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문화연구회 편
일상속의 한국문화_자기성찰의 사회학2, 나남출판_1998
물질문화론_채승진 교수님_20070221
오종인_0393007

■ 구 성
이 책은 한국 사회의 일상문화를 이해하는 사회학적관점과 분석틀을 탐구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일상문화에 대한 자기성찰의 사회학은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자화상을 좀더 냉철하게 그려보면서 그 한계와 잠재가능성을 포착하기 위한 것이라 저자들은 말한다.
저자는 총 10으로 프랑스에서 수학한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이 1993년 결성된 연구모임원들로 책을 읽으면서 90년대에 쓴 책이 21세기 한국사회에 상당부분 맞긴 하지만 많은 변화로 인하여 다른 부분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외국에서 공부하다 오신 한국인들인지라 비판적으로 한국문화를 일관되게 바라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은 그게 3개의 소제목들 아래 여러 게의 물음들을 달아놓고 하나씩 설명과 논의를 해 가는 방식으로 쓰였다.

■ 지하철 속의 일상문화_정수복
-일상문화 : 개인과 집단의 일상은 사회에 의해 구조화되면서 동시에 사회를 구조화하는 일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일상의 연속성, 규칙성, 반복성, 집합적 관행 등은 인간을 일상성에 길들여지게 하면서 또한 일상을 구조화하는 사회재생산의 기제들이다. 일상성 속에서 인간의 활동과 생활양식은 무의식적이며 무반성적인 행위와 생활의 리듬으로 자리 잡기 쉬우며 또한 일상성은 사회 변화에 또는 변화하는 사회에 친숙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서울의 지하철 속을 오가면서 이상의 공간을 일상의 눈이 아니라 탐험가의 눈으로 보고 분석하는 일도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을 타면 타인과 공유하는 공적 공간만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보이는 것은 생생한 삶 자체이다. 자가용 승용차라는 밀폐된 사적 공간이 우리를 외부의 생생한 삶의 현장으로부터 유리시킨다면 지하철이라는 공적 생활공간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서울의 지하철 속에 들어온 탐험가의 눈에 맨 먼저 들어오는 것은 공적 공간 속의 사적 행위들이다. 지하철은 말 그대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여러 사람이 함께 이용하는 공공의 장소이다. 공적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사적인 행위들 가운데는 젊은 여자 뒤에 바짝 달라붙는 성추행, 남의 가방이나 주머니를 슬쩍하는 절도 등의 금지된 행위에서부터 거울을 꺼내 보며 화장하기, ‘영화 찍기’ 라고 표현되는 남녀간의 진한 애정표현, 핸드폰에 대고 큰소리 지르기, 술에 취해 자리에 누워 버리는 일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 등이 있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자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고개를 흔들어대는 여고생, 예수를 믿으라고 외쳐대는 젊은이, 하모니카를 불며 지나가는 장님, 그리고 스포츠 신문을 파는 아저씨의 모습 등 다양한 사적 행위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지하철 곳곳에는 미세하여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섬세한 탐험가의 눈으로 관찰하면 일상문화의 의미와 문법들을 발견할 수 있는 현상들이 널려있다. 바야흐로 이제 서울의 땅 밑은 이제 시민의 생활공간으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하철은 단순히 운송의 기능을 넘어선 일상생활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탈수 있는 지하철 1호선에서 8호선의 경우 노선에 따른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 지하철 노선이 경유하는 지역이 다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다르고, 그 곳에서 벌어지는 경제활동이 다르기 때이다. 우리의 일상 문화에서 익명의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은 그리 쉽거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허물없는 대화가 가능하지만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맺는 일은 무척 어색해 한다. 지하철 속에서는 서로가 관찰의 대상일 뿐 대화의 상대자는 될 수없다. 지하철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임시적 무대에서는 개인적 독백과 상상만이 존재할 뿐 사람들 사이에는 침묵의 강이 흐른다. 바쁜 생활 속에서 자기 일에 매몰된 그러나 마음 깊숙한 속에 타인에게 말을 걸고 싶은 욕망을 가진 외로운 유목민들이 오늘도 지하철 공간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지하철 속의 일상 문화는 이 글이 4년 전에 쓰여져 지금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앞서 말한바와 같다. 필자가 지하철 문화에서 해결해야 될 문제 중 하나가 문화 시설의 부족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각 역마다 공연 시설을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무료 책 대여소, 수족관 등과 지하철 내의 TV방영으로 조금이나마 여유를 찾게 해준다. 필자가 글을 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침묵의 문화`이다. `침묵의 문화`는 시선 관리의 어려움과 통하는 의미이며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로 꼽을 수 있다.

