상인 욕망의 존재이므로, 사치는 사회가 도약하는 힘을 주는 촉진요인이었다.
앙시엥 레짐 시기를 극복한 이후에 서양 문명은 이러한 사치를 점점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반면, 앙시엥 레짐을 극복한 이후에도 동양의 문화에서는 욕망을 억누르고 사치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였기 때문에 서양보다 사회도약이 더뎠다.
사치를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유럽에서는 시장경제가 발달하게 되고 시장경제의 발달은 산업혁명과 같은 문명의 발달을 가속화 시키게 되었으며, 결국은 자본주의라는 최상위의 경제 영역이 나타나기에 이른다. 경제역영 전반을 뒤흔드는 영역인 자본주의가 서양에서 시작되었고, 경제논리가 모든 만물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동양은 서양의 문명에 완전히 뒤처지게 되는 시점에까지 가기도 했다.
P.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에서 처럼 문명과 문명 간의 충돌, 혹은 문명에 대한 문화 저항이 있었고, 더 심한 경우에는 문화 조차도 없는 곳에 대한 문명의 정복 - 브로델의 ‘공간의 정복’이라는 표현 - 처럼 문명은 한 곳에서만 안주하지 않았다. 특히 서양 유럽 문명은 여러 문명들 중 가장 활발한 문명이었다.
문명들 간의 충돌은 매우 극적이다. 나에게 가장 극적인 문명들 간의 충돌은 바로 명백히 앞 서있던 문명을 추월한 뒤쳐졌었던 문명, 서구문명의 중국문명권에 대한 침략인 것이다. P.브로델과 다이아몬드는 문명 간의 격차를 설명하고 분석하려고 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문명은 노력 여하에 따라 뒤쳐질 때도 있고 다시 앞서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잠비아 역시 다시 발전할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교수의 말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중국은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빠른 전후 복구와 경제성장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앙시엥 레짐’ 시기 도달하였는지 잠시 침체기에 있지만 이 침체기만 극복한다면, 분명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인류문명의 속성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어느 수준 - 앙시엥 레짐 - 이상의 문명에서 필요한 가장 중요한 특성은 현실에 안주 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인 것이다. 그 욕망의 정도가 문명의 발달 정도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