■ 자동차 문화_현택수
차는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자 개성 그 자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라는 단순한 실용적 도구의 의미를 넘어 개인의 욕망의 분출과 함께 사회가치관을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적 지표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부정적인 자동차 문화현상은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편 자동차는 우리 사회에서 낭비와 허세와 비양심, 이기주의, 물질만능의 상징이 되었다. 운전행위는 시간과 공간을 위하여 협조해야만 하는 사회적 행위인데 지나친 이기주위에 사로 잡혀 많은 사고와 사회경제적 문제를 낳고 있다. 지금 우리는 세상 유례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것은 주차 전쟁이다. ‘주차’라는 단어는 질서 공간이어야 하는데 땅에서 주차는 교통질서의 이미지보다는 억지와 무력이 판치는 무법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우리의 차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권위주의적, 과시적 행동이나 허영심으로 왜곡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명의 이기인 차로부터 편하거나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인에게 차는 단순히 신발과 같은 교통수단이 아니라 무언가를 표현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한국인은 차의 의미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고, 이러한 과도한 의식이 본래 차의 의미와 이미지를 손상 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자동차를 통해 사람들의 심리를 알아보고 있다. 왜 그토록 사람들이 차를 갖고 싶어 하는지. 그것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자유를 의미하고, 시간과 공간을 지배한다는 환상을 준다는 것이다. 즉, 운전자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속력을 낼 수 있고, 집과 도시를 벗어나 어디론가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통해 한국인의 의식과 가치관을 살펴보았다. 어린이 교통사고는 어른중심주의적 사고와 어린이 인격 무시의 의식에서 비롯되었고, 아울러 힘없는 노인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연령차별주의 의식에서 벗어나 노년층에 대한 사회적 배려를 강화, 미래의 고령화 사회에 걸 맞는 자동차문화 요구, 여성에 대한 성 차별적 의식 불식시켜 평등한 자동차문화 요구를 하였다.

■ 집, 삶, 꿈 : 주거문화의 일상성_한경애
삶의 터전으로서 집은 이사를 가거나 내 집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사건적인, 일회성 행사가 없는 한 별다른 생각 없이 그저 ‘사는’ 공간이다. 우리 모두에게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그야말로 ‘별 볼일 없게’ 남과 비슷비슷한, 그러한 이중성을 지닌 일상생활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매일 매일 쌓이는 보이지 않는 먼지와 같다. 구체적인 삶으로서의 일상은, 생각의 대상이 되는 순간 부유하는 먼지처럼 손아귀를 벗어난다. 삶의 과정은 끊임없이 먼지를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먼지를 별로 느끼지 않고 산다. 그러나 미세한 먼지의 작은 움직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먼지의 덩어리로 변하고 청소를 해야 할 정도로 쌓여서 자신의 물리적 실체를 드러낸다.
과연 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집은 삶의 터전이다. 단순한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으로부터 역사와 권력을 암시하는 혈연 공동체적인 집안, 혹은 가문으로서의 집까지, 우리나라 말의 ‘집’ 은 대단히 넓은 의미를 지닌 삶의 기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은 우리의 삶에서 일상의 기반이며 안정적인 공간을 뜻한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의 많은 부분이 이루어지는 공간, 이것이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이고, 우리의 삶에 이름을 붙여주는 상징적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이 집이다. 이러한 ‘집’의 중첩적인 의미를 일상의 공간에 대한 관찰을 통해 정리해 보면 집은 물리적 공간, 사적공간이며 사적 행위의 공간, 상징적인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1970년대의 아파트 대량공급의 시대에 태어나 아파트촌에서만 살아온 세대가 있다. 마당이 없는 도시의 집에서 자란 세대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서로 꼭 붙은 아파트에서는 겁도 덜 나지만 그만큼 우리의 내면과 우주를 연결 짓는 꿈도 줄어든다. 그래도 우리는 아파트를 꿈꾼다. 아파트에 대해, 아파트 생활에 대해 어떤 불평을 늘어놓든 하늘과 가까운 달동네에서, 땅에 파묻힌 반 지하에서 아파트를 꿈꾼다. 그러나 이 꿈이 현실이 되면, 다시 흙 밟는 집, 마당 있는 집, 전원주택이 꿈으로 다가온다. ‘주거 공간’ 이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바꿔보자. 사람이 이루어지는 집, 또 다른 말로는 일터와 구별 지어서 살림집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살림’의, 삶의 현재진행형의 공간을 말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듯 말이다.

■ 사교성의 차원과 그 공간_김무경
‘sociable’ 혹은 ‘sociability’ 등의 영어 표현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쉽지 않은 단어들 중의 하나인 것 같다. ‘sociability’는 ‘사교성’, ‘교제를 좋아함’, ‘사교에 능란함’ 등으로,‘sociable’은 ‘사교를 좋아하는’, ‘사교적인’, ‘사귀기 좋아하는’, ‘친목적인’ 등으로 사전에 그 뜻이 나와 있지만 왠지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바를 시원스레 밝히지는 못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모임을 갖는 경우, 분명 그것은 필요나 특수한 이익을 위해서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모임의 특수한 목적과 내용을 넘어서 모든 상호작용의 과정- 짐멜이 여기서 ‘사회화’ 라고 하는 그에게 고유한 개념을 쓰고 있지만-에는 고유의 감정과 그것이 제공하는 만족감이 동반되는데, 이것들은 바로 상호작용 그 자체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다. 사교성의 본질은 우리는 이미 인간들의 현실주의적인 상호작용에서 그 현실적 내용 혹은 목적을 제거하는 것, 그리고 오직 형식적 법칙에 따라서 하나의 인위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사교성의 상위 한계와 하위 한계 : 사교성의 차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임이나 만남을 일의 내용이나 객관적 목적에 종속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이를 사교성의 상위한계라고 지칭한다. 그 다음, 이런류의 만남이 일의 내용보다는 만난다는 사실 그 자체에 중요성을 두기에 가 개인의 개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이 훨씬 커지는 만큼, 그것이 너무 지나치게 드러난다면 이는 또한 사교성의 차원을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교성의 차원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차원에의 제한이 필요하게 되고 이 두 번째 부분을 사교성의 하위한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교성의 공간 : 프랑스의 역사학자 모리스 아귈롱의 분석을 바탕으로 써클, 클럽, 카페, 살롱, 카바레의 어원을 통해 그 역사와 의미를 사교성의 차원에서 공간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교성의 공간으로는 무교동, 옴팍집의 예를 들어 사교성의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사교성의 공간에서는 사교성의 차원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가 되기에는 미흡하며 역사적이고 체계적인 분석에도 이르지 못하였음을 자백(?)하였다. 사교성의 공간 부분은 단순한 ‘공간’의 나열보다는 공간이라는 변수가 어떻게 한 집단의, 한 사회의 분석에 포함될 수 있는지에 그 분석의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 술의 사회학_이상훈
한 사회에서 행해지는 음주문화는 중요한 하나의 문화다. 나라마다 그 나라만의 고유한 음주문화가 있다. 술은 술 그 자체로서, 혹은 술을 통해 성의 문제나 쾌락, 일탈문화 그리고 사회 병리적인 알코올 중독의 문제를 다룰 때도 술을 대하는 시각은 문화적인 특수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마시는 술에는 오래 두는 술이 없다. 소주가 그렇고 맥주가 그렇다. 만들어서 그냥 마셔버리는 것이다. 즉, 술이 지니는 가치는 술 이외에 다른 측면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판’의 문화다. 그것은 흔히 판을 짠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다. 술판, 놀이판, 굿판 혹은 전혀 관계가 없을 듯한 단어인 정치에서도 판을 짠다는 말을 쓴다. 그것은 일단 판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고 감정을 서로 나누며 그 순간만은 서로 친밀함을 느끼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술자리는 독특한 신뢰가 형성되는 공간이다. 어쩌면 가장 공식적이어야 하고 합리적인 기준이 필요한 신뢰와 믿음이 가장 비공식적인 관계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술자리에서 드러나는 태도를 통해 사람을 믿을 수 있다 거나 혹은 못 믿을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모습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일 잘하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 술자리에서 술 매너 좋고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사람을 더 잘 기억한다. 일 잘하는 사람보고 저 사람 술 잘 마실 것 같다고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술 잘 마시고 잘 노는 사람보고는 저 사람일도 잘 할 거야라고 흔히 말한다. 술은 견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을 잘 견디면 다른 것도 잘 견디는 것으로 인정된다. 결구 우리는 술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대적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 또 하나의 힘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술은 권력과 통한다.
우리의 술자리는 오히려 어디보다도 질서 있는 자리이며, 끈끈한 연대성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며 또 일상 속에 퍼져있는 또 하나의 권력이 행사되는 장소이다. 당연히 술은 이러한 관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매개물이다. 술잔 안에 삶이 녹아 있다. 매일매일 벌어지는 큰 의미 없는 장면들이지만 또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사연이 있는 순간들이다.

■ 텔레비전과 일상문화_이기현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세계는 가공의 세계이다. 아무리 세밀하고 현실감 있게 사실을 구성한다 해도 그것은 픽션이며 가공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공의 세계를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우리의 일상세계와는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문체 화된 문화가 우리에게 쉽게 수용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매체공간은 무한히 넓어 보이고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이른바 매체적 환상이 날개를 편다. 우리의 상상은 전자기술로 무장한 날개를 달고 정보와 영상의 바다를 무한정 항해하거나 탐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유혹의 환상에서 깨어나면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이 진부하고 반복적인 일상세계일 뿐이다. 현대 대중매체에서 텔레비전이 차지하는 위상은 특별하다. 텔레비전수상기가 대중적으로 보급됨으로써, 뉴스를 비롯하여 음악, 영화, 광고 등 각종 현대 대중문화가 집결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 텔레비전은 다른 매체 보다 비교적 접근이 용이하고, 일정한 시청각 효과를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대중문화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포괄적인 문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대중매체가 우리의 일상적 삶에 미치는 역기능은,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일상공간을 침해하거나 훼손한다는 점이다. 일상공간의 침해는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문화적 내용이 획일화되고 표준화되며 일반인들이 문화의 주체가 아닌 객체로서 머물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일상공간이 적극적인 문화공간으로서 기능 하는 것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즉, 매체 화된 문화는 적극적인 활동의 공간으로서 일상공간이 활성화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정보화 사회를 맞이하면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전통적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양자 사이의 통합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이 기술적 환경의 변화에 대한 우리의 수용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문화공간의 공적 사적 영역의 관계에 대한 더욱 세심한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가 문화의 공 개념을 상실하고 사적 영역을 지나치게 침범하거나 들추어낼 때, 그 문화는 관음의 문화나 자기도취의 문화, 그리고 무책임의 문화가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스트레스성 여가와 미학적 여가_최원기
하나의 사회는 그 사화를 유지하고 있는 기존의 사회성과 새롭게 변화를 추구하고 떠오르는 새로운 사회성간의 관계에 의해 특징이 규정된다. 삶의 질이라고 하는 요소 또한 이와 같은 사회성의 변화에 따라 특성이 규정되는 사회성의 한 표상으로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삶의 질은 삶의 양을 포함하는 삶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속에는 무수히 다양하고 많은 양의 도 다른 삶들이 존재해 있으며, 각각의 삶의 질은 타인과 나의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주체성을 지닌, 그리고 타인의 주체성까지도 포용해주고 고려해주는 적극적 능동성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나’의 삶의 질은 ‘타인’의 삶의 질이며, ‘타인’의 삶의 질 없이 ‘나’의 삶의 질이 완성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삶의 질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이다. 여가란 삶의 질 추구를 위한 적극적 표현양식이다. 즉, 내가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나 아닌 다른 타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적극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유형무형의 모든 행위형태가 여가의 법주에 포함된다. 삶의 질 추구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미학적 태도이다. 특히 여가는 삶의 질 추구의 적극적 표현양식이기 때문에 미학적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여가라고 하는 것은 주체에게 부여된 자발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공간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이렇게 자발성에 연결된다. 결국 여가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은 주체가 자신의 공간성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체지향성, 즉 공간지향성에서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 문제가 어떠한 형태로든 여가가 아닌 형태로 표출될 때 우리는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스트레스의 형태는 ‘한’이라는 단어로 집약될 수 있다. ‘한’은 한국문화를 통해 전수되고 있는 한국인의 기본적 ‘공유정서’이다. 심리학적 정신병리학적 측면에서의 연구들은 ‘한’의 정서를 한국인에게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우울증의 중요한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 의하면 ‘한’은 한민족 5천년의 역사 전반을 통해 축적된 한국인의 독특한 감정적 산물이라고 분석된다.

■ 성의 일상문화_이영자
성이 우리의 일상을 차지하는 자리와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성을 일상적 소모품으로, 길거리 눈요기 감으로, 농담거리의 소재로, 몸 관리의 표적으로, 그리고 사랑의 교감과 쾌락추구와 돈벌이 장사를 위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우리의 성문화는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인 입장에서 이끌어가기보다는 외국의 성풍속이나 성산업이나 유행의 물결이 무분별하게 유입될 수 있는 풍토 속에 방치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성생활이 금욕과 쾌락 사이에서 위선적이고 분열적인 상태의 이중성을 들어내는 것이 한국인의 성문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금욕주의가 낯의 성을 지켜주는 것은 밤의 괘락추구적인 성을 오히려 더 자유롭게 방치할 수 있는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에 와서 성의 쾌락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육체의 건강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집착현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직된 성 도덕론과 무분별한성 쾌락주의가 양극을 이루는 상황에서 개인들 간에 편차가 점점 더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현재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성의 일상문화는 이중 삼중의 혼란된 얼굴들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성문화가 어떠한 제도와 풍속과 선업환경과 외래문화의 영향 속에서 형성되어 왔는지를 따져보는 일은 결국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성문화의 모습을 새롭게 그려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금욕과 타락, 윤리와 본능의 이분법적 틀의 희생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고, 남성적 성과 여성적성으로 이분화 되어 온 성문화가 공범자가 되기를 거부해야 할 것이며, 서양 권력과 돈과 시장의 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파괴되고 반인간적이 되어 가는 현상들을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며, 우리가 원하는 성문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탐색하고 창조해 내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 화장, 미의 추구_부정남
‘미의 상품’ 또는 ‘꿈의 상품’이라고 불리는 화장품을 애용하는 여성들의 심리적 요인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미를 추구하려는 요구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요즈음 화장을 진하게 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을 바라볼 때, 그들이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화장을 한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화장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미를 추구하는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 자기 개성의 표현일수도 있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과거 귀족들의 불멸의 상징물보다는 그떄 그떄의 표면적인 미의 순간성과 우연성을 중시하는 경향을 띄었다. 그 종류로는 집, 가구, 옷 등 여러 종류가 있으며 여서의 화장도 그 중의 하나다. 다행스럽게도 정보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1990년대에 이르러 우리나라 화장업자들은 외국제품들과 경쟁하는 가운데 다양한 새로운 제품들을 생산하였다. 이것은 분명히 소비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피부에 맞는 색깔 개발과 건강과 연관된 기능적인 측면을 강조한 다양한 제품들은 여성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다.

■ 한국인의 건강문화_이병혁
전통적으로 한국인은 아이가 태어나면 오복을 축원하였는데, 그 오복에는 수, 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 또는 장수, 부유, 무병, 식재, 도덕, 아니면 장수, 부, 귀, 강령, 다남이 포함된다. 이 오복 속에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건강과 관련된 항목이 3개 나 있을 정도로 ‘건강’은 한국인의 삶의 기본 관심사였다.
한국인을 포함한 인간 모두가 장수를 기원하고, 이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기피의도가 깔려있다. 죽음은 삶이 끝나면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삶과 함께 비롯해서 삶속에서 삶과 함께 자란다. 죽음은 삶 속에 내재해 있다. 그것은 삶이 없이는 죽음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입증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16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몽테뉴의 죽음론에 공감하면서 이 글을 맺고 있다.
삶의 가치는 그 길이에 있지 않고 그 순간순간을 얼마나 알차게 유용했느냐에 있다. 아무리 오래 살았다 해도 내용과 결과에 따라 실제로는 얼마 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 책을 읽고...
우리나라의 일상문화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분석한다는 어쩌면 새로운 시도에 한국의 일상문화를 새삼 다르게 볼 수 있었다. 한 국가의 문화를 총체적으로 분석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몇 가지 문화현상을 보고 원론적으로 접근하는 집필 방식이 새로웠다. 중간 중간 외국인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고 외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나라는 정말 살만한 나라가 아닐 것이라는 다소 씁쓸한 느낌을 받았다.

■ 토론
한국의 일상 속에 부정적인 모습 말고